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한 달에 한번은 겪는 생리.모든 여성이 심한 생리통을 겪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크든 작든 심리적, 육체적 이상증후군을 경험한다.

‘떼구르르르…’.
매달 한 번씩 김대원(24·대학생)씨는 방바닥을 구르는 난리법석을 편다. 생리통 때문이다. 겪어 보지 않은 이들은 ‘설마 저 정도로 아플까’생각하고 ‘엄살이 심하다’, ‘극성을 떤다’고  볼지 모른다. 하지만 심할 때는 진통제조차 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매달 김씨가 겪는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단 김씨뿐만이 아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 그만큼 많은 여성들이 몸의 자연현상으로 인해 크고 작은 고충을 경험한다. 이에 많은 국가들이 모성보호차원에서 법적으로 생리휴가를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법으로만 규정되어 있을 뿐, 여성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으로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최근 주 5일제와 맞물려 생리휴가가 법적으로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이에 전교조 등 여성 근로자들이 생리휴가에 대한 권리 찾기에 다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 대부분이 신체·정신적 변화 경험

회사원 이지현(27)씨. 그날이 되면 하루종일 신경이 곤두선다. 끊어질 듯하게 아픈 허리와 바늘로 콕콕 찌르듯 은근히 신경을 자극하는 복통. 초경 때부터 생리통이 심해 몇 차례 한약을 지어먹기도 했다. 그러나 약 먹을 당시만 조금 나은 듯 하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돋기 일쑤다. 유일한 방법은 마음 편하게 쉬는 것.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처지라 하루 쉬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고. 

김은하(29)씨 역시 같은 고충을 호소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리통이 없었던 터라 김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리휴가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단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받은 업무 스트레스와 누적된 피로의 영향일까. 언제부터인가 생긴 생리통에 최근에는 생리휴가에 대해 적극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에는 누가 생리휴가를 사용한다고 하면 나 역시 같은 여성이면서도 ‘뭐 꼭 저렇게까지 유난을 떨어야해’라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런데 막상 경험해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몸살났을 때처럼 온 몸이 뻐근하고 이유 없이 짜증도 나고. 하루를 망치기 일쑤예요. 이럴 때는 정말 딱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해요.”

여성이면 매달 경험하는 생리. 그러나 모든 여성이 심한 생리통으로 고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방바닥을 구를 만큼 심한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런 증상 없이 지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생리로 인해 겪는 고충은 여성들의 공통분모다. 크든 작든 대부분 육체적·심적 이상증후군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김미경 국장은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그 주기만 되면 훔치고 싶은 충동을 느껴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있기도 해요. 실제 정신과적 입장에서 봐도 그 시기에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어요. 그만큼 생리는 여성들의 생활에 일정한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어요. 이에 모성보호의 일환으로 선진국을 비롯, 많은 나라에서 생리휴가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3년부터 생리휴가가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사용자의 인식부재, 근무환경의 열악함으로 많은 여성들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1953년부터 근로기준법에 그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이때까지는 청구하는 여성근로자에 한해 월 1회 유급생리휴가를 주었다. 그러다 지난 1989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청구 여부와 관계없이 월 1회 유급생리휴가를 주도록 법적인 권리를 강화했다.

우리나라 생리휴가의 역사는 꽤 오래다. 뿐만 아니라 권리성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실제 일터에서 생리휴가의 활용도는 매우 낮다. 한국여성개발원이 지난 1992년 생리휴가 사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여성근로자 중 27.9%만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994년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에서 제조업 여성노동자 1,2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33.2%만이 생리휴가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무시되거나 일부 사업장에서는 수당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김미경 국장은 생리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열악한 근무환경을 꼬집었다.

“아무래도 이 기간에는 힘드니까 가장 힘든 날 하루를 쉴 수 있게 하자는 게 제도의 의미예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근무환경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조금 다르게 활용되어 왔어요. 장시간 근무에 남성들에 비해 월등히 낮은 임금. 때문에 생리휴가를 직접 사용하기보다는 대부분 수당을 통해 낮은 임금을 보전해 온 거죠.”

서울여성노동자협의회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실제 그동안 여성들의 평균노동시간은 48시간을 훨씬 웃돌았다. 임금을 놓고 볼 때도 남성 정규직 임금을 100이라고 놓으면 정규직 여성은 약 70%, 비정규직 여성은 38%에 미치는 수준이었다.

