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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기주의인가정당방위인가
우리사회 고질병으로 고착된 님비와 핌피현상 속 우리들의 자화상
배미용 기자 | 승인 2005.10.27 15:43

우리집 앞에는 절대 안된다며 화장장 건립 반대 시위를 벌이는 지역주민들.
“우리 집 앞에는 절대 안돼!”

하수종말처리장, 쓰레기매립장, 시립화장장, 특수학교 등 국가 전체적으로 시설들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막상 자기 주거지역에 들어서는 데는 강력히 반대한다. 반면, 병원과 공원 같이 지역 발전과 주민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이 된다면 어떤 시설이라도 유치하려고 경쟁한다.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와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로 불려지는 이 현상은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지역이기주의라 볼 수 있다.

과학고는 되고 화장장은 안 된다?
‘엄마, 귀신 무서워서 학교 안 갈래요’
‘과학고 유치를 위해 수고하신 ○○구청 직원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경기지역과 맞닿아 있는 서울의 한 변두리에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울고 웃는 현수막을 볼 수 있다. 하나는 인근 지역인 경기지역에 유치하기로 한 화장장 설립에 대한 주민들의 극단적인 반대 의사가 담긴 내용이고, 하나는 그 지역이 과학고 유치 선정지로 된 것에 대한 환영하는 내용의 현수막이다.

지난 8월 15일 오전 11시 이 지역주민들은 붉은 옷을 입고 인근 역 광장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시민의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화장장 건립을 실행코자 한 시장에 대한 규탄대회였다.

이날 모인 한 시민은 “이제 막 문화도시라는 인식이 심어져가고 있는 이 때 화장장 설립이라니 말도 안 된다, 벌써부터 인터넷 수도권 부동산 정보 등에서 이 사실이 떠돌아 이 곳의 가치가 떨어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필이면 다른 데 다 놔두고 이 지역과 맞닿아 있는 곳에 유치하려 드냐”며 시장에 대한 울분을 감추지 못 한 다른 이는 “조금 있으면 7, 11호선 전철이 들어온다고 하는데 이 지역의 역 이름이 화장터역이 될까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2008년에 유치 확정된 과학고 설치에 대해서는 화장장 유치 지역의 거리보다 먼 지역까지 경축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일반 고등학교가 아니라 과학고라는 특수목적고를 자신의 지역에 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 지역 뿐만이 아니다. 서울시 서초구 원지동 장례시설 건립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루하게 이어져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추모공원의 규모가 너무 크다, 부근에 교통지장을 준다, 청계산 산림이 훼손된다는 주장을 들어 주민들의 반대시위와 법정 소송에 부딪쳐 4년 가까이 허송세월 해왔다.

서울과 수도권뿐만이 아니다. 광주시는 지난 2월 현재 하루평균 350여t의 음식물쓰레기가 배출되고 있고 음식물을 자원화하면서 발생하는 침출수를 처리하기 위해 반드시 시설을 하수처리장 내에 설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지역의 주민들은 반대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현재 이 지역이 공군 전투비행장에서 발생하는 항공기 소음에 시달리고 있는데 게다가 음식물쓰레기까지 감당해야 하냐며 혐오시설을 그 지역에만 지으려는 시의 계획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무릇 혐오시설에 대한 님비현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트럭 노점상 김모(55)씨는 얼마 전 안양-판교간 도로를 지나다 ‘의왕시를 빈민촌으로 만들려는 건교부는 각성하라’ ‘의왕발전을 가로막는 임대주택건설 결사반대’라는 플래카드를 보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그는 “빈민은 사람도 아니냐”며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면 도시가 빈민촌으로 변하고 도시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냐”고 말했다.

그간 환경이나 교통 등 여러가지 이유로 정부의 택지개발을 반대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단순히 잘 살고 못산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고 왕따시키는 ‘인간 님비현상’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공공시설의 필요를 역설하다가도 막상 우리 고장에 건설된다면 결사 반대를 외치는 이들. 물론 자신의 지역에 대한 애향심과 자기 보호를 위한 정당방위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으나, 단지 내집 앞에만 안 된다는 것이지 다른 지역에도 안 된다는 대승적 차원의 반대 운동을 벌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이 줄어들어 반대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만연한 고질적인 병리현상이다.

님비, 해결책은 없는가
하지만 환경분쟁연구소장의 신창현 씨는 공공정책의 내용에 불만이 있는 소수들을 이기주의로만 몰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수결이 소수의견을 무시하는 다수의 횡포로 변질되면 소수 역시 다수결의 정당성을 불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항한다”고 말하고 “공공정책의 내용에 불만이 있는 소수의 반대자들도 그것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알 권리와 반대할 권리를 보장한다면 결국은 다수결의 도덕성을 신뢰하고 승복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주장은 울산 북구의 음식물쓰레기 처리장 유치 문제가 뒷받침한다. 울산 북구 중산동은 2년 동안이나 음식물쓰레기 처리장을 두고 구청과 주민들간 대립해 오다 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이들은 우선 중립적인 인사 45명으로 배심원을 구성하고 이 시설을 지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여 주민들이나 구청 측 모두 이 결정에 무조건 따르기로 합의했다. 배심원은 울산지역의 경실련, 빈변, 전교조 등 13개 시민사회단체와 천주교, 기독교계에서 각각 3명씩 추천했다.

