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 매서운 한파가 서울 도심의 한복판을 휘감고 지나갔다. 그런데 이 추위 속에도 까리따스알코올상담센터는 다음 릴레이 주자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바로 박정숙(43·그라따 수녀)센터장이 그 주인공. 늦깎이 대학생으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가 어느덧 알코올분야 최고봉에 오르기까지 그의 인생역경이 짐짓 궁금하다. 스스로를 ‘막가파’라 칭하는 박정숙 센터장이 굳이 여덟 번째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어서 일까. 바통을 전하러 가는 발걸음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달뜨기 시작한다.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수녀’

남달리 외향적이고, 어떤 일이든 적극적인 그는 수녀들만 있는 보육시설에서 아빠 같은 든든함으로 아이들을 돌보곤 했다. 그러면서 소외받고 있는 아이들, 든든한 울타리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아빠 같은 존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사회복지사가 되고자 한 첫 계기였다. 아마 10년 전이었을까, 아님 그보다 더 됐을까. 그렇게 사회복지에 발을 들여놓고, 꽤나 강단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아이들과 함께 평생을 보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정 그를 원한 데는 다른 곳에 있었다.

“졸업 후 바로 현장에 나오게 됐는데, 지인이 알코올 분야야말로 제게 적임이라며 추천을 했어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발을 들여놓았죠. 관심도 있었고요. 벌써 6년째 접어들고 있네요.”

박 센터장은 이처럼 생각이 들 때마다 바로 실행에 옮기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뒤돌아 볼 필요도 없고, 후회나 미련 또한 없다. 그래서인지 그가 이끌고 있는 까리따스알코올상담센터는 지난 2000년 국가 최초의 시범사업으로 출발해 지금은 서울시 알코올상담센터 지정기관으로 거듭났다.

그렇다고 탄탄대로만 걸었을까. 사업 시작 당시만 해도 알코올 중독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홀대를 받거나, 이해받지 못해 힘들 때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고 했다.
“수도자이기 때문에 늦은 밤에 외출을 할 수 없어요. 새벽 1, 2시에 전화를 해서 구원을 요청하는데 가 볼 수 없을 때나, 수도자로서 지켜야 할 일과 사회복지사로서 지켜야 할 일을 놓고 고민 할 때, 그때가 가장 힘들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수도자의 길이 먼저냐, 사회복지사의 길이 먼저냐’를 놓고 질문을 던진다면 가슴 아릴 만큼 힘들다고. 두 길 모두 그의 삶 속에 녹아 뼛속까지 올올히 스민 탓이다.
혹자는 이런 그에게 알코올 중독도 겪어보지 못한 이가 어떻게 알코올 중독 치료를 하느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질시 아닌 질시를 받을 때마다 남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알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박 센터장이다.

“똑같은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가끔 제가 모르는 분야가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 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식구들의 말을 귀담아 듣곤 해요. 제가 모르는 분야는 인정을 하고, 끊임없이 배워야죠.”

그의 이런 노력으로 센터의 이용자들은 한없이 그를 신뢰하고, 언제나 먼저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그래서 하루 일과가 빡빡한 상담 스케줄로 눈코 뜰 새 없을 만큼 바쁘다. 뿐만 아니라 이틀이 멀다 할 정도로 외부 강의를 진행하는 등 안팎으로 그의 일이 끊이질 않는다. 이 정도면 피곤할 만도 하건만 그런 기색은 찾을 수 없을 만큼 활기가 넘친다. 그런 탓에 지난해에는 ‘서울시민상’도 받았고, ‘일중독자’라는 별명 아닌 별명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막가파 ‘독수리 어미’의 소박한 꿈

“우리나라의 문화 자체가 술을 허용하기 때문에 위험해요. 술은 절대 음식이 아닙니다. 그건 단지 질병을 유발하는 화학약품일 뿐이에요. 반드시 알고 먹어야 해요.”

그는 알코올 중독의 밑바닥에는 항상 학대가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충분히 사랑을 주고받으면 이런 병이 발생할 일도 없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란다. 또한 알코올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공익광고 등을 통한 캠페인이 절실하다고 했다. 성인 5명 중 1명이 알코올 문제를 겪고 있는 현실에 가장 필요한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그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막가파’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구나 싶다. 혹독하고 강도 높은 훈련으로 자신의 자식들을 강하게 키워내는 ‘독수리 어미’처럼, 그는 오늘도 술에 의지하는 이들을 위해 거침없이 전진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 세상 속으로 동화될 수 있도록 말이다.

“먼 훗날엔 지금처럼 서류를 꾸미지 않아도 되는, 그저 고향처럼 왔다 갈 수 있는 편안한 곳을 만들고 싶어요. 문제를 가진 사람들의 치료처가 아닌, 인정으로 메말라 있는 땅에 촉촉한 단비를 뿌려주는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그런 집이요.”

호탕한 박정숙 센터장에게 너무나 소박한 꿈처럼 들리지만, 왠지 그 꿈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어리는 것은 사회복지사로서의 열정이 오롯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글·사진/표수진 기자

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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