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결혼식 사진. 왼쪽 꼬마이이부터 시계방향으로 원규군, 형일군, 형우군, 원석군

인생의 모든 만남은 소중하다. 어느덧 기억의 저편으로 물러앉은 어린 시절 동무들과의 짧은 만남도, 학창 시절 한 책상을 나누어 쓰던 짝꿍과의 만남도, 그리고 담 너머 살던 이웃들과의 만남도 그 어느 것 하나 하찮았던 만남은 없다. 그 중에서도 가족이라는 구성원들과의 만남만큼 특별한 인연은 없을 것이다. 언뜻 닮게 태어나는 듯 보여도 실은 살며 닮아가는 게 가족이라는 말처럼 가족이란 혈연 이상의 질긴 끈으로 엮인 든든한 그 무엇일 것이다. 여기 둘로 나뉘어 있던 가족이 인생의 어디쯤에서 만나 하나가 된 재혼가정이 있다.  그 어느것보다도 귀한 두 번째 만남. 그 속 깊은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가족이 된다는 것

올해로 결혼 6년째로 접어드는 이강동(46)·오진숙(46) 씨 부부는 둘 다 사별의 아픔을 딛고  새 가정을 꾸린 ‘두 번째 인연’이다. 각기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던 지난 99년 처음 만나 일 년이 조금 넘는 교제기간을 거쳤고 한 가족을 이루게 됐다.

(전)남편을 먼저 보내고 13년 동안 아이들을 키우면서 재혼하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진숙씨. 그런 그에게 지인이 줄기차게 강동씨의 이야기를 전해왔다. 젊은 남자가 3년째 혼자서 어린 아이들을 키운다는 소리에 같은 과정을 먼저 겪은 사람으로써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고.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강동씨의 두 아이 원석(15)군과 원규(14)군 나이가 아홉 살·여덟 살이었으니, 아이들이 꼬박 그 나이 때 혼자되었던 진숙씨의 마음에 연민이 인 것도 당연한 일이다.

“마음은 안 됐었지만 맞선자리에 나가기까지는 많이 망설여졌어요.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일이고…. 차일피일 미루는 데 어느 날 큰 아이(장형일·26)가 그러더라구요. ‘엄마, 좋은 사람 있으면 새출발 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그때 녀석은 고3이었는데 어느새 그런 소리를 할 정도로 컸는지 참….”

그렇게 진숙씨는 맞선 자리에 나가게 됐다. 인연이 되려는지 강동씨를 처음 보곤 ‘혼자 사는 남자 중에도 이렇게 훤칠한 사람이 있구나’ 생각했단다.  
강동씨 역시 첫 만남에서부터 활발하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풍기던 아내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아내는 원체 성격이 밝고 활기차요. 제가 말 수가 적은 사람이다 보니, 구김 없는 아내가 참 보기 좋았어요. 따뜻한 빛이 난다고 할까요? 정도 많아서, 이 사람이라면 따뜻한 가정을 함께 가꾸어갈 수 있겠다 싶었지요.”
처음부터 재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다보니 두 사람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솔직할 수 있었다. 만날 때마다 그 동안 살아왔던 이야기, 아이들 걱정, 사별의 아픔 등을 나누며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게 되었다.

수십 년을 다르게 살아온 ‘나의 반려자’

하지만 재혼이라는 쉽지 않은 결심을 내리기까지, 둘은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의 이해는 구하기가 무엇보다 난감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왜 안 힘들었겠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둘째 형우(19) 녀석은 ‘엄마 재혼 꼭 해야 해?’하고 되묻기도 많이 했어요. 네 아이 다 마찬가지였겠죠.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재혼이 상처가 아닐 수 없잖아요. 형일이와 형우 마음이 추슬러진다 해도 원석이, 원규의 마음의 문은 또 재혼 후 제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되겠다 싶어 걱정이 많았어요.”
아이들을 온전히 사랑으로 보듬어 안을 수 있을까, 또 아이들이 과연 내게 마음을 열어줄까, 수백 번을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았던 강동씨와 진숙씨. 아이들에게 보다 안정적이고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행여 아빠·엄마의 이기적인 결단으로만 받아들일까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고 한다.

다행이도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자기 나름의 방법들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부모자식 간에는 서먹한 이야기도 사내아이들끼리는 쉽게 통할 수 있어서일까. 자잘한 부대낌을 겪어가며 아이들은 조금씩, 자연스럽게, 형제가 되어갔다. 형일군은 넓은 포용력과 듬직함으로 맏이의 역할을 해주었고 형우군 역시 투덜대면서도 두 동생을 챙길 줄 아는 의젓함을 품고 있었다. 원석군과 원규군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큰 형 보다는 간섭쟁이 둘째 형을 마음으로 더 잘 따르는 눈치다.

