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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꿈꾸기엔 산 너머 산이에요"산업체 특별전형 소망하는 근로청소년들... 형편상 포기하는 경우 많아
배미용 기자 | 승인 2005.12.06 11:52

“갈등을 많이 했었는데 얼마 전 확실히 굳혔어요.”
경기도 시흥시 서해고등학교 산업체부 3학년에 재학 중인 재희(가명·19). 대학은 가고 싶었지만 그간 선뜻 결정은 못 내렸었다. 재희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산업체고에 다니면서 공부와 일을 병행하고 있는데, 대학에 가게 되면 걸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비싼 학비도 문제고, 지금은 공장에서 번 돈을 꼬박꼬박 집만 생활비에 보태왔는데, 대학에 가면 아르바이트를 한다해도 지금처럼 갖다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졸업하면 바로 취직하는 이 곳의 다른 친구들을 생각하면 자신의 꿈은 ‘사치’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대학 가는 게 부담스러워요”

부모가 “제발 좀 대학만 가라”고 좇아다니며 학원이나 과외를 보내는 또래 친구들이 대입을 앞두고 하고 있는 생각들. 가령, ‘수능날 컨디션이 좋아야 할텐데’, ‘시험보고 떨어지면 어떡하나’ 등 시험이 끝나면 사라지는 걱정을 할 동안 재희는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갖고 있는 걱정까지 한다. 형편이 어려운 부모에게 짐이 되기 싫어 산업체 고등학교를 선택한 재희. 공부만 하기도 벅찬 나이에 공장에 나가 일하면서 받는 월급을 꼬박꼬박 집에 보내 생활에 보태왔다.

학비와 숙식이 무료인 대신 공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산업체 부설고등학교는 7,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520여 곳(1977년 기준), 학급수만 해도 3,564학급에 달했다. 그러나 현재는 전국적으로 9개 학교, 21학급에 불과하다.(2005년 4월. 기준)

학생 수도 졸업자가 2005년 현재 268명인데 비해 입학자가 130명이어서 그 수도 점점 줄고 있는 추세다. IMF 이후 경제적인 타격을 입은 공장들이 많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제도권 밖의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수도 줄 뿐더러, 업체에서도 더 이상 학생들을 원하지 않는 데 그 이유가 있다. 현재 산업체부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전국적으로 500여 명, 그 중 고3 학생 수는 약 200여 명 된다.

이처럼 산업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보통 인문계 아이들처럼 정규 학습과정을 밟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학진학 준비에 있어서도 일반 정규 고등학교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그렇다고 이 곳에서 실업고처럼 졸업 후 취직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진학이나 취업 둘 중에 어느 길을 가더라도 어느 곳 하나 수월한 곳이 없다.

서해고등학교만 하더라도 2003년 졸업생 15명 중 중 2년제에 3명, 4년제에 1명 입학했고, 작년에는 졸업한 학생 14명 중 5명만이 2년제 대학에 갔다. 막상 대학에 간다해도 학비며 생활비·유지비 등의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재희도 그랬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고민을 하다 확실히 마음을 굳혔다.

“공장에서 주임님이 그러시더라구요.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구요. 월급 수준도 다르고 진급도 일찍 된대요. 저 나름대로 공부 욕심도 있었지만, 어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을 들으니 더욱 용기가 났어요.”

대학 가겠다고 마음 먹은 것을 ‘용기’라고 표현하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재희에게는 대학이 그만큼 넘지 못할 산이었다. 그나마 산업체 고등학교는 수능을 치르지 않고 수시로 산업체 특별전형에 지원할 수 있어 다행이다. 현재, 산업체 특별전형 대학은 1, 2학기 수시모집과 2, 4년제를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133여 곳 된다.

하지만 재희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워낙 아이들을 좋아해서 직업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재희는 ‘유아교육과’를 가기로 결심했다. 보통 공업고나 상업고 학생들처럼 일반 인문계 학생을 제외한 학생들에게 지원 자격이 주어지는 산업체 특별전형은 상대적으로 학과 선택의 폭이 좁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정보 수집을 많이 해야 하는데 따로 시간을 내어 알아보는 게 쉽지만은 않다.

