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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전으로 고향 잘 다녀오세요∼!365일 눈비 맞으며 숨은 땀으로 우리네 삶 배웅하는 ‘정겨운 이웃’
김은미 기자 | 승인 2005.10.12 10:08


해마다 명절이면 도로 곳곳이 온통 북새통이다. 꼬리에 꼬리를 잇는 귀성행렬 때문인데, 아마 이번 추석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이처럼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바빠지는 이들이 있다. 고향보다도 먼저 반갑게 귀성객들을 맞아주는, 바로 톨게이트 매표원. 정작 자신들은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바쁜 명절을 보내야함에도, 안전한 귀성길을 염원하며 환한 웃음으로 길을 열어준다. 

하루 1인 당 1천8백 대 소통… ‘바쁘다 바뻐!’

“어서 오세요!”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차들. 앞차를 보내기가 무섭게 금세 뒤차가 뒤따른다. 이처럼 매일 수많은 차들과 씨름하는 톨게이트 매표원. 업무가 시작되면 일단 이곳에선 숨 돌릴 틈조차 없다. 잠시라도 늑장을 부리면 정차되기 십상이니, 웬만큼 급한 일 아니고서는 휴식시간까지 풀가동이다. 때문에 근무를 마치고 나면 절로 기운이 쫙∼ 빠지기 일쑤란다.

방금 초근을 마친 한국도로공사 서울영업소 이옥화(39)씨의 얼굴에도 피곤이 가득하다. 평소 이곳 통행량은 양방향 평균 20만 대 정도. 근무자 한 명이 약 1천8백 대 정도 차량을 소통한다니,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근무시스템이 3교대다 보니 생체리듬이 깨져 더 쉽게 피로하다고.

“밤 10시에서 새벽 6시까지 야근,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초근,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중근. 이렇게 8시간씩 맞물려 일을 해요. 그런데 야근하고 다음 날 중근이거나, 중근하고 초근이 이어질 때는 교대시간 텀이 너무 짧아서 많이 힘들어요. 이 때는 4∼5시간 밖에 못 자요. 물론 이틀씩 길게 쉴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출퇴근이 규칙적이지 않으니까 힘들죠.”

경력 5년에 베테랑급인 이씨지만, 그는 여전히 3교대가 힘들단다.
“요즘은 워낙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덜한데, 전에는 일이 고되니까 이직율이 높았어요. 특히 아가씨들은 오래 못 버티더라고요. 남들처럼 정시 출퇴근이 아니어서 친구들이 놀 때 못 놀거든요. 그러다 보니 현재 근무자 대부분 30대 중반 이상 주부들이에요.” 

한 평 공간에서 매일 8시간 이상 근무해야 하는 매표원들. 내심 갑갑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씨는 “작아서 안정감 있고 더 편안하다”고 귀뜸했다.

“올여름 날이 더웠잖아요. 그런데다 작은 공간에서 일하는 게 안쓰러웠는지 고객들도 그런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냉난방시설도 잘 되어 있고,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밖에서 보는 것만큼 답답하지 않아요. 오히려 나만의 공간이라서 편안해요. 게다가 눈이나 비 내리는 풍경이라든지,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때론 운치 있어요.”

늘 같은 자리에 있는 톨게이트 요금소. 그러다 보니 별반 특별한 일이라곤 거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곳엔 끊임없는 삶의 꿈틀거림이 있었다. 출퇴근하는 사람들, 이삿짐 차들, 대형트럭, 버스 운전사들, 여행객 등 가난하든 부자든, 어떤 종교를 가졌든 누구나 이곳을 오간다. 쉼 없는 오고감 속에 오히려 일상들이 낫낫히 토졌다.

6년째 서울영업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현옥(45)씨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이곳에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다 알 수 있어요. 특히 유행에 대해서 가장 빨리 알아요. 유행하는 옷, 노래, 음식, 사람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등 잠깐 스치고 지나가지만 사람들이 오가다 보니 금세 드러 나요”라고 말한다.

