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현장에 늘 함께하는 소방대원들. 이들이 있어 보다 안전하고 신속한 사고처리가 가능하다.

“출동, 출동, 화재발생, 화재발생. 경기도 광명시 ○○동 지원 요청!”

소방서 내 휴게실, 사무실, 대기실 곳곳에 달려있는 스피커를 통해 출동을 알리는 긴박한 방송이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소방대원들이 출동준비를 서두른다. 조금 전까지 이들 얼굴에 만연해있던 편안한 미소는 진작에 사라졌다. 차고의 셔터문이 열리더니 지휘차를 선두로 물탱크차, 펌프차, 굴절차, 사다리차, 구급차가 빨간 사이렌을 ‘이용-이용-’ 울리며 도로로 나선다. 헐레벌떡 차에 오른 소방대원들은 서둘러 장비를 점검한다. ‘화재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인명피해는 없는 걸까?’ 모두들 궁금할 법 한데, 정작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달리 진지한 침묵만이 감돌 뿐이다.

위험한 일인 만큼 보람도 크다

소방방재청의 2004년 전국 소방서에서 처리한 화재·구조·구급 통계를 보면, 화재는 305건, 구조는 557명, 구급은 15,262명이고, 일일평균 화재건수는 0.8건, 사상자는 0.04명, 재산피해액은 159만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주택·아파트에서 발생한 것이 28.1%로 전체 화재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합선 과부하로 인한 전기화재가 주원인이다. 여름철보다는 건조하고 난방기나 불의 사용이 잦아 화재의 발생빈도가 높은 겨울. 때문에 소방방재청에서는 11월을 특별히 ‘불조심의 달’로 정해 놓고 화재 사고에 대한 예방을 기하는 한편,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 겨울 한 가운데 온 몸으로 이 계절을 사는 이들이 있다. 바로 소방관들이다.

“정확한 현장 위치 보고 바람”
일제히 갈라져 도로를 내주는 차들 사이를 바람처럼 달리는 차 안은 마치 전시상황을 방불케 한다. 다급하게 오가는 무전 소리와 분주하게 방화복을 챙겨 입는 소방대원들. 그 와중에 무전기를 통해 보고되는 상황을 듣느라 이들의 온 촉각은 곤두 서 있는 상태다.
1초가 1시간인 듯 느껴지는 차 안에서의 시간. 3분쯤 흘렀을까. 현장에 미처 도착하기 전, 갑자기 “상황 종료”라는 짤막한 무선 음성이 전해졌다. 일순간 침묵이 감돌더니, 일렬로 달리던 모든 차들이 일제히 U턴을 시도했다.

상황인 즉, 연기가 심하게 난 걸 본 신고자가 다급히 신고를 했고, 사고발발지역의 소방파출소는 대형 화재 상황을 우려해 근처 소방파출소로 지원 요청을 했던 것.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보니 지원 없이 사고가 마무리 될 수 있는 소규모 화재여서 소방서로 다시 돌아가라는 무전이 온 것이다. 큰 화재가 아니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입술을 바싹바싹 마르게 한 단 몇분 간의 여운은 쉽사리 가시질 않는다.
“종종 있는 일입니다. 사고가 크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모든 차량이 소방서로 돌아오고 이윽고 차에서 내리는 소방대원들이 하나 같이 내뱉는 안도의 한숨. 스피커를 통해 또다시 긴박한 방송이 나오기 전까지 다시 소방서 안은 출동 몇 분 전, 예의 그 편안한 분위기로 다시 돌아간다. 마치 마그마를 품고 있는 활화산처럼 불안함이 감도는 평온이다.

일제히 갈라져 도로를 내주는 차들 사이를 바람처럼 달리는 소방차 안.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는 달리 차안은 진지한 침묵만 감돈다.

소방대원은 크게 구조대원과 화재 진압대원, 구급대원으로 나뉜다. 1982년 소방법 제93조(구급대의 편성·운영 등)에 의거하여 ‘소방본부장 또는 소방서장은 불의의 재해 그 밖의 위급한 상황이 발생한 응급환자를 응급처치하거나 의료기관에 긴급히 이송(구급업무)하기 위하여 구급대를 편성·운영할 수 있다’는 법안이 개정되면서 119 구급업무는 화재 현장에서의 부상자만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차원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때문에 위급한 상황엔 언제나 119 구급·구조 대원이 함께 하게 된 것.

