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 또 안 가지고 왔군. 세월 참 빠르네. 벌써 또 겨울이야. 휴우∼”

썰렁한 찬바람이 불자 무릎을 ‘탁’치는 구모(58)씨. 월동준비로 바람막이용 비닐을 챙겨온다는 걸 깜빡했다. 부인과 함께 오후 4시부터 새벽 2시까지 강남역 부근에서 포장마차를 펼치고 떡볶이와 어묵, 튀김 등을 파는 구씨는 이 일을 시작한 지 8년이 지났다. 97년 ‘IMF 명퇴’를 겪은 후 마땅히 갈 곳이 없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서 그나마 남아있던 재산까지 모조리 날려버렸다. 슬하에 아들 둘, 딸 하나가 있으나, 사정이 모두 비슷비슷해 딱히 기댈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눈 딱 감고 시작하게 된 것이 떡볶이 포장마차였고, 지금까지 왔다. 구씨는 오늘 가자마자 비닐을 꺼내놓을 것이다. 춥다고 장사를 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8년 봄, 처음 이 일을 시작했으니까 벌써 8번 째 맞는 겨울이다.

“노점 외에 딱히 할 게 없어요”

한국에서 노점상은 ‘불법’이다. 국가는 그 이유를 국가의 땅을 허가받지도 않고 세금도 안 낸 채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노점상이라는 단어 앞엔 항상 ‘불법’이라는 말이 붙어 다닌다. 포장마차, 손수레, 좌판, 차량, 보따리 등 그 형태도 다양한 노점상들. 전국의 노점상 수는 유동적인 성격으로 인해 정확한 집계는 알 수 없지만 어려운 경기여건 때문에 그 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종종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노점상의 모습은 굳이 노점상의 발생원인을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생계수단으로 그려진다. 실제로 과거 60∼70년대에는 농촌경제의 파탄에 따른 이농민들 및 도시 안의 빈곤층이 노점상의 주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도 변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진행된 산업구조 재조정과정을 거치며 실업자가 대거 양산되었고, 불안정한 고용구조로 인해 불안정한 노동층이 급증하면서 도시 안에서 노점상들이 재생산되고 있다. 특히, 구씨처럼 IMF 사태 이후 구조조정 및 사업실패에 따른 실업자들이 대거 노점상으로 유입되고 있다.

“화장실이 너무 급하면 손님한테 잠깐 봐달라고 할 때도 있고, 손님 없을 때 얼른 갔다 오고 그래요. 근처 식당이나 건물에 들어가면 되니까요. 근데 매연 마셔가며 일하니까 새벽에 집에 들어가면 목이 칼칼하더라고요. 비 오면 장사도 못하고요.”

서울시 구로구 고척동 아파트 상가 주변에서 ‘1000원 용품’을 파는 윤숙(가명)씨. 트럭에 물건을 싣고 일주일 단위로 아파트 단지를 옮겨 다니며 장사를 한다. 점심은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차 안에서 대충 때운다는 그. 일에 대해서는 잘 얘기하다가 ‘그저 먹고 살만큼’번다고만 하고 아이는 몇인지, 이 일을 왜 하게 되었는지, 남편은 무슨 일을 하는지 등 개인적인 얘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양손을 두 주머니에 쿡 찔러 넣은 채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윤숙씨의 뒷모습이 추워보인다.

전국노점상총연합회의 자체 설문조사를 통해 보고된 결과를 보면 노점상을 하고 싶어서 하는 노점상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항목 중 노점상을 계속 하려는 이유로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가 42.8%,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자본금, 기술이 부족해서’가 35.6%로 나타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에겐 이것이 생계를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는 얘기다.

“건설현장 일용직 일자리도 없어요. 그렇다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 위한 자본금이 있나, 기업들도 사람을 뽑기는커녕 오히려 자르고, 동네가게들도 줄줄이 도산하는 처지라고요. 노점 말고 딱히 할 게 없었어요.”

강남, 서초 일대에서 10년 넘게 포장마차를 운영해 온 전모(52)씨. 처음에는 한 2년만 눈 딱 감고 고생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빠 아무리 아껴도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단다. 부인도 파출부 등을 전전하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아이들 학비에 생활비까지 쓰려면 빠듯하다고.

