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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줄 모르는 만학의 꿈"그래도 한번 해 보고 싶다니까요"
장애로 포기한 학교교육, 20년 간 접어둔 배움의 꿈 펼치며 대학 간 사연
김혜경 기자 | 승인 2006.06.19 19:46

5월의 대학 캠퍼스에는 특별한 활기가 넘친다. 한결 가벼워진 젊은이들의 옷차림에서, 시끌벅적 붐비는 교정 곳곳의 부산스러움에서 대학 특유의 생동하는 에너지가 한 없이 뿜어져 나온다. 이 넘쳐나는 에너지의 한복판에서, 힘든 몸짓으로 몇 값 절의 노력을 들여 대학생활을 해 온 한 사람이 있다. 뇌성마비 1급의 민지영(30)씨. 그는 학교란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닐 수 있는 곳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힘들게 확인해 온 의지의 대학생이다. 배움의 기회를 얻기까지 무수한 고개를 넘어왔을 그의 식지 않는 배움의 열기가 궁금하다.

 

인생방향 바꿔 준 특별한 만남
지영 씨는 나사렛대학 미디어영어지도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늦깎이 대학생이다. 배움의 시기를 두고 이르고 더딤을 따지는 게 헛되기는 하지만서도 스물여덟이 되던 해에 04학번으로 입학했으니 일반에 비추어볼 때 제법 늦은 나이의 대학진학인 셈이다.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겠지만, 사실 지영 씨는 대학에 들어가기 이전까지는 정규교육을 한번도 받아본 적 없는 ‘무취학자’였다고 하니 늦깎이 학생이라는 말이 이보다 적격일 수 없다.
지영 씨가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건 심각한 장애 때문이었다. 민제홍(59)·정진숙(55)씨 사이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쌍둥이로 태어난 그였지만, 탈 없이 자라던 큰 아이와 달리 생후 5개월이 지나도록 목을 가누지 못하는 둘째 아이가 뇌성마비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부부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경험해야만 했다. 부부의 눈에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내보내기엔 너무도 약하고 무력했다. 몸의 어느 근육 하나 제 의지로 부릴 수 없는 딸을 보며, 아버지 제홍 씨는 일찌감치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학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아이에게, 헛된 꿈과 상처만 안겨줄 것이라고, 당시 제홍 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지영 씨는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해야 했다. 틈틈이 어머니와 언니가 가르쳐 준 간단한 수식과 국어를 익히며 학교를 향한 막연한 동경을 품은 채로.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TV를 봐도 배움에 대한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지만, 자신의 요양을 위해 서울 생활을 접고 귀향한 부모에게, 그는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을 오래도록 하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공부를 시작 한 건 스무 살 무렵의 일이다. 신경절제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95년, 같은 병실을 쓰던 뇌성마비의 여대생을 만나고부터의 일이었다.
“같은 처지라 그런지 참 잘 통하던 언니였는데, 제가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는 걸 알고는 몹시 마음 아파했어요. 퇴원하는 날까지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꼭 학교를 가라고 당부해 준 고마운 사람이죠. 몸이 불편할수록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자기도 어렵게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요. 그 말을 들은 후부터 저도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어요.”
그때부터 끈덕지게 아버지를 졸랐다. 처음엔 그 몸으로 무슨 공부냐 나무라던 아버지도 딸의 간절한 소망에 두 손을 들어 주었다. 그때부터 검정고시를 목표로 차곡차곡 기초를 밟아 나갔다. 꾸준히 홈스쿨링을 해 온 덕분에 초등학교 과정은 4개월 만에, 중학교 과정은 1년 만에 통과할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 과정만은 쉽지 않았다. 암기 과목이야 이해가 빨랐지만 단순히 공식을 외우는 것만으로는 답을 낼 수 없는 수학이 최고의 난제였기 때문이다. 복잡한 계산을 모두 암산으로 처리하는 건 불가능 했다. 과락이 있던 터라 그렇게 2년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남들처럼 필기를 해가며 문제를 풀어나갈 수 없는 자신의 몸이 야속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고등학교 검정을 통과하기 까지는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한다. 대학진학을 이루기까지는 얼마나 더 진한 노력과 고통이 따랐을까 짐작이 간다.

지영씨가 직접 그린 수채화, 그가 그린 그림들은 모두 이렇게 탁트인 산이나 들, 강과 바다 등 드넓은 바깥세상을 담아내고 있다.
 

