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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먼 고용허가제 , 초반부터 '삐그덕'산업연수생제도 폐해 재현, 고용주에게만 유리... 인권 박탈 당하는 이주노동자들
배미용 기자 | 승인 2005.11.04 11:13

 
93년 정부는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산업연수생제도’를 실시·운영해 왔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외국인노동자의 인권침해, 불법체류자 등의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다며, 끊임없는 폐지를 요구해왔다.

보다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외국인인력제도 설치의 필요성이 꾸준히 언급되어 지난해 8월 17일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도’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 역시 확실한 제도로써 자리잡기에는 역부족인 듯 시행 1주년을 맞이하여 여기저기서 고용허가제 폐지를 위한 집회가 열렸다.

“살림살이 나아졌냐고요? NO”

지난 2004년 고용허가제도 실시 후 국내에 합법적으로 들어 온 외국인노동자 제마(27·필리핀)씨. 성남센터장의 고무인이 찍힌 표준근로계약서에는 근무시간이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되어 있다. 월급은 한 달에 80만 원. 하지만 일하는 것은 8시부터 오후 8시까지이고 추가로 일 한다고 해서 야근수당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분명 고용측으로부터 비롯된 계약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제마 씨는 혼자서 억울함을 삭혀야 했다. 고용허가제법 25조에 기록된 사항을 보면 ‘사업장이동제한’규정이 있어 근로자 마음대로 일터를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억울해도 참고 일하거나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생제의 문제점을 보완, 수렴하여 외국인력을 연수생 신분이 아닌 합법적인 근로자 신분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하지만 그 초점이 근로자가 아닌 고용주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인권보장은 커녕 단순히 외국인력을 용이하게 관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발을 사고 있다. 또, 문제가 되어왔던 입국브로커의 난립이 줄지 않고 있어 외국인력제도의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인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내국인과 동등하게 노동관계법을 적용하여 산재보험, 최저임금, 노동 3권 등 기본적인 권익을 보장한다고 했으나 표준근로계약서조차 허위로 작성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위원장 직무대행 세켈 아흐메드 샤킬(39·방글라데시)씨는 지난 1년은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암흑과도 같은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입국비용을 6천 달러 이상 지불하는 이주노동자가 전체 23.8%입니다. 부푼 꿈을 안고 집도 팔고 땅도 팔아 들어오는 것이죠. 보통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들어와요. 일을 한다해도 표준근로계약서에 있는 노동시간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 일한 댓가까지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연장수당, 휴일특근수당은 꿈도 못 꾸고 인권침해는 말도 못하죠.”

 고용허가제를 통하면 입국브로커들에게 피 같은 돈을 내 주는 송출비리를 없앨 수 있다고 했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고용허가제 안에 있는 1년 단위의 재계약 내용은 이주노동자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노동 3권을 보장하기란 어렵다.

또, 국제적인 비판을 받고 있는 산업연수생제도와 병행하면서 생기는 문제점도 많다. 산업연수생제도는 93년 시행 이후, 외국인력을 편법적으로 활용하거나 송출비리 등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사업장 이탈, 체불임금, 폭행 등 인권침해가 야기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겉으로는 2007년 1월까지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한다고 하죠. 하지만 의문이 듭니다. 2005년 상반기 5월까지 고용허가제로 9,158명, 6월까지 산업연수생제도로 12,864명이 들어왔습니다. 또 노동부 장관은 8월 1일에 올해 하반기까지 추가로 산업연수생 7천 명을 들여올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산업연수생을 고용허가제를 통한 인원보다 더 많이 들여오려는 계획입니다. 그러면 2005년 들어오는 산업연수생들은 2008년 하반기까지 산업연수생제도 밑에서 일하게 되는 거죠. 이것을 생각해보면 노동부가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이에요.”

샤킬 위원장 직무대행은 또, 노동부와 법무부가 고용허가제나 산업연수생제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강제 단속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이주노동자를 단속하면서 여러 가지 폭력과 폭행을 일삼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아닌 노동허가제…

고용허가제 실시 후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고용허가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다. 현재 전체 이주노동자 35만 중에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20만 명으로 57%가 넘는다. 이는 예전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분적인 합법화 때문에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또, 산업연수생제도나 고용허가제는 길어도 3년 이상은 일할 수 없는데 기간이 너무 짧다. 한국에 들어올 때 들어가는 비용을 채우려면 임금체불 없이 상여금, 야근 수당을 제대로 받는 상황에서만 2년 정도 걸리고 나머지 1년 동안 돈을 모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들이다.

