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5년차에 접어 들고 있는 박윤수(45) 고경희(41) 씨 부부.

  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삶의 전환점은 언제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성인의 문에 들어선 이들에겐 아마 결혼이 아닐까 한다. 비장애인이라면 지극히 일반적이고 당연한 선택의 관문이겠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결혼이란 것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런 만큼 고통도 기쁨도 짐짓 남다를 것이다.

결혼, ‘사랑’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올해로 결혼 15년차인 박운수(45)·고경희(41)씨 부부. 이들은 각각 지체장애인 2급과 1급의 장애인 부부이다. 그들이 만난 건 15년 전, 이들 부부를 잘 알던 지인이 소개를 주선했다고 한다.

고씨는 “첫 눈에 반한다는 말 아세요?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을 처음보고 한눈에 반했던 것 같아요. 남편의 깔끔한 외모와 부드러운 첫인상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 생생해 잊혀지질 않네요”라며 그 날의 감흥을 되살렸다.

장애의 아픔을 똑같이 겪고 있었기에 더욱 끌렸다는 그들은 서로 보듬으며 조금씩 사랑을 키워갔고, 1년간의 연애기간을 거쳐 정식 부부가 됐다고.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이 어디 둘만 좋아한다고 성사되는 것인가. 시작부터 집안의 반대가 심해 마음고생이 많았다.

“시댁 쪽에서 장애인며느리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이 들었나 봐요. 당신 자식도 장애인인데다 며느리 될 쪽이 남편보다 장애가 더 심했으니, 그럴 만도 하죠. 그 당시엔 자존심도 상하고 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부모님이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지금이야 이렇게 얘기하지만 얼마나 반대가 심했던지…. 오죽하면 시아버지께서 결혼하면 죽겠다는 말씀까지 했겠어요.”

시작부터 높은 장벽에 부딪힌 두사람은 결국 동거르 선택했고, 뒤어 정식 결혼식도 올렸다.

모님의 반대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던 부부는 일단 동거로 새살림을 차렸다. 비록 축복 받지도, 부유하지도 않았지만, 꿈에 그리던 보금자리를 틀었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게 오히려 약이 되었을까.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첫째 유지를 임신하고서 천금보화를 얻은 듯 기뻤단다. 그러던 중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비장애인들과 함께 합동결혼식을 올리는 행운도 얻었다.

“남들 다하는 결혼인데, 아내에게 고운 면사포 한번 씌워주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어요. 하늘에서 저희 부부를 굽어보셨는지, 비록 합동결혼식이었지만 정식 결혼식을 올리게 돼 너무 좋았어요.”
꿈에 그리던 결혼식을 올렸음에도 시댁식구들은 경희 씨를 며느리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게 화근이 되었는지 그렇게 금술 좋기로 소문난 부부는 하루 이틀 다투기 시작했고, 어느덧 잦은 말다툼이 일상이 돼버리고 말았다.

“첫째 유지를 낳고서도 시댁과의 사이는 좋아지질 않았어요. 가까이 사는 형제들과 더 비교를 당해서 그런지 결혼 후 3년 정도는 시댁과 거의 왕래도 못하고 지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마음 고생했던 시절이 생각나는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경희 씨가 눈시울을 붉혔다.

“제발 편견 좀 갖지 마세요”

그렇게 힘이 들어도 딸 유지 때문에 누구한테 힘들다 하소연 한번 못했다는 경희 씨. 그러다가 이렇게는 도저히 안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싸우는 것도 시댁식구들과 가까이 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결혼 후 3년이 되던 해에 연고지가 없는 인천으로 이사를 왔다. 5평 남짓한 지하방이었지만 숨통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았다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얼마 후 용기를 내어 분식집도 차렸다.

