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무관심과 가족들로부터의 소외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되고 있는 치매. 한때는 나이 든 노인들의 ‘망령’ 정도로만 인식되어져 온 것이 이 치매라는 난치병이었다.

최근 복지전문가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치매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피력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치매는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 사회인식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지난 1991년, 치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전무(全無)하던 이 시기, 치매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인물이 한국치매가족협회 이성희 회장이다.

치매를 병(病)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일종의 노환에서 발생되는 정신장애 정도로만 여기던 당시에 그는 치매가 병의 한 종류이며, 예방과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치매환자와 가족들에게 알리고, 이들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가교(架橋)역할을 자처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으로 치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이끌어내고자 노력했다.

그런 그를 현재 운영하고 있는 시립송파노인전문요양원에서 만날 볼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는 모습은 치매와 같은 어려운 문제를 다루는 협회의 장(長)이라기보다는 점잖은 중년의 모습으로 깊고 부드러움을 간직한 한국의 전형적인 어머니 상(像)을 떠올리게 했다.

운명처럼 다가온 복지사업과의 인연

그가 처음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80년대 일본에서 생활하던 당시의 일이었다. 당시 일본에는 제일교포 1세들을 위한 양로원시설이 단 한개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이런 시설을 하나 운영해야 되겠다’는 필요성을 느꼈고, 이때부터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전문적인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이렇게 일본에서 생활하던 중 지난 1988년 국내에 처음으로 가정복지국이 신설되면서, 이 곳의 담당 공무원들이 일본으로 견학을 오게 됐는데, 당시 이성희 회장이 이들의 가이드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일본의 상황을 잘 알고, 사회복지에 대한 공부를 했던 그만큼 적절한 가이드가 없었던 것이다.

시설에 대한 견학에서부터 정부가 시작하려는 복지사업에 대한 각종 정보를 방문했던 공무원들에게 일러주다 보니 그들로부터 “한국에서 2~3년만 나라의 복지사업을 위해서 일해주면 좋겠다”라는 제안을 받게 됐고, 결국 한국으로 귀국해 국내 사회복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이 지금의 자리에 이성희 회장을 있게 했다.
 
치매가족협회를 만들다.

정부와의 인연으로 한국에서 복지활동을 시작한 그가 치매라는 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됐다. 노인복지관을 운영하던 지난 91년, 노인복지관 근방에 있는 산동네에 불우한 노인들과 가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이들을 돌볼 봉사원을 파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열악한 이곳의 환경을 청소하고 정리하려는 봉사원들에게 오히려 역정을 내고, 마치 봉사원들을 도둑인양 보는 노인들의 모습을 전해들으면서 이것이 치매라는 병이며, 치매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치매가족들의 모임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91년 3월의 일이었다. 치매를 수치스러운 집안일이라 생각하고, 나이 든 노인들의 노망 정도로만 여기던 당시로써는 치매가족을 모으기 위한 홍보자체도 매우 어려웠다. 더욱이 치매사업을 시작하려는 그에게 ‘될 사업도 아닌데 필요 없는 사업을 시작하려 한다’는 주의의 질타로 이어졌다.

“당시는 사회적으로 치매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도 빈약했어요. 그러나 세계적으로 볼 때  치매는 암, 뇌졸중, 심장병과 함께 세계 4대 질병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었고, 당시 한국도 노인의 비율이 국민의 4.3%에 이르고 있었기에 치매가 고령화에 대비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이 문제를 올바른 방향에서 알려 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정부의 지원과 사회적 관심을 전혀 얻지 못했던 시절이었기에 사비를 털어야 했고, 그나마 일찍부터 복지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삼성그룹 계열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3년여를 고전하던 중, 1994년, 당시 서울 광화문 전화국에서 전용전화를 임대해 치매관련 전화상담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부터 전국적으로 많은 상담문의를 받으며 사업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남부끄러운 병이라 생각했던 이들에게 전화상담은 그들이 갖고 있던 많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비로소 그가 원하던 치매사업이 활기를 띠게 되는 순간이었다.

특히 같은 해 7월, 전 세계 60여개국이 가입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세계알츠하이머병 협회(ADI. Alzheimer’s Disease International)에 동양에서는 인도, 중국에 이어 세번째로 가입, 명실공히 치매문제에 있어 한국을 대표하는 NPO단체로 인정받게 되어 한국치매가족협회의 위상을 높이는 쾌거도 거둘수 있었다.

현재 한국치매가족협회는 전화 및 내방 치매종합상담사업을 비롯해, 치매전문인력 양성교육, 전국치매순회교육 등 각종 치매관련 교육사업, 치매노인 배회구조사업, 매년 열리는 세계치매의 날 기념행사와 치매정보 계간지 “효심” 발행, 관련서적, 비디오 제작 등 출판사업을 하고 있다. 또한 부산, 광주, 대구, 진주, 울산, 충북, 포항 등 7개 지부를 두어 전국적인 네트웍을 통한 치매관련 사업을 진행중에 있다.

