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情) 부부의 퍼주는 '나눔철학'

나눔의 삶을 살고 있는 복사골해장국집 이의종.김성옥 씨 부부.

옛날 옛날에 복숭아꽃이 많이 피는 마을에 마음씨 좋기로 유명한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장터에서 주막을 운영하고 있는 노부부는 동네에 밥 못 먹는 아이들, 혼자 사는 노인들을 보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팔팔 끓인 해장국과 꾹꾹 눌러 담은 밥 그리고 소박한 반찬들을 한 상 가득 차려 배고픈 이들에게 선뜻 내놓았다. 이런 노부부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 마을에는 사시사철 기분 좋은 복숭아꽃 향기가 진동하고 있었다.

복숭아꽃이 만발한 2006년 4월 중순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부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기자가 찾은 식당에는 얼굴 한 가득 복사꽃 미소를 담은 이야기 속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마음 고픈 사람들이여 오라!

이의종·김성옥 씨 부부는 그들의 선행이 언론을 타면서 어느새 부천의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야단법석이야…”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던 이의종 씨는 기자의 끈질긴 인터뷰 요구에 마지못해 “그럼 해장국이나 먹으러 오시든지”라고 어렵게 OK 사인을 보냈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의종 씨의 글.

역곡역에서 도보로 5분여 거리에 있는 복사골해장국집이 이들 부부의 일터다. 얼핏 보면 일반 해장국집과 다를 것 없는 외관이다. 오히려 수더분해 보이는 간판하며 아웃테리어는 소박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해장국집 앞에 섰을 때, 왜 이들 부부에게 ‘정 퍼주는 부부’라는 애칭이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가게 앞 설치돼 있는 작은 화이트보드의 글귀였다.

“카톨릭대학교 중간고사(4.20~ 4.26) 14일 전
오늘도 카톨릭 대학교 중앙도서관에는 뜨거운 열기가 가득합니다. 열심히 준비하여 좋은 성적 거두세요.(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

해장국집과 가까운 카톨릭대학교 학생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메시지였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부부의 따뜻한 정이 전해졌다. 게다가 D-day까지 챙겨주는 꼼꼼함이란…. 한참을 화이트보드에 눈을 뺏기다가 ‘아차!’싶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구수한 뼈다귀 국물 냄새와 손님들의 정겨운 수다에서 고향집 같은 편안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이하는 이들 부부는 예상했던 것처럼 소박한 미소를 지니고 있는, 우리네 따뜻한 이웃의 모습이었다.

부부는 닮는다고, 워낙 퍼주기 좋아하는 사람들인 이의종·김성옥 씨 부부는 젊어서부터 후원회 등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왔다. 하지만 이들 부부가 본격적으로 ‘나눔의 삶’을 실천한 것은 해장국 집을 오픈하면서부터라고. 그 때 부부는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나눔의 삶을 살자’고 굳게 다짐했다.

“장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빚을 진 상태였지. 어렵다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아내와 이 것만은 지키며 살기로 했어. 어려운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말자고. 그래서 그 때부터 어려운 분들께는 무료식사를 제공하고 ‘1% 나눔운동’도 실천하게 된거지.”

현재 복사골해장국집에서는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에게는 무료식사, 65세 이상 어르신께는 음식값을 할인해 주고 있다. 뭐가 남을까 싶지만 이의종씨는 계산하고 따지기 시작하면 ‘나눔’을 실천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또, 나눔으로부터 얻는 보람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바꾸고 싶지 않은 기쁨이라고.

“콩 반쪽도 나눠먹는다는 말이 있잖아. 나누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물질적인 것이 안 된다면 몸으로 할 수 있는 나눔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자기 것만 챙기고,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 사람은 부자로는 살 수 있어도 행복한 삶은 살 수 없다고 생각해…”
한참을 나눔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가 갑자기 식당 안의 화이트보드를 가리킨다. 그 곳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다.

“누구나 나름의 삶을 부지런히 살고 있지만 간혹 마지막 1%가 부족해 희망을 지우려 할 때 어느 누군가 나타나 그 부족한 1%를 채워주면 언젠가 그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1%의 희망을 내밀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족한 1%를 채워주는 귀한 손길입니다.”