장사경험은 없었지만 타고난 음식 솜씨 탓인지 점점 단골이 늘어나 먹고 살기엔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장애인에겐 뭐든 쉬운 일은 없는가 보다. 점점 손님이 줄어든다 싶어 조심스럽게 알아봤더니 장애인이 운영한다는 입소문이 퍼져 오던 발길이 끊어졌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정말 죽거 싶을 정도였어요. 이러고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뭐든 마음먹고 하려해도 장애인이라는 걸림돌이 우리 부부를 철저하게 막고 있더라고요.”

얼마나 힘들었을지 보지 않아도 그려진다. 경희 씨는 평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쓰는 자신의 성격이 아니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지난날을 떠올리며 얘기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힘없이 웃었다.
그 이후 더 이상 생계유지가 어려워진 그는 다시 가내수공업 공장에 다니기 시작했단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에 부쳐 매일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김밥을 만들었다. 자연히 말아 놓은 김밥을 파는 것은 남편 운수 씨 몫이 되었다.

“인천에 오면서 남편의 태도는 눈에 띄게 변했어요. 전에는 일하기 싫어하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던 남편이었는데 적극적으로 돈을 벌려고 노력하더라고요. 그래도 생활형편은 나아지는 것이 없었지만 남편의 노력하는 모습에 힘이 나기 시작했어요.”

무럭무럭 커가느 아이들이 감사하기만 한 경이 씨.그는 부모가 장애인임을 아이들에게 숨기지 말라고 강조한다.

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체 생활고에서 벗어날 수 없자 경희 씨는 인천시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시의 도움을 얻어 95년 말, 생활보호대상자로 채택됐다. 마음의 부담을 한결 덜어서 일까. 경희 씨 부부는 전보다 더 밝게 분식집을 운영해 갈수 있었다. 그 모습이 주위 사람들에게는 인상적이었던 모양인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져 모 방송에 나가기까지 했다.

그런 행복도 잠시, 또다시 이들에게 청천병력 같은 불행이 닥쳐왔다. 둘째 예지 밑으로 낳은 아들이 생후 백일이 되던 날 돌연 하늘나라로 가버린 것이다.
“원인도 모르고 보낸 아이가 눈에 밟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늦게 얻은 아들이라 더더욱 가슴이 아프고 저렸어요. 남편은 지금도 말해요. 그때, 아이와 함께 했던 백일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이었다고….”

그 충격으로 남편은 점차 활력을 잃고 축축 처지기만 했다. 씩씩했던 경희 씨마저 장사를 접어야 할 정도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아마도 그때의 한은 평생을 가겠지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죽은 아이한테 매어있을 수만 있나요. 저렇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이 있는데요.”

막내 승지가 태어나 부부의 슬픔을 달래준 덕에 부부는 다시 일어설 수가 있었다. 경희 씨는 이제 유지와 예지, 승지 세 딸아이 키우는 재미가 부부의 낙이 되었다며 밝게 웃어 보였다.

아이들, 장애 인정해야 상처 덜 받아

“아이들은 왜 이렇게 빨리 크는지 모르겠어요. 막내 녀석이 어느덧 네 살이 됐으니까요. 그새 자랐다고 조막만한 손으로 제게 밥을 떠먹여주려 할 때면 금세 시름도 가셔버려요. 참, 이상하죠.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가도 정신없이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슬픔도 걱정도 잊혀지잖아요. 제가 아이들이 있어서 힘내고 살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들 부부는 항상 멀리 있는 행복을 찾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부모가 장애인이라는 것도 숨김없이 인정해야 한다고 이르고 또 이른단다.
“아이들도 인정해야 나중에 상처도 덜 받을 거 같아서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늘 엄마 아빠는 장애인이라는 걸 떳떳이 밝히라고 각인시켜 주었어요. 다행히 아이들이 부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잘 따라요.”

자신들의 얘기를 책으로 써내라하면 아마 책 한권도 모자란다고 말하는 경희 씨. 그렇게 힘든 세월이 있었기에 모진 세상에 치이면서도 오늘날 세 아이와 더불어 감히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다고. 모쪼록 이들 앞에 놓인 세상이 더 이상 넘기 힘든 ‘장애’가 아닐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글·사진/박경미 기자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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