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전,단수가구 및 가스공급 중단 가구 4만7,309 중 기초보장제도의 급여지원을 받으 받을 경우는 7.5%에 불과하다.

이혼 후 5살, 17살 된 아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김봉원(가명·47)씨. 아직 아이가 어려 집을 오래 비워두고 일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아이가 잠든 새벽에 신문을 돌리거나 아이와 함께 폐지를 모아 판 돈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던 중 오랫동안 참고 있던 가슴의 통증이 심해져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동사무소에 수급권자 신청을 하러 갔더니 일할 능력이 있는 나이라며 근로능력이 없음을 증명할 수 있는 진단서를 끊어오기 전까지 수급권자가 되기 어렵다고 했다. 진단서를 끊을 돈조차 없는 김씨.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살 날이 막막할 뿐이다.

기초보장대상자 판정 ‘하늘의 별따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수급권은 국가가 국민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이자 국민의 권리이다. 이것은 지난 2000년 기존의 ‘기초생활보호법’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명칭을 변경한 후 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권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특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하 ‘기초보장제도’)’에 새로 도입된 수급권자 선정기준 방식 중 ‘부양의무자’의 기준과 ‘소득인정액’의 개념은 2005 국정감사 결과 사회안전망으로써 부족한 점을 제기시킨 원인이기도 했다. 실제로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이나 ‘기초보장제도’로 보장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가정 대부분이 재산과 부양의무자 때문에 수급 받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기초보장제도의 엄격한 규정 등 제도상의 허점으로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부의 수탁을 받아 연구 발간한 ‘차상위계층 실태분석 및 정책제안’ 보고서에 의하면, 기초보장제도가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제도 자체를 모르는 극빈 가구가 77.7%나 된다. 이 중, 77.2%는 상담조차 받은 경험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상담이 이뤄진 6.6%는 아예 수급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60.5%가 ‘자격이 안 될 것 같아서’라고 답했고, 18%는 ‘받을 수 있는 도움이 있는지를 몰라서’, 11.8%는 ‘생계가 어렵지 않아서 상담을 포기했다’고 답했다.

이같은 결과는 홍보부족도 문제지만, 비현실적인 기준 때문에 수급자 선정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단전·단수가구 및 가스공급 중단 가구를 대상으로 기초보장제도의 급여 지원여부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통보 받은 단전·단수가구 및 가스공급 중단 가구 38만843가구 중 4만7,309가구에 대해 기초보장제도의 급여 지원여부를 심사한 결과, 7.5%인 3,531가구만이 기초보장제도의 지원을 받았다고 나와 있다.

또, 급여를 신청한 가구의 92.5%인 4만3.778가구가 기초생활부적합으로 탈락했는데, 이 중 소득인정액 기준으로 탈락한 가구가 3만3,991가구,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하여 탈락한 가구가 9,787가구였다. 경로연금, 보육료 지원 등 타 법령지원 3,010가구, 차상위 의료급여 특례 551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민간지원 370가구, 자치단체지원 296가구 등이다. 지원 받은 4,266가구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나머지 3만9,552가구는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빈곤의 굴레에 갇혀 있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기준에 두 번 상처 받는 빈곤층

빈곤은 아동, 노인유기, 이혼, 가출, 자살등의 사회병리현상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기초보장제도의 수급권 선정 기준이 되는 소득인정액 기준은 실제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소득평가액’과 재산을 기준으로 하는 ‘소득환산액’으로 정해지는데, 소득환산액의 경우 재산의 소득환산율이 대단히 높아 비현실적이다. 소득으로 환산되는 재산 중 일정액 이하의 주거용 주택, 생계형 재산, 생계 및 장애·질병(간병)등의 사유를 위한 자동차 등은 제외해야 마땅하지만 이들은 평균 90%로 환산되는 반면, 소득환산시 적용되는 기초공제 대상이 되는 기본 재산액은 상대적으로 너무 낮기 때문이다.(대도시  3,800만원, 중소도시 3,100만원, 농어촌 2,900만원)

소득평가액 역시 논란의 여지가 많다. ‘추정소득’ 측정이라는 부작용을 낳아 부정수급자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소득이 60만원인 자가 있는데, 보고할 때 사실대로 60만원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거짓말이라고 지레 짐작한 공무원이 90만원의 소득을 추정할 것에 대비하여 30만원 밖에 벌지 못한다고 소득을 보고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복지담당공무원의 재량 여부와도 연계되는 문제다. 물론 일부에 해당하는 얘기지만, 기초생활보장법상 보장기관인 기초자치단체의 사회복지담당공무원은 마치 자신이 무언가 은혜를 베푸는 양 위세를 부리거나 어떻게 해서든 이들의 권리 찾기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여질 때가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김숙희(가명·36)씨도 작년 가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10살과 4살 된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숙희 씨의 남편은 부채와 가정형편 때문에 집을 나가서 연락이 끊긴 상태다. 약간의 정서 불안을 갖고 있는 데다가 아이들이 아직 어려 취업하기가 힘든 숙희 씨는 결국 노점상을 하고 있는 70세의 친정어머니가 번 돈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다 이마저도 친정 어머니의 건강상태가 나빠져 힘들게 되었다.