그는 화이트 보드의 문구처럼 ‘나눔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복사골해장국집을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손님들 덕이라고 말한다. 손님들이 돈을 내고 먹는 해장국이 때로는 어려운 사람들의 한 끼 식사로, 때로는 소년소녀가장의 학비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곳을 찾는 손님의 70%는 단골손님이지. 그 중에는 카톨릭대 학생들도 있고, 동네 주민분들도 있고. 또, 무료식사를 제공하는 것을 알고 찾아오는 노인 분들도 있지. 우리는 항상 그 분들이 한 끼 식사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처럼 이 곳에서 허기진 마음도 채워서 돌아가시길 바래.”

부부는 이런 생각은 화이트보드의 글귀로 표현된다. 그 글귀에는 언제나 이 곳을 찾는 손님에 대한 애틋한 정을 담고 있는데, 이제 손님들도 ‘마음의 양식’이 되는 부부의 글에 큰 관심을 보인다고. 그들의 글귀에 용기를 얻었다는 실직가장도 있고, ‘감동적’이라며 글귀를 보러 식당을 찾는 손님들도 있다고 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콩 반쪽도 나눠먹는다는 말이 있잖아. 자기 것만 챙기고,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 사람은 부자로는 살 수 있어도 행복한 삶은 살 수 없다고 생각해...

보통의 인간이 윤동주 님의 시 구절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의종·김성옥 씨 부부의 삶의 방식 역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남을 도우며, 자기 것을 나누며 살아온 부부가 하늘을 우러러 자랑스럽지 못할망정 부끄러울 게 뭐 있을까.

“부모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인격이 결정된다고 생각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자아빠로 살면서 호강시켜주지는 못했지만 남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을 짓은 하지 않았다는 거야. 별 볼일 없는 부모지만 존경한다고 얘기해주니까 그게 보람이고 그게 고마운 거지.”

자식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씨 부부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자식을 키우나 봐요”라고 말하는 기자에게 이 씨는 얼마 전 자식 키우는 보람만큼이나 벅찬 보람을 느꼈다며 말을 꺼냈다.

“중·고등학교 학비를 지원해 주는 소년가장이 있었는데, 얼마 전 그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입학했지. 지난 2월에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는데, 그 날 찾아와 선물을 건내며 ‘그 동안 너무 감사했고 자신도 누군가를 꼭 도우며 살겠다’고 말하는 거야. 잘 자라준 그 아이를 보면서 얼마나 큰 보람을 느꼈는지 몰라.”

이 씨는 그 소년가장의 손을 꼭 잡으며 ‘열심히 살다 힘들면 오라’는 말을 전했다. 역시나 정감어린 말 한마디를 잊지 않는 따뜻한 모습이었다.

생업 챙기랴 봉사 활동하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 씨지만 올 해 새로운 분야에 도전장을 냈다. 바로 인근 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장 활동을 시작한 것. 아침마다 건널목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은 물론 급식비를 내지 못해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등 학교에서 그의 역할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학교에 들어가서 활동하다보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더라고. 소년소녀가장이 아니더라고 어렵게 사는 아이들이 많아. 정부가 해주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지역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을 더 챙겨야지.”

그는 사회를 발전시키고, 투명하게 하는 것은 ‘시민의 힘’이라고 믿는다. 작은 힘이지만 하나하나 모이면 큰 물결을 이룰 수 있고 결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여운동’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꼭 봉사가 아니라도 좋아. 스스로가 소신을 갖고 무엇인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으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고, 실천하는 거야. 그게 민주주의고, 그것이 곧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라고 믿어.”

죽는 그 날까지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의종·김성옥 씨 부부. 그들은 자신의 것을 나누어 남을 돕고 있으면서도 ‘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나누는 삶, 참여하는 삶이 결국 우리 사는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노부부의 ‘나눔철학’에는 흔한 진리지만 뼈해장국 만큼이나 깊은 맛이 우러나고 있었다.

글·사진/안주영 기자

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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