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 명일동에 있는 휘트니스센터 에어로빅강당.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젊은이들이 즐겨 듣는 흥겨운 음악이 저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운동에 열심인 사람들 중에 빨간 야구모자에 노란 민소매, 군살 없는 다리를 드러내는 검정색 쫄바지, 그리고 유연한 몸놀림의 한 사람이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끄러운 음악에 몸을 실어 격렬한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올해 68세인 박성규 할아버지. 강당 전체를 누비는 그의 열정적인 움직임이 나이를 무색하게 한다. 돌리고 비트는 특유의 유연함으로 에어로빅댄스를 추고 있는 그의 신나는 은빛 인생을 살짝 엿보기로 했다.

춤에 빠진 ‘은발의 청춘’

노인과 에어로빅? 이 두 단어가 적절한 궁합이 될 수 있을까. 언뜻 보기에는 부조화를 이루지만 노력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듯, 박씨는 고희를 앞둔 나이에 춤의 삼매경에 빠져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자신의 몸을 건사하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나이에 그가 젊은 사람들이 즐기는 에어로빅을 시작한 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평생을 직업군인으로 바쁘게 살았던 그는 은퇴 후 집에만 있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무의미하게 쉬고 있는 삶이 익숙지 않았던 것이었을까. 환갑이 되던 해에 심한 우울증이 찾아온 것이다. 우울증을 극복하려고 갖은 애를 쓰던 중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에어로빅은 그의 삶을 바꿔놓은 계기가 되었다.

“젊은 사람들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것이 그렇게 즐거워 보일 수가 없었어요. 당시 춤이라면 문외한이었지만 음악과 춤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에어로빅댄스가 마냥 좋아 보이더라고요. 그 이후 에어로빅을 배우기 위해 동네 에어로빅장은 전부 찾아 갔어요.”

하지만 뭐든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 당시 환갑이 넘은 적지 않은 나이가 걸림돌이 되었는지 찾아가는 곳마다 그를 문전박대하기 일쑤였다. 결국 여러 곳을 전전하다 수소문 끝에 에어로빅협회를 알게 된 그는 무작정 협회회장을 졸라 지도자과정 수강허락을 받아 냈다.
우여곡절 끝에 에어로빅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4개월의 과정을 수료하기란 결코 녹록치 않는 일이었다. 60평생 동안 굳은 몸은 쉽사리 풀리지도 않았고, 갑작스런 뜀박질은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만들었다. 더욱이 지도자를 양성하는 곳이라 4개월의 혹독한 훈련이 끝나야만 강사 자격증이 주어졌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젊은 사람들을 쫓아갈 수가 없더라고요. 혼자 너무 뒤쳐지는 것 같아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 스스로 계획을 짜고 유연성과 부실한 하체를 키우기 위해 스트레칭과 윗몸일으키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했어요.”

이런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결국 그는 10여 차례의 낙제 끝에 3년 만에 수료증을 거머쥘 수 있었다.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로워요. 3년간의 마음고생을 말로 하라고 하면 책 한권을 써내도 모자라죠. 제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그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아니겠어요?” 

하지만 3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부딪히니 수료증은 종이조각에 불과했다. 어떤 곳에서도 박씨를 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지도자과정을 수료하고도 협회에 남아 수련생들과 함께 에어로빅을 계속 하기를 3년. 그는 그 기간동안 다부지게 여러 동작에 필요한 기초체력을 만들었단다.

운동과 율동을 위한 몸이 완벽하게 만들어졌을 즈음, 드디어 그에게 실력을 입증 받을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협회가 일본에서 펼칠 공연에 그를 포함시킨 것이다. 그가 맡은 종목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힙합. 에어로빅과는 전혀 다른 종목이었지만 기초체력을 다부지게 키운 덕분에 단 한번만 보고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몸이 저절로 리듬을 타고 유연하게 돌아갈 뿐만 아니라 아무리 뛰어도 전처럼 숨이 가빠지지 않았다. 젊은이들 못지않은 체력이 그를 힙합 할아버지로까지 만든 것이다. 여기에는 3년 넘게 젊은 사람들 틈에 끼여 묵묵히 기본 체력을 단련해 온 그의 노력이 바 있었다.

