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60세 이상 노인 자살자 수는 1990년 433명에서 2005년 1만6493명으로 15년간 무려 38배나 급증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말 열린 한 포럼에서도 젊은이 200명중 1명이 자살하는 것에 반해 노인은 4명 중 1명이 자살을 실행하고 있어 치명적인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고령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노인자살에 대해 무방비한 상태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에 본지에서는 노인자살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이고 자살예방을 위한 해결책은 존재하는지에 대해 살펴봤다.

노인은 왜 자살을 단행하는가.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김모씨는 올해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래전부터 중풍을 알아왔지만 모시겠다는 자식이 없어 부부만 사는 노인가정이었다. 이웃의 증언에 따르면 평소 말수가 적고 워낙 바깥출입이 없던 터라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성격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병환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자 바깥출입을 완전히 끊었다고 했다. 자식들은 어머니께 가끔 안부전화를 하면 '이놈의 세상 그만 살고싶다'라는 푸념을 늘어놨었지만 노인들이 의레하는 말인줄 알고 신경쓰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는 할아버지가 떠난지 꼭 두해 만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이 방법을 택했고 그때 김씨 나이 78세 였다.

얼마전 발표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중 최고 수준으로 하루평균 약 33명, 즉 44분에 1명꼴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60대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2·30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아 '위기의 한국노인들'이라는 수식어까지 생겨나고 있다.

배우자의 사망과 같은 충격적 상황은 자살을 유도하는 심각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인하대학교 배재남 교수는 노인자살의 경우 일반적인 성인 자살과 비교할 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노인자살의 치명성이라고 꼬집었다.

젊은 집단에서 자살 시도 대 자살수행비율이 200대 1인 반면 노인자살은 4대 1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유인 즉 노인의 경우 다른 연령층에 비해 배우자나 친척들의 사별을 여러차례 경험하고 만성적인 신체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으며 퇴직 및 소득원의 감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등의 삼중고 상황에 빠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인의 자살에 대한 접근과 시각을 달리한 분석이 필요하다고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자살의 원인을 신체변화에 따른 생물학적 요인과 사회심리학적인 요인으로 나누고 있다. 먼저 생물학적 요인으로 뇌 척수액내의 세로토닌 대사산물의 농도가 자살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적 있다. 연구기관은 노인우울증 증세를 앓고 있는 노인의 경우 자살을 시도한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세로토닌 대사산물의 농도가 감소됐다고 보고했다. 즉 이 세로토닌의 활성도 감소가 우울증을 가진 사람에게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사회심리학적 요인이 손꼽히고 있다. 배 교수는 자살한 노인의 75% 이상이 당시 정신질환 상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자살당시 우울증 증상을 보이고 있던 노인도 50%가 넘었다고 밝혔다.

또한 배우자의 사망과 같은 충격적 상황은 자살을 유도하는 심각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남자 노인의 경우 사별 후 6개월 이내에서 높은 자살 위험도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영민 서울시립북부노인병원 정신과 원장은 "노인들의 경우 젊은 사람에 비해 표현력이 적기 때문에 사소한 변화에도 가족이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조기 치료가 가능하며, 치료 시기를 늦출 경우 자살이나 뇌졸중, 심근경색, 치매 등으로 발전할 수 있는 만큼 가족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노년 우울증은 노화현상아니라 병…적극적 치료 개입돼야

노인 우울증은 65세 이상 인구의 10명중 1명이 걸릴 수 있어 노년기의 정신건강과 관련된 가장 흔한 장애다. 하지만 진단이 쉽지 않고 본인조차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노인우울증은 젊은 사람의 우울증과 비교해 기분이 우울하거나 불안하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적고, 두통, 복통이나 위장 장애 등의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흔한데, 특별한 이유 없이 입맛이 떨어져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이 때문에 체중이 감소한다면 증상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노인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노년 우울증에 대한 대책마련과 홀로 남겨진 노인, 혹은 혼자 살고 있는 독거노인에 대한 안전망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령화 사회 진입을 지나 고령사회를 앞두고 있는 실정에도 노인자살예방에 대한 이렇다할 법하나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 노인복지의 현실이다.

