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주는 선물 ‘졸업’. 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졸업의 의미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애틋하게 다가 올 것이다. 그래서 일까. 고생을 하지 않고 학교를 다닌 평범한 학생들은 졸업에 대한 뿌듯함을 알지 못할 것 같다. 지난 4년간 학교가 주는 뿌듯함을 누구보다 감사히 느낀 이들이 있다. 평생 배움의 끈을 잇지 못해 한이 되었던 사람들, 혹은 그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바로 늦깎이 대학생이 된 어르신들과 장애의 불편함을 딛고 배움의 길에 들어선 이들이다. 지나온 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학사모 쓴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

  올해 73세의 이정현 씨. 그 나이의 다른 사람이라면 노후를 즐기느라 여념이 없을 텐데 아직도 책을 끼고 사는 모습이 그에게 노후는 먼 이야기인 듯 보인다. 4년 전 평생 한으로 남아있던 배움의 끈을 잇기 위해 늦깎이로 대학생이 된 이씨.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다. 게다가 전공도 그 복잡하다는 컴퓨터 과학이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어릴 때 공부를 시켜주지 않아 한이었죠. 어떤 과목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했어요. 생각해 보니 공부엔 유난히 욕심이 많은 편이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하던 공부가 습관이 되어서인지 지금 와서도 별로 힘들 게 없어요. 단지 젊은 사람들 보다 기억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애로사항만 빼면요. 그거야 뭐, 계속 반복해서 할 수밖에 없잖아요.”

유년시절부터 유독 공부를 좋아했다는 그는 학창시절이면 어김없이 뒤따르던 ‘공부 좀 하라’는 잔소리는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학업에도 다 시기가 있는데, 그 시기를 놓친 것이 한이 돼 평생 책을 손에 들고 살았다고 한다. 고희임에도 불구하고 일과 공부를 병행할 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씨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갖는 시간이 유일한 자기 시간이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전한다. 그렇게 공부에 악착을 떨어서 일까. 대학 4년 내내 장학금 한번 놓쳐본 적이 없을 정도다.
“장학금을 타려고 열심히 공부한 것은 아니에요. 그래도 때마다 장학금이 나오니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그게 자극이 되었던지 더욱 열심히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욕심도 많았던 그인지라 학교에서 듣는 강의만으로는 충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공 동아리인 ‘인포메이션’에 당당히 입회, 활동을 시작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동아리 내에서 ‘큰형님’으로 통한다는 그는, 졸업 후에도 동아리 활동을 하며 선배들에게 받은 도움을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이제 곧 아쉬움을 뒤로 하고 졸업을 하게 되는 이씨. 그만하면 됐다 싶은데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며 너스레를 떤다.
김인숙(68)씨도 이씨 못지않을 만큼 공부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초등학교 평교사에서 교감까지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던 그는 여성복지회관 ‘할머니 대학’을 지난 12월에 졸업했다고 한다. 40년 동안 교직에 몸담고 있어 배움이라면 남부럽지 않았을 텐데 굳이 70을 앞두고 학교에 들어간 것이다.

“배움이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목마른 것 같아요. 오히려 뒤늦게 ‘할머니 대학’에 들어가 배웠던 내용이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의미 있던 배움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는 배우는 것도 좋아하지만, 교육자 출신답게 남을 가르치는 것 또한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 끼는 차마 숨길 수 없었는지 ‘할머니 대학’에서 동료들에게 에어로빅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단다.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잘 아는 분야라면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도 저와 같이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이렇게 된다면 노인들의 삶에 조금씩 즐거움이라는 작은 선물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무슨 즐거운 상상이라도 했는지 그의 입가에 엷은 웃음이 돋아난다.

“학교 다니기 정말 불편했죠”

장애의 불편함을 딛고 졸업장을 거머쥔 장애인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방송통신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시각장애인 지민수(37)씨도 그들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이 공부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어요. 입학 전에 이렇게 열악한 환경인 줄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준비를 하고 왔을 거예요. 지난 4년 힘들었던 점을 말하라면 표현할 수조차 없을 만큼 많죠.”

그만큼 끈기와 열정이 없었다면 졸업은 진작 물 건너 간 얘기나 다름없다는 말일 터다. 그는 누구보다 학교 안에서 시각장애인이 겪는 불편과 고통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교내 시각장애인 동우회 회장직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헤쳐 나가기 위해 시작한 일이 벌써 4년째 이어질 정도로 포기란 걸 모르는 사람이다.

장애의 불편함을 딛고 졸업을 한 지민수, 환광우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지씨의 동기인 한광우(44)씨도 늦깎이로 공부의 매력에 흠뻑 빠져 학교에 들어왔지만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전했다. 특히 수업시간에 사용되는 ‘교재’ 문제가 가장 힘들었다고. 일반 서적이 점자로 따로 나올 리는 없으니 그동안 학업을 진행하기가 순탄치만은 않았을 게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교재의 내용을 음성으로 전환시키는 일. 사람들과 교과서를 나눠 타이핑하고, 파일로 만들어 주면 그것을 다시 컴퓨터에서 음성으로 전환시켜야 했다.

그는 처음부터 책 내용을 파일로 구할 수 있었다면 번거로운 수작업을 생략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그 점을 학교에 제한하고 나서기도 했다.

“출판사 판권 등의 문제가 얽혀 있다보니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사회 전반으로 제도화된 틀이 없기 때문에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돈이 걸려있는 문제라 학교에서는 이리저리 피하기만 하는 눈치기도 하고요. 답답한 노릇이죠.”

아직도 그 당시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듯 상기된 지씨. 학교측의 배려는 애당초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막무가내식 대답은 왠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일반 학교에 다니는 시각장애인의 경우 제대로 수업을 진행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록 학교측의 배려로 점자로 된 책을 구할 수 있다하더라도 비장애인을 따라가기는 에너지 소모가 많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지씨는 점자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고학력으로 올라갈수록 엄청난 학습의 양을 빠른 시간 안에 소화해 내야 하는데 점자는 한눈에 볼 수 없다는 말이다. 핵심내용 체크, 장문 요약 등의 학습 방법에서부터 이미 경쟁에 뒤처지게 된다고.

이렇게 힘든 여건 속에서도 지난 4년간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평생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던 그의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올 신입생들도 지씨의 전처를 고스란히 밟지 않기를 돌아오는 내내 간절히 바라본다.

또 다른 시작, 졸업

요즘 졸업식 풍토가 많이 달라졌다. 예전의 밀가루 세례는 없어진지 오래지만 왠지 마냥 기분 좋은 날이 바로 졸업식이다. 특히 우리가 만난 늦깎이 대학생을 자처한 어르신들과 장애의 불편함마저 딛고 학사모를 거머쥔 시각장애인들에겐 그 의미가 남다를 터. 지긋지긋한 학업에서의 해방이라는 말보단 새로운 배움이 기다리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 다음엔 그들이 또 무엇을 배울까. 이제 졸업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그들의 끝없는 꿈과 희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글·사진/박경미 기자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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