“처음에는 에어로빅이 아니라 거절할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종목이 달라도 유연성을 요구하는 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 거 같아 도전하게 되었어요. 제 생각이 맞아 떨어 진거죠. 처음 접하는 힙합이 어찌나 재밌던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에어로빅과 함께 하니 인생이 즐거워

그렇게 일본에서 첫 신고식을 치룬 박씨. 그것을 시작으로 각종 행사며 대회에 참가해 상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각종 방송과 언론매체에서도 그를 모시기에 바빴다고. 방송에서 박씨는 절도 있는 동작과 파워풀한 움직임을 선보여 아줌마들 사이에 인기가 상당했다. 타고난 입담과 숨은 끼도 발휘해 현재 그는 인기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인사가 되어 각종 문화행사에 게스트로 초청되기도 한단다.

뒤늦게 뛰어 들어 힘들게 거머쥔 까닭일까. 그의 인생에서 이제 에어로빅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청량제 같은 존재가 됐다.
이렇게 후반전 인생의 꿈을 야무지게 이룬 그이지만 지금도 그는 체력관리를 위한 운동을 게을리 하는 법이 없다. 일요일을 제외한 주 6일 매일 2시간씩 운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젠 생활의 일부가 된 운동을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더 피곤할 정도라고 한다. 이런 노력은 그에게 건강한 체력은 물론 정신건강까지 함께 가져다주었다.

에어로빅의 장점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에어로빅을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운동을 너무 안해 유연성이 없어요. 유연성을 기르는데 에어로빅 만큼 좋은 운동은 없지요. 특히 환갑이 넘은 노인이 운동을 하면 젊게 살 수 있어요. 몸이 늙으면 생각도 늙게 마련이지요. 에어로빅을 하면 건강하게 나이를 먹을 수 있어요. 겁부터 내지 말고 일단 시작부터 해보세요. 삶이 달라지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니까요.”

이런 그의 열정과 부지런함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되었다.
지금 다니는 센터에서도 ‘젊은 오빠’ 또는 ‘에어로빅 할아버지’로 불리는 박성규 씨. 뒤늦게 활동을 시작한 이유 때문인지 그는 활동적인 춤에 관해서라면 여전히 몸이 닳는다.

이런 그가 얼마 전부터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에어로빅에 이어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피겨스케이팅.
“경기에어로빅과 피겨스케이팅은 동작 하나하나에 변화를 추구하는 점이 공통점이죠. 변화가 없는 춤은 매번 동작이 똑같아 지루하기 마련이에요. 피겨스케이팅은 동작이 전부 같은 것이 없어요. 에어로빅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죠.”

열정과 함께 여물어 가는 꿈 

그는 체력관리를 위한 운동을 게을리 하는 법이 없다. 일요일을 제외한 주6일 매일 2시간씩 운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이든지 한번 빠지기만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성격이라는 박씨. 그에게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바로 피겨스케이팅을 마스터해 전국체전에 나가 우승하는 것. 그야무진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 태능선수촌에서 코치에게 정식교습을 받고 있단다.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종목이지만 그동안 에어로빅으로 단련된 몸이라 힘들기는커녕 배울수록 재미있어 수업하는 내내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라고.

“변화가 없는 세상은 재미가 없어요. 한 가지 종목을 마스터 하면 빨리 새로운 목표를 찾아야 해요. 그래야 또 새로운 것에 재미를 붙여 사는 재미를 느끼죠. 곧 있을 전국체전이 끝나면 세계은퇴자우승대회에 나가 100m달리기도 도전할 생각이에요. 나이가 많은 것이 약점이지만 대신 에어로빅으로 단련된 체력이 있기 때문에 꼭 1등할 자신이 있어요.”

늘그막에 이런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 특정 분야에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동작 하나하나에 자연스레 마음을 담아낼 수 있어 춤추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박성규 할아버지. 그의 타고난 끼와 열정을 보아하니 앞으로 세운 꿈도 곧 현실로 다가와 이루어질 듯 보인다. 

글·사진/박경미 기자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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