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많은 이들이 퇴근할 시간이지만, 이제서야 본격적인 삶의 판이 벌어지는 곳이 있다. 밤이 깊을수록 활기를 띠는 동대문시장. 대낮처럼 환한 불빛과 도로 위를 가득 메운 인파와 차들은 아무래도 지금이 ‘밤‘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모습이다. 잠시 구경을 나왔건, 물건을 사거나 팔든 쉼 없이 꿈틀거리는 이곳.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 틈에서 매일 밤 땀범벅인 얼굴로 굳센 걸음을 하는 이들이 있다. 도매상과 소매상들의 긴요한 운반책인 동대문시장 ‘지게꾼’들. 이곳에선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될 소금 같은 이들이다.

각 상가마다 25명에서 50명이 한 팀으로 활동 

밤 11시. 동대문시장 내 신평화패션타운 앞. 길가 한 모퉁이에 15대 남짓한 지게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 옆 간이 천막에는 책상 하나와 10년은 족히 사용한 것 같은 전화가 놓여 있다. 
“띠리링∼” 전화벨이 울리자 대기 중이던 지게 아저씨들 중 한 명이 달려가 받는다.
“네, 운반입니다. 어디요? 아, 알지요.”
수화기를 놓기가 무섭게 그는 지게를 지고 상가 안으로 급히 달려간다. 1분이나 지났을까. 지게 가득 묵직한 짐을 지고 나온다.

과거 흑백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지게 아저씨. 하지만 그들은 지금도 매일 밤 힘찬 걸음으로 동대문 시장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온갖 도매물품들의 중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동대문 시장. 그러다 보니 물건과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고난다.

특히 공장에서 각 상가로 물건을 들일 때, 지방 소매상들이 물건을 떼러 올 때 등 지게꾼들은 상가와 차량까지 오가는 중간 운반책으로 맹활약한다. 이들은 각 상가마다 25명에서 50명 내외가 한팀으로 일하는데, 현재 동대문시장에는 20여 개의 상가가 있다. 어림잡아 볼 때 약 500여 명 이상 지게꾼들이 이곳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글동글한 인상에 인심이 후해 보이는 김씨(52) 아저씨. 20여 년을 시장통에서 일하며 1남 1녀의 자녀를 키워냈다. 그가 속한 상가는 신평화패션타운. 25명의 동료와 한팀이 돼 이곳 상인과 고객을 중심으로 짐을 나른다.
전화벨이 울리자 대기 중이던 아저씨들 중 한 명이 급하게 지게를 진다.

“아무나 나가는 것 같지만 다 순번이 있어. 전에 개별적으로 했을 때는 서로 경쟁하느라 싸움이 많았거든. 그것을 막기위해 순서를 정했는데, 나름대로 교통정리를 한 거지.”

‘따르릉∼.’ 이번엔 김씨 차례다. 그 역시 전화를 받자마자 쏜살같이 상가 안으로 들어간다. “어디에서 전화 왔는지 안 물어 보세요?”라는 질문에 그는 “식당 개 삼 년이면 라면을 끓이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어디다라는 것쯤은 직감으로 알아”라고 답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웬만한 노하우가 아니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신평화패션타운에 입점한 매장만도 약 1400여 개나 되니 말이다.

“어디까지 가요?” “부산 상인연합회라고 써 있는 관광차 앞까지 갔다 줘요. 디자이너클럽 앞 아시죠? 거기까지는 얼마예요?” “오천 원이요.”

운임요는 거리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천 원부터 오천 원 사이다. 단, 상인들은 예외다. 한 울타리 살림일 뿐 아니라, 고정고객이기 때문에 훨씬 저렴하게 운임료를 매긴다.

“서로 한솥밥 먹는 처지니까 도움을 주고받는 거지. 이 상가는 4층까지 있는데, 층이 높을수록 가격이 조금씩 올라가. 1층부터 천오백 원, 천칠백 원, 이천 원, 이천사백 원이야.”

“의-차!” 일어서려는데, 제법 묵직해진 등짐에 김씨 아저씨 입에서는 걸쭉한 추임새가 절로 터져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순수 지게 무게만 해도 약 13~15kg정도, 거기에 짐을 얹으면 평균 60kg은 거뜬히 넘는 무게란다. 종종 그 이상을 넘는 짐도 있는데, 가끔 컨디션이 안 좋거나 기운이 달릴 때면, 일어서려다 무게를 못 이겨 그대로 주저앉는 경우도 생긴다고.

보는 것만으로도 묵직해 보이는 지게. 그런데도 그는 조금 전 보다 더 잰걸음으로 거리에 나선다. 이들이 짐을 옮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지게로 끝까지 운반을 하기도 하지만, 거리가 멀면 상가 밑에서부터는 손수레를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이용한다. 이번 짐은 가까워 그냥 지게로 간단다.   

20년을 일하다 보니, 시장 구석구석을 부처님 손바닥 보듯 훤히 본다는 김씨 아저씨. 신호등이 있든 없든, 도로든 인도든 아랑곳 않고 목표장소까지 가장 빠른 길을 택해 간다. 지그재그, 차 사이를 헤치고 가는 모습이 마치 묘기를 보는 듯 불안하다.

