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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질긴 멍에 벗어날까원폭 후유증 대물림으로 2천3백여 명 건강권과 생존권 위협…
원폭2세 환우 위한 지원특별법 제정 시급
김은미 기자 | 승인 2005.10.14 09:06

인간답게 살고 싶다!’
그동안 깊게 묻혔던 원폭2세 환우의 고통스런 삶을 온 몸으로 알려왔던 원폭2세 환우 고 김형율 씨. 안타깝게도 지난 5월 병의 갑작스런 악화로 세상을 등졌다.

어렸을 적부터 잦은 병치레를 했던 김씨. 처음엔 그저 몸이 약해 그런 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95년 선천성면역글로블린이라는 난치성질환 판결을 받으면서 단순한 발병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어머니가 원폭피해자였던 것이다. 유전성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그는 확신했다. 가벼운 감기에도 금세 폐렴으로 이어져 수 십 차례 생사를 오갔던 그. 원폭2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그는 늘 얼음산 인생이었다. 
 
이런 삶은 비단 김씨뿐만이 아니다. 원폭피해자인 부모의 영향으로 원폭2세들은 질병과 빈곤의 대물림에 큰 고통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전 가능성 등 의학적인 규명이 안돼 아무런 지원 없이 홀로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다.

유전 가능성 의학적 규명 안돼 외면

올해로 광복 60주년을 맞았다. 이는 한편으로 원폭이 투하된 지 60년이 지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만큼 과거 속 역사가 됐다. 하지만 그 후유증은 지금도 현재형이다. 원폭피해자들의 삶 속에 질병과 빈곤으로 독버섯처럼 돋아나 있다. 더 비극적인 것은 2세까지도 피해자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근육병으로 입원 중인 백효순 씨. 그는 원폭2세 환우다. 일제시절 그의 아버지가 강제징역으로 끌려가 원폭 피해를 당했다. 해방 후 귀국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버지는 근육병으로 돌아가셨다. 하지만 원폭의 흔적은 아버지대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6남매 중 3명이 아버지와 같은 증상을 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4남매가 됐다. 몇 해전 첫째 언니와 둘째 오빠가 아버지를 뒤따른 것이다.

현재 백씨 역시 건강상태가 심각하다. 산소호흡기에 숨을 의지, 코로 음식을 먹고 말하기가 어려워져 글로 소통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원폭후유증으로 삶을 휘둘리고 있는 원폭2세 환우들. 그 정확한 수는 알 수 없다. 지금까지 한번도 정부차원의 실태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막연히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국내외 자료에 따르면, 1945년 원폭피해를 입은 한국인은 약 7만여 명, 이중 해방 후 귀국한 사람은 약 2만3천여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이 평균 3.5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가정, 약 8만여 명의 원폭2세들이 있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등록을 기준으로 1세는 약 2천3백여 명, 2세는 7천5백여 명이 국내 생존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는 원폭2세 환우 또한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지난 91년 보건사회연구원이 1천9백82명의 원폭1세를 조사한 결과, 41%가 1명 이상의 자녀에게 원폭후유증이 있다고 답했다. 이것을 미루어 약 2천3백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많은 수의 원폭2세 환우들은 아무런 죄 없이 60년 전 역사가 남긴 고통의 굴레에 갇혀 살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원폭피해 2세에 대한 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김준현 간사는 “원폭피해에 대해 정부는 거의 방관적이다. 그나마 1세는 일본의 기금지원이 있어 미진하게나마 진료나 원호수당 등이 지원된다. 하지만 2세는 그런 혜택도 전무하다”고 지적한다.
이에 2003년 8월 한 원폭2세 환우가 건강권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했다. 그 결과 지난해 간헐적이지만, 정부차원으로는 처음 원폭피해자들의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올 2월 결과를 발표했는데, 과히 충격적이다.

김 간사는 “원폭2세의 경우, 사망자 중 10세 미만이 52.2%를 차지, 과반수 이상이 원인불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 발생율 또한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일반인에 비해 빈혈이 88배, 심근경색 협심증 81배, 우울증 65배, 천식 26배 등 발병위험도가 매우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원폭2세들은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이유인즉, 그동안 끊임없이 쟁점이 되어왔던 유전문제가 규명되지 않은 이상, 지원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올해 1월 정부가 공개한 ‘한국인원폭피해자구호 1974’라는 문서를 보면, 이미 정부도 유전성 문제에 대해 일정정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 간사는 “내용 일부를 보면 ‘원폭피해자의 병상은 특수해 외상뿐 아니라 노출되지 않는 여러 가지 병발증을 포함하고 있어 특수치료가 필요’하며 ‘유전성에 있어 후손에 대한 건강관리도 크게 우려되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만큼 정부도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방치해 왔다. 이는 정부의 기만이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과제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원폭2세 당사자를 비롯, 시민단체가 국내 원폭피해자 진상규명과 지원을 위한 공동대책위를 결성, 관련 특별법 제정을 진행 중이다. 지난 8월 4일에는 ‘한국인원폭피해자 진상규명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된 상태다. 법안은 원폭1세와 2세에 대한 건강권과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예산 마련과 실태조사, 전문 치료병원 설립 등을 주 골자로 하고 있다.

피해자 실태조사와 더불어 대안마련 시급

지금까지 우리사회는 원폭피해자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원폭피해자는 엄연히 우리사회 현재의 모습이다. 특히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는 원폭2세 환우들은 현실에서 죽음보다 더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제 사회적 차원에서 원폭피해자 문제 논의가 절실하다. 무엇보다 정부는 지금까지 방관적 태도를 벗어나, 피해자 실태를 면면히 밝히고 이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대안 마련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글/김은미 기자

김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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