이들은 보통 2교대 근무로 24시간씩 근무하는데 이 중 화재 및 구조 출동으로 인한 현장 활동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출동이 없을 시 대기 시간에는 보통 하절기 약 6시간, 동절기 약 8시간, 그밖에 주간에는 대부분 계획에 의한 장비점검, 교육, 훈련과 개인별 담당사무를 수행하며, 야간에는 주로 출동 관련 기록과 대기 근무를 한다.
“불규칙한 출동으로 인해 일정한 식사나 취침 등을 하기엔 무리가 있죠. 그래서 소화불량, 위궤양, 만성피로, 불면증 등을 겪는 동료가 많습니다. 그리고 화재 출동이나 유독물 안전사고 출동 등으로 인해 만성비염이나 두통, 기관지염, 편도선염을 앓는 동료도 있고요.”

이들이 하나같이 털어놓은 직업병들이다. 구로소방서의 정해진 반장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일을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많이 부담스런 일”이라며 “그런 만큼 보람도 크지만 위험한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화재 사고 현장은 모두가 불빛하나 없는 암전상태입니다. 안전모에 있는 불 하나에 의지하고 가는 거죠. 물질이 타면서 생기는 연기와 유독가스 때문에 산소통이 연결된 방독면을 쓰고 들어갑니다. 손엔 소화용 호스관를 들고 있고요. 산소통에 산소가 얼마 남았는지 체크기가 있긴 하지만, 화재 진압에 신경 쓰다 보면 미처 체크할 겨를이 없어요. 진압 끝나고 나올 때는 호스관을 잡고 들어온 길로 나가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서로의 줄이 꼬일 때도 있고 연기가 가득 찬 어두운 상태라 헤맬 때도 있어요. 화재 진압 대원들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것이 이 때문일 때가 많아요.”

가여운 사람을 보면 도움을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라지만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를 무릅쓰고 선뜻 나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그러기에 순직한 소방관들의 숭고한 죽음 앞에선 누구든 겸허해지는 것이리라.

소방관을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들

구급대원으로 일한 지 8년 된 정해진 반장. 그는 일상생활 중에서도 건물이나 사람이 밀집 된 장소에 들어가면 소화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단다.

소방대원들은 보통 2교대로 24시간씩 근무한는데 이중 화재 및 구조 출동으로 인한 현장활동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작년 추석 날이었습니다. 대기 근무 중이었는데 급한 신고가 들어오더라구요. 병원에 갈 형편이 못 되었는지 아기가 울지 않는다며 산모가 다급하게 와달라고 하더군요. 갔더니 시뻘건 아기가 숨도 안 쉬고 있는 거예요. 그런 상황은 처음이라 보는 순간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아기를 살려야겠는데 머릿속은 하얘져서 응급처치도 기억 안나고,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그러다 이내 호흡을 가다듬었죠. 그리고는 코와 입 속의 이물질을 흡입해서 우선 기도를 열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곧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하더라구요. 살았다 싶었죠.”

이처럼 긴박한 상황을 자주 접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높기 마련인데 이들을 더 스트레스 받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소방관들이 지각하는 스트레스 연구 논문을 보면 이들이 스트레스를 제일 많이 받을 때는 비응급 상황출동으로 인해 응급출동이 늦어질 때를 꼽았다. 시민들이 구타나 폭언을 하는 등 함부로 대할 때가 그 뒤를 잇는다.

“응급처치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가 부족할 때나 만취한 시민을 상대로 설득할 때는 벅차기도 하고, 하다 지치죠. 이미 인사불성이 돼 폭언도 모자라 폭행까지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마치 자신의 아랫사람인 양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땐 솔직히 사람이니까 울컥 화가 치밀기도 하지만 꾹 참을 수밖에요.”

경력 10년의 이진호 구조대원. 그간 사고로 동료를 잃기도 하고 시민들로부터 홀대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소방대원으로 계속 몸담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 이 일을 천직으로 여기기 때문이란다. 출동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귀를 쫑긋 세우고, 반사적으로 몸을 튕기는 듯한 그의 몸짓은 이미 이 생활이 몸에 밴 듯 보였다.

