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입양이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답변을 하기는 힘들다.”
입양의 역사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이랬다. 우리 사회에서 입양이 시작된 것은 삼국시대부터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현대적 의미의 입양이 시작된 지는 반세기. 그런데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습성 탓이었을까. 입양의 역사가 시작되자마자 ‘고아수출국’이란 오명을 덮어 썼다. 지금껏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만 20만명. 분단 이후 88올림픽과 2002월드컵, 얼마 전 개최됐던 APEC, OECD 가입 등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지만, 여전히 그 오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침체로 국내입양 제자리걸음

몇 해 전 우연히 만난 지인이(4)엄마. 그는 6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고심 끝에 아이를 입양했으나 ‘아차’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와 자신,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참지 못할 만큼 싫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가임신’을 통해 비밀 입양을 할 걸 그랬어요. 그럼 아무도 몰랐을 텐데….”

‘아이를 못 낳는 여자’, ‘데려온 아이니까 저러겠지’, ‘피는 못 속여’ 등등…. 빗발치는 냉대가 싫어 이런 자신의 사정을 모르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지인이 엄마의 경우야말로 우리 사회의 입양에 대한 편견을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혈연을 매우 중시하는 우리 사회는 혈연관계가 없는 아동을 입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게다가 정당한 혼인 관계 외 출산 즉, 미혼모 등의 자녀들이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과, 입양 사실을 밝혔을 경우 사회에서 낮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지난 2004년 국내에서 이뤄진 입양은 1,641건으로 1972년 약 200여 명이던 것에 비하면 30년 만에 무려 20배가 증가했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는 이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국내외 입양아 3,899명 중 국내 입양아가 1,641명으로 42.1%, 해외 입양아가 57.9%인 2,258명으로 나타났다. 입양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제친 적이 없다고 하니, 우리 사회의 ‘입양’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거기에 장기화된 경기침체도 한몫하고 나섰다는 의견도 있었다.
홀트 아동복지회 이현주 씨는 “현재 국내 입양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태이다. 저출산 가정이 늘어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면서 “정확한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2005년 한 해만 약 10%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에서는 다양한 정책을 내세우며 국내 입양 활성화를 위한 제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괄목할 만한 내용이 올 5월 11일부터 실시될 ‘입양의 날’ 제정이다. 그 외에도 입양아동 전원을 의료급여 1종으로 선정해 급여비용을 지원하고, 장애아동을 위한 연 240만원, 양육비 52만원 지급 등이 있다.

장기적 안목, 공개입양 활성화돼야

아들 수민이를 입양한 배우 윤석화 씨.

  아주 느리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입양에 대한 태도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고 있다.
동방사회복지회 이성희 씨는 “지난 2004년 방영된 ‘사랑의 위탁모’, ‘왕꽃 선녀님’ 등을 통해 입양가족들의 이야기가 매스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부터 국내입양 활성화를 위한 지속적인 움직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윤활유가 되어 자연스레 입양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이현주 씨는 “엠팩(MPAK·한국입양홍보회)의 태동이 국내 입양 활성화의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국내 입양부모의 자조모임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신선한 충격이었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입양 사실을 공개하고, 자조적인 입양부모 모임을 만들어 입양을 망설이는 다른 가정을 돕는 등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다른 여러 기관의 다양한 캠페인과 홍보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공개입양은 사회적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한국입양홍보회 회원들뿐 아니라 동방사회복지회 한마음 부모회 등 공개입양 가정의 예가 바로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 한 달 된 딸 예은 양을 입양한 차인표·신애라 부부, 수민이를 입양한 연극인 윤석화 씨 등 스타들의 국내 입양 사례도 입양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홀트아동복지회 이현주 씨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는 분명, 공개 입양은 활성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공개입양을 할 것인지 비밀 입양을 할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입양기관으로서 공개입양을 권장할 수는 있지만, 종용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공개와 비밀입양 중 어느 것이 입양아와 입양부모에게 좋고 나쁘다고 정의를 내릴 수는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요한 것은 공개냐 비밀이냐를 떠나 사랑받고 자라야할 아이들에게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희 씨는 “무엇보다 아이는 친부모가 양육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을 안고 있는 아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아이로 하여금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영원한 가정을 만들어 주어 아이가 사랑받고 자라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체계 마련해야

국내입양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대책 마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림대학교 허남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는데 장애가 되는 요소로서 현재의 아동복지정책과 입양제도를 들 수 있다”라며 부족한 지원체계를 꼬집어 말했다.
입양 수속비 부담뿐 아니라 입양부모들을 위한 지원제도의 부족, 입양아의 교육보장과 의료보호 등의 조치도 확대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사후관리를 통한 보다 전문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도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의 인식개선이 밑바탕에 있지 않는 한 입양아가, 입양가족이 우리 사회 속에서 당당히 걸어가기에는 힘이 부칠 것이다. 올 한 해 동안 그들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는 마음으로 함께 동행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글/표수진 기자 사진/동방사회복지회 제공

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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