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다르다는 것은 지극히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일을 받아들이는 게 왜 그리 어려운가?”
바이츠 제커 독일 전대통령은 장애와 관련하여 이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이런 편견 속에서 장애인이 한 기업의 리더로 활동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일 것이다. 여기저기 경제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하는 기업들이 즐비한 마당에 흔들림 없이 기업을 운영하는 장애인CEO들. 그들이 땀방울로 일궈낸 일터는 어떤 모습일까.

휠체어 타는 깐깐한 ‘우리 사장님’

‘철커덩, 철커덩’
2층짜리 낡은 공장이 둔탁한 기계음으로 꽉 들어찼다. 집 채 만한 기계들이 쉼 없이 무엇인가를 쏟아내고 있는 사이로 심장박동처럼 두근거리는 계단을 따라 발길을 옮겼다. 아래층과는 달리 다소 고요한 사무실. 그곳에서 ㈜송원산업 천상금(지체장애1급)사장을 만났다. 20여 년 전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천상금 사장은 연간 12억의 매출과 17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중소기업 CEO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81년. 과거 대한전선 금형부에서 익혔던 기술을 살려 영등포에 소규모 성형사출사업 공장을 열었다. 그리고 만 1년이 되던 82년,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경인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겪은 후 그는 경추 3·4번 손상으로 가슴부위 이하를 다시는 쓰지 못하고 있다.

“10개월간 입원해 있으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사람들 만나기도 싫어지고, 활동 범위가 제약되고, 매일 병상에만 누워있다 보니 자살충동까지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희망을 준 게 우리 직원들이에요.”
주인이 없으면 다소 풀어지는 게 직원들의 심리다. 그러나 그의 직원들은 사장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 사업에 손쓰지 못하는 10개월간, 공장장과 총무팀 직원은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리며 사업성과를 보고했다. 절망에 빠져있던 그도 차츰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직원들이 그에게 “사업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고 물어왔다. 다행이 봉급이 밀리지 않았고, 이대로만 나간다면 괜찮을 것 같아 그는 단단한 결심을 내세웠다.

“당시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은 물론, 기구들조차 발달되지 않았어요. 회사를 출퇴근하려면 차를 오르내리는 것은 물론, 공장의 가파른 계단도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업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죠.”
운전기사를 고용한 그는, 사업주들과의 미팅도 할 수 있을 만큼 기동성을 갖췄다.

“대부분 전화상으로 인사를 나누고, 꼭 필요하다 싶으면 회사 앞으로 찾아가 주로 차 안에서 미팅을 했어요.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새로운 사업주들과 만남은 힘들었고, 주로 인맥을 통해서였죠. 하지만 인맥도 한둘이지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래서 그는 기술적 부분을 인증받아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게 적중했다. 지금껏 회사의 사훈이 ‘신용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일정도로 신뢰를 중시하고 있다. 납기일은 물론, 검증관계까지 하나도 홀대하는 일이 없을 정도다. 다소 꼼꼼한 성격 탓에 직원들에게는 ‘깐깐한’ 사장님으로 통하고 있을 정도다.

10년 만의 외출이 가져다준 변화

14년간 운전사의 등을 빌려 사업을 진행해야 했던 그는, 과거와 달리 자유롭지 못한 점이 항상 괴로웠다. 주말에 가야할 경조사는 물론, 친구들과의 관계도 단절되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동할 수 없는 불편함이 주는 또 다른 괴로움이다.

“남보다 먼저 준비해야 하고, 또 남보다 먼저 출발해야 보통 사람을 따라 갈 수 있어요. 항상 보조해 주는 친구도 주말에는 쉬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렇다 보니 자연히 모임에서 도태되었고, 활동 제약에 있어 답답함이 밀려왔죠.”

그래서 그가 운전대를 잡았다고 한다. 그는 운전을 한 이후로 그동안 사라진 것 같았던 시간들을 되찾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움직임이 자유로워지자 운동도 시작했다. 현재 론볼경기연맹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장애인 체육활동에 관심이 많다.
“10년 만에 찾은 운동이에요. 장애를 안고 처음으로 느낀 ‘변화’라고 할까요. 장애인들과 만나면서 위안도 느끼고, 서로 교류도 하는 동기가 마련됐습니다.”

아직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기에 다양한 활동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그는 이런 대외 활동들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그래서 일적인 부분들에 있어 긴장감을 다소 완화시켜 준다고.

“물리적으로 다친 것뿐이지, 그렇다고 자신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존심을 버리지 말고, 삶의 목표를 뚜렷이 가져야 하지요.”

그런데 사업으로도, 대외활동으로도 한참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을 때가 하필이면 IMF를 맞은 때였다. 거래선이 중국으로 이전하고, 자식과도 같은 직원들을 잘라야 하는 힘든 고비도 맞았다. 하지만 그는 휠체어를 타고 더 열심히 뛰어다녔다. 장애를 넘고, 편견의 장벽을 넘어서며 그에게 희망이 주어진 것일까. 다들 도태되는 상태에도 그의 사업체는 점점 제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태어났다는 흔적 정도 남기고 싶다는 천상금 사장. 장애는 그저 겉으로 보이는 상처일 뿐인 그에게 꿈이라면 “거창한 꿈은 없습니다만 건강은 잃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공장을 크게 키우는 것이 아닌 모든 직원들에게 돌아갈 빵이 많았으면 하는 게 꿈이라 할 수 있을까요?”란다.

생각의 전환이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주)송원산업 천상금 사장. 그는 물리적으로 조금 불편한 것뿐이라 말하는 장애인 CEO다.

비단 천 사장뿐일까. 강원도 태백시 한기협태백지회의 이개용 사장도 장애인CEO다. 1994년 설립, 현재까지 50여 명의 직원과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다고.
특이하게도 그의 회사는 직원의 90% 이상이 장애인으로 구성됐다. 그도 그럴 것이, 사고로 장애인이 된 후 장애인의 권익보호와 자립생활에 대단한 관심을 보여 오던 그가 아예 자신의 사업체를 차려 장애인 고용에 직접 나섰기 때문이다.

물론 사업이 처음부터 탄탄 대로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장애인 생산품으로 일반 고객을 접하는 일이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듯이 그도, 그런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수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하지만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하였던가. 영업전선에 뛰어들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제품개발 및 마케팅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개발하는 데 아낌없는 정성을 쏟아 부어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게 됐다.

물론 장애인의 작업량이 비장애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그는 장애인 고용자 수를 줄이지 않았다. 대신 특이한 방식을 택한다. 바로 ‘공장의 자동화’이다. 생산품목의 다양화와 장애인 고용자 수 늘리기를 서슴없이 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일반기업과의 경쟁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동력이 바로 생각의 전환임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개용 사장이다.

장애경제인협회 오민석 실장은 “2005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 기준에 따르면 약 20만명의 장애인 사업자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식회사급은 물론,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수치이고 정확히 장애인 CEO를 파악한 자료는 없는 실정이다”라고 말하였다.
현재 장애경제인협회에 소속된 장애기업인은 2~3천여명으로 업종의 분포도가 매우 다양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사진/표수진 기자

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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