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이 가득 실린 리어카를 끌고 있는 표기자. 240kg 리어카를 끌고 언덕길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게 월동준비라도 해야 할 기세다. 허나 사시사철 먹을 것이 풍성하고, 뜨거운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요즘에 무슨 월동준비가 필요할까. 요즘 사람들 겨울나기는 식은 죽 먹기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 얘기는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겨울나기에 속이 타들어 가는 이웃이 너무나 많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를 잠시 잊게 해줄 연탄 한 장 못 사는 이들. 그들에게 겨울은 삶의 또 다른 관문일 뿐이다.
그런 이웃들에게 연탄으로 따스한 겨울을 선물하는 이들이 있다. 한겨울 추위마저 잊게 해주는 이들과의 동행은 어떤 것일까.

“써도 써도 없어지지 않아요”

취재 협조를 부탁한 지 수일이 지났건만 연락이 없어 애간장만 태운 지 며칠째다. 그도 그럴 것이, 연탄을 나눠주기엔 너무 이른 10월 중순. 그러나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을까. 원주 연탄은행 재개식 행사가 열린다는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몇몇 집에 연탄을 나눠줄 계획이라는 주최 측의 소식이 반갑기만 했다.

난생처음 연탄 배달꾼이 된다는 기대감에 복장 점검부터 들어갔다. 검은색 티셔츠에 편한 바지 차림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북적이는 출근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날듯 말듯 하지만, 어릴 적 연탄은 겨울철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난방 수단이었다. 386세대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리라. 그 연탄에 얽힌 추억의 조각보들을 엮는다면 밤을 꼬박 새워도 모자랄 것을…. 80년대에 태어난 나에겐 조금 먼 옛이야기지만 어쨌든 추억을 되새김질 해가며 원주행 시외버스를 탔다.

러시아워 시간, 잠시 주춤하던 버스가 고속도로를 타며 ‘씽씽’ 달리기 시작한다. 멀리 울긋불긋 가을을 알리는 단풍잎이 오늘따라 유난히 정겹다. 차창 밖으로 황금 들녘을 바라보며 경치 구경에 흠뻑 취하기까지 했다. 일을 하러 떠나는 것인지, 아니면 어디 단풍구경이라도 가는 모양인지 분간이 안 간다.

2시간이 채 안 돼 원주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초행길인데도 이곳이 왠지 어색하지 않다. 전날 미리 뽑아놓은 약도 한 장 내밀자 버스 운전기사는 “택시 타고 가요”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가까운 길이면 발품이라도 팔겠지만, 걸어갈 수 없을 만큼 꽤 멀단다. 어쩔 수 없이 연탄 몇 십장 하는 비싼 택시에 몸을 실어야 했다.

큼지막한 간판 하나 없는 ‘원주 밥상 공동체 연탄은행’. 문밖에 쌓인 연탄이 아니었더라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쌓인 연탄을 보자 눈치껏 오늘 나를 물량임을 알아차렸다. 켜켜이 쌓인 연탄을 보며, ‘저 정도쯤이야’라며 오만까지 떨어본다.

지난 2002년 문을 연 이곳은 연탄조차 구입하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의 영세가정과 독거노인들에게 무료로 연탄을 지원하고 배달해 주고 있다. 원주를 시작으로 전국 11개소가 들어섰다고.

10평 남짓한 사무실 안에는 이미 전화로 통성명한 신미애 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어제 헤어졌던 사람마냥 “어! 표 기자”라며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오늘 할 일을 설명해줄 줄 알았는데, 그저 “열심히 잘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가뿐하게 생각한 대로 진행되는 것일까. 왠지 느낌이 좋다.