 

사회보장제도에서 배제되어 있음은 물론 수입과 근무환경도 열악한 수준에 놓여있는 노점상들. 그렇지만 이들에겐 이 거리가 일터고 마지막 생계수단이다.

노점상들은 월평균 100만원 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을 저임금 계층으로 분류했을 때 저임금 및 저소득 계층으로 분류된다. 2001년 한국도시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다수의 노점상들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차상위계층(최저생계비의 120%)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하루 순수입이 3만 원 이하인 경우가 48.1%(전노련, 2005)로 한달 30일을 꼬박 장사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월 순수입이 최대 90만 원 이하인 노점상이 절반 가까이나 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부부나 가족이 대부분 새벽까지 함께 장사를 하며 우천 등 기후적인 조건으로 장사를 못하는 날을 고려할 때 모든 노점상들이 그렇듯이 사회보장제도에서 배제되어 있음은 물론 수입이 열악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폭력 단속에 상처 입는 사람들

튀김은 3개에 천 원. 떡볶이는 일인 분에 이천 원이라고 종이에 써 붙인 구씨 부부의 가게에 손님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역시 강남이라 비싸네. 딴 데는 4개에 천 원하던데….”
“여기 근처 다 3개 천 원이야. 대신 우리집 오징어튀김이 다른 데 보다 길잖아.”

강남일대의 포장마차들은 상권이 서로 묶여있다. 때문에 아무리 자기 장사라고 해도 어묵값 하나에도 상인들끼리 약속된 값을 받아야 하는 것. 만약 튀김을 4개에 천 원을  받거나 더 늦은 시간까지 장사를 하게 되면 앞으로 이 곳에서 더는 장사하기 곤란해진다. 쉬는 날은 보통 한 달에 두 번 쉬는데 이것도 돌아가면서 쉰다. 누구라도 약속을 깨면 틀이 어그러지게 되고, 그러면 누구든 손해를 보기 때문에 안 지킬 수 없다.

이렇게 상권이 묶여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단속 때문이다. 급작스런 폭력 단속으로 인한 정신적, 경제적 피해는 당한 사람이 아니면 제대로 알 수 없단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중앙정부차원에서 단일하게 집행되어 온 노점상단속.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단속에 대한 권한과 역할이 각 지방자치단체로 위임되면서 국가차원의 책임을 각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겨왔다. 또한 공무원사회에 도입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 중 성과급제도가 현실화됨에 따라 노점상단속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서울시의 경우 산하 각 구청을 상대로 불법노점정비 우수기관을 선정하여 포상금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경쟁적으로 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용역발주를 통한 단속의 문제다. 막대한 용역발주비용문제는 일단 차치하더라도 폭력성의 문제는 인권유린을 넘어 자칫 인명살상으로까지 나아갈 우려가 크다. 용역고용과 관련한 법규에 의하면 단속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되고, 단속대상인 물건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이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실제로 광진구 건대입구역에서는 지난 10월 23일 새벽 5시 경 부구청장 지휘 아래 군복 입은 고엽제 출신 250여 명이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지하철 계단을 철거하는 일을 일어났다. 이 곳에서 장사를 하던 노점상들은 마차를 지켜내기 위해 밤샘하며 저항하다가 철거반원들의 폭력으로 부상당해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곳에서 8년 간 노점상을 운영해 온 한 노점상인은 “너무나 막막하다, 요즘은 살길이 막막하고 답답해서 뜬 눈으로 밤을 센다. 이 노점 하나로 나를 포함한 식구 8명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아예 생계수단을 잃어버릴 상황이니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경기도 화성에서 40대 청각장애인이 불법노점행위로 단속된 뒤 과태료 70만원 독촉장을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화성 궁평항 주변에서 컨테이너박스로 매점을 만들어 핫도그 등을 판매한 김씨는(청각장애 2급·43) 지난 해 10월, 불법노점행위로 시청에 단속돼 검찰에 고발되었다. 그 뒤 생활고에 시달려오며 벌금 70만원을 납부하지 못해 법원으로부터 독촉장 등을 받고 괴로워하다 아내(청각장애 3급·38)와 두 딸(13살·10살)을 남기고 세상을 등진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이처럼 생존권을 요구하다 분신한 노점상들, 대책 없는 청계천 복원사업에 맞서 온몸으로 투쟁한 노점상을 보고서도 노점상은 여전히 ‘불법’이라며 인정하지 않는다. 세금도 안 내면서 도로를 무단 점유하여 보행에 지장을 주고, 도시미관 및 환경위생을 해치는 주범이라고 매도하기 일쑤다.

