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함도 커피 한 잔 속에 녹아나는 이들. 소박한 이들의 꿈과 소망이 올해는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본다.

 
 매서운 칼바람이 꺾일 줄 모르는 그야말로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다. 영하로 뚝 떨어진 기온탓인지 새벽에 눈뜨는 것만큼 힘에 부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강추위에도 아침 해의 반가운 인사 한번이면 일어나 새벽 빛을 밝히는 이들이 있다. 남들보다 조금 더 특유의 바지런함을 떠는 이들. 그들은 단순히 몇 시간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몇 배로 앞서 나가는 가치있는 삶을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떠오르는 해를 가장 반기는 이들의 의미있는 삶으로 그렇게, 새벽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첫차가 주는 ‘시작’, 새벽이 주는 ‘희망’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버스운전사 박영민(44)씨는
 무거운 눈꺼풀을 벗기고 양치질로 하루를 맞는다. 보통 5시가 넘어야만 첫차가 운행되지만 배차시간을 받고 스케줄을 시작하려면 바지런함을 떨어야 한다. 요즘 같은 강추위에 어디 새벽바람을 맞는 일이 쉬운 일이랴!

박씨에겐 새벽이 주는 ‘희망’과 첫차가 주는 ‘시작’의 의미보단 잠도 제대로 못잔 채 무거운 눈꺼풀을 벗기고 새벽을 나선 ‘고단함’이 더 크다.

“무엇보다 잠을 자지 못하니까요. 많이 자야 서너 시간이고 남들보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려니 쉬운 일은 아니죠. 힘들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힘든 것이 우리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출근하자마자 박씨가 하는 일은 배차 관리자가 미리 짜놓은 시간표를 보며 하루 일정을 점검하는 일이다. 새벽반 운전기사들은 오늘도 여지없이 난로 하나 있는 사무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각자의 일정표를 받았다.

새벽 4시,남보다 먼저 바지람을 떨어야 하는 버스운전기사들의 움직임이 있기에 첫차는 새해의 희망을 담아 씽씽 달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오늘 일정 제대로 걸렸네. 첫차로 출발해서 막차까지 걸려버렸어! 어쩐지 오늘따라 유난히 눈이 안떠지더라고.”
최모(57)씨는 자신의 배차시간표를 보며 연신 얼굴을 찌푸리지만 그것도 잠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첫차로 몸을 싣는다.
드디어 새벽 5시 30분. 첫차를 기다리는 새벽지기들을 위해 박씨는 오늘도 여지없이 첫차의 시동을 건다.

“보람이야 시민들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시는 거지 별거 있겠어요?”
운전석에 올라 탄 최씨의 얼굴에 이제야 여유가 묻어난다. 경력 28년의 베테랑 버스 운전기사라지만 운전대 앞에선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는지 점검이 한창이다. 

“첫차가 시작을 잘해야 뒤따라오는 차도 시작을 잘하는 것이지. 이렇게 첫차를 운전하다보면 느끼는 것이 많아요. 첫차를 이용하는 승객들 대부분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내가 그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준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 모릅니다. 새벽에 하루를 시작하는 만큼 인생이 길어진다는 게 아닌가요. 남들보다 앞서간다는 거잖아요.”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27년째 이곳 송도버스에 몸담고 있는 배차관리자 박종범(57)씨도 새벽을 여는 사람들 중 하나다. 처음 운전기사로 이 일을 시작했다는 그는 몇 년 전부터는 배차시간의 스케줄을 짜고 총 관리하는 책임자로 있다.
“대중교통 책임자로서 눈, 비가 올 때, 차가 고장 나 스케줄대로 승객을 태우지 못할 때가 가장 미안한 일이죠. 또 세 시간 정도의 운전을 마치고 돌아온 버스운전사를 반기는 그 시간이 가장 보람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버스운전의 경력이 있는 그인지라 누구보다 버스운전자의 고통을 잘 안다. 그 역시 오랫동안 앉아서 운전을 해 온 터라 어깨결림과 허리통증을 달고 산다고.
“직업으로 운전을 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죠.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이고 보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에겐 얼마전부터 꿈이 하나 생겼다. 사는 게 바빠 미처 챙기지 못한 아내와 여유있는 여행을 하는 것. 그동안 일하느라 쉬는 날이면 마음같지 않은 몸 때문에 가족들에게 많이 소홀했단다. 
“우리도 이렇게 쪼들리는데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은 얼마나 살기 힘들겠어요. 경기가 빨리 회복이 돼야 우리같은 서민들이 조금이라도 숨을 쉬겠죠. 경기만 회복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어요.”