심지어 경제가 좋은 지 나쁜 지도 금세 가늠할 수 있단다.
“호황일 때는 지폐나 빳빳한 신권이 많이 들어오는 반면, 침체기에는 동전이 많이 모여요. 요즘에는 동전이 많이 쌓이고 있어요. 심지어 10원짜리도 자주 보이는데, 이번 명절에는 동전보다 지폐가 더 많이 쌓였으면 좋겠어요.”

하루에도 천 명 이상 사람들을 만나는 만큼 어디 웃을 일만 있을까. 특히 서비스직이다 보니 무조건적으로 친절해야 한다는 고객들의 편견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란다. 게다가 하루종일 인사하고, 차들이 멈췄다 출발할 때 뿜어내는 매연을 고스란히 맡아야 하는 상황에 몸이 많이 지치기 일쑤다. 그럼에도 이씨가 보람을 느끼는 데는 바로 사람 사는 ‘냄새’가 주는 쏠쏠함 때문이란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흥청망청해서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열심히 사는 이들이 많아요. 힘든 일 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트럭영업을 하면서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힘차게 인사하는 건강한 청년들을 보면, 정말 마음이 든든해요. 게다가 나쁜 사람 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아요.
작은 친절에 오히려 과하게 칭찬이 돌아올 때가 있어요. 이럴 때 정말 기뻐요. 조금 양보하고 베풀었을 때, 같이 손 맞잡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 참 사는 게 훈훈하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바쁜 틈에도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라고 나누는 말 한마디, 씩∼하고 환하게 웃어주는 넉넉한 웃음.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이런 주고받는 일상 조각들이 팍팍한 공간을 조금은 부드럽게 했다.

“40대가 되면 자기 얼굴은 자기가 만든다고 하잖아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일하다 보면 환하게 먼저 웃어주는 운전자들이 있어요. 이 분들 보면 기분이 좋아요. 그러면서 내 얼굴이 되돌아봐져요. 내 표정은 어떨까.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그러면서 다시금 다짐하게 돼요. 꼭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친절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좁혀주는 것 같아요.”  

‘정’을 주고 받는 마음의 매표소 

한국도로공사 서서울 영업소. 이곳 역시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경기지역에서 두 번째로 통행차량 수가 많은 곳이기때문. 근무자 한 명 당 하루 천 오백 대나 되는 차들을 만난다. 하지만 비단 이곳은 차량 소통만 이루어지는 곳은 아니다.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정 나눔’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름 때문에 고객들에게 삼순이 언니로 통하는 장화순(49)씨는 “늘 만나는 분들이 있어요. 출퇴근하는 직장인, 화물트럭 기사, 노선버스 기사 등. 그런데 빈말이라도 ‘더 젊어지십니다’ ‘여전히 밝네요’라고 말해줄 때 기분이 참 좋죠. 그러다 보면 우리도 더한 친절로 보답하게 돼요”라고 말한다.
특히 야간근무를 할 때 사탕하나 나누는 정은 더 은근하단다.

“야근 때 졸립고 힘들잖아요. 이때 버스기사 등 야간에 우리처럼 근무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서로 힘든 것을 알잖아요. 사탕하나 주면서 힘내라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저희도 사탕이나 껌이 있으면 졸음운전 하지 말라고 드리는데, 참 고마워해요. 이렇게 주고받는 정이 이곳에는 퐁퐁 솟아요.”

워낙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 보니, 이곳에선 매일 색다른 경험을 하기 일쑤다. 올해로 2년째 근무 중이라는 강선미 씨는 얼마 전 택시기사와 얽힌 이야기를 했다.

“한 번은 한 택시기사가 어디를 다녀오는 모양이에요. 그런데 갈 때하고 올 때하고 출발지가 달라서 요금 차이가 조금 있었는데, 그 때가 밤 12시가 넘었거든요. 그런데 택씨 아저씨가 ‘어? 요금소도 12시가 넘으니까 할증이 붙나보네’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아니다’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해명할 새도 없이 돈만 내고 금세 쌩~가시더라고요. 가는 차를 다시 붙잡을 수도 없고, 아직도 이 아저씨는 할증 붙어서라고 알 거예요.”  
어디 그 뿐이랴. 명절엔 차량이 몇 배로 늘다 보니, 평소보다 에피소드가 더 많다. 특히 차량 지체와 관련한 일들이 많다.

