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렁치렁’ 쇠 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사라진 것을 쉽게 잊는 도시의 습성답게 우리의 기억에서 차츰 사라지기 시작한 대장간. 탄가루에 쇳가루가 뒤범벅된 이곳에서 시대의 몇 안 되는 마지막 대장장이 배선돈(65)씨를 찾았다. 모두가 춥다고 움츠러들던 그날, 그의 곁에는 작은 화덕에 갈탄만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을 뿐이다.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그가 ‘탕탕탕탕’ ‘탕탕탕탕’ 리듬을 타듯 쇠 위로 메질이 한창이다. 시뻘건 화덕 옆에서 지난 45년 동안 쇳덩이와 씨름하며 묵묵히 인생을 담금질해왔을 그이다.

쇠로 만드는 것이면 무엇이든 ‘뚝딱’

벌겋게 달궈진 쇳덩이는 힘찬 망치질로 재빨리 벼려야 제 모양이 나기 마련이다. 배씨는 그 섭리를 깨우친 지 이미 오래다. 벌써 45년, 인생의 반 이상을 네다섯 평 남짓한 이 대장간에서 보냈다.
“아버지가 처음 대장일을 시작하셨어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배우고, 이제는 그 가업을 물려받아 직접 운영하고 있어요.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내가 대장장이 일을 배웠으니깐. 벌써 횟수로 45년이 넘은 거 같네.”

한국전쟁이 있던 6·25부터 그의 아버지가 지금 자리한 곳에 대장간을 차렸으니, 족히 반세기도 넘은 이야기다. 그에게 이곳은 삶의 터전이고 젊은 날의 땀과 열정, 그리고 추억이 스며 있는 인생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벌써 45년째. 인생의 반 이상을 네다섯 평 남짓한 대장간에서 보내온 배선돈 씨. 간판하나 달려있지 않은 그의 대장간이지만 쇠로 만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뚝딱이다.

“그때 당시만 해도 경기가 괜찮았죠. 농기구가 지금만큼 이렇게 기계화되지는 않았으니깐. 예전에는 사람들이 모두 땔감을 연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낫이나 도끼 같은 도구들이 필수품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누가 나무를 때나요. 다 기름보일러를 틀지.”
근래에 들어 현대화된 농기구와 싼 중국산 제품이 물 밀듯 들이닥치다 보니 자연스레 대장간에서 만든 물건은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 비록 주 거래처도 없어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그의 망치질은 한결같이 훌륭하다.

“욕심껏 많이 만들어도 소용이 없어요. 누가 가져가지 않으니까요. 호미 하나를 시중에서 천원에 팔고 있는데 탄 때지, 전기 쓰지, 쇠며 뭐며 재료 들어가지. 그렇게 따지고 보면 몇 푼 남지도 않아요. 이제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이 해달라는 대로,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만들어 주고 있어요.”

간판 하나 달려 있지 않은 그의 대장간이지만 호미, 괭이, 삽, 낫, 망치 등 쇠로 만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 낸다. 45년이란 세월 동안 담금질을 쉬지 않고 해왔으니 이 근방을 통틀어 그만한 손재주를 가진 자가 없다. 그렇다 보니 배씨는 아예 대장간 명함까지 만들었다. 그의 손재주를 잊지 못하고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작은 배려를 하고 나선 것이다.
요즘 그는 부인과 함께 인근 바닷가에서 굴과 조개를 캐는데 사용하는 ‘조새’ 만들기 작업이 한창이다. 갈고리처럼 생긴 조새는 관광객들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많이 팔려 나가고 있다는 게 배씨의 설명이다.

“굴 따는 철이니 만큼 조새를 많이 만들고 있어요. 철에 따라 만드는 것도 조금씩 달라요. 봄에는 호미를 많이 만들고…. 필요한 사람들은 직접 찾아와서 맞춤 제작을 하고 있어요. 이제 말만 들어도 뭘 원하는지 재깍 알아듣다 보니 오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필요한 물건을 그에게 간단히 설명만 하면 머릿속에서는 벌써부터 설계도가 척척 그려진다고 했다. 그만큼 오랜 세월동안 많은 물건들을 접해보고 만들어 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거기에 꼼꼼함까지 겸비했으니 그를 찾는 손님들은 그 맛을 못 잊어 두 번 발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는 문화재를 복원하는데 꼭 필요한 문고리를 만들어 줄 수 있겠느냐는 주문이 들어왔다. 그는 주문을 받자마자 바로 대장간 화덕의 풀무를 돌리고 쇠를 달궈 메질과 담금질을 시작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내 손으로 직접 물건을 만들어 갈 때마다 기분이 아주 좋죠.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드는 일이잖아요. ‘이 정도로 만들면 어느 누가 가져가도 만족하겠구나’싶은 마음에 기분까지 절로 좋아집니다.”