여자의 몸으로, 빈손으로 시작해 지나온 15년.

 이성희 회장은 “‘거저 얻게 된 지식을 나누고자 하는 생각’에 시작한 사업이 정부의 보조금 지원 하나 없이 15년이라는 세월을 지내왔어요”라며 “치매가 ‘노인은 천국, 가족은 지옥’이라는 한마디 말로 표현될 정도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돌봄의 고통’을 가족에게 안겨주고 있기에 시작 초기에 우리가 가족이 되어 그 안에서 서로 의지하고, 서로의 기둥이 되어 힘을 나누어 줄 수 있도록 받침대 역할을 해야 겠다는 생각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 협회의 모토가 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협회는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으면서도 정부의 무관심과 유사단체에 밀려 정부의 지원이 전무한 상태다. 그렇다보니 이성희 회장 본인의 사비와 KT&G나 하이리빙과 같은 몇몇 뜻있는 기업들의 도움으로 겨우 사업을 꾸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도 그는 “치매관련 사업을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빈손으로 시작해 15년간을 지켜왔어요. 그리고 나는 지금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처음 치매에 대한 사업을 시작해 우리나라에 치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놓은 사람으로서 보람을 느끼고 있고, 앞으로도 힘들겠지만 능력이 닿는 한 이 일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희망이고 바람이기도 하지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치매는 알츠하이머병 이외에도 뇌혈관성 치매와 같은 70여가지의 원인에 의해 나타나는 병으로 조사되고 있다. 그리고 이중에 알츠하이머병을 제외한 나머지 원인들은 식생활이나 환경의 개선 등으로 충분히 예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에서는 최근의 급변하는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40~50대에 나타나는 초로기 치매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제 치매는 노인들만의 병이 아닌 것이다.

이에 대해 이성희 회장은 “현재 싱가폴의 경우에는 40세부터 치매등록이 가능토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55세 이상이 되어야 등록이 가능하도록 법적으로 규제를 해놓고 있어 초로기 치매환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런 폐단은 철폐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며 “더욱이 최근 개정된 가족법에 의해 부모의 유산이 공동분배됨에 따라 부양의 어려움이 생기고, 치매환자들은 가족들로부터 떠밀리기를 당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요양시설이 충분한 것도 아니고, 요양시설의 입원비 역시도 만만치 않다보니 치매환자들, 특히 치매노인들은 갈 곳 없는 떠돌이 신세로 전락해 가고 있어요”라고 현실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또 “정부는 현재 이런 부분을 해소하겠다며 말들을 하고 있지만 전문연구기관과 같은 사회적 인프라나 서비스 기반이 전혀 없는 상황이예요. 특히 전문인력의 부족도 큰 문제이고요”라며 “전문인력은 현재 노인시설에서 활동중인 사람들을 교육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워낙 관심들이 없고, 시설장 역시도 자금부족에 허덕이다 보니 전문교육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입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치매는 분명 예방이 가능한 병입니다. 특히 치매는 케어(care)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수 있습니다. 초로기 치매가 증가하는 현실 속에서 이제는 40대부터 적당한 케어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에 대한 홍보도 부족하고, 이를 복지차원에서 해결해 나가려는 정부의 의지도 부족한 상황입니다”라며 “정부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향후 치매환자의 수는 분명히 증가할 것이며, 반대로 가족들의 책임의식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결국 가족들이 이들을 버리면 그후에 돌아올 책임은 모두 정부가 떠안아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도래하면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담은 엄청날 것이라는 것을, 이제라도 보건복지부와 같은 관할부처가 종합적인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걱정들을 늘어놓으면서 이런 문제를 풀어가는 올바른 방법은 우선적으로 치매환자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부분과 가족의 책임부분을 명확히 구분하고, 서로의 합의점을 도출해 내는 것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이 회장은 강조했다.

정부의 무관심, 무책임으로 방치되고 있는 많은 치매환자들에 대한 고민을 한국치매가족협회라는 단체의 장으로서 모두 떠안고 가다시피 하고 있는 이성희 회장의 모습은 어디서 그런 힘과 끈기가 나오는 걸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맹목적이다시피 한 그의 치매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 약자를 돌보는 테레사 수녀와 같은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끝으로 치매가족에 대한 당부의 말을 부탁했다.
“치매가 걸려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돼야겠지만 아직은 가족들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렇기에 치매가족들은 모든 것을 혼자 감수하려 하지 말고, 분명 치매를 병으로 인식하고 환자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돌봐야 합니다. 특히 치매는 케어방법에 따라 문제행동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분명 극복할수 있는 길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말아야 하며, 좀 더 크게 생각해서 치매환자들을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 살다갈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어야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글/심재원 편집장 사진/최경훈 기자

심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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