 

직장이나 가게에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어 거리에 나온 노점상들. 이들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추위와 더위를 무릎쓰고 매연을 맞으면서 치열하게 하루하루 살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는 지난 6월, 각 언론·출판계에 ‘포장마차에 대한 낭만적 표현을 삼가달라’는 공문을 보내 불법 노점상을 뿌리뽑을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불법 노점상과의 전쟁선포와 함께 언론·출판계를 우군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임대료 및 세금납부, 위생검사 등 여러 측면에서 정상영업을 하는 허가업소와 법을 지키는 시민들이 피해를 보는 등 형평성을 훼손한다’고 밝히면서, 공문 말미에서는 ‘노점 행위를 명퇴 등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재기의 수단으로 미화한 언론보도가 불법을 조장한다’고 덧붙여 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노점상은 불법이라는 부동의 자세를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도 합법 노점상이 되고 싶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고학력자나 청년들도 노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드문 사례다. 전노련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50대 51.3%, 40대 27.0%, 30대 14.4%, 20대 3.0%로 노점상의 연령대는 50대가 절반 이상이다. 낮은 기술, 저학력, 저소득층 실업자에게 일종의 자구적 실업대책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 ‘세금도 안내는 노점상’들이 국가에 납부하는 각종 과태료, 벌금액수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합법 노점상이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불법 노점상들은 과태료 등 벌과금을 일종의 세금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김떡순’시리즈처럼 재밌는 이름의 셋트를 묶어 김밥(혹은 김치전), 떡볶이와 순대를 저렴하게 판매해 근처 직장인들과 주머니가 가벼운 학원생들의 허기를 달래는 종로의 ‘떡볶이 노점’은 이미 유명세다. 그러나 시에서는 이들이 서울도심을 답답하게 만들고 시민들의 버스 승하차에 불편을 가중시킨다며 해당 구청인 종로구를 통해 강제 철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정류장 주변에 위치한 노점 정비를 마치면 보행자의 통행에 불편을 초래하는 도보 노점까지 단계적으로 정비하고 버스쉘터(비가림막 등이 설치된 정류장)를 설치해 단속 이후에도 노점상이 다시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계획이란다. 그러나 그들은 알까. 정작 그 곳에 서서 떡볶이를 사먹고 따뜻한 어묵국에 출출함을 달래는 이들이 그 보행자들이라는 것을. 누구를 위한 단속이며 도로 정비인지 모를 일이다.

서울에만도 매달 5000명의 신규 노점상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전국노점상총연합 사무실에는 절박한 목소리로 ‘노점상을 하겠다’는 전화가 매일 3∼4통이나 온단다. 정부가 노점상을 인정하든 안 하든 우리 사회에서 빈곤해결, 안정적인 고용구조 형성, 복지의 확대 등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노점상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서울의 어느 68평형 아파트는 지난 1년 사이 6억 원이 올랐단다.

가만히 앉아서 하루 164만여 원씩 번 사람들은 70만 원의 벌금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가장의 마음을 알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 절망이 점점 커지는 세상이다. 그 속에서도 “좋을 때가 어딨고, 나쁠 때가 어딨나? 불 앞에 있으니까 겨울에는 불쬐서 좋고, 여름에는 춥지 않아서 좋다고 생각하면 되지…”라고 긍정적으로 여기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겨울이 유난히 추운 가난한 사람들이다.

글/배미용 사진/최경훈 기자
자료협조/전국노점상총연합회(문의: 02-2232-0685)

배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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