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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미래 닻 올리기 위한 첫걸음정신장애·노인 등 판단 어려움 겪는 이들의 삶의 질 향상 위한 후견인 제도 논의 활발
김은미 기자 | 승인 2005.10.17 11:40


‘내가 죽고 나면 우리 애는….’

정신지체 장애아(고1)를 둔 조옥란 씨. 이 생각만 하면 늘 한숨이 새어 나온다. 아이가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어, 일상에서 독립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들 경우 판단력이 부족해 언제 어떤 불합리한 일을 겪게 될지 몰라요. 한 번은 한 학습지 회사에서 아이이름을 대며 집으로 전화가 왔어요. 아이가 학습지를 신청했다는 거예요. 학교 앞에 보면 학습지, 인터넷 게임 등 가입하라고 선물을 주는 일이 많은데 우리 아이도 선물을 준다니까 가입했나봐요. 앞으로 이런 일을 더 많이 겪게 될텐데, 걱정이에요. 그나마 내가 살아 있을 때는 보호막이 될 수 있지만, 우리가 죽고 나면 어쩌겠어요.” 

비단 조씨 만의 걱정이 아니다. 실제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사후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에 잠 못 들기 일쑤다. 부모들의 이런 고민과 맞물려, 최근 성년후견제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지난해에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인인권부모회 등 18개 단체가 성년후견제추진연대(이하 추진연대)를 결성, 9월 민법개정안과 함께 성년후견제 토대 마련을 위한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행법상 한정치산·금치산제도 유명무실  
     
성년후견제는 정신장애 등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불합리한 일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말 그대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후견인을 두자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간 장애인계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수지 간사는 “정신장애인의 경우 카드사기, 명의도용 등 문제가 많다. 실제 본인 모르게 대출해 신용불량자를 만들어 놓는 사례도 흔하다. 그러다 보니 부모 대부분이 사후에 대한 걱정이 크다. 이후에도 재산보호나 중요한 결정에 있어 도와줄 이가 절실하다는 목소리 속에 성년후견제가 대두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노인단체에서도 성년후견제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관심이 늘어남에 따라 노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국노인의전화 김은주 소장은 “성년후견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계에서 먼저 논의됐지만, 선진국에서는 노인문제에서 비롯됐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치매노인 등 스스로 권리를 보호할 수 없는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고령화가 가장 빠른 나라로 꼽히고 있는 만큼 더욱 절실하고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실 현행법상 후견인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민법규정의 한정치산, 금치산제도가 그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법적 한계가 많아 그 실효성이 유명무실하다고 비판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수지 간사는 “현행법에는 대상자를 심신상실과 심신박약 두 유형으로만 구분하고 있다. 최근 필요성이 강조되는 노인이나 신체 장애인 등은 적용이 안 된다. 또한 일단 후견인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한정치산자와 금치산자 선고를 받게 되는데, 무능력자로 간주돼 모든 법적 행위에 대해 제한 혹은 박탈을 당하게 된다. 실제 월급을 받아도 본인이 관리하지 못 하고, 본인 명의통장도 못 만든다. 원하는 물건구입도 후견인 없이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만큼 보호보다는 권리침해 소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후견인을 정하는 것에도 허점을 보인다. 현 법에서는 당사자 의견과 무관하게 배우자 등 일정한 친족관계에 있는 자 중 연장자에 우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내 왕래가 없다가 법 규정상 후견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후견인 수도 1인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만약 후견인이 어떤 사항을 불합리하게 독단적으로 결정할 경우 막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최근 이런 산재된 문제들을 개선해 새롭게 성년후견제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지난해 결성된 추진연대에서는 관련 법 개정 및 제도 도입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간사는 “후견인제도는 대상자가 생활하는데 있어 권리보호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법적 보조장치다. 때문에 무엇보다 당사자의 의견이 최대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존 법과 달리 대상자의 능력에 따른 활동과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법안을 마련했다”고 말한다.

실제 입법안에는 후견인 선임에 있어 기존과 달리 꼭 친족이 아니어도 되고, 2인 이상으로 하고 있다. 또한 후견인 역할을 바람직하게 하고 있는지 감독·감시할 기구설치와 더불어 용어에 있어서도 한정치산 금치산자가 아닌 피후견인으로 달리하고 있다.

성년후견제 도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금 민법상 제도에 비해, 훨씬 더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침해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하지만 제도 도입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사회적인 공감대가 부족한 현실이다.

한국노인의전화 김 소장은 “장애인계에서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지만, 정작 참여율은 그리 높지 않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의 경우, 교육, 생계 등 지금 당장 시급한 문제들에 눌려 관심을 돌릴 여력이 없다. 노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노인단체관련 실무자들은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정작 노인 당사자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99%이상의 노인이 자식이 있는데, 무슨 후견인이냐는 인식이 크다. 사회적으로도 나와는 거리가 멀다라고 생각하는데, 누구나 노인이 되기 때문에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 시급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구. 이는 누구나 갖는 희망사항이자 권리이다. 장애인이나 노인 등 사회적 약자도 마찬가지다. 성년후견제 도입.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이것이 꼭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권리 찾기를 하는데 유용한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할 전망이다. 성년후견제 도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검토와 더불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가야 할 것이다.  

♣ 성년후견제추진연대에서는 성년후견제에 대한 교육을 진행중이다. 교육을 받고 싶은 단체나 모임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로 문의하면 된다. (문의: 02-521-5364) 글·사진/김은미 기자

김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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