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되는 첫 해이다. 대한민국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이 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요즘 같이 인위적인 환경파괴로 인하여 엘리뇨현상이다, 환경호르몬이다 이상현상이 나타나는 시점에서, 법정 공휴일이 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애석해 한다면 안 될 일이다. 그나마 식목일이 있어 나무라도 심는 이들이 존재했는데, 이제 그날을 기념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이런 마음속의 아쉬움을 감추기 위해서였을까. 비록, 달력에서는 없어졌지만 그날을 꼭 기념하고 싶은 마음에 특별한 곳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정성을 담으면 사랑이 전해집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문을 빠끔히 열자 향긋한 꽃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어떤 꽃인지 분간할 수는 없지만 100평 남짓한 화원에 수놓듯 놓아진 형형색색의 화분을 보니 마냥 기분이 좋다. 남보다 조금 일찍 봄의 정취에 취해있을 즈음, 이곳에서 일하는 이은영 씨가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

“어서오세요. 아직 추위가 가시질 않아 밖에서 꽃을 심기는 무리가 있어요. 지금은 상품판매와 손님이 요구하는 분갈이, 간단한 청소 정도가 전부에요. 농장에 가야 진짜 체험다운 체험을 할 수 있죠.”
막상 할 일을 듣자 ‘이거 너무 쉽게 하겠는 걸’하는 마음에 살짝 미안함이 밀려왔다. 제대로 된 일을 맡아야 할말도 많을 텐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엎어진 물을 주워 담을 수도 없으니 열심히 하고자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렇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가 바로 화분에 물주기다. 그런데 물주기도 다 노하우가 있다며 은영씨가 겁부터 준다.
“우선 화원 안쪽부터 바깥쪽으로 전체에 골고루 물을 한 번 주세요. 꽃마다 성격이 있어 물의 양을 잘 맞춰야 하니 실수하면 안돼요.”

화분에 물주기라면 집에서도 가끔 하는 일이니 뭐 어려울 게 있나 싶었는데, 그래도 시키는 대로 기억을 되살려 정성스레 물을 주기 시작했다. 순서대로 물을 주다 보니 마치 꼭 배고픈 아이가 차례로 밥을 기다리는 모습처럼 보여 절로 미소가 번진다. 라벤더, 라일락, 수국, 아이리스…. 향긋한 꽃향기에 취해 일하러 온 게 아니라 어디 봄 소풍이라도 나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은영씨의 설명에 의하면 꽃의 종류도 가지각색이고 제각기 개성들이 달라 물주는 날도 다 다르다고 했다. 물을 좋아하지 않는 선인장류나 난 종류는 20일에 한 번씩, 반대로 물을 좋아하는 열대식물인 벤자민류의 꽃은 하루에 한 번씩 물을 주어야 한다. 때문에 식물의 특성을 파악하고 식물에 맞는 양의 물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꽃이 물만 준다고 해서 크는 것이 아니에요.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마음같이 정성을 쏟아야만 예쁘게 자라요. 꽃도 자신이 사랑받는지 안 받는지 다 알거든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화원 전체에 물을 주고 나니 양쪽 팔이 저려온다. 이 같은 일을 매일 해야 한다니…. 두 시간 가량 흘렀을까. 처음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다. 화분에 물주기가 끝나고 굽어진 허리를 펴며 화원 전체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다 타고 남은 연탄이 눈에 띄는 게 아닌가.

놀란 모습을 눈치 챘는지 정복석 씨가 다가와 “꽃을 키우기 적합한 온도를 맞추기 위해 난로를 피우고 있다”며 궁금증을 풀어줬다.
그는 “꽃을 키우기 위한 최적 상태는 13~15℃가 가장 적합해요. 요즘처럼 꽃샘추위로 서늘할 때는 일하기 좋지만, 여름에는 찜질방이 따로 없어요. 이곳에서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을 못하죠”라고 말했다.

1년 내내 같은 온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해의 성패가 온도 하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더니, 그런 만큼 이곳 사람들 꽃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눈치 없게 허기가 돌기 시작한다. 때 마침 정씨가 점심을 먹고 다시 시작하잔다. 소박한 찬이었지만 꽃 더미 속에서 먹는 밥은 꿀맛이 따로 없었다.

“분재 한번 해볼래요?”

밥도 얻어먹었으니 눈치껏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드디어 저 멀리서 정씨의 모습이 포착됐다. 손님이 맡기고 간 화분을 분재하느라 손놀림이 바쁜 정씨 곁에 슬그머니 다가가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며 엉겨 붙기 작전을 펼쳤다.

“한번 해보겠어요? 쉽지 만은 않은데….”
정씨가 할 수 있겠냐는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라 자신은 없었지만 이때가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는 생각에 선뜻 나서고 말았다. 분재를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비료와 흙을 골고루 섞어줘야 한다. 삽으로 비료와 흙을 충분히 섞은 후 작업에 들어갔다.