올해로 6년째 근무 중인 김명순 씨는 “평소에는 1분에 6∼8대 정도 통행을 시키는데, 명절에는 2∼3대 정도 밖에 못해요. 매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요금소 앞에 정확히 차를 대고, 요금도 미리 준비하는 반면, 고향 내려간다고 급히 차를 산 초보 운전자나,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해보지 않은 여성운전자들의 경우는 요금계산 하느라 지체되기 일쑤거든요. 이때 성질 급한 사람이 있어요. 그새를 못 참고 빵빵거리거나, 자기 차례가 됐을 때 ‘아니, 이 아줌마가∼’하며 막 화를 내요. 그런데 아무리 늦어도 30초도 안되거든요. 고향 가는 길 생각만 해도 좋잖아요. 이왕 가는 거 화 내기 보다는 조금 이해하며 좋은 마음으로 갔다 오세요”라고 예쁘게 웃으며 부탁한다. 

이 외도 명절에만 볼 수 있는 재미난 풍경들이 있다. 오래 근무하다 보면 사람들 표정만 봐도 어떤 심리인지 금방 눈치를 챈단다. 특히 명절에 시집에 가는 길인지, 친정 가는 지 웬만해선 다 구분을 할 수 있단다. 남편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며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는 경우는 열에 아홉은 친정에 가거나 갔다오는 길. 반면 옷도 아무렇게나 입고 표정도 별 변화 없으면 시댁 행이란다.

“요즘은 명절 풍경도 과거만큼 북적북적거림이 덜해요. 전에는 갈 때는 선물을, 올 때는 밑반찬 거리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오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거의 없어요. 경기가 안 좋아지기도 했지만, 물건보다는 주로 현금으로 오가기 일쑤예요. 또 전하고 달리 몇 일 전부터 가기보다는 당일에 가는 경우도 많고요. 어쩔 수 없지만 이런 것 보면 사회가 갈수록 각박해지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워요.”

고향 그리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 귀성객들을 배웅하다보면, 어찌 같이 나서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 

“‘우리 사전엔 고향이 없다’ ‘명절이 없다’ 명절일수록 더 바쁘다 보니, 입사하면 먼저 이 말을 거의 세뇌교육을 받다시피 해요. 고향에 못 가면 서운하기는 하죠. 이제는 그러려니 해요. 게다가 우리만 일하는 것도 아닌 걸요. 고속버스 운전기사나 기관사들, 휴게소, 경찰관, 응급실 등 남들 쉴 때 일하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요. 날씨가 궂어도 좋아도 365일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사회가 유지돼죠. 그나마 우리는 한복도 입고, 오가며 송편을 건내는 분도 있고, 고생한다고 ‘수고하세요’라고 위로하는 분도 있어 명절분위기라도 한껏 낼 수 있잖아요. 우리는 못 가지만 마음 같아서는 이날은 통행료 안 받고 보내고 싶을 정도로 우리도 즐거워요.”

김씨는 귀성객들에게 한 가지 바람을 전했다. 바로 안전운전이다. 

“명절 연휴에 응급차나, 레커차에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찌그러져 끌려오는 차를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저차 주인은 누구일까. 고향에선 아들딸 온다고 잔뜩 음식장만하고 이제나 저제나 올까 맘 설레며 기다리실텐데…. 고향 가는 길 조금 늦으면 어때요! 사고 나지 않도록 더디 가도 꼭 안전운전으로 기분 좋게 갔다 그 마음 그대로 오세요.”

이번 추석엔 귀성객들이 먼저 웃어줬으면…

살다보면 무심코 지나치는 풍경이 참 많다. 톨게이트 매표원도 이들 중 하나일 게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가 알지 못해도 일년 365일 뜨고 지는 해와 달처럼, 길 위에서 눈비 맞으며 숨은 땀방울로 우리네 삶을 배웅한다. 올해도 휘엉청 밝은 빛으로 꽉 차 오른 보름달만큼이나 환한 얼굴로 안전한 귀성길을 염원할 톨게이트 매표원들. 이번 명절엔 귀성객들도 이들이 건내는 웃음에 정겨운 웃음으로 메아리쳐 보면 어떨까.  글/김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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