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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으로 수북하게 담은 사랑 '한 그릇'노숙인.저소득층 위한 무료 식당, 3평의 기적이 일궈낸 특별한 나눔 속으로...
표수진 기자 | 승인 2005.11.04 14:52

고봉으로 수북하게 담은
           사랑 ‘한 그릇’

하루에도 많게는 150명이 드나들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식당 홀이라곤 고작 6인용 식탁 하나가 전부다.

노숙인·저소득층 위한 무료 식당, 3평의 기적이 일궈낸 특별한 나눔 속으로…

만약 지금, 이 시대에 레미제라블이 살고 있었다면? 추측하건대, 그는 배가 고프지도, 또 먹을 것을 훔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거짓말 같은 식당이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공짜로 맘껏, 양껏 밥을 주고, 그것도 모자라 사랑까지 소복하게 담아 주는 식당. 경영 철학이 매우 남다른 식당 주인장과 특별한 VIP 고객들만이 이곳이 보통 식당과 다름을 알려줄 뿐이다.

지난 2003년 만우절 날, 인천시 동구 화수동 언덕 꼭대기에 거짓말처럼 문을 연 곳이 있다. ‘민들레 국수집’이 바로 그곳. 3평 남짓한 작은 가게 안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배고픈 이들에게 따뜻한 국수 말아줘요

동인천 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가는 길목마다 ‘민들레 국수집’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세다. 하루에도 많게는 150명이 드나들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식당 홀이라곤 고작 6인용 식탁 하나가 전부다. 더 넓히고 싶어도 그럴 수도 없거니와, 기다리는 사람의 불평 역시 없는 곳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메뉴가 있는 것도, 이 집 만의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저 믿기지 않는 식당의 운영방식 때문이랄까.

주인장 서영남(51·베드로)씨는 이런 3평의 기적이 대수롭지 않은 듯 덤덤해 했다. 25년 간 카톨릭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생활하던 그가 불현듯 환속을 결정하고, 국수집을 연 것부터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집주인 송세환(74)씨는 “처음에 4~5명이 찾아와서 집수리 가게를 한다기에 세를 놨죠. 근데 얼마 안 있어 장사가 되지 않았는지 가게 문을 닫았어요. 그리곤 서영남 씨가 이 좁은데다 국수집을 차리겠다지 뭐예요. 보다시피 여기에서 무슨 식당이 되겠어요”라며 당시 상황을 끄집어냈다.

고봉으로 수북하게 담긴 밥과 열가지가 넘는 찬은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원래 서씨는 수도원 시절부터 교정 사목을 해왔다. 출소 후 자신을 찾아온 이들과 자립 공동체인 ‘겨자씨의 집’을 만들고, 집수리 가게를 꾸렸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그래서 그곳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던 중 무료식당을 생각해냈다.

서씨는 “정부의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무료급식소는 급식량도 제한됐을 뿐 아니라,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해요. 일일이 장애인 등록증이나 주민등록증을 제시해야 밥을 먹을 수 있고요. 절차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노숙인들은 이런 혜택에선 당연히 제외다. 쪽방에 기거하는 등 저소득  층도 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서씨는 정부의 간섭 없이 배고픈 이들에게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이라도 배불리 대접하고픈 마음에 문을 열었다. 물론, 아무런 지원금 없이 식당을 운영하는 일이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하지만 그는 식당 문을 닫을지언정 정부의 도움은 받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다.

그렇게 민들레 국수집은 남녀노소, 횟수에 상관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언제든 부담 없이 먹고 갈 수 있다.
사실 문을 열긴 했지만 초창기 국수집의 인기는 별로였다. 서씨는 길가에 쓰러져 몸도 가누지 못하는 노숙인을 데려와 식사를 시키기도 하고, 주변의 동네 어르신들에게 국수를 대접하며 몇 달을 고전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나서서 광고를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옛말에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다. 노숙인들 사이에 국수집 이야기가 알음알음으로 퍼져나가면서 차츰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사랑받고 인정받을 때 되돌려줄 줄 알아

국수를 배불리 먹으면 든든할 것이라는 그의 생각과 달리, 그의 손님들은 “금세 허기가 진다”고 했다. ‘아 차!’ 하는 순간이었다. 그제야 서씨는 면은 먹고 뒤돌아서면 금방 배고픔이 밀려온다는 걸 깨달았다. 별안간 밥집으로 변경해야 했지만 그래도 간판만은 여전히 그대로다.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는 대성씨. 그 역시 노숙인으로 방황의 세월을 보냈던 터라 누구보다 노숙인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편안하게 찾아와 배불리 먹고 가는 곳이었으면 해요. 최대한 맛있게, 영양을 듬뿍 생각하며 음식을 만들어요.”