이는 공익상 필요한 시설이므로 주민들이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강행하겠다는 행정기관과 그래도 우리 동네만큼은 절대 안된다는 지역 주민들 간의 오랜 갈등 끝에 한 발짝씩 양보해 얻어낸 결과물로 혐오시설을 두고 행정기관과 지역주민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하나의 유효한 모델을 제시하게 되었다.

지역 내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주민의식 수준에 상응하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할 법 한데 그간 지역주민들의 도덕성 결여를 들먹이며 지역이기주의로 몰아간 구석도 없지 않다. 본격적인 주민 자치시대를 맞아 권리의식이 성장한 주민들은 그간 정치와 행정에 대해 불신하게 되었다. 또 정책담당자의 조정 능력이 떨어지거나 상호간의 의사전달에 대해 체계가 잡혀있지 않게 된 상태에서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밀어붙이기식이면 반발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님비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설치지역 주민들의 불이익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반대 급부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대화를 통한 합리적인 방안과 정책적인 뒷받침은 기본이다. 이러한 것들이 이루어진 후에는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 또 정부에서는 공평부담기준을 만들어 전체적 차원에서 부담과 이익을 공평하게 분담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해당 지역 주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한국산업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주변 지역경제에 미친 수도권매립지 영향 분석 결과는 님비시설 후 적절한 보상이 얼마나 성공적인지 알 수 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인천지역에 매립지를 설립하고 쓰레기 반입수수료 10%를 떼어 주변 직,간접 영향권 지역에 도로를 건설하고, 상하수도 보급하며, 복지회관 설립, 주민체육공원 설치, 장학금 지급 등 주민지원사업 등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생산유발 4천 580억원, 부가가치 창출 1천 910억원, 고용창출 4천426명까지 이끌어 냈다.
 

 이에 대해 공사 관계자는 “수도권매립지는 주변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등으로 인해 앞으로는 서로 유치하려는 핌피시설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방사성 폐기장 선정 문제가 특히 그러하다. 지난해 부안사태 등으로 큰 홍역을 치른 방사선 폐기장 후보지 선정 작업이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인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 3월 제정 공포한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지원 특별법’시행으로 가속페달을 밟은 방사성 폐기장 선정 문제는 정부가 건립지에 특별지원금 3천억원을 주고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를 이전하겠다고 밝힌 후 포항 경주 영덕 울진 군산 등 줄잡아 5개 지역이 유치전에 뛰어 들었다.

이는 혐오시설 건립 시 병원, 공원 등 핌피시설 동반 신설 등의 ‘당근’을 내놓고 있는 것과 부동산 투기 지역에 님비시설을 늘리는 것과도 같은 맥락을 이룬다.

울산시의 경우에는 주민들의 호응 속에 울주군 삼동면 조일리에 종합 장례시설인 정족산 묘지공원을 올 하반기 중 착공키로 했다. 당초 초등학생 자녀 등교거부운동이 벌어질 정도로 반대가 심했지만 주민 대표들이 울산시가 제시한 마을 사업비 2백억원 지원, 장례식장 운영, 수익사업권 제공, 각종 복지시설과 교량, 도로 건설 등의 인센티브를 강조하며 찬성여론을 이끌어냈다.

이 마을의 대표는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설치해야 할 시설이라는 생각에서 주민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며, “낙후된 삼동면의 발전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에 주민숙원시설 건립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제공되어 님비시설 유치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더불어 사는 국민 의식 중요
이종규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님비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을 계획 단계에서부터 동참시켜 성숙된 시민정신이 발휘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님비시설 유치에는 정부차원의 세심한 배려와 지원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의식이다.
아주대 최진호(사회학) 교수는 “자신의 이익이 줄어들어 반대하기보다는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인식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방사선 폐기장을 잘 운영하고 있는 프랑스 로브를 보면 이들이 성공한 데에는 국민의 의식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로브의 경우 정부의 치밀한 홍보와 설득전략이 밑받침이 되었고 기존의 있던 방사선 폐기장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아 지역주민으로부터 신뢰감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이 곳의 지역주민들은 “결국 누군가는 핵폐기물장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여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민들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집단이기주의는 한 나라를 구성하는 다른 집단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대부분 자기의 이득을 포기하지 않은 채, 손해볼 가능성에 대해서만 반발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손해’라는 피해의식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편견이다. 집주위에 화장장을 건립하면 아이들 교육환경에 안 좋을 것이란 생각에서 ‘엄마, 귀신 무서워서 학교 안 갈래요’라는 현수막을 내 건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화장터는 귀신이 득실거리는 곳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올바른 교육인지 말이다.                                              
글·사진/배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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