“통장님이 우리 사정을 딱하게 보셨는지 동사무소에 말을 해주시더라고요. 담당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직접 집으로 와서 화장품은 뭐 쓰고 있고, 핸드폰 요금이 한 달에 얼마나 나가는지 꼬치꼬치 묻더니 우리집 소득과는 얼토당토 않는 소득을 책정해 가더라고요. 그러면서 여태까지 안 굶고 지내고 있는 건 다 살 만하니까 그런 거 아니냐면서 마치 제가 돈 타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듯이 굴었어요. 그 뒤로 다신 신청을 못하겠더군요.”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은 87년 처음, 49명이 신규 채용됨으로써 생겨났으며 2005년에는 신규 채용만도 1,700명이 넘고 전국적으로 9,830명이 된다.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정원을 늘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은 일부 일테지만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조금만 더 빈곤생활에 처한 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씨처럼 소득인정액이 판정기준에 못 미쳐 수급권자가 되지 못한 이도 있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에 못 미친 경우도 비통하긴 마찬가지다. 올해 서른 살인 이가영(가명)씨. 보디가드 사업을 하다가 실패해서 7,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남편과는 별거 중이고, 5살, 3살, 1살 된 아이와 시골에서 함께 살고 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고 있는 남편은 따로 혼자 거주하면서 직업을 구하고 있지만 1년이 지나도록 적당한 직업을 구하지 못한 채, 건축노동을 하면서 자신의 생계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가영 씨는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아이가 어려 어디 나가 일도 못해요. 동사무소에 수급권자 신청을 했지만 따로 살고 있는 친정 부모님에게 부양의무자의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수급권자가 될 수 없대요. 부모님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진작에 말씀을 드렸겠죠. 저희보다 형편이 조금 더 나을까, 도와줄 형편이 안 됩니다. 아이들 보고 겨우 살아요.”

대부분의 복지 선진국에서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없거나 부양의무를 두더라도 부모, 자녀와 같은 1촌의 직계혈족에게만 한정하고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부양의무자 판단기준이 수급권자와 마찬가지로 최저생활유지를 강요하고 있다. 실제 가족으로부터 부양 받지 못하면서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하여 수급권자가 되지 못하는 빈곤층이 다수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같은 기준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의문스럽다.

실업이나 빈곤은 이혼, 아동·노인유기, 가출, 자살 등의 각종 사회병리현상을 증가시키고 복지의 기본 단위인 가정을 해체시키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 실제로 IMF 경제 위기 이후 합의이혼과 자살율이 각각 34%, 41% 증가하였고,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학교에는 결식아동이 증가했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기댈 언덕이 되어야 하지만 이 같은 제도상의 허점은 국민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방치하고 있어서 ‘죽는지 말든지’ 상관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빈곤문제, 인권문제로 보는 의식 필요

지난 10월 1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5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 같은 제도상의 허점이 언론에 크게 부각된 이후 나타난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 매체에 소개된 일선 공무원의 이야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한기분이 들게 한다.

“얼마 전에 어떤 수급자가 탕수육을 시켜 먹었는데 주위 이웃들이 그걸 보고 어려운 사람이 탕수육을 시켜 먹는다고 조사를 철저히 해달라는 문의가 왔어요. 어려운 형편에 있는 수급자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욕구는 똑같아요.”

이것이 단지 일반인들의 지독히 고정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까.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결국 더불어 사는 사회의식의 결핍까지 낳게 된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소외된 자에 대한 사회의 배려 차원에서 주어지는 갖가지 지원정책들이 일부 시세에 밝은 사람들에 의해 편법으로 활용되어 자산을 늘리는 방법 중 하나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며, 당연히 이에 부응하는 강력한 처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제도상의 허점으로 인해 대부분의 적절한 기초생활수급자가 부정수급자로 도매급으로 넘어간다거나, 이런 허점을 메울 생각 없이 아예 기초사회보장을 줄이자거나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제도를 없애자는 등 지극히 극단적인 주장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의 류정순 소장은 “2002년 국정감사 때, 부정수급자가 1만6,240가구라고 발표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밀조사를 실시해 본 결과, 부정수급자는 두 가구뿐이더군요. 그러나 이 사실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공개된 적이 없었습니다. 조세포탈범의 경우에는 그 규모를 공개하지도 않으면서 왜 수급자 선정기준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우선 ‘터뜨리’고 보는 건지 정말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하며 담당공무원들의 무책임하고 성급한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참여정부 들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가 바로 복지부분이다. 기초보장법 시행이 5주년을 맞은 지금, 아직 복지사회로 가는 길을 먼 듯하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사회안전망 대책인 ‘희망한국21-함께 하는 복지’를 확정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차상위계층에 대한 탈빈곤 정책 강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내실화, 사회안전망 전달체계 개편 등 3개 분야 22개의 정책과제를 담고 있다.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근로소득보전세제(EITC: Earned Income Tax Credit·일을 통한 빈곤탈출 정책)의 도입도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제도가 선보이고 ‘읍·면·동사무소’가 ‘주민복지·문화센터’로 이름만 바뀌는 것이 다가 아니다. 새로 도입될 복지정책들이 과연 제대로 적절하게 운영될 수 있을지, 이런 대책들을 내놓는 당국자들에게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등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전기, 수도, 가스도 끊기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노후대책은 차마 꿈도 못 꾸는 빈곤층이 과연 국가가 자신들에게 얼마나 가까이 있다고 느끼겠는가. 그래서인지 류 소장의 “빈곤문제를 인권문제로 보는 의식이 필요하다” 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글/배미용 사진/최경훈 기자
자료제공/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배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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