주5일제와 맞물려 생리휴가 사라질 위기

생리휴가를 주지 않더라도 수당으로라도 보전을 해주는 사업체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더 심각한 건, 현장에서 권리를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거의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사업주의 인식부족으로 ‘생리휴가’ 자체를 아예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에서 지난 1994년 생리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조사한 결과, ‘업무량이 많아서’와 ‘회사가 제 날짜에 주지 않아서’라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생리휴가의 미사용은 비정규직일수록 더욱 심하다. 현재 여성노동자 약 7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보고 되고 있는데, 그만큼 여성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생리통이 심하다는 김지영(27·가명)씨. 이 시기가 되면 늘 찜질기를 달고 살 정도로 허리통증이 심하다. 그래서 생리통이 가장 심한 첫날의 경우에는 하루쯤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그동안 직장 내에서 생리휴가로 쉬었던 전례가 없다 보니 그 역시 사용하기가 머쓱한 형편이라고.

“쓰려고 마음먹고 우기면 쓸 수는 있겠죠. 그런데 다들 안 쓰는데 저만 쓸 수 없잖아요. 조금 억울하긴 하지만, 생리통이 심한 직원들의 경우 대부분 월차로 대처해 사용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은 소규모 사업장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갈수록 더욱 빈번하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노동자의 70%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점이다. 결국 대부분의 여성이 생리휴가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김미경 위원장은 “최근 주5일제와 맞물려 생리휴가가 더 유명무실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 5일제를 실시하면서 관련 법이 더욱 완화됐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주5일제 실시와 관련해 노사정이 논의를 하는 가운데, 생리휴가의 폐지 여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폐지된 것은 아니지만 법 규정을 완화한 것으로 일단락됐다.

완화된 내용을 살펴보면, 1989년 근로기준법 개정이후 청구 여부와 관계없이 월 1회 유급생리휴가를 주도록 정한 규정이 ‘청구시’에만, 그것도 ‘무급’으로 바뀌었다. 용어 또한 ‘생리휴가’가 아닌 남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보건휴가’로 대체되었다. 이는 올해 7월 1일부터 주5일제 시행 대상인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여성노동자협회 황현숙 부장은 “제도를 폐지한 것은 아니지만 이는 거의 폐지나 마찬가지예요. 무급화는 기존의 생리수당을 안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휴일 당일 급여를 월급에서 제한다는 의미거든요. 소득감소를 감내하면서 누가  휴가를 마음 편하게 쓸 수 있겠어요. 그러니 결국은 생리휴가를 없앤다는 의미와도 같은 맥락인 셈이죠”라고 제도적 문제점을 꼬집었다. 

생리휴가는 여성들이 생리로 인해 불편하고 일할 때 지장을 주기 때문에 생긴 제도다. 즉, 모성보호 차원에서 여성의 건강을 제도적으로 보호하자는 의미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보면 생리휴가가 없어질 전망이다.

“간혹 선진국 가운데 생리휴가가 없는 곳도 있어요. 이는 그만큼 생리휴가가 없더라도 일하는데 별 어려움을 주지 않을 정도의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혀 상황이 달라요.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게다가 비정규직화로 인한 고용불안까지 겹쳐서 여성근로자들이 건강을 위협받고 있어요. 때문에 생리휴가가 반드시 필요해요.”

최근 민주노총을 비롯한 여성근로자 노조에서 ‘당당히 생리휴가를 요구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전교조의 경우 지난 2003년부터 ‘생리휴가 사용하기’ 운동을 벌여와 이제 서울·경기지역을 중심으로 과거에 비해 사용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사업주의 눈치에 제자리 걸음이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김미정 국장은 “아무리 캠페인을 하고 권고를 해도 요즘 워낙 고실업상태이다 보니 쉽지 않아요. 특히 노조가 없는 경우는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어 안타까워요. 앞으로 여성건강권 보호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생리휴가에 대처해 갈 거예요”라고 말한다.

여성건강권 확보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 절실

주5일제 실시에 따른 생리휴가 관련 법규정 약화. 이는 곧 모성보호보다 경제효율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김미정 국장은 “저출산 문제가 시급한 요즘, 국가 차원에서 출산을 장려하며 나서고 있어요. 하지만 모성보호의 기본인 생리휴가조차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경제효율만 따져 이를 여성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여성이 건강하다는 것은 일터가 건강하다는 의미고, 가정이 건강하다는 의미다. 생리휴가. 이는 경제효율로 보기보다는 여성 건강권을 회복하는 중요한 권리로 봐야 할 터다. 여성들이 자유롭게 생리휴가를 권리로 인식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절실할 때다. 
글/김은미 사진/최경훈 기자

김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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