“지방에서 온 손님들이 많기 때문에 다들 바빠. 내려갈 차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빨리 갔다 줘야해. 그리고 나도 빨리해야 하나라도 더 옮기지. 게다가 밤에는 여기가 완전히 무법지대야. 사람도 차도 뒤엉켜서 경찰들도 어떻게 하지 못해. 시간을 앞다투다 보니 성격도 급해져. 짐이 무거운데, 가는 길이 막히면 속에서 열 받으니까 입도 거칠어지지. 고상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이게 우리 사는 모습이라 어쩔 수 없어.”

피멍은 기본, 살갗 벗겨져 피고름도 다반사
이곳의 하루는 저녁 8시부터 시작된다. 상가 상인들이 저녁장사를 하기 위해 물건을 대량으로 들여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9시까지는 25명의 팀원 전부가 달라붙어서 해도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정신이 없다. 그 시간이 지나면 지방 소매상들이 돌아가는 3시까지는 꾸준하다. 순번을 기다리는 동안 지게꾼들은 농도 치고, 장기나 바둑을 두며 시간을 때운다.  피곤한 사람은 새우잠을 자거나 간혹 술을 한 잔씩 하기도 한다. 
 

 
벌써 새벽 2시다. 여전히 시장은 대낮이다. 순번을 기다리며 쉬고 있는 이(60)씨 아저씨. 뼈에 가죽만 붙여 놓은 듯한 마른 몸으로 내심 어떻게 일을 할까 싶었다. 그런데 웬만한 장정 못지 않단다. 올해로 7년 째라는 그. 20년 간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구인광고에 운반업이라고 돼 있더라고. 운전인줄 알고 왔는데, 알고 보니 지게지 뭐야. 잠깐 고민을 했지만, 그때는 당장 길거리에 나 앉을 판이라 뭐든 가릴 상황이 됐나. 짐만 옮기는 건데 뭐 어려울까 싶어 뛰어들었는데, 뭘 몰랐지. 처음엔 고생이 심했어.”
지게 지기. 단순해 보여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짐 무게가 있다보니, 어깨에 피멍이 드는 건 기본, 살갗이 벗겨져 피고름 나오는 일이 한동안 다반사였다.

“이 일은 막노동하고 또 달라. 휴-! 정말 죽을 맛이었어. 너무 고통스러워서 괜히 서러운 생각도 들고 남 몰래 눈물 흘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한 3년인가? 그 정도 지나니까 그제서야 내성이 쌓이더라고.”

그렇게 7년이 흘렀다. 한동안 말이 없는 이씨 아저씨.
“너무 힘드니까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만 어느 정도 해결되면 그만두려고 했어. 그런데 어느새 7년이야. 몸은 힘들어도 자영업이니까 뱃속은 참 편하거든. 또 여기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가.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일하니까 이틀씩 지나가는 것 같아. 일주일이 금세라니까.”

보통 이곳은 주를 단위로 순환된다. 월요일 밤이 가장 바쁘고 화요일부터는 바쁜 정도가 차츰 줄어든다. 그러다 상가 상인들이 노는 일요일 밤이 되면 가장 한가하다.
이씨는 “계절로 보면 여름이 가장 비수기야. 그러다 살살 가을 바람 나기 사작하는 추석 전후부터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꾸준히 바빠”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시기상 추석을 한 주 앞둔 월요일 밤이 가장 바빠야 할 때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들을 찾는 전화벨 소리가 뜸했다. 경기가 무척 좋지 않기 때문이다. 마냥 전화벨만을 기다리는 이들의 얼굴에 내심 걱정이 서려있는 듯 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힘들어서 못했지, 일거리가 없어서 못하지는 않았어. 하루 10만원은 족히 넘었으니까. 지금은 5만원이면 횡재한 날이고, 2만원도 넘기기 어려울 때가 더 많아.”
경기 흐름을 가장 많이 타는 시장. 그 중에서도 옷가게가 가장 타격이 심하단다. 돈이 없으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지출을 줄이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캐주얼은 젊은애들이 많이 입으니까 좀 나은데, 신평화패션타운은 부인복을 취급하니까 파급이 더 커. 몸이 힘들어도 일이 많으면 괜찮은데, 요즘은 맘도 괴로워.”
다들 한동안 일이 없어 쉬고 있는데, 갑자기 한 쪽에서 큰소리가 들린다.

“누구는 봉사하고, 누구는 돈 벌고.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거야! 순서대로 하면 이런 일 없을 텐데, 왜 중간부터 일을 시켜서 복잡하게 만드냐고!”

“그 때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순서 틀어진 건 강씨 한 명 뿐이야. 거기서부터 다시 하면 되는 걸 가지고 뭘 그렇게 화내. 이게 큰 소리 낼 일이야?”