누가 힘겨운 이 길을 걸을까

새벽 4~5시면 눈을 뜨는 그이지만, 오전 8시나 되어야 기계를 돌린다고 한다. 대장간이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웃들에게 피해가 갈까 하는 마음에서다. 작업을 일찍 시작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하는 배씨. 대신 그 시간에 소리가 안 나는 작업을 골라서 한다. 오랜 기간 주택가 곁에서 쇠를 벼린 그만의 노하우다.

“옛 방식대로 하다가 기계로 바꾼 지 몇 해 안 됐어요. 기계로 바꿨다지만 시야기(마지막 공정)할 적엔 여전히 망치질을 해야 해요. 이제 나이가 있어서 쇠 만지고 망치질하는 일이 힘에 부치기 시작하네요.”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작업에만 신경을 써야 다치지도 않고, 원하는 물건이 나오기 때문에 힘은 평소의 몇 배로 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수십 년간 몇 백도를 오가는 불 곁에서 살아 왔으니 몸이 축날 만도 한데, 그는 “내가 해야 할 일일 뿐”이라며 웃음 짓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지난 세월을 함께해 온 부인은 그간의 고생을 생각하면 말로 다 해도 모자랄 것이라고 전했다.

대장장이 배씨와 배씨의 부인(위).

배씨의 부인은 “그동안의 고생은 말할 수도 없어요. 팔다리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죠. 그만큼 온 몸이 힘에 부치는 일이 바로 대장일이에요. 불을 만지고, 쇠를 두드리는 일이다 보니 온몸이 가렵고, 불에 데어서 붓고 그러죠. 그래도 우리 집 양반이 물건을 참 잘 만드는지 찾아오는 손님도 주문하는 손님도 많아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요즘 배씨에겐 고민이 하나 생겼다. 그의 뒤를 이을 대장장이가 없기 때문이다.

뜨거운 화덕 옆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여름에는 땀띠가 돋아나기 일쑤고, 겨울에는 동상에 걸리기 십상인 데다 쇳가루에 탄가루까지 흠뻑 마셔야 하는 일이니, 그의 말처럼 어느 젊은이가 사서 고생을 할까.

“아직도 제 선친이 살아 계세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대장간에 나와 일을 거들어 주시곤 했는데, 지금은 많이 편찮으시죠. 나야 아버지 밑에서 늙어간다지만 당장 누가 이 힘든 일을 배우러 오겠어요. 한두 해 배워서 될 일도 아닌 걸요.”
그래도 누군가 와서 배우겠다고만 하면 선뜻 자신의 기술을 내어줄 배씨다.

“막노동도 일당이 8~9만원이라는데 우리 일이 어디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날이 갈수록 사가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판국인데요. 미래도 없는 직업이고요. 그런 걸 알지 만도 쉽게 손을 놓지 못하는 걸요. 누군가 뒤를 이어준다면 고마울 텐데 말이죠.”

계속 일할 수만 있다면…

그의 대장간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즐비하다. 사진은 쇠를 날카롭게 갈때 쓰는 도구.

  좀처럼 속내를 잘 비추지 않는 그지만 “몸이 성한 그날까지 쇠를 두드리고 싶다”는 말을 몇 번이고 내뱉는다. 힘겹게 이은 가업이 쉽게 끊어질까 우려한 탓이다.

“건강해서 일을 열심히 하는 바람밖에 없어요. 이 일은 기술이 있어야 하는 일이고, 그 기술이 나이를 먹었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물건이야 팔리든 안 팔리든 그저 계속해서 이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해요.”
‘탕탕탕탕’ ‘탕탕탕탕’ 다시금 발갛게 달군 쇠를 메질하는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글·사진/표수진 기자

표수진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