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랑은 아름답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것은 젊은이들만의 특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늙은이가 무슨 이성이며 사랑이란 말인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는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편견과 오만이다.

황혼에 홀로된 이들이 행복을 위해 가장 바라는 것은 ‘재혼’이다. 그러나 이를 보는 사회적 시선이나 가족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더욱이 내 부모의 경우라면 곱게 받아들이지 않는 자식이 많다. 이것은 한 맺힌 노인의 넋두리만은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홀로된 노인들의 ‘행복추구권’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인 재혼’, 삶의 질 높이는 적극적 대안

황혼 결혼의 가장 큰 이유는 외로움. 아무리 자녀가 용돈을 잘 주고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며 효도를 해도 노년기의 외로움까지는 챙길 수 없다는 것이다. 주변여건 때문에 노혼을 원하지 않는 이들도 재혼의 필요성만은 공감한다. 특히 몸이 아플 때 간병인이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심한 소외감을 느낄 때 동반자를 갈구하게 되는 건 당연지사다.

몇 년 전 부인과 사별한 이춘복(63)씨는 “의젓하게 처신하려는 마음과 달리 때로는 외로움이 몰려오데. 세상 떠난 마누라가 퍽 이해심이 넓은 여자였는데 ‘영감! 내 모른 척 할 테니 새 장가 들어 잘 살아’하는 환영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라고 말한다.
홍남식(69)씨는 “노인도 엄연한 남자와 여자이고 ‘사랑’에 대한 욕구를 느껴요. 성욕 역시 기본이라고 할 수 있죠”라고 말한다.

대전광역시 동구 노인복지관 노인교실에 참여한 노인 2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남자는 전원이 이성에 대해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며 성적욕구를 느낀다고 답했다. 70대 여성의 경우만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가물가물하다’고 표현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성적욕구는 노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님이 조사된바 있다.

2년 전 부인과 사별한 김익용(61)씨는 최근 자식들의 권유로 재혼했다. 사별 후 외로움이 심해 우울증까지 찾아온 그를 자식들이 결혼정보회사에 가입 시킨 것. 사업을 해온 터라 경제력도 가지고 있어 배우자도 쉽게 찾았단다. 중산층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그는 경제력과 상관없이 남은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는 배우자를 원했다.

“재혼이요? 살면서 제가 재혼을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했죠. 하지만 전처를 먼저 보내고 나니 자식들이 아무리 잘해줘도 외로움까지는 채워주질 못하더라고요. 보다 못한 자식들이 나서서 재혼을 시켜 준 거죠. 사별하고 난 2년 동안은 정말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남은 여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만나고 나서 인생이 달라졌어요.” 

비단, 황혼 결혼으로 제2의 삶을 사는 이가 이들만 있을까. 모 기업체 회장 김진남(가명·62)씨도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얼마 전 재혼에 골인했다. 10년 전 부인과 사별한 그는 자신과 10살 정도 터울이 나는 뛰어난 외모의 배우자를 찾은 것. 결국 커플매니저의 소개로 몇 번의 만남 끝에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다. 하지만 재산 문제 때문에 자식들 눈치가 보여 결혼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고 김씨는 털어놨다.

“당장 결혼을 하자니 자식들의 반대, 주위사람들의 시선 등 현실적으로 걸리는 것이 많더라고요. 물론 서로간의 믿음이 있긴 했지만 초혼이 아니라 더욱 신중했죠. 결국 서로 알아가는 과정으로 먼저 3개월을 같이 살다 결혼하게 되었어요.”

자식들 반대로 마음의 상처 입기도

실제 사별이나 이혼 등으로 홀로된 노인들의 재혼에 대한 생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재혼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롭거나 동반자가 필요해서, 성적만족 혹은 사랑 때문에, 경제적인 보탬 등을 이유로 재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고 밝혔다.