이 학교 학생들이 다니는 공장은 섬유 만들기 바로 전 단계 과정인 실을 뽑고, 그 실에 염색하는 작업을 하는 공장인데, 주단위로 3교대 근무하기 때문에 새벽조로 일할 때도 있고 야간조로 일할 때도 있다. 학교수업은 4시 20분터 8시 50분까지 있어 새벽조로 일할 때는 오전에 일을 하고 오후에 수업을 받고, 야간조로 일할 때는 수업을 마치고 공장에 간다.

한참 자라는 나이에 잠자는 시간도 불규칙할 뿐더러 공장에서는 어리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일반 학급 아이들이 ‘산업체 야간’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상처를 준다. 그래서 중간에 그만두고 포기한 학생들이 많았다. 몸도 마음도 모두 힘들었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5명이나 그만 뒀다. 그동안 참고 견딘 것이 억울해서 더 있으려고도 했지만 도저히 있을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재희와 친구들은 그래도 버텼다. 자신이 여기서 나가면 대학도 등록금도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다. 

“스스로 당당해야 세상에서도 당당해요”

“스트레스 받으면 소리를 맘껏 지를 수 있는 노래방에 가거나 먹을 걸 사다 먹어요. 공부만 하는 다른 아이들도 스트레스 받는데 저희라고 그런 게 없겠어요. 게다 그 애들은 부모한테 돈 받아서 그 돈으로 술 마시는 데 흥청망청 쓰더라구요. 그 친구들을 보며 ‘나도 저러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 애들이 그저 한심할 뿐이에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또래 친구들의 철 없는 행동에 혀를 끌끌 찰 정도로 성숙한 민지(가명·19). 재희와 같이 고3 이지만 대학에 가려는 생각은 없다. 얼른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졸업해서 대학에 간 선배들 얘기가 그리 희망적으로 들리진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에 가면 그냥 논대요. 주위의 분위기대로 휩쓸리다 보면 여기서 모은 돈도 다 쓰게 된다 그러더라구요. 우리는 그러면 안 되잖아요. 부모가 대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벌어서 써야 하는데….  그리고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걸 흐지부지 쓰나요. 그럴 바엔 일찍 취직해서 자리잡고 돈 버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희 역시 얼마 전까진 친구인 민지처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부모님께도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말씀드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재희의 뜻에 흔쾌히 따라주셨다. 덕분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여기에 있으면서 모아둔 돈도 꽤된다. 담임 선생님께서 특별 코치를 해주셨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을 보니까 지금의 우리 엄마 세대들이 떠오르더라구요.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어린 나이에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거잖아요. 이렇게 고생만하다가 먼훗날 자기 인생에는 남는 게 없어서 허탈해할까봐 걱정이 들더라구요. 대학에 가든 안 가든 자기 이름으로 꼭 적금을 들라고 강요하다시피 했어요.”

김복동 담임 선생님은 늘 아이들이 안쓰럽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틈틈이 모으는 한편 대화를 자주 가져 스트레스를 풀어주려고 노력한다고. 또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때로는 엄마처럼, 때로는 언니처럼 살갑게 대한다. 아이들에게 적금을 들라고 말한 것도 그런 뜻에서다.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행복과 불행은 언제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고 말해줘요. 이 나이 또래에 이 만한 경험 있는 사람들은 없잖아요. 튼튼한 계단을 만드는 과정이라며 힘을 줍니다. 또, 의기소침해 있는 아이들에게도 당당하라고 말해요. 스스로가 당당해야 남들도 너희를 당당하게 본다고요.”

“보통 이 학교에 다니면서 졸업할 때까지 한 1,500만원 정도 모으더군요. 그 돈을 아무리 아껴쓰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도 월세 등 생활비·유지비를 내고 나면 벅차서 휴학하기 일쑵니다. 등록금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고요. 또, 산업체 특별전형인 경우 전공과목도 그리 많지 않아요. 기술,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학과나 이 아이들과 잘 맞는 사회복지 분야보다는 학문 위주로 짜여있으니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이 줄고 있어요.”