타인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요하는 노인들에게 정부가 노인을 돌볼 수 있게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 '노인장기요양법안'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얼마전 국회에 주저앉았다. 정부 역시 이렇게 방만한 태도를 보이는데 노인우울증을 지켜보는 가족이나 노인 본인조차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는데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노인 우울증을 노화의 과정으로 인식하는 가족들은 노인이 적절한 치료와 예방을 받도록 하는데 방해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살전 우울증을 잘 발견하지 못하거나 발견하더라도 병적이라는 인식보다는 나인가 들어서 생기는 정상적인 증상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울증이나 자살에 관련된 증상에 대해 홍보교육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 예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노인자살예방센터는 우정의 전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24시간 전화 서비스를 통해 노인들에게 정서적인 지지와 의료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위험요소가 많다고 판단되면 가정방문을 통해 여러 가지 정신건강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런 서비스는 노인들에게 독립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굳이 입원을 하지 않아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선택적 예방을 가능케 한다. 이 프로그램에 1년 동안 참가한 70세 이상 노인 116명을 조사한 결과, 모두 절망감과 우울 증세가 크게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미연에 방지하거나 초기증상을 도울 수 있는 예방적 차원에서 벗어나 집중적인 치료를 요하는 노인의 경우 정신치료와 약물치료를 적극적으로 권하는 것이 옳다. 대다수의 노인자살자들이 자살 전에 일차 의료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보고한 연구결과는 우울증 치료에 대한 필요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집중적인 예방방법을 시행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경우 'Tele help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데 'Tele help서비스'는 위기에 처한 노인이 도움을 요청할 즉시 할 수 있도록 한 경보 시스템이다. 훈련된 전문가가 노인에게 1주일에 2번 정도 전화로 접촉해 정서적 지지를 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탈리아는 서비스 도입 10년만에 통계적으로 노인자살자 수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한편 노인 우울증 다음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친인척 혹은 배우자의 사망에 따른 노인 스트레스 해소다.

지난해 실시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병원에 입원한 노인환자 701명을 대상으로 13개 문항으로 이루어진 우울증 사전 감별 평가항목 결과, 노인환자 32.8%에 해당하는 230명이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우울증 현황은 남성(24.3%)보다 여성(75.7%)이 높았고, 연령대는 70대(39.6%), 60대(31.4%)순으로 나타났으며, 최종학력은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우울 유병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별거, 이혼, 사별 등으로 배우자가 없는 경우(91.7%) 그렇지 않은 경우(8.3%)보다 우울증이 크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노인이 자살한 경우 배우자와 형제, 친구, 자녀, 손자, 가까운 친척 등 평균 6명에게 상처와 슬픔을 주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 가운데 같은 연령대의 배우자에서 자살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사회적 지지망을 제공하고 자조그룹이나 레크레이션 참여기회를 통해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충고한다.

인프라 없고 인식낮아 갈 곳 없는 한국 노인들

종로에 위치한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고 있다.

우리나라도 독거노인의 안전을 돕기 위한 119 긴급구호 무선페이징 사업이 시범적으로 실시 되고 있는 상황이다. 위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119 상황실로 자동신고케 하는 무선페이징은 비상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신변에 대한 확보를 할 수 있어 독거노인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외국사례와 같이 사후 훈련된 전문가가 방문해 적절한 예방교육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재난과 재해에 빠진 노인을 구한다는 측면에서 노인자살예방을 위한 시스템에는 한참 모자란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인자살을 전담하는 기구는 수원시자살예방센터와 생명의 전화 자살예방센터, 사랑의전화 24시 카운슬링센터, 한국노인의전화 등 극히 일부며 최근 지방자치단체별로 혹은 복지관별로 자살예방센터를 설치해 운영하는 것이 전부다. 이마저도 노인을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곳은 별로 없고 대부분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체계적이거나 통합적이지 못한 상황이다. 따라서 조언적인 차원에서 머무는 곳이 많아 예방에 한계가 있다.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자살예방에 대한 홍보문제도 산발적이고 단기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이슈를 끌어낼 만큼 일반인들에게 다가가지도 못한다. 때문에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프로그램을 개발해 노인들의 접근성을 올리고 지역을 중심으로 노인자살예방센터를 설립해 노인전용 전화상담서비스와 교육프로그램을 우리 실정에 맞게 개발하고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적으로 보건소와 보건지소 대한노인회, 노인복지과, 정신보건센터, 치매주단기 보호센터등이 속속들이 자리잡고 있고 정부의 노인복지정책과 함께 계속 늘어날 계획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노인자살예방 서비스를 시행할 수 있는 연계망 구축에 중점을 준다면 어디선가 노인에게 무슨일이 생겨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살예방센터 확보가 보다 쉬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이지전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자살 혹은 노인 자살을 위해 현재 생애주기별로 대책을 세우고 있으나 노인자살에 대한 예방 정책은 빈칸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어떤 상황이든 노인이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환경이 적어도 한곳 정도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인의 자살을 막기위해서는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생활이 젊었을때와 마찬가지로 유지되야 하며 정서적 유대관계를 통해 사회생활이 중단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다.

노인자살예방센터측도 삶이 무기력해지고 자살에 대한 충동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면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기 전 전문가와 반드시 먼저 상의하라고 조언했다. 또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이거나 자살에 대한 증후군을 표시하는 주변인들에게 항상 관심을 갖고 상담센터에 먼저 제보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편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임춘식 교수는 "노인은 병고와 경제력 상실로 인해 가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이와 함께 사회적 역할을 상실한 데 따른 무력감까지 겹치면서 노인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희정 기자 hans@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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