남보다 먼저 봄을 맞이한 박경미 기자. 사진은 분재를 하고 있는 모습.

연꽃잎처럼 피어오른 초록 잎사귀사이로 가느다란 줄기가 인상적인 팔소니나무. 요즘 인기가 많은 꽃 중에 하나란다. 한동안 웰빙 열풍을 타고 산세베리아를 찾는 손님이 줄을 잇더니 언제부터는 팔소니 주문이 많아지기 시작했다고. 그래서 정씨가 밀려드는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미리 분재를 준비해 놓는단다.

분재를 만드는 방법은 다소 복잡하지만 순서대로 따라 한다면 집에서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스티로폼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밑동을 세운 후 미리 섞어놓은 비료와 흙으로 덮어주면 화분 하나가 완성.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화분만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에요. 가위로 여기 있는 잔가지들을 다듬어 보기 좋게 만들어야죠. 자, 어디 솜씨 좀 볼까요?”

정씨가 손에 가위를 덥석 쥐어주긴 했는데, 혹시 가위가 잘못 나가기라도 하면 망치는 게 아닐까 싶어 왠지 마음이 불안하다. 마무리 단계에서는 항상 다듬는 작업을 해야 한단다. 그런데 잔가지가 매끈하게 잘려지지 않으면 상처가 아물지 않고 썩어 들어갈 위험이 있다며 있는 대로 겁을 준다. 가위 잡은 손이 얼마나 떨리던지, 그래도 별 문제 없이 작업을 마쳤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또 다른 일거리가 없을까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은영씨가 장갑과 젖은 수건을 내밀었다. 이곳에 닦을 게 뭐가 있을까 싶은데 잎사귀를 깨끗이 닦아 내란다.

“이제 잎사귀에 먼지를 좀 닦아낼까요? 여기 보이는 잎사귀 있죠? 여기에 먼지와 약품이 묻어있기 때문에 꼼꼼히 닦아줘야 보기도 예뻐 보이고 꽃의 생명도 오래 가거든요. 아마 세 시간은 족히 걸릴 거예요.”

세 시간 정도가 뭐가 힘들까 싶은 마음에 덥석 수건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생각처럼 쉽지 만은 않다. 야들야들한 잎이 금세 찢어질 듯 한 느낌이랄까. 손끝 야물지 못한 기자를지켜보던 은영씨가 일에도 순서가 있다며, 자신을 따라하라고 한다. 왼손으로는 잎을 잡아주고 오른손으로 정성들여 하나씩 닦아 내리면 된단다. 곧잘 따라한다 생각했는데 이내 잎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고야 만다. 무안함을 감추지 못하자 은영씨는 다시 한번 주위를 환기시켜 준다.

‘괜히 와서 꽃만 다 망치고 가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밥값은 하고 가야지.’
몇 번의 반복에 이력이 생긴 것일까. 하나씩 정성을 들이며 닦아 내려가다 보니 제법 노하우도 터득하고, 속도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속 쭈그리고 앉아있으려니 허리에 아프고, 어깨도 결리는 것 같다. 그깟 세 시간하며 큰소리를 쳐놨는데 화원이 어찌나 넓은지 일이 진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은영씨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많이 힘들죠? 겉보기엔 쉬워 보여도 손이 하나하나 가는 일이라 여간 힘겨운 게 아니에요. 정성도 그만큼 쏟아야 하는 일이고요. 우리는 이 일을 3D업종 중 하나라고 불러요.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구두를 신고서는 절대 못하죠. 그만큼 육체적 노동이 필요한 일이에요. 힘든 걸로 말로 하라면 책 한권 내도 모자라는 걸요”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삶의 휴식 같은 나무 한 그루 심었으면…

먼지와 약품이 묻은 잎사귀를 꼼꼼이 닦고 있는 박경미 기자.

  꽃을 만지고 가꾸는 사람들. 화려한 꽃과 매일 같이 함께 있기에 작업환경이 좋아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속에도 다른 일처럼 남모를 고생이 있었음을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만약 체험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의 참된 땀방울을 쉬이 지나쳤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제 각각의 개성대로 화려하게, 또는 소담하게 핀 꽃들과 연초록의 재잘거림이 가득했던 하루. 훈훈한 온실에 다녀온 마음은 어느새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변해있었다.

비록 식목일에 쉬지 못하여 많은 직장인들이 나무심기가 어려워졌다고 외치지만, 달력 안에 4월 5일이 없어지지 않는 한, 나무 한 그루 화분 하나 정도 가꿔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는다면 마음 한켠에 삶의 휴식 같은 나무 한 그루씩 심어보는 것도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글/박경미 사진/최경훈 기자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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