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지하철. 수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그 속에서 휴지를 줍고, 천장의 먼지를 떨어내는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같은 얼굴을 많이 보았으리라.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된 공간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이들을 보며 ‘나이 드셨는데 힘드시겠다’는 생각 한번쯤 해본 적은 없는지. 지하철 환경을 쾌적하게 만드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의 하루는 어떨까.

“내려가서 걸레질부터 하자구.”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밤 잠은 다 잤다’는 비장의 각오를 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김순악(61)씨는 가만히 웃기만 하였다. 일이야 지하철역에서도 쉽게 마주치는 일이니 짐작은 이미 하고 있었고, 게다가 분당선에 위치한 이 역은 백화점과 연결되어 있어 화장실청소는 담당업무가 아니라니 조금 편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취재 전 날, 요즘 야간 선로 물청소 작업기간인데 그것도 할 것이냐는 연락이 왔다. “당연히 해야죠” 선뜻 대답은 했지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던 터였는데 그의 미소를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모두 5명의 청소용역인이 근무하는 이 역은 3교대로 오전, 오후근무로 돌아가면서 맡아 한다. 오후조는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근무를 하는데 승강장 물걸레질, 휴지줍기, 껌, 스티커 제거 등 승객이 다니기에 무리가 없는 일들을 주로 하므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 명이면 충분하다.

 
이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근무할 경우에는 이 곳 휴게실에서 숙식을 하며 승강장과 맞이방, 계단 청소, 휴지통과 분리수거장 정리정돈 등을 주로 맡아 한다. 오전 6시부터는 출근시간 대라 야간조에 남아있던 사람과 둘이서 같이 근무한다. 쏟아져 나오는 무가지 정리를 하고 승객이 많이 빠진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승강장을 쓸고 닦는다.

오후 5시 50분. 마침 오후조를 맡은 김씨 아주머니를 따라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김씨 아주머니는 이 시간에는 보통 걸레질을 한다며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걸레를 가지고 승강장으로 내려가는데 사람들이 모두 나만 보는 것 같았다.

‘청소 아줌마’는 있어도 ‘청소 아가씨’란 말은 없지 않은가. 게다 몸에 맞지도 않는 커다란 작업복까지 입었으니 무슨 사연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점점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 들어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정작 나한테 관심 있는 시선은 하나도 없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일하는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분당선을 달리는 열차는 일반 차량과 달리 6량이다. 승강장의 길이는 상·하행 승강장 모두 합해 200m. 김씨 아주머니는 이 길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닦는단다. 워낙 많은 사람이 다니다 보니 먼지도 많고, 닦은 지 얼마 안 돼 또 가 보면 금방 더러워져 있기 때문이다.

걸레질을 할 때엔 물기는 확실히 빼줘야 했다. 물기가 많으면 미끄럽고, 또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지저분해지기 때문이다. 걸레질을 했더니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마침 열차가 잠시 정차 중이었는데 시원한 열차 속으로 들어가서 1분만 있다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상·하행 승강장 걸레질을 마치니 저녁 6시 반. 새까매진 걸레를 빨고 휴게실에 앉아 한숨을 돌리는데 구수한 밥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보통 저녁 7시가 되면 휴게실에서 직접 밥을 지어먹는데 걸레질하러 내려가기 전에 김씨 아주머니가 미리 준비해 놓고 간 것이었다.

3평 남짓한 휴게실에는 냉장고와 밥솥 등 간단한 가재도구와 침대가 있었고, 한쪽면에는 폐품 덩어리가 차지하고 있었다. 청소 중에 모은 무료무가지 신문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 무가지가 나올 땐 저거 치우는 게 골치였다고. 하루에 6단 씩 나오거든. 그런데 지금은 저게 아주 쏠쏠해. 한 단에 700원씩 받고 팔거든. 그러면 그 돈으로 쌀도 사고 여기서 필요한 것들을 사는 데 쓰곤 하지.”

지하철청소용역전문업체인 (주)에스디케이에 소속된 김씨 아주머니의 한 달 임금은 보험료 등을 빼고 약 70여만 원 정도. 하지만 김씨 아주머니의 경우는 운이 좋게도 보험 등이 적용된 정규직이다. 보통 지하철 청소용역구조를 살펴보면 최저임금 수준인 70만원에도 못 미치고 비정규직이 다반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철도공사와 지하철공사 등의 원청업체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영세한 전문용역업체의 무리한 계약과정을 이끌어내어 최저가로 입찰을 맺는다.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는 결국 손해 입은 것을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이는 것으로 만회한다.

공기가 탁한 지하에서, 더구나 나이가 차도 어쩔 수 없이 일터로 내몰려야 하는 이들은 이에 맞서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여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 몸부림치지만 국가가 최저임금을 올려놓더라도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되면 그 인상분의 지급을 놓고 원청업체와 용역업체는 서로에게 떠넘기기 일쑤다.

이곳에 있는 이들의 평균연령은 보통 63세. 요즘은 경제가 어려워져 나이대도 점점 내려가는 추세라고 한다. 이 일을 시작한 지 1년 반 된 김씨 아주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한다고.

나이가 있어 그의 아들·딸들이 그만 두라고 반대도 많았지만 집에만 가만히 있으면 괜히 몸이 아프다며 오히려 자식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이 돈으로 댁에 계신 아저씨와 함께 생활비하고 손자 손녀들 오면 용돈도 쥐어준다고.

“청소일을 한다고 천하게 보는 사람들도 가끔 있지. 특히 아침 근무 때는 그 전날 밤 술 먹은 사람들의 토사물 치울 때가 종종 있어. 그래도 그냥 그게 내 일인데, 하고 생각해버리면 오히려 일을 만들어 준 그 사람이 고마워진다구.”

