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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고령사회"는 축복이다'다양한 여가활동으로 황혼기 맞은 은빛 인생...우리 시대 새로운 노인상을 찾아서
표수진 기자 | 승인 2005.11.04 14:17


영혼까지 울려주는 천상의 소리. 흔히 ‘핸드벨’ 소리를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 각자 흩어져서는 절대 만들어 낼 수 없는 소리기에 더욱 그렇다. 요즘 그 소리에 푹 빠져 지내는 이가 있다. 서울 광진구에 살고 있는 강정자(68)씨가 바로 그 주인공. 그에게선 고희를 앞둔 노인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삶의 활력이 넘쳐난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한 것인 양 성성한 백발만이 세월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그처럼 젊은 노후를 보내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스포츠댄스에서부터 고전무용, 영어회화까지 신바람나는 노후를 만들어가기 위한 움직임이 늘고 있다. 이 시대 노후 문화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일까.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실감하고 산다는 노인들. 그들에게 성성한 백발과 주름은 오히려 축복이었다.

천국이 따로 없구나!

오전 9시, 출근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강정자(68)씨가 아침채비로 분주하다. 버스로 여섯정거장이나 되는 광진노인종합복지관(관장 최광식)을 매일같이 걸어다닌다는 그. 건강도 챙기고, 취미활동도 즐기는 일석이조의 쾌거를 올리기 위한 발걸음은 힘차기만 하다.

“요즘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졌어요. 한문, 영어, 합창뿐 아니라 핸드벨까지 일주일에 5일은 복지관에 나가요. 못다 배운 한을 이제야 푸는 거 같아요. 하루하루가 기다려질 정도로 내 인생 최고의 행복한 순간들인 걸요.”

결혼 후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족을 위해서만 살아왔다는 강씨. 그런 그가 늘그막 복지관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새로운 노후를 맞이했다.

“우두커니 집에만 있었다면 우울증이라도 걸렸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 나와 활동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친구도 사귀며 공부도 하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자신을 위해 산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줄 몰랐다는 그는, 앞으로 봉사활동도 하면서 희망찬 노후 만들기에 아낌없이 활동할 것이라고 했다.
춤바람이 한창인 노인들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살고 있는 송원섭(76)씨 부부는 요즘 포크댄스로 시간가는 줄 모르며 산다. 벌써 몇 년째 인근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관장 서병수)을 드나들며 포크댄스를 익혀왔다. 두 손을 맞잡고 강당을 누비는 모습에서 전문 댄서의 기질이 느껴질 정도다.

송씨는 “두 노인이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 복지관을 찾아왔어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는데, 그중 포크댄스가 가장 매력적이죠.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춤 출 계획입니다”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나이 노인들은 ‘춤’이라고 하면 다들 이상야릇한 상상을 하지만, 송씨는 그만큼 건전한 스포츠가 없다며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부부가 함께 즐기기에 그런 맘이 더할 테다. 그런 송씨의 애틋한 춤 사랑은 단순한 취미활동에서만 그치질 않는다. 인근 지하철역이나, 병원, 복지관의 노인주간보호센터 등을 방문해 무료 공연을 펼치는 등 나눔 활동에도 적극 동참한다.

젊은 노후를 보내기 위해 스포츠댄스에서 부터 고전무용까지 전천후로 활약하는 신세대노인들.
 
이윤주 사회복지사는 “과거에 비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하는 노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요. 그만큼 욕구도 다양해졌고요. 기존 노인들의 욕구가 놀이문화에 그쳤다면, 요즘 노인들은 연령층이 점차 젊어지고, 배우며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호해요”라고 말했다.

새빨간 구두를 신고 능숙한 솜씨로 파트너를 리드하는 포크댄스 동아리 김성근(69)반장. 춤을 추며 땀을 흘리는 모습이, 시곗바늘을 거꾸로 되돌려 놓은 것처럼 정열이 넘쳐난다.

“새로운 활력소를 찾은 듯 힘이 넘쳐요. 이런 세계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매일 웃음이 넘쳐나니 이게 바로 천국이 아닐까. 인생은 60부터라잖아요. 공연이라도 나가서 사람들이 박수 쳐주면 마치 연예인이 된 듯한 게 기분이 아주 좋아요.”

노인들이여, 시대를 따르라

“자자, 서둘러 준비들 해요. 근데 오늘 남장은 누가 하지?”
고전무용을 하는 정정자(64)씨의 손놀림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팀의 막내답게 의상이며, 분장까지 일일이 챙겨주고 있는 그는 3년 전부터 화려한 춤사위에 흠뻑 취했다.