예측불허의 삶… 긴장도 재미도 ‘두배’

남보다 먼저 새해를 맞아 더욱 행복할 수밖에 없는 우리시대 새벽지기들.

  집집마다 달려있는 도난방지기를 책임지고 있는 보안업체의 순찰대원들 또한 새벽마다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고 힘겹게 하루를 시작한다. 올해 경력 3년차인 조상래(29)씨는 매일 새벽 4시30분이면 짜증스러운 알람 소리에 어렵사리 몸을 일으킨다. 이제 이 생활이 익숙해져서 일까. 언제부터인가 쉬는 날조차 습관이 돼 매일 그 시간이면 눈이 떠진다고 한다.

“요즘 같은 매서운 날씨에는 습관이 돼도 일어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죠. 하지만 남보다 하루를 더 일찍 시작해 나름대로 보람은 있어요. 하루를 알차게 쓸 수도 있고요. 또한 직업상 고객의 안전을 위해 완벽한 방패막이 되는 직업이라 너무나 보람 있어요.”
경찰이 되는 꿈을 접고 이 일을 선택한 조씨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보안업체인 이 일을 즐기고 있다. 일이 즐겁기도 하지만 ‘젊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버텨오기도 했다. 그만큼 힘에 부친다는 얘기다. 다른 샐러리맨처럼 하루의 스케줄대로 업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항상 예측불허로 출동대기를 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면 늘 사고가 난다.

그렇다보니 이런저런 재미난 일들과 황당한 경우도 많다.
“얼마 전 새벽 5시경에 일어났던 일이에요. 5분 만에 부리나케 뛰어 현장에 도착했는데 도둑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지 뭐예요. 당황한 나머지 일단 경찰에 지원을 한 다음 도망가는 도둑을 추격했어요. 그 순간이 얼마나 아찔한지 아직도 잊혀지질 않아요. 종종 시비 붙는 고객들에게 욕도 먹고 어의없는 일도 수 없이 당하지만 이런 일을 경험할 때는 정말 뿌듯하고 보람있어요.”

이렇듯 보안업체 순찰대원들은 경찰이 출동하기 전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중간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보안업체 순찰대원은 봉사의식과 희생정신이 없으면 안돼요.”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볼 때도 누가 언제 어디에서 도움을 청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조씨와 입사동기인 경력 3년차 진성배(29)씨. 그도 안개가 사뿐히 내려앉은 고요한 새벽, 졸린 눈을 비비며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지기 중 한 명이다.

“사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저녁형인간이었어요. 그래서 초창기에는 일하는 것보다 새벽에 눈떠야 하는 부담감이 가장 힘이 들었어요.”
이 생활에 3년째 접어들다 보니 새벽근무가 있는 날이면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자연스레 멀리하게 된다고.

“매일 4시30분이면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늦은 새벽까지의 술자리는 당연스레 피하게 되네요. 아침에 일어날 때가 지금도 가장 힘들긴 하지만 제가 맡은 위치에서 후회없는 삶을 살기위해 노력해요.”

하루종일 예측불허의 상황을 대비해 긴장을 늦추지 않았더니 결국 오늘도 진씨는 피곤에 지치고 말았다. 하지만 피곤한 만큼 일의 보람도 느끼는 터라 견딜만하다고. 도심을 향해 달리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을 뒤로 하고 그는 고단한 지난 밤을 달래기 위해 오늘 하루를 마감하려한다. 진씨는 자신을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이라고 강조했지만 누구보다 보람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할 것!”
너무 평범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말과 행동 같지만 과연 이 말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새벽과 함께 단단히 여물어가는 꿈

자신들을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이라 강조하지만 그들은 세상누구보다 보람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여느 해와 다름없이 새해가 밝아온다. 떠오르는 해를 가장 반기는 순간, 삶의 고단함도 첫해를 여는 황홀함에 사그라들 수밖에 없는 게 새벽지기의 운명이다.
새벽잠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누구나 당연하다. 하지만 이렇게 새벽의 환한 빛을 더욱 밝혀주는 새벽지기들이 있기에 신년 한해도 살아 볼만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벽지기들의 삶은 흔들려야 할 이유가 없다. 꿈이 있고 실현시킬 방법을 알기에. 꿈이 있는 이들의 삶은 언제나 당당하다. 새벽과 함께 이들의 꿈이 통통 여물어만간다.

글·사진/박경미 기자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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