교대 근무이고 일이 항상 있기 때문에 일을 미루면 다음 사람이 고생한다며 끊임없이 할 일을 찾아 움직이는 김씨 아주머니. 할 수 있을 때까진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오후 9시 반쯤이 되자 10시부터 내일 오전 10시까지 근무할 배희생(62)씨가 도착했다. 흔치 않은 동성(同姓)을 만나뵙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그러나 배씨 아저씨는 “일하러 왔으면 복도를 좀 훔치라”고 하곤 오자마자 걸레를 들고 휙-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무뚝뚝한 반응에 잠깐 놀라 서 있다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시면 이쁘게 봐주시겠지’ 싶어 역무실 주변 복도를 ‘빡빡’ 닦기 시작했는데, 언제 나타나셨는지 “어디 배씨라고?”물으신다.

걸레질을 마치고 다음엔 무슨 일을 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데 아까까진 분명히 계시던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잠시 쉬어볼까?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으며 휴게실로 들어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이곳에 와서 여태 마신 물만 해도 평소 하루동안 마신 물의 2배는 되는 것 같았다.

역사 내 청소, 도대체 언제까지?

오랜만에 마대 걸레질을 하느라 빨갛게 된 손바닥을 문지르며 침대에 앉아 쉬고 있는데 오후 10시쯤 되어 심귀임(63)씨가 도착했다. 그는 자신을 ‘기동대’라고 소개했다. 야간에 선로 물청소를 담당하는 팀원을 가르키는 ‘기동대’는 분당선의 19개 역을 돌며 열차 운행이 끝나는 시간부터  다음 날 열차 시운전이 시작되는 4시 반까지 선로의 묵은 때를 물로 청소한다. 이들 역시 평균 연령대가 60대 중반. 나중에 작업복으로 갈아입을 때 살짝 훔쳐보니, 이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무릎보호대와 허리보호대를 하고 있었다.

“일은 재밌어. 근데, 땀을 워낙 많이 흘리니까 맘 편히 씻는 데가 좀 있었음 좋겠어.”
심씨 아주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폐품을 한 자루에 가득 담은 배씨 아저씨가 헛기침을 하면서 들어왔다. 순간 ‘땡땡이’ 치다 걸린 학생처럼 몸이 벌떡 일어나졌다. 어디 가셨었냐며 콧소리를 내어 보았지만 대답도 안 해주는 무뚝뚝한 배씨 아저씨.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주섬주섬 폐품 정리를 돕는데 한 마디 하셨다.

“이건 혼자 해도 되니 승강장에 내려가서 쓰레기 좀 주우라.”
이번엔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들고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그런지 걸레질 했던 시간보다 승객이 많이 줄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승객이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쓰레받이에 쓰레기를 골인시키고 갔다. 순간 나도 모르게 불쑥 “감사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을 뱉어놓고 나니 너무 우스웠지만 아무 데나 버리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행 승강장 쓰레기를 다 모으니 쓰레받이가 얼추 무거워졌다. 아까는 몰랐는데 쓰레받이에 바퀴가 달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쓰레받이를 비우면 됐지만 이만큼 모았다며 배씨 아저씨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아저씨 있는 쪽으로 갔다.

“욕 봤다.”
이 곳에서 일한 지 6년 된 배씨 아저씨는 주로 야간에만 근무한다. 5명 중 다른 사람들은 여자들이기 때문에 자처한 일이라고. 열차 운행이 끝나면 역은 소등하기 때문에 1시 반쯤되면 하루일과를 마친다. 휴게실에 마련된 침대는 그의 보금자리다.

밤과 낮이 바뀐 생활, 드라마 안 본 지 오래
새벽 12시 40분 드디어 열차 운행이 끝났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12명의 기동대 팀원들이 하나 둘씩 사다리를 타고 선로로 내려갔다. 이 일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된 이금자(64)씨.

“보통 첫차를 타고 집으로 가지. 집이 응암이라 7시면 도착해, 그러면 씻고 바로 잠들어. 그러다 12시쯤 일어나서 밥 먹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좀 쉬다가 저녁 먹고 나와. 9시 뉴스고 드라마고, 안 본 지 오래야.”

선로 물청소는 호스로 물을 뿌려가며 물청소용 빗자루를 이용하여 침목의 묶은 때를 닦아내는 일. 시커먼 침목에 왔다갔다 하며 몇 번 빗자루질을 하면 까만 땟물은 쭈욱 빠지고 침목은 본래의 색을 찾는다. 가끔 선로 위로 작업차가 지나갈 때가 있는데 이 때는 얼른 상·하행 선로 중간에 있는 기둥으로 몸을 피하면 된다.

생각보다 묵은 때가 많아 손에 힘을 주고 쓸다 보니 허리도 점점 아파오고 손바닥에 물집까지 잡혔다. 땀에 절은 청바지와 작업복 속의 티셔츠가 온몸에 달라붙어 움직이기도 갑갑했다. 심씨 아주머니가 말한 ‘샤워실’이 정말 간절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몸살난다며 살살하라고 했던 심씨 아주머니. 몸살 날 일을 보호대에 의지하며 매일 하면서도 재밌다고 하다니…. 나이 때문에 힘들지 않을지 걱정했던 내 편견은 하룻밤의 노동만으로도 지쳐버린 내 모습을 질책하기에 충분했다.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그들. 부디 그들이 바라는 대로 보다 나은 조건이 주어져  건강하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배미용 사진/최경훈 기자

배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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