“손자들을 키우느라 바깥출입을 못했었죠. 아이들이 다 크고, 혼자 적적해서 할 만한 게 없을까 복지관마다 찾아다녔어요. 건강관리 겸 탁구를 시작했다가 고전무용을 보고 그 길로 시작한 게 지금까지예요.”

그의 곁으로 다홍 저고리에 족두리까지 한껏 차려 입은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남자 역할이 부족해 상투를 틀고 나타난 이도 보인다. 곱게 차린 옷에 정씨가 빨간 립스틱을 발라주니, 전문 공연단이 따로 없다.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나자 노랫가락이 강당 안에 울려 퍼진다. 드디어 연습이 시작됐다. 구경하는 이가 없어도 실전에서처럼 모두가 긴장한 모습이다. 양손엔 부채를 들고, 한 마리 나비가 된 듯 사뿐사뿐 발걸음에 넋이 나갈 정도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칠 만도 하건만 얼굴엔 함박웃음이 가득한 게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이 오롯이 묻어난다. 역시 다년간 공연을 진행해 온 프로팀답다.

팀의 리더 이계오(74)씨는 “남자가 무슨 춤인가 싶어 처음엔 꺼렸죠. 그런데 하다 보니 몸도 유연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지기 시작했어요. 잘하는 몇몇이 모여 이렇게 공연단을 꾸리게 됐죠”라고 말했다.

이씨는 은퇴 후 자신의 노후를 어떻게 꾸려나갈까 고민이 많았었다. 주로 등산을 즐겨 했다는 그는, 우연한 기회에 고전무용을 접하면서 제2의 인생을 맞이하게 됐다고. 그리고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날 정도로 신바람의 연속이다.

“노인정에 가보면 할 일 없이 내기 바둑이나 두고, 그저 시간이나 때우는 이들이 많아요. 우리가 할 만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즐거움을 찾고 또, 마음까지 젊어지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다양한 취미활동을 통해 행복한 노후 생활을 만들면 좋겠어요.”

현재 일주일에 두 시간씩 전문 강사에게 수업을 받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이 안 찰 정도라고 말하는 이씨. 그는 “더 많은 춤사위를 배워 활발한 활동을 하고 싶다”는 포부까지 밝힐 만큼 열성이 대단했다.

두 달 전부터 고전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최영자(68)씨도 고전무용에 흠뻑 취해있었다. 그는 “얼마 전, 뒤늦게 공부를 하고 싶어 대학원을 나왔어요. 공부할 때도 즐거웠지만 이곳에서 함께 부대끼며 춤추고, 웃고 떠들 때가 더 즐거운 걸요. 앞으로 열심히 활동해 함께 공연을 나가보고 싶어요”라며 굳은 각오를 보였다.

이윤주 사회복지사는 “사회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어르신들도 시대에 맞춰가야 해요. 그만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도록 노력이 필요하죠. 60대도 활발한 활동이 가능할 뿐 아니라 나이가 있어도 거동만 불편하지 않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김신열 교수는 “과거 노인들이 수동적인 경향이 강했다면 오늘날 노인들은 비교적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증가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노인상은 자신의 생을 여유롭게 돌아보며, 적극적인 역할 수행을 하는 노인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즐길 줄 아는 사회, 아직 늦지 않았다!

복지관에 나가 여가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못다 배운 학업을 지속하며 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어 하는 이들. 나이와 상관없이 노후를 즐기기 위한 노인들의 부산한 움직임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의 포크댄스 동아리 단원들.
 
고령을 즐길 줄 아는 사회에는 즐거움이 있다. 때문에 고령사회는 재앙이 아니다. 지난 1960년 평균 52세였던 평균 수명이 25년이나 증가한 요즘. 황금기 같은 노후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처럼 아직 늦지 않았다. 적극적인 노인이야말로 다가오는 미래 사회의 새로운 노인상이 아닐까.

김신열 교수는 “노인들 스스로가 나이 들어감에 대해 인정하고 능동적 적극적일 필요가 있어요. 어떤 형태의 사회활동이든 가능한 방법들을 찾아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다는 차원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부여 차원에서도 가장 바람직해요”라고 말했다.

새로운 인생을 찾아 신바람나는 노후를 보내는 노인들. 그들의 열정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미래 우리 사회가 밝고 건강한 노인들로 빛을 발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더욱 그럴테다. 이렇듯 다가오는 ‘고령사회’의 건강한 모습에 벌써부터 기대가 한가득이다.
글/표수진 사진/최경훈 기자

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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