“제가 아직 생명을 구한 적은 없었어요. 지병을 앓고 계시던 분들이 위독하신 경우에 병원으로 모셔다 드린 적이 많았거든요. 때문에 구급차 안에서 임종을 맞은 적이 몇 번 있었어요. 구급신고로 몇 분 전에 처음 뵙는 분이었는데, 그 분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임종을 지켜 본다는 게 느낌이 참 이상해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초기에는 처음 뵙는 분이 돌아가신 것인데도 환자 가족들과 부둥켜 안고 엉엉 운 적도 많아요.”

대학에서 응급구조과를 졸업하고 구로소방서 산하 고일소방파출소에 몸 담은 지 1년이 조금 넘은 나고은(26) 구급대원.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선배들처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천직이라고 규정짓지 못하지만, 사회에 봉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기량을 맘껏 펼치고 싶다고 말한다.

“근무조 일 때는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선잠 자기 일쑤거든요. 그래서 쉬는날 같은 경우 집에서 잠을 잘 때도 조금이라도 부스럭 거리는 소리만 나면 출동인가 싶어 금방 잠에서 깨곤 해요. 그러다가 ‘아, 집이지’ 하고 다시 자고요.”

쉬는 날은 주로 또래들처럼 영화를 보거나 요가 등 취미생활을 즐긴다는 나씨. 그러다가도 응급차가 지나가는 걸 보면 시선이 간다고 하니 이것 역시 직업병이 아닐까.

소방은 안전의식과 예방이 중요

봉사와 대민 서비스 행정측면에서 볼 때, 사랑을 베풀고 생명을 구하는 것처럼 보람 있는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이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금은 정보통신의 발달로 발신자번호가 뜬다는 것을 시민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장난전화가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만우절은 피해갈 수 없다.

또, 부부싸움을 해서 화가 난 아내가 혹은 남편이 안에서 문을 잠가버리면 집에 들어가기 막막한 상대가 집 안에 가스렌지 불을 안 끄고 나와 위급하다며 허위신고를 해 문을 따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성숙된 시민의식의 부재가 안타까울 뿐이다.

더 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예방도 중요하지만, 위험한 사고현장에서도 안전을 믿고 쓸 수 있는 효율적인 장비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안전은 생활의 기본’이라는 인식이 필요한데, 현재까지 우리사회가 압축 성장을 해오면서 안전을 위해 투입되는 비용은 단순소비성 비용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선진국에서는 도로 500m마다 소화전이 있어 물탱크차가 따로 없다. 우리나라는 도로여건상 주택가 좁은 이면도로는 소방차 진입에 어려움이 있어 사고 수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 2001년 안타까운 목숨들을 앗아간 서울 서대문 홍제동 주택가 화재사건 때 거론됐던 것이 바로 이 문제다. 소화전이 보강되고 증설되면 차량이 소형화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몸에 밴 안전의식이다.

2004년 화재발생 현황 중 담배꽁초가 원인으로 추정된 화재는 월 평균 298건으로 나타났다. 방심에서 비롯된 사소한 불씨가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모든 사고는 거의 정형화되어 있습니다. 노인들은 특히 욕실에서 미끄럼 사고를 많이 겪습니다. 넘어지면서 다음 동작을 취하는 게 아무래도 느리기 때문에 사고가 더 큰 것이지요. 미끄럼을 위해 방지하는 매트를 까는 등 미리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주부건망증’도 무시할 수 없어요. 깜빡할 것 같다 싶으면 애초에 화재의 원인을 만들지 않는 게 가장 좋지요.”

곁에 있어 든든한 이들

“저희 입장으로써는 이 일이 저희 직업이니까 당연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현장에 출동했을 때 시민들이 막상 ‘수고하십니다’라고 한마디 해주실 때면 아무래도 힘이 납니다.”
햇빛과 산소와 물이 항상 우리 곁에 있어 그 소중함을 모른다고 했던가. 힘든 길임을 알지만 투철한 사명감과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이 우리 곁에 있어 겨울 내내 아니, 1년 365일이 든든하다. 이들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겨울이 건조하지도 춥지만도 않을 듯 싶다. 부디, 이들의 아름다운 땀방울이 결코 헛되지 않길 바란다.

글/배미용 사진/최경훈 기자

배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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