제법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상가와 맞물려 일을 하다보니, 하루 한 차례 지게 아저씨들은 상가 편의를 봐 주는 일을 한다. 상가를 돌며 지방으로 내려보낼 짐이 있으면 그것을 수거해 모으는 작업을 해준다. 평소에는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하는데, 어쩌다 오늘은 순서가 뒤엉켰다.

이곳에서 순번은 곧 수입과 직결되는 일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생계와 연결된 부분이기 때문에 순번이 흐트러지면 다들 여지없이 냉정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딘들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곳만의 즐거운 풍경이 있다. 아무리 큰 다툼도 5분을 넘지 않는다는 것.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 한 잔, 담배 한 모금 나누면 언제 그랬냐는 식이다.

이들을 보면서 문득, 먹고살기 위해 치열한 싸움이 우리 모습이라면, 마음을 다독이고 나누는 것 또한 우리네 단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칠지만 꾸미지 않는 진솔함, 이곳의 가장 큰 힘이었다. 

“물건 없어지면 고스란히 물어줘야 해”

새벽 4시 30분. 이제 슬슬 바빠질 시간이다. 도매상들이 상가를 정리하는 때인데, 이때 지방에서 주문 받은 물건들을 내려보내는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5시 30분쯤 되자, 다들 지게에 한 짐씩 얹고 온다. 모두 5~20년 된 베테랑인데도 이때는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힌다. 막바지 일인만큼, 서로 응원하듯 활짝 웃으며 “여긴 끝!”이라고 신호를 보낸다.

모아온 짐을 지방 별로 분류해 화물트럭으로 옮기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비가 후두둑 쏟아진다. 갑작스런 비에 지게 아저씨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대부분 짐이 옷이다 보니, 비를 맞으면 낭패기 때문이다. 최대한 비를 피하기 위해 비닐로 주섬주섬 두른다.

“상인 손을 떠나 우리한테 넘어오면, 뭐든 약속한 곳까지 이송할 때까지는 우리 책임이야. 택배도 그렇잖아. 중간에 파손되거나, 잃어버리면 고스란히 물어 줘야 해.”

김씨 아저씨는 또, 물건이 없어져 100만원 가까운 돈을 물어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짐의 안전에 촉각을 세운다. 갑자기 김씨 아저씨는 뭐가 생각났는지 사람들에게 급하게 묻는다.

손수 지게 무게만도 13~15kg. 보통 짐 하나 얹으면 60kg정도란다. 컨디션이 좋지 않는 날은 일어나려다가도 짐무게에 그냥 주저앉을 때도 있다.

“아까 한 아주머니가 맡기고 간 짐 혹시 봤어?” “다른 짐들하고 섞였나 잘 찾아봐.”
“없으니까 그렇지.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뭐? 그럼 오늘 완전 헛일 한 거 아냐!”

순간 다들 초긴장이다. 공동으로 일을 한 물건이 없어졌을 때는 공동책임이기 때문이다. 다들 분주하게 짐들을 살핀다. 마침 방금 일을 갔다온 한 아저씨가 돌아왔다.

“뭐 찾아?” “어떤 아주머니가 맡긴 물건.” “흰 비닐? 그거 아까 아주머니 한 분이 자기네 거라면서 가져가 던대?” “야, 그걸 왜 이제 얘기해. 휴! 십년감수했네.”

이번 일이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자 모두 한바탕 웃음으로 마음을 쓸어 내렸다. 누군가가 커피 한 잔씩을 돌린다. 일이 거의 끝났다는 얘기다. 밤바람이 시원하다. 밤새 숨가쁘게 뛰어다니느라 맺힌 지게꾼들의 땀과 피로를 가만 쓸어주는 듯 했다.

“우리 하는 일이 이래. 짐 옮겨 주고 옮겨오고. 맨날 그거지.”
하나둘 일이 끝나갈 무렵이면 어스름 동이 터 온다. 이 맘때쯤이면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맥이 빠지기 일쑤다. 모처럼 새벽을 맞는 이에게는 상쾌한 아침이겠지만, 이들에겐 피곤한 퇴근길이다. 어서 가서 쉬어야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거의 밑바닥 인생이지. 그러니까 다들 알려지는 것을 싫어해.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안보거든. 남 피해 안주고 열심히 살아도 어렵고 불쌍하게 본다고. 이곳 사람들 모두 자존심이 강해. 허드렛일이지만, 불쌍한 시선이 아닌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으로 봐줬으면 해.”

지게와 지겟대처럼 의지하며 살아가는 현장 

24시간 늘 대낮인 동대문시장.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지게꾼을 비롯, 야식장사, 도매상인, 지방 소매상, 택시, 화물트럭, 관광버스 운전사, 노점상, 박스 줍는 노인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먹이 피라미드처럼 치열한 삶의 현장이지만, ‘더불어’ 살고 있었다.

문득, 세상살이가 지게와 지겟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겟대가 있어야 지게가 바로 설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삶의 원동력은 이렇듯 서로 의지하는 풍경이 아닐까. 새벽길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타박타박 집으로 향하는 지게 아저씨들. 성실한 땀방울만큼이나 경기가 좋아져 이들의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졌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글/김은미 사진/최경훈 기자

김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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