반면 재혼을 반대하는 이유는 자녀나 가족들의 반대, 체면 때문에, 시중들기 귀찮아서 등으로 대답하고 있다. 직장에서 은퇴하여 사회활동이 축소되고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에서 보내게 되는 노년기에는 서로 위로하고 도울 수 있는 우정이 기본적 욕구로서의 사랑이 필요한 시기이다. 위의 조사를 보면 홀로된 노인들은 재혼에 긍정적이며 욕구도 상당히 높지만 주변을 매우 의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기나긴 시간을 배우자 없이 혼자 사는 외로움을 참아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들이 재혼이나 이성교제를 통해 좀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면 이들의 행복추구권도 존중돼야 한다

한편 노인들의 이성교제에 대한 생각도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인들에게 이성친구와의 적극적인 교제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전북 전주시가 실시한 ‘노인 새사랑 맺어드리기’에 참가한 노인들의 경우 80%이상이 이성교제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노인들의 이성교제가 재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미비한 편이다. 사회적 편견, 경제적 문제, 자녀의 반대 등 걸림돌이 많기 때문이다. 노부모의 재혼에 대해 딸이나 며느리는 비교적 이해하는 편이나 아들은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경우에 반대가 극심하다. 경제력이 부족한 노년층의 경우 자녀가 새 아버지까지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 또, 부유층은 유산 분배 시에 자신의 몫이 감소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실제 황혼결혼전문회사 상담자의 며느리 김혜미 씨는 “아버님이 아들과 한방을 쓰는데 새로 어머님을 모시면 고3과 고1인 딸, 아들이 한방을 써야 한다”며 “지금 대출금 이자도 제때 못내는 판국에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일가친척이나 주위 반응도 아직은 냉담한 경우가 많다. 황혼결혼전문회사 두리실버 회원 이순자(63)씨는 “내가 재혼을 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친척들 귀에 들어갔어요. 친척들이 갑자기 저를 찾아와서 여자가 정조를 지켜야지 부덕하게 다 늙어 무슨 주책이냐며 욕을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한국 노인의 전화 강병만 국장은 “결혼을 결심했다면 자녀가 싫은 눈치를 보이더라도 배우자에 대한 신뢰가 크다면 이는 어느 정도 감안해야한다”고 조언한다. 얼마나 더 산다고 자식, 이웃 눈치 보며 사냐는 것. 강 국장은 “단, 재혼 전 1년 정도 교제기간을 충분히 가져 상대방의 인격을 잘 파악하고 서로의 재산은 어떻게 부담할지 등의 현실적 문제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현명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재혼으로 우울증을 치료한 경우도 있다.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안정돼 있고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결혼생활에서 오는 갈등을 지혜롭게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50대 이후 독신자 가운데는 결혼이나 동거를 전제로 이성교제를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미팅을 주선하는 ‘상록문화교실’의 안성숙 실장은 “남자 쪽이 더 적극적”이라고 말한다. 지난 3월 시작한 ‘상록문화교실’은 현재 회원이 300명 가량. 매주 토요일 모임을 지속하면서 벌써 3쌍이 결혼에 성공했고 동거, 연애를 하고 있는 커플만도 대여섯 커플에 이른다고 한다.

그는 “자녀 입장에서도 혼자가 된 부모를 돌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딸이나 며느리가 부모님의 손을 잡고 ‘스트레스나 푸세요’라며 모시고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몇 달 전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주선한 실버미팅에는 남녀 50명씩 참석해 19쌍이 연결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황혼 결혼, 인식이 새로워져야

조기은퇴와 늘어난 평균 수명으로 인생의 3분의 1이나 차지하는 노년기. 그 기나긴 시간을 배우자 없이 혼자 사는 외로움을 참아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옛말에 ‘아무리 아들 효성이 지극하여도 사나운 아내보다는 못하다’는 말이 있던가!
누구든 배우자와의 사별은 피해갈 수 없다. 홀로 남은 배우자는 많은 고통과 슬픔, 고독을 느끼며 여생을 보내게 된다.

노인들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이들이 재혼이나 이성교제를 통해 좀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면 이들의 ‘행복 추구권’ 역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는 인식의 변화가 요구되는 때이다.

글/박경미 기자 사진제공/김해시복지관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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