형일군은 작년 12월에 독립을 했지만 집 근처에 살아서 퇴근 후면 늘 들려 가족들에게 하루 일과를 보고하곤 한다. 독립적인 성격이기도 했지만, 내심 다 큰 아들이 불편할지도 모를 부모님에 대한 배려였을 거라고 강동씨는 짐작하고 있다.

6년 전 코흘리개 꼬마였던 원석군과 원규군은 이제 멋도 부리고 제법 반항도 하는 중학생이 되었고, 자주 말썽을 피우던 개구쟁이 둘째는 부쩍 공부에 열을 올리더니 올 초 중국 텐자빈 국제고등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틈틈이 전화할 때마다 동생들 안부를 물을 때면 이젠 제법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든단다. 부부는 형제들끼리 통하는 ‘뭔가’가 아이들 사이를 조여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쁠 뿐이다.
“문제라면 오히려 저희부부끼리의 의견 차이에서 비롯될 때가 많았죠.

특히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는 갖고 있는 생각이 달라 자주 티격 거렸어요. 저는 교육에 있어선 엄한 편이라 회초리를 들어서라도 바로잡을 게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첫째부터 막내까지 예외가 없는데, 남편은 아무래도 그게 조금 서운한 모양이에요.”

먼저 아이들을 키워 본 입장으로써, 자신을 좀 더 믿고 맡겨줬으면 싶은 게 진숙씨의 마음이라면, 아이들이 어리니 아내가 조금만 더 참고 이해해주지 싶은 게 또 강동씨의 마음이다.
지금은 아이들이 자라서 매를 들 일이 거의 없지만, 결혼 3,4년째엔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 문제로 다투기도 많이 다퉜다고.

“40년동안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보니 순간순간 서로의 차이를 확인할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빨래를 쌓는 방식이나 청소하는 순서 등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들이 다 그렇죠. 그러면서 ‘아, 다 나 같을 수는 없구나’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됐던가 봐요. 각자의 가치관이 다른 만큼 좀더 조심하고 존중해줘야겠다 생각이 들어요.”

가슴으로 품고 싶은 네 아이들

셋째 원석군은 조리사가 꿈이고 넷째 원규군은 요즘 한창 멋을 부린단다.

  동갑내기라 동시대의 향수와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게 부부는 즐겁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영화와 음악회를 찾아다니며 데이트도 즐긴다. 가끔은 아이들을 놔두고 둘이 나가 오붓하게 차를 마시는 시간이 부부에겐 무엇보다 값진 시간이다. 두 사람은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뭐 특별한 이야기랄 게 있나요. 그냥 사는 이야기 하는 거죠. 애들 얘기, 옛날 얘기, 남들 얘기,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우리가 한 집 사는 가족이라는 유대감이 강해지잖아요. 그걸 확인하는 게 기분 좋은 거겠죠.”

그렇지만 아직 5년이라는 시간은 허물없는 가족의 단란함을 이루기에는 조금 짧은 시간이라고 두 부부는 덤덤히 인정한다. 민감한 감수성의 아이들과 하나가 되려면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안다. 아직 살갑게 품을 파고들어 오는 데에는 서툰 아이들. 커갈 일만 남은 사내아이들이라 힘껏 안아줄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싶기도 하지만, 부부는 진득하게 기다리며 노력할 생각이다.

“뒤늦게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기란 쉽지 않잖아요. 그건 누구에게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닐 거예요. 지금처럼 서로가 노력한다는 걸 알아주면서, 조금씩 사랑을 보여 가면 되겠지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앞으로 많이 남아있는 것도 시간이잖아요.”

강동씨는 요즘 함께 지내지 못하는 큰 아들과 둘째 아들에게 짬을 내 이메일을 보낸다고 한다. 늦게 얻은 두 아이 모두 어른스러운 구석이 많아 딱히 무얼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난감하지만, 가끔씩 진로에 대해 물으며 아이들 생각을 읽어가려고 노력 중이다. 편지 내용이라야 건강이나 배움,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하는 말이 대부분이지만 글 말미엔 언제나 ‘파이팅’이라는 말 한마디를 꼭꼭 써넣는다. 두 아들들이 알까 싶다. 이 단어가 실은 쑥스러워 차마 하지 못한 ‘사랑한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말이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눈 감으면 밟히는 게 가족이다. 한때는 셋뿐이었던 단출한 가정이 어느덧 여섯 식구라는 듬직한 가정으로 바뀌기까지 어찌 크고 작은 우여곡절이 없었을까 만은 이들은 각자의 그릇대로 이미 느끼고 있을 것 같다. 여섯 식구가 어느덧 한쪽에서 물면 서로가 아프게 물리는, 함께 웃고 웃는 한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글·사진/김혜경 기자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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