저임금으로 한국에서의 생활비도 써야하고 고향의 가족들 생활비도 보내야 한다. 같은 일을 하는 내국 비정규직 노동자도 하루 일해서 하루 생활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주노동자는 문제가 더욱 심해서 돈을 거의 모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불안’,‘저임금’,‘임금체불’,‘인권무시’ 속에서 ‘장기 미등록 저임금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샤킬 위원장 직무대행은 “이주노동자가 오랜시간 남의 나라에 불법으로 머물러 있는 이유는 딱 한가지”라며 “현재와 같은 조건이 아니었다면 다들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잘못된 제도 때문에 생긴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비인간적인 강제단속을 먼저 중단하고 현재에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전면 합법화를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어 실질적인 노동 3권이 보장되는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부 외국인고용인력팀의 홍정우 사무관은 “국내에서 노동허가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허가제는 국민적인 것과 맞물려 가야합니다. 외국에서도 노동허가제만을 실시하는 국가는 거의 없습니다. 내국인의 근로조건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시행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허가제가 아닌 고용허가제를 실시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고용허가제는 내국인 고용기회를 보장하면서 외국인력을 활용하는 방침에 따르고 있다.

“건설일용직에는 외국인근로자와 내국인근로자가 경쟁관계에 있습니다. 나이 들고 근력이 없는 내국인근로자보다는 젊고 힘 잘 쓰는 외국인근로자가 고용주로부터 인기가 많은 거죠.. 국내 근로자들은 명퇴 당하고 당장 갈 곳이 없는데 외국인근로자가 자신의 밥그릇을 뺏는다고 생각하는 거죠.”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에 대해 이질감을 갖는 국민정서도 한몫 한다. 외국의 경우 이민국인 국가에서는 노동허가제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실시한다. 독일 같은 경우도 고용허가제와 노동허가제를 반씩 시행하고 있다. 다만 노동허가제에 해당하는 근로자는 독일 국민으로써 평생 살 의향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다. 이것도 일정기간에 소정의 테스트와 기간이 지난 후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원천적으로 이민국이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 정주화 방지를 막기 위해서는 고용허가제가 불가피한 것이다.

또, 국내에 들어오려고 하는 근로자는 많은데 수용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점도 무시못한다. 들어오고자 하는 외국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3년이라는 기간을 쓸 수 밖에 없던 것이다.

“한 경제학자가 발표한 논문을 보면 국내에 외국인이 1∼2%를 차지하면 내국민들은 혼란을 겪는다고 하더군요. 이 때문에 어느 정도 기본 바탕이 조성이 된 후에 노동허가제를 진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고용허가제 제도 안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등 외국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야 하는 것이죠.”

노동부는 문제가 되고 있는 송출비리를 막기 위해 10월 중 인력송출지원팀을 결성하여 1차로 인도네시아에 파견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홍 사무관은 “그간 민간차원에서 송출을 하다보니 아무래도 이익을 추구하느라 무리한 입국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공공성과 투명성을 위해 1차로 MOU(양해각서) 국가의 한 나라인 인도네시아에 10월 중으로 인력송출지원팀을 보내기 위한 실무를 협의 중입니다.”

또, 국내에 외국인근로자 인권을 위한 콜센터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맘 편히 일 할 수 있게만 해달라”

“사람이 없어서 난리에요. 불법체류자를 쓰면 벌금을 내야하는데 고용주가 그걸 감수하고도 불법체류자를 쓰는 이유는 당장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모두가 기피하는 3D업종에 외국인근로자가 투입되어 분명 한국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어요. 도둑질하고 깡패짓 해서 돈 버는 게 아니잖아요. 맘 편하게 일만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지난 9월 1일 서울출입국관리소 앞에서는 이주노조와 연대하여 부당 해고 당한 국내의 노동자들이 붉은띠를 머리에 두르고 노동권 쟁취를 위한 집회를 가졌다.

먹고살기 위해 당장 돈을 벌어야 할 판인데도 한낮의 태양열을 받아 이글이글 타오르는 아스팔트에 앉아 목청껏 노동 권리를 부르짖어야만 했던 이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짓들이었다.

비단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 받아야 하는 이주노동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때문에 ‘맘 편하게 일 할 수 있게만 해달라’는 샤킬 위원장 직무대행의 말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부푼 꿈을 안고 한국으로 들어온, 분명 누군가의 아들, 아빠, 딸들인 이주노동자들. 우리나라에 들어 온 이상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적어도 상처로 얼룩진 모습은 되지 말아야 한다. 내 집에 온 손님을 ‘범죄자’로 만들어 보내는 경우는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글·사진/배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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