잠시 후 밥상 공동체 대표 허기복 목사가 있는 사무실로 안내를 받았다. 대뜸 연탄 한 장의 무게를 묻는 허 대표. 생각지 않은 질문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연탄 한 장의 무게는 3.6㎏이에요. 하루에 5장씩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데, 그 무게가 만만치 않죠.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가정이나 독거노인 가정에는 배달 서비스가 이뤄져요”라고 말했다.
원주시 10만 가구 중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은 약 1만 가구. 그 중 10% 미만의 일부 농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열악한 환경의 저소득 가정인 셈이다. 이런 가정에게 하루 석 장, 한 달에 약 150여 장의 연탄을 나눠주고 있다고. 집 뒤뜰에 차곡차곡 써도 써도 없어지지 않는 연탄을 생각하니 가슴까지 벅차오른다.

‘착착’ 연탄 싣고 출발!

오전 11시, 드디어 재개식이 시작됐다. 모락모락 갓 쪄낸 떡과 다과상 앞에 동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허기복 대표는 “정부가 기존 300원인 연탄값을 인상한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인상을 하지 않기로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이 연탄도 없어서 어렵게 지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연탄 은행이 문을 열었으니 필요한 가정은 하루 5장씩 가져가시면 됩니다”라며 인사말을 건넸다.

이날 제일 먼저 연탄을 받으러 온 이는 춘자 할머니. 할머니의 전용 손수레인 유모차 안에 연탄을 실어주는 허 대표의 손길이 분주하다.
할머니는 “이렇게 겨울마다 챙겨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덕분에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요. 연탄을 나눠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할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개소식의 떡을 나눠 먹고, 본격적인 연탄 싣기가 시작됐다. 모두들 연탄 은행 전용 조끼 하나 걸치고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췄다. 겨울마다 손때가 묻은 손수레가 연탄 은행 앞에 떡 하니 주차되니 마음까지 설렌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줄을 맞춰 서기 시작하고, 허 대표 손에서 자원봉사자의 손으로, 거치고 거쳐 ‘착착’ 리어카 안에 연탄이 놓이기 시작했다. 처음 만져보는 연탄이 부서질까 조심스럽다. 그런 맘을 눈치챘을까. 연탄은행 담당 이형선 간사가 “그냥 놔도 돼요”라며 격려한다.

오늘 나를 양은 리어카로 네 개 분량. 약 300여 장에 달하는 분량이다. 만만하게 보고 덤볐는데, 몇 장 옮기지도 않고 벌써부터 허리가 쑤신다. 구부정하게 연탄을 한 장씩 집어 들고 옆 사람에게 옮기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건만….

한 차가 실리고, 또 한 차가 대기했다. 몇 장 나르지도 않고, 땀이 흐른다. 어느덧 대기해 있던 리어카 안이 새까만 연탄으로 가득가득하다. 그 중 하나를 골라잡고 힘껏 끌어 보는데, ‘이게 웬걸’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 간사는 “이 한 차 무게가 240㎏이 넘어요. 만만하게 볼 게 아니에요. 할 수 있겠어요?”라고 했다.  

많이 불안해 보였던지 뒤꽁무니에 자원봉사자 두 명이 따라 붙었다. 힘겹게 젖 먹던 힘을 다해 비탈길을 오르니, 속도가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길. 점입가경이 따로없다. 뒤에서 당기고, 앞에선 몸으로 버티고 초보 운전자 티를 팍팍 드러내고 말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점점 익숙한 듯 능숙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

뒤에서 연탄은행 리어카 넉 대가 줄을 맞춰 나란히 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거리의 무법자가 따로 없다. 신호등 따윈 가볍게 무시! 지나가는 차들이 모두 우리 연탄 은행에게 양보를 했다. 힘겨운 사투 끝에 언덕길을 몇 차례 오르자 드디어 첫 번째 집에 도착했다.

대문 앞까지 리어카를 대놓고 나를 줄 알았는데, 계단 위에 놓인 집 앞까지 올라갈 수 없단다. 튼튼한 두 다리와 두 팔로 때우는 수밖에…. 연탄 두 장을 가뿐히 포개 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애초에 연탄을 나를 심산으로 복장을 챙겼지만, 혹여나 까만 연탄 가루가 묻지나 않을까 되도록 몸과 멀리 떨어뜨려 들어야 했다. 멀어질수록 바닥에 내동댕이칠까 더 불안하다. 그렇게 몇 번을 했을까. 결국 옷 버리는 것 따위는 포기하고 말았다. 연탄을 가슴에 팍 밀착시키니 그처럼 편할 수가 없다.