서해고 산업체부의 교무부장인 김오규 교사는 아이들을 위한 보다 탄탄한 기반이 없음을 아쉬워했다. 또, 고등학교 때도 야간반이다 보니, 대학까지 야간을 다녀야 하냐며 꺼려하는 학생도 있단다.
그렇다고 일반전형으로 지원하기에 준비된 것이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체 특별전형은 대학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고등학교 1, 2, 3학년 전체의 내신을 보는 곳도 있고, 고2 때의 성적만 혹은 고2, 2학기와 고3, 1학기 때 성적을 보고 뽑는 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처럼 수능에 대한 압박감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대학에 갈 생각이 있으면 진작에 실력을 다졌으면 된다. 그렇지만 쉽지 않았다. 공장에서 일하다 보면 학교가 오히려 오기 편한 곳으로 인식되곤 해 수업시간에는 긴장이 풀리기 마련이었다.

학생들이 안타까운 선생님들 역시 아이들에게 “일어나서 공부 좀 하라”고 재촉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산업체부의 고3 교실은 그 특유의 살벌하고 엄숙한 분위기는 찾아 볼 수 없다. 게다가 고3은 비교적 ‘주경야독’ 생활에 많이 적응되어 있어 활발한 편이다.

낮은 곳에서 부르는 희망 노래

새벽조 작업을 마치고 등교한 아이들. 졸음이 쏟아지기 일쑤지만 이를 안타깝게 보는 김복동 선생님은 즐거운 수업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대학에 가는 것도 좋지만 통제된 기숙사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또, 아르바이트를 하긴 하겠지만 새벽이나 야간처럼 남들 자는 시간에 일 하지는 않잖아요.”

비록 이곳에서는 학비와 숙식 걱정을 안 해도 됐지만 통제가 무척 심해 견디기가 힘겨웠다고 털어놓는 재희. 그렇지만 꾹 참았다. 함께 지내다가 그만 둔 친구들에게도 가끔 연락이 오는데 나가서 힘들면 더 힘들었지, 좋다고 한 친구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힘들땐 책을 본다. 워낙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곳에 있다보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까봐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많이 한다고.

“고3이라고 해서 특별히 힘든 건 없어요. 정말 힘들었을 땐 고1 때였죠. 중학교 때 선생님이나 주위에서 무척 힘들거라고 각오하라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더라고요. 공장에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오는 외국인노동자가 있는데 그들보다 더 차별 대우를 받았어요. 이제는 그런 것쯤이야 통달했죠. 오히려 1학년 후배들에게 여러 가지 노하우를 많이 가르쳐 줄 정도에요.”

공장에서 친구들과 같이 일하면서 전달이 잘 안 돼 싸우다가도 어느 순간에 풀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며 털어버리는, 여느 여고생과 다를 바 없는 이들이지만 일찍 철이 들어서일까. 부모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다.

월급을 받으면 모두 고향에 혼자 계시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민지는 “아버지가 항상 저에게 미안해 하세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며 눈가에 눈물을 떨궜다.

“저희 언니도 이 학교에 다녔거든요. 저도 이 학교에 다니겠다고 하자, 부모님과 언니의 반대가 심했어요, 힘들다고요. 하지만 제가 설득했어요. 언니도 하는데 제가 못 할 게 뭐 있냐고요. 그래서 더욱 대학에 가고 싶어요. 졸업해서 보란 듯이 대학에 다니고 하고 싶은 일 하며 돈 많이 벌고 싶어요. 부모님도 대학에 다니는 딸을 무척 자랑스러워 하시겠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대학 나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재희 역시 부모님 얘기에는 눈시울을 붉혔다.
“열심히 해야죠. 선생님도 그렇고 주위에서도 어린 나이에 고생한다, 기특하다고들 하는데, 솔직히 힘들긴 하지만 고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처음부터 제가 선택한 것이고,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예요. 대학 선택도 그래요. 지금보다 자유로워질 거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걸요.”

‘왜 다른 아이들은 안 그런데, 나만 이러고 살아야 돼’하고 투정부릴 법한데, 그러기에 아이들의 마음이 이미 훌쩍 커버린 것일까. ‘요즘 애들 같지 않은’ 이 아이들의 꿈이 그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 빛나 보인다.

가뜩이나 소외되었는데, 그 수가 점점 줄어들어 관심 밖으로 밀려나버린 산업체 고등학생. 이제 곧 새로운 시작을 펼치려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무관심한 모습은 보이지 말았으면 한다. 원대한 꿈을 품은 꿈나무이기에 훗날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만날 때는 지금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는 웃음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글/배미용 사진/최경훈 기자

배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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