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1일 경기도 