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60대 후반의 남자로 상당기간 개인 사업을 해왔으나 어떤 계기로 사업을 그만 두었습니다. 가족으로는 세 살 아래인 부인과 아들 둘이 있습니다. 아들들은 모두 결혼해서 분가했고, 지금은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자식들의 신세를 지지 않아도 걱정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직업을 놓고 집에 있자니 무료해서 다른 활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취미활동이라도 해보고자 복지관 프로그램도 이용해보고, 지인이 권하는 영어나 서예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성격이 맞지 않아 그 속에서 이질적으로 보내는 시간이 더 불편했습니다. 더구나 남의 밑에서 활동하거나 지고는 못 견디는 성질이라 호흡이 도통 맞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떤 취미활동을 해야 할지 찾지도 못한 채 시간을 낭비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다고 등산을 매일의 일과처럼 할 수 없고 새삼스럽게 골프를 한다는 것도 비경제적인 것 같고, 수영이나 조기축구 등도 그러합니다. 주위에서 신앙생활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그곳 역시 정착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렇게 상당기간을 애써오던 중에 국악을 가르치는 곳을 가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장구와 고전 춤을 배웠는데, 이전하고 달리 아주 흥미로웠고 그동안 찾던 무엇인가를 찾은 듯했습니다.

먼저 배우고 있던 선배들도 따뜻하게 대해주며, 혹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는 고쳐주고 가르치고자 협조해주는 등 인정 있고, 호흡도 좋았습니다. 한가지 흠이라면 주위의 대부분이 여자분이라는 점이었지만 별일 없이 매일 몇 시간씩 나가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또 행사가 있을 때는 본인이 사진 찍는것을 좋아해서 개개인의 모습을 필름에 담아 기록에 남기기도 하며 보람을 찾은 듯 즐거웠습니다.

며칠 다른 일이 생겨 나가지 못했는데 함께 배우고 있는 여자 분이 안부가 궁금했던지 전화를 해왔습니다. 마침 집사람이 그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어떤 불길한 인상이나 예감을 느꼈는가 봅니다. 그 후로 국악교습소에 못 나가게 하고 있습니다. 여자들과 다른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장구나 고전춤을 배우는 것뿐인데도 한사코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니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는 “만일 그곳에 갈 수밖에 없다면 집을 나가 따로 살면서 다니라”고 합니다. 같이 한집에 살면서 이해나 용서를 바라지 말라고 하고, 만일 계속 말을 듣지 않는다면 부부 사이마저도 정리하자고 강경하게 나옵니다. 본인으로서는 모처럼 숨 쉴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반감이 생기면서도 반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만 가정을 지키면서 자신의 취미도 유지할 수 있을지 좋은 지혜 부탁드립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고령화로 진행되면서 노인들의 휴직기간도 65세부터 70대 정도로 되어야 삶의 보람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일에서 손을 놓고 무료하게 보내야 할 세월들을 무엇으로 이어야 할 것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는 오늘날 노인들에게 참으로 절실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내담자께서 활동적이어서 복지관은 물론 영어나 서예 등 취미활동을 갖고자 한 것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배움 자체보다는 그 속에 속해있는 구성원과의 융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국악교습소에서 장구나 고전춤을 배우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노후의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취미 활동을 통해 그것을 자기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으니 보람과 행복을 찾은 듯했을 겁니다. 또 동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기념을 만들어 주며 서로간의 돈독한 친분을 쌓는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 정황을 볼 때 함께 활동하는 여자분이 전화를 걸게 된 것은 짐짓 이해가 됩니다. 며칠 간 얼굴을 보이지 않으니 왜 못 나오는 건지 안부전화와 함께 혹시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순수성을 내포한 문안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담자가 부인에게 부가된 여성 편력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여자의 특기인 예리한 추리와 상상에 의해 남편이 다른 여성들과 어울리는 꼴은 못 참겠다는 심정에 모임에도 나가지 못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만약 그럼에도 나간다면 별거를 하던지 나아가서는 부부의 연까지도 끊겠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양상에 이르렀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자신의 보람과 노후의 취미활동을 위해 계속 출입한다 하니 사태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먼저, 부인과 다시 한번 이 문제를 가지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래도 부인이 끝까지 교습소에 나가지 말라고 한다면 내담자 측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부인에게 교습소에 감정개입 없이 함께 가보자고 권유합니다. 인사차 남편이 다니는 곳을 왔다는 정도의 기분으로 최소 세 번은 필수로 가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만약 현지답사와 분위기 파악 등 여러 양상들을 참작했을 때 부인이 그렇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면 남편은, 부인에게 언제든 찾아와 볼 수 있다고 허용하도록 합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어도 부인이 그곳에 나가는 것을 거부한다면 의견을 존중해 주고, “당신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내담자에게 자신의 보석이 아무리 귀중할지라도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그건 보석이 아니라 저주의 구술과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내 가정 내 자손들과 부인을 지키는데 든든한 할어버지, 아버지, 그리고 가정을 지키는 역할에 충실해 주길 바랍니다.

 정리/표수진 기자

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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