“그래 그렇게 아기 안 듯 꼭 안고 가면 얼마나 편하다고. 근데 표 기자 얼굴에 이게 뭐야? 에? 뭐가 묻었다.”

연탄 나르던 손으로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허 대표. 여기저기 자원봉사자들의 비명이 줄을 잇는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지친 사람의 마음마저 웃게 만드는 허 대표의 장난으로 모두들 얼굴에 영광의 훈장 하나씩 달았다. 장난도 치며, 힘들다고 투정도 부리며 어느덧 두 차를 모두 비웠다. 마당 구석에 쌓인 연탄을 보니, 올 겨울이 그리 춥지 만은 않을 듯 다.

이웃 정 한가득 싣고 돌아와

연탄은행은 저소득가정에게 하루 석 장. 한달에 약 150여 장의 연탄을 나눠주고 있다. 집 뒤뜰에 차곡차곡, 써도써도 없어지지 않을 연탄을 생각하니 가슴까지 벅차오른다.

이제 남은 리어카는 두 대. 지금보다 더 힘든 곳으로 간다는 말에 벌써부터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두 팔이 욱신거리기까지 한다. 그래도 이번엔 빈 수레를 끌고 가게 돼 그나마 다행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언덕 하나를 더 넘어 도착한 두 번째 집은 혼자 다니기도 비좁은 골목길 끝에 위치해 있었다. 한 번 해본 탓인지 프로 연탄 배달꾼이 따로 없다. 보일러실에 연탄을 나르고, 아예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대야에 여덟 장씩 나르기도 했다.

연탄 은행 식구들이 대문 안에 들어서자 반갑게 맞아주는 주인 할머니. 아들이 죽은 후 암에 걸린 며느리와 단둘이 살고 있단다. 땀과 연탄으로 까맣게 범벅이 된 우리들에게 냉장고 넣어두신 요구르트를 하나씩 건네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먹성 좋은 젊은이들에게 작은 요구르트 하나 건넨 게 미안해서 일까. 슈퍼에 가서 좀 더 사 오겠다며 대문 밖을 나선다.좁은 골목 사이 오고 가는 작은 정에 힘들던 몸이 가뿐해지기까지 한다. 모두 선 채로 목을 축이고, 다시 연탄을 나르러 골목 아래로 향했다.

“연탄 나르는 일이 쉬워 보여도 직업이라면 어디 하겠어요? 많이 힘들어 보이네. 힘드시죠?”

‘헉헉’ 대며 골목을 오가는 내게 이 간사가 힘을 북돋워 줬다. 연탄 한번 갈아본 기억 없는 내게 힘든 만큼 가장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까지 뭉클해진다.

몇 차례 오가지 않은 듯한데, 벌써 두 차를 깨끗이 비웠다. 문밖까지 배웅을 나온 할머니를 뒤로하고 하나씩 빈 수레를 잡았다. 힘센 이 간사는 자원봉사자를 두 명이나 싣고, 고생이 많았던 허 대표는 자원봉사자들이 수레에 태우고 도로의 무법자가 되어 달리기 시작했다. 연탄을 가득 실어 나르던 수레에 이제 이웃들의 정을 한 가득 싣고 돌아간다. 그래서 일까. 일부로 힘주지 않아도 수레가 저절로 움직이는 듯했다. 

사무실에 도착해 처음으로 거울을 보았다. 검은 연탄 가루와 땀이 뒤범벅된 얼굴은 추하다기보단 정겨웠다. 오늘 흘린 땀만큼 한겨울에도 추위에 떨지 않을 수 있는 가정이 하나 더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엔 모든 가정이, 그리고 모든 이들이 마음까지 따뜻하게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표수진 사진/최경훈 기자

표수진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