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끝난 줄로만 알았다. 연일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피해복구 현장의 모습만 보고는 꼭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매한 기자의 착각이었을까. 시내에 들어서는 순간, 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반들반들한 도로 위에 육중한 굴착기와 덤프트럭만 눈에 띌 뿐, 인기척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전북 고창군. 꼭 ‘눈폭탄’에 맞은 듯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 이곳은 끝난 줄로만 알았던 복구가 아직도 한창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택시 기사들은 그나마 시내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에서 차를 타고 도심 바깥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옮길수록 더욱더 설마(雪魔)가 휘감고 간 현장은 그 실체를 드러냈다.
새하얀 겨울 들녘은 그렇게 따사로운 오후 햇살을 받으며 아무 일 없다는 듯 밉살스런 빛을 내뿜고 있었다.

66년 만에 최고 폭설, 피해액만 2천억 넘어

차를 타고 얼마를 달렸을까. 눈앞에 펼쳐진 하얀 설원의 꿈같은 장관에 입을 벌린 지 5분이 채 안됐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지난밤 퍼부은 눈은 점점 도가 지나쳐 보인다. 길가에서 수십 년간 제자리를 지켜온 적송마저 그 무게를 못 이긴 채 처참히 꺾이고 말았다.
어디 꺾이고 부서진 게 나무뿐일까. 조립식 건축물은 아예 뒤틀려 버렸고,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눈으로 멀쩡한 지붕 한쪽이 풀썩 주저앉았다. 남아 있는 것이라곤 피멍든 사람들의 한숨뿐…. 멀쩡했던 목장 건물이 주저앉아 애먼 소들만 건물더미에 쌓여 죽게 생겼으니 당장 먹고살 일이 걱정인 한숨이다.

지난 해 12월 28일, 전북 고창군 아산면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방문한 남산리는 피해가 가장 큰 곳 중 하나다.
택시운전기사 송영상 씨는 “그래도 시내는 복구가 거의 다 됐어요. 촌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말이 아니죠. 눈이 온 데 또 내리고 밤새 얼어붙었다 또 내리고 했으니. 하루빨리 복구가 되어야 할 텐데…”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지난해 12월 3일부터 쉬지 않고 내리다시피한 눈으로 고창군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무시무시한 눈 폭탄에 벌벌 떨어야만 했다. 66년 만에 최고로 퍼붓던 눈이 잠시 그치는 듯싶었지만, 쌓인 눈이 얼어붙으며 복구는 고사하고 피해 집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실정이 되어 버렸다.

때문에 지난 1월 5일 마감 예정이던 피해접수가 10일까지 연장됐다. 그리고 며칠 전 그 집계액이 나왔다. 최종 집계액만 2,242억2,200만원(현재 1월 10일). 정읍시가 622억으로 가장 많았고, 고창군이 617억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사유시설 피해액은 주택, 축사, 비닐하우스, 공장, 인삼재배시설 순으로 농축산물의 피해가 가장 많았다.

처음 눈이 내렸을 때에는 비닐하우스나 시설들이 난방을 통해 그럭저럭 버텨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마저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결국 하중을 견디다 못하고 여기저기 시설물들이 뒤틀리고 무너져 내린 것이다.

송씨는 “이곳은 비닐하우스에서 시설작물을 많이들 하고 있어요. 출하해야 하는 무 농사는 물론이고 이제 막 물오른 복분자 농사도 피해가 상당할 거예요. 상황이 이런데다 눈이 한 번만 더 내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죠. 그래도 피해 복구를 위해 봉사활동 나오는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에요”라며 현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눈이라면 이제 질려버렸어요”

꽁꽁 언 눈을 인력으로 치울 수 없어 중장비까지 동원돼야 했다.

  “아니, 점심 식사들은 어떻게 해결 하신겨? 안 먹었음 뭐라도 좀 내올까?”
비닐하우스 4,100평에 무 농사를 지었던 이만수(56)씨가 대형 버스에서 내린 군인들을 보고 냅다 달려나온다. 지난밤 비닐하우스 서너 동만 남겨놓은 채 마음마저 송두리째 내려앉았지만, 그래도 도움의 손길이 있어 힘을 얻은 듯하다. 여기저기 젊은 군인들을 보며 시설물 철거에 조언을 하고 있다.

“눈? 눈이라면 이제 질려버렸죠. 처음에는 나와서 비닐하우스 위에 쌓인 눈을 좀 털어보고 그랬어요. 그런데 하루 이틀 오는 눈이라야지. 며칠 전에는 아예 나와 보지도 않았어요. 내가 나와 봤자 쓰러져가는 구조물을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있나.”

이곳 토박이로 나고 자라 60을 앞두고 있는 그이지만, 이처럼 많은 눈을 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삼 남매를 대학 공부를 시키며 한껏 꿈에 부푼 땅이건만 이제 쓴 웃음만 나올 뿐인 듯 그는, 철거가 진행 중인 비닐하우스를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경상도에서 멀리까지 이렇게 와 주셨으니 너무 고맙죠. 이분들 아니었음 사람들 사서 몇날 며칠을 고생해야 했을 거예요. 어제 하루 나오는가 싶었는데, 오늘까지 지원이 나왔네요. 내가 이 동네에서 두 번째로 피해가 큰 셈이죠.”

그나마 이씨는 지원이라도 나왔으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해당 기관에서 피해가 큰 곳 위주로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미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도 상당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지원마저도 언제 끊길지 모르는 상황이라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언제 누가 지원을 올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에요. 시설물 철거를 한다 해도 문제에요. 내가 이 동네 막내 벌인데, 70 먹은 노인들만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며칠만 더 나와 줬으면 딱 좋겠는데….”

눈이라도 녹아야 남아있는 무를 꺼내고, 씨앗을 뿌리기 위해 밭을 가는 작업을 할 텐데, 산더미처럼 쌓인 눈 때문에 비닐하우스를 개폐하지 못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여차하면 흙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갑갑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작업을 해야 할 판국이라고 했다. 눈에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비닐하우스를 가리키며 그는 “앞에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저것들도 다 무너졌다”며 탄식 섞인 목소리를 냈다.

철거도 철거지만 다시 비닐하우스를 세우려고 해도 돈이며 인건비가 장난이 아니란다. 피해액을 추산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는 이씨다. 어디 이런 사정이 그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일까.
이미 지역 특산물로 널리 알려진 복분자 생산을 늘린 농가는 그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앞으로 복구비용과 특별위로금이 지급된다 하더라도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는 어려울 성싶다.

하늘을 탓할까 누구를 탓할까

쓰러진 철근을 철거하는 군일들. 멀리 경상도에서 발걸음을 했다.

  “하늘을 탓하겠어요, 나라님을 탓하겠어요. 누구의 탓도 아니니 어쩌겠어요. 오는 봄에 제대로 작업이나 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나라의 한쪽에서는 폭설로 막대한 피해를, 다른 한쪽에서는 가뭄으로 기설제(祈雪祭)를 지내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이씨의 말처럼 누구를 탓할 문제도 아니니 앞으로 더 이상 눈이 내리지 않도록 열심히 하늘에 기도나 해야 하는 것일까. 제발 적당히 좀 봐달라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글·사진/표수진 기자

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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