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재’, 처음 그의 이름을 듣고 그가 남자일 것이라 단정 지었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항상 빗나가기 마련이다. 쌍꺼풀 없는 커다란 눈에 잿빛 승복을 입은 그는, 불혹을 앞둔 여스님이었다. 많고 많은 길 중에 사회복지사의 길에 들어선 신선재(40)관장. 지난 세밑께 그와 가슴까지 적셔주는 보이차(푸얼차, puer tea)를 나누던 시간이 마치 동화 속을 여행한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스님이 도심 속으로 내려온 특별한 연유가 자못 궁금하다.

“단지 회색 옷만 입고 있을 뿐”

“두 살부터 절에서 살았어요. 그곳에서 노스님을 보고 자라면서 영향을 받게 된 거죠. 마을 사람들의 일손을 도와주거나 거들곤 하셨거든요. 이게 바로 지금 우리가 말하는 지역 사회복지라 할 수 있죠. ‘함께 행동하고 함께 나눈다’는 노스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셈이에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신선재 관장. 늦깎이로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계기에 대한 그의 답은 시원했다. 하지만 보이는 것 만큼 복지사로서 탄탄대로만을 걸은 것은 아닌 듯하다.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 그맘때면 누구나 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은 그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사회복지 학문은 하면 할수록 더욱더 어려운 학문이었어요. 게다가 수도생활만 하던 사람인지라 졸업을 앞두고 번듯한 직장 생활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앞섰고요.”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삼전사회복지관에서 채용을 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이다. 그렇게 2000년 복지관 총무팀에 처음 입사한 그는 후원자 관리와 후원품 관리를 맡았다. 그리고 복지관 이용자들을 위한 다도 수업과 명상프로그램도 직접 진행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한껏 발휘한 것이다. 하지만 승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곤욕스런 오해를 산 적도 더러 있었다.

“업무상 시장에서 고기를 살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럼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대는 거예요. ‘세상에~ 스님이 고기를 먹다니…’, ‘저 봐~ 스님도 고기를 먹잖아’라는 등등…. 복지관 직원이라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일일이 설명하며 다닐 수도 없고, 가장 곤욕스러운 순간이죠.”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는 신 관장. 지금 그런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됐다고 전할 뿐이다. 그렇게 차츰차츰 지역사회와 어울리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그는 지난 2003년 복지관의 관장으로 발탁됐다.

세상에 어디 그냥 이뤄지는 일이 있을까. 관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남다른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불혹의 나이인데도 아직 학업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을 만큼 노력파인 그이다. 카톨릭 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하고, 얼마 전에는 같은 대학의 상담심리대학원에 들어갔다. 사회복지관련 자격증도 숱하다. 미술치료, 모래치료, MBTI 등등…. 요즘은 특수교육에 관심을 두고 있단다. 그만한 위치에 오르면 실무에서 손을 뗄 만도 한데, 아직도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할 정도로 복지에 대한 열정이 깊다. 머지않은 미래에 박사 학위도 받고 싶다며 자신의 소망도 살짝 내비치는 신 관장이다.

“지역사회복지관의 관장으로서 우리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발전을 해야 해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학업의 끈을 쉽게 놓지 않을 겁니다.”

단지 회색 옷을 입고 있을 뿐 여느 사람과 같다며 힘주어 말하는 신 관장. 그의 이런 끊임없는 노력이 있기에 왠지 삼전복지관엔 벌써부터 따듯한 봄날이 온 듯한 기분이다.

함께하는 사회 만들어 갈 터

호탕하고, 웃음도 많은 그와 마주한 사람들은 그에게 “스님 맞아요?”라며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만큼 편안하다는 이야기다. 문득, 20년 후 그의 행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마무리를 잘 짓고 회향(回向)해야죠. 그게 수행자로서의 길이니까요.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낯설지 않고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구든 와서 기댈 수 있고, 또 가지고 있는 능력을 모두에게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요.”

혼자 몸으로 수행자와 사회복지사로서의 두 가지 길을 걸어야 하기에 힘에 부칠 텐데도 그는 “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일 뿐이라며 대답을 일축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 얼굴에 미소가 절로 번지기 마련이다. 아마도 그의 모습에서 든든한 ‘믿음’이 오롯이 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많이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그 사이에서 적절히 분배하고, 관리하는 촉매자의 역할을 우리 사회복지 관계자들이 앞장서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더불어 사는 사회의 초석이니까요.” 

글·사진/표수진 기자

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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