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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벽, 허물 수 없을까산업재해 피해자 매년 9만명 중 일터 복귀는 절반도 안돼... 정부 차원 취업지원 서비스 이뤄져야
박경미 기자 | 승인 2006.05.11 13:36

산재노동자를 위해 생겨난 단체가 바로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가 만들어 낸 산재노동자 자활공동체 이다.
지난 3월 7일 오전 11시 3평 남짓한 작은 부엌에 30대 후반의 남자 두 명이 점심식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오늘 메뉴는 매콤달콤 제육볶음과 구수한 된장찌개. 한두 번 해보는 솜씨가 아닌 듯 여간 능숙한 게 아니다.
그런데 주방을 둘러보는 순간 남자의 손이 눈길을 멈추게 만든다. 잰 손놀림과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이는 그는, 손마디가 하나 밖에 없는 절단장애인이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손이지만 누구보다 능숙한 솜씨로 파를 다듬는 이는 바로 강송구(43)씨. 산재로 인해 장애를 입은 그가 점심식사 준비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일하다 다치면 ‘나 몰라라’

강송구 씨는 한쪽 손이 불편한 소아마비환자였다. 그래도 성한 손이 있어 별다른 지장 없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몇 년 전 청천병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제조업에 종사하던 그가 직장에서 사고로 성한 오른쪽 손목을 잘리고 만 것이다. 다행이도 봉합시술은 하게 되었지만 그 후부터 팔꿈치 밑으로는 기능을 상실하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고 수습이 끝나기도 전,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버리자 그는 산재혜택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됐다.
한 손만 쓰던 것도 불편하던 차였는데 성한 손까지 잃게 되었으니 당시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 간다.

“회사가 문을 닫아 버려 산재 혜택은커녕 생계가 우선 걱정이었어요. 성한 손마저 잃게 되었으니 그 당시 심정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죠. 얼마나 괴로웠는지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삶이었어요.”

그래도 먹고 살 일이 걱정이니 하루 빨리 일터를 찾아야만 했다는 강씨는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밀어 보게 되었다고.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냉정했다.

“매번 이력서만 내면 다들 안 좋은 시선으로 쳐다보고 갖은 핑계를 대며 떨어뜨리기 일쑤였죠. 일하다 다친 것도 억울한데, 장애인이 됐다고 일할 기회조차 주지를 않더라고요. 차라리 이런 몸으로는 일하기 힘들다고 솔직히 말해줬다면 상처는 덜 받았을 수도 있죠. 무조건 ‘안 된다’라는 식의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되던지….”

그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밀어 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물론 몇 군데에서는 면접까지 통과한 적도 있다. 하지만 단 며칠을 못가 ‘그 손으로는 앞으로 함께 일하기 힘들 것 같다’며 내쫓기기 일쑤였다고.
그래서 인지 그는 아직 부양가족이 없다. 아니 가족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혼자 먹고살기도 빠듯한 처지에 가족이 생긴다면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최저 임금에 미치는 수준으로 벌고 있어요. 생활비가 모자라다 보니 새벽에 우유배달도 하고 뭐 그렇죠. 이렇게 빠듯한데 누가 나와 함께 살자고 하겠어요. 남들처럼 소박하게 결혼도 하고 싶고 가정도 꾸리고 싶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에게 사회는 냉혹하기만 한 것일까. 그는 “대부분의 산재노동자가 이런 경험을 한다”며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정부 혜택은 그림의 떡인가

강씨 뿐 아니라 산업재해 근로자 김영민(38)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봉제 관련 업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던 그이지만, 허리를 심하게 다쳐 장애1급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정부의 혜택은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매년 9만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당하지만, 일터로 복귀하는 이는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다.
  그는 “산업재해로 인한 장애는 장애급수별 1급에서 7급까지 연금이 나와야하는데 근로복지공단의 자격조건이 되지 않아 그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이런 사실을 알았을 때는 밤잠을 못잘 정도로 억울했죠. 다른 것도 아니고 일하다 다친 것이니까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못준다는데 떼를 쓸 수 있는 노릇도 아니고요. 이제는 그런 혜택 포기한지 오래입니다”라며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또한 그는 “연금만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실토하였다. 병원 치료 과정 중 근로복지공단 측의 일방적 계약종결로 인해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아픔까지도 겪었다고. 노동자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할 공단 측이 도리어 아픔을 주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이런 산재노동자를 위해 생겨난 단체가 바로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이하 산재노협)가 만들어 낸 ‘산재노동자 자활공동체’이다. 산업재해로 장애인이 돼 직장에 복귀하지 못한 근로자들이 하나 둘 모여 어느 새 ‘희망의 일터’가 되었다.

지난 2005년 1월 만들어진 이 자활공동체는 산재 노동자들이 정부의 지원 없이 자신의 힘으로 사업체를 만들었다는 데 그 의미가 크다. 현재 총 상근자 11명과 시간제 근로자 9명 등이 열심히 자활을 향해 발돋움 하고 있다. 이에 산재노협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사업자 등록까지 마친 상태라고 전했다.

처음 생겼을 당시 만해도 단 두 명의 직원으로 시작하던 단체가 지금은 사업도 번창하였고, 정부로부터 주는 고용지원금도 받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산재노협 김재천 대표는 “단체를 운영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래도 정부에서 혜택을 받지 못해 재정상 많이 힘든 상황이죠. 하지만 모두들 열심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때문에 사업을 확장시키려는 계획도 세웠습니다”라며  야심 찬 포부를 밝혔다.

경력 1년차 김남교(50)씨는 건설업에서 종사하다 눈을 다친 후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사고 후 재취업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김씨를 받아주는 일터가 없었단다. 한참의 방황 끝에야 찾은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고.

그는 “다시 일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비록 낮은 임금이지만 이렇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죠. 산재로 일자리마저 잃게 되어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하고 낯을 볼 면목이 없었는데, 이렇게 직장이 생기고 나니 일자리에 대한 감회가 새로워요”라고 말했다.

취업지원 서비스 절실!

산재노동자에게는 노동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생계를 꾸려 갈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취업지원 서비스가 절실 하다.
  이렇게 산재협 자활공동체는 산재 노동자들이 일궈낸 일터이다 보니 대부분 손가락이나 손목이 없는 절단 장애인이거나, 중도에 사고로 인해 장애를 입은 이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이곳에서 하는 일은 주로 봉투를 인쇄해 신문이나 회보 등을 넣고 이를 우편으로 발송하는 단순 노동을 한다. 노동사회 단체 등에서 일감을 받고 있지만 업무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그래도 주 5일제에 하루 7~8시간을 근무하며 최저임금이지만 월급도 꼬박꼬박 나온다. 문제는 바로 근로복지공단의 혜택을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오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산재노협 김갑경 상담부장은 “산재노동자들에게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사례가 근로복지공단의 일방적 종결 사례에요. 치료 중간에 병원비를 줄이기 위해 자기들 멋대로 종결을 시키니 이들이 갈 곳이 어디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근로복지공단에서 만든 내부지침서에 산재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내용들이 산재해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한편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의 한 관계자는 “의료기관의 과잉진료와 환자를 위해 적절한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고 부적절한 장기요양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부 지침서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지침서인지는 확인된 바 없으나, 분명 노동자들을 위한 지침서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근로자들이 노동시장에서 쫓겨나는 어이없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는 데도 구제할 방법 하나 없을까.

김 대표는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매년 평균 9만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당한다고 해요. 그러나 일터로 복귀하는 경우는 절반도 되지 않는 상황이죠. 노동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취업지원 서비스가 절실 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사진/박경미 기자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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