고봉으로 수북하게 담은 밥과 열 가지가 넘는 찬은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제철 과일이나 요구르트도 후식으로 제공한다. 그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 삼계탕과 개장국 같은 보양식도 등장한다. 거기에 하나 더, 따뜻한 이웃의 정까지 있으니 이곳에 들러 밥을 먹을 때만큼은 모두 부자다.

식당 한쪽 벽면에는 VIP 고객의 명단을 적어 놓은 칠판이 있다. 새로운 손님이 올 때마다 이름을 외우기 위한 서씨만의 노하우다.
“처음 온 고객들은 첫눈에 딱 알 수 있어요. 오랫동안 먹지 못해 밥을 보통보다 3배 정도는 더 드시거든요. 그렇게 며칠을 드시는데,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와요. 배고픔에 밥을 먹기보다는 사랑을 채워가는 거죠.”

꾸준히 국수집을 드나들며 몸을 추스르는 이도 있지만, 마음을 잡지 못하고 홀연히 떠나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잡지 않는다.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곁에 있어주며 믿음을 보여줄 뿐이다. 느슨함이 바로 그가 추구하는 철학이다.

“동정과 사랑의 겉모습은 비슷해요. 그렇지만 동정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또 동정을 고마워하는 사람도 없어요. 사랑은 달라요. 사랑 받은 사람은 사랑을 돌려줄 줄 알죠.”

상대방이 인정 받고, 사랑 받는다고 느낄 때 변화도 가능하다는 걸 서씨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의 손님 중에 몇몇은 홀로서기에 나서기도 했다. 점점 사랑의 결실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국수집의 첫 손님이자 자활공동체인 ‘민들레의 집’에 살고 있는 대성 씨. 골목 초입부터 식사하러 오는 손님들에게 농을 치며 반갑게 맞아주는 그의 모습 어디에도 과거 방황의 빛은 보이지 않는다. 사랑 담긴 밥을 많이 먹은 만큼, 다른 이에게도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난 1년간 국수집을 드나들고 있다는 노점상 박모 씨. 지체장애 2급인 그는 아들과 함께 매일같이 민들레 국수집을 이용하고 있다.
박씨는 “동네 사람들이 이곳을 알려줘서 오게 됐어요. 수사님이 너무 잘해주시고, 또 미안해서 하루 한 번만 오고 있어요. 국수집이 문을 안 열 땐 먹을 게 없어서 굶기 일쑤였죠. 이렇게 받은 만큼 다른 곳에서 자원봉사도 하며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가는 나눔

한창 바쁜 시간, 국수집 앞에 하얀 승용차 한 대가 서더니 트렁크에서 주섬주섬 라면박스며, 포도박스를 내린다. 인사도 없고, 말도 없이 홀연히 사라지는 승용차를 어느 누구 하나 관심 두지 않는 모습이 희한할 정도다. 손님들에게 꾹꾹 담은 밥을 퍼주던 대성 씨만이 아무 말 없이 비밀장부(?)를 꺼내들었다. 그간 보내온 정성들을 담아놓은 국수집의 가보에 차량 번호와 물품을 적고는 박스 채 뜯어 국수집 손님들에게 넉넉히 나눠준다. 

 

나눔은 전염이 강하다. 그래서 일까 국수집은 쌀독이 바닥을 보인적이 없다고 한다.
서영남 씨는 “익명의 후원자들이 많아요. 전국 각지에서 잊지 않고 택배를 보내는 분들도 있죠. 나눔은 전염이 강해요. 그래서 우리 집은 이상하게 쌀독에 바닥이 보인 적이 없어요”라며 후원자들의 아낌없는 나눔을 자랑했다.

그래서 일까. 온 동네가 나눔 전염병에라도 걸린 듯, 국수집 앞을 그냥 지나치는 이가 없다. 건물주인 송세환 씨는 얼마 전부터 국수집 옆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을 내놓겠다고 나섰다. 민들레 국수집 2, 3호점을 개업하겠다고 나선 이들도 있다. 이렇듯, 민들레 홀씨가 퍼져 새로운 민들레가 피어나 듯 국수집을 시작으로 나눔은 점점 부풀어 가고 있었다.

“일하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힘들면 어떻게 일을 계속할 수 있겠어요. 대부분 사람들이 삶의 여유가 생기면 나누겠다고 하는데, 여유가 생기면 더 힘들어요. 없을 때 나눠줘야 그게 바로 진짜 나눔이죠. 우리 손님들이 더 이상 배고픔에 시달리지 않아 국수를 찾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어요.”           글/표수진 사진/최경훈 기자

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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