기러기아빠와 열혈어머니의 뒷바라지
지영 씨는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 백방으로 뛰어 준 어머니가 없었다면 오늘에 자신은 없었을 거라 말했다. 처음 몇 년 간을 필요한 준비를 하느라 서울에 있는 복지관을 부지런히 오가야 했는데, 당진에서 서울까지의 먼 길을 매일같이 딸을 싣고 달렸던 진숙 씨다.
“처음엔 서울로, 나중엔 대학이 소재한 천안으로 번번이 저 때문에 이사를 다니셨어요. 당진에 계시는 아버지는 저 때문에 10년 째 기러기아빠 신세고요. 이래저래 저 때문에 고생만 하시는 것 같아 늘 죄송하고 감사하고 그래요.”
자식의 교육을 위해 두 부모가 벌인 각고의 노력이 맹모삼천지교를 떠올리게 한다. 여지껏 딸의 교육을 늦춘 게 미안스러워 더욱 그러하리라 싶다.
“지영이가 학교에 다니겠다고 마음먹은 걸 알고선 그 동안 학교에 안 보낸 게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몰라요. 어린 게 얼마나 책가방을 매고 싶었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나더라고요. 안스러운 부모 마음에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서 괜히 공부할 시기만 놓치게 만들어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는 건 아닌지…. 이제라도 아이가 열심히 해주니 성심성의껏 밀어주고 싶어요.”
그래서일까. 이제 진숙 씨는 더 적극적으로 딸의 공부를 돕는다. 등하교를 함께 해 온 것은 물론이요, 딸이 수업을 듣는 동안 대학에 딸린 평생교육원에서 4학기 째 영어수업을 듣고 있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부족한 지식을 서로 묻고 답하며 요즘 배우는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단다.
힘들게 얻어낸 지영씨의 학교생활도 궁금하다. 그가 다니는 나사렛대학은 재활복지 특성화 대학으로, 지영 씨처럼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도 상당수 있다. 서울 내 다른 대학도 고려해 봤지만 시설과 교통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해 지금의 대학을 선택하게 됐다.
좀더 깊이 있는 학업을 하게 된다는 기대도 있었지만 지영 씨를 가장 설레게 한 건 ‘정식으로’ 학교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처음 입학해선 끼리끼리 어울리는 대학문화에 실망도 했다는 지영 씨. 장애를 지닌 자신에게 선뜻 다가오지 못하는 친구들에게서 서운함도 느꼈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며 이제는 한결 너그러워진 모습이다.
매번 장학금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열심인 그의 학구열은 과에서도 아주 유명하다. 다른 친구들처럼 동아리 활동에 열심일 수는 없지만 대신 누구보다도 학업에 열심인 그는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교수를 찾아가 질문을 쏟아낼 만큼 열혈학도다. 주로 전공지식과 진로에 대한 문의가 많다. 그녀의 대학공부가 단순히 학문수양의 차원에만 머물지는 않는 모양이다.
“졸업 후에는 어린이 영어교제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요. 직접 현장을 찾아가 가르치는 건 힘들지만 인터넷 등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할 수 있잖아요. 주위 사람들은 과연 이 몸으로 할 수 있을까 염려하기도 하지만, 기술과 제도만 받쳐주면 가능한 일이라 생각해요.”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중증장애의 몸으로 타인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여겨온 주위의 인식들이 그에게는 덮어놓고 가해지는 폭력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능력이 안 되서 할 수 없기 보다는 주위 여건이 안 되서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장애인들에게는 훨씬 많기 때문이다.

“유학 가 더 넓은 무대 경험하고 파”

요즘 그는 더 깊이 있는 공부에 목마르다. 꿈을 위해 좀더 넓은 무대에 나가 영어실력을 키우고 싶은 게 새로 생긴 욕심이다. 너도 나도 다 연수며 유학을 떠나는 마당에, 전공이 영어인 그녀가 애가 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학까지 밀어준 부모님에게, 몸도 성치 않은 딸을 좀 더 밀어달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고. 운전수로 일 하며 힘들게 뒷바라지 해 준 아버지에게는 더더욱 죄송할 따름이다. 드러내놓고 하는 칭찬에는 인색하지만 그가 학업에 열을 올린 지난 10년 동안 뒤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였기에 미안함은 더 하다. 제홍 씨는 딸의 해외원정만은 극구 반대다. 돈도 돈이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겪을 딸의 수난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녀라고 왜 모를까. 우리말로도 잘 전달되지 못하는 의사를 외국인에게 전달하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말이다.
“하지만 꼭 가고 싶어요. 제 꿈을 이루려면 유학이 꼭 필요할 거 같아요. 당장엔 힘들겠지만 나중엔 꼭 저에게 도움이 되어 돌아올 거예요. 언어의 장벽이요? 한국에서도 늘 마주친 건데 새삼 크게 두려울 건 없잖아요.”
웃으며 한 말이지만 그의 뒷말이 가슴 한 켠을 씁쓸히 할퀴고 간다. 
처음 몇 달은 적응하려면 랭귀지 스쿨을 다녀야겠지만 어느 정도 되면 정식 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며 미국이나 캐나다를 희망한다고 말하는 그의 꿈은 어느새 구체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아무쪼록 그의 당찬 열의가 부모의 근심까지도 꺾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늦었다는 생각은 안 해요. 웬만큼 늦어야 늦었다는 조바심도 들죠(웃음). 지금은 그냥 어렵게 얻은 기회인만큼 열심히 최선을 다해낼 뿐이에요. 바람이 있다면 장애인도 걱정없이 공부하고 진학할 수 있는 교육풍토가 마련됐으면 하는 거예요.”
장애인들에겐 대학 이전에 배움의 기회 자체가 쉽게 얻어 내기 힘든 ‘싸움’이라는 사실을 서른 살 삶을 통 털어 보여 주었던 지영 씨. 멋지게도 인터뷰 내내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도전의 말이었다. 남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붙이며 모두 안 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는 자꾸 한번 해보고 싶단다. 그런 그를 보며 또 한번 생각한다. 그가 해내기엔 무리라고 생각해 온 많은 것들이, 사실은 우리가 지어낸, 근거 없고 무례한 ‘허상’은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가 한번 해 보겠다는데, 할 수 있다는데, 이제 그만 거기서 만족하지 그러냐는 말 따위 감히 누가 할 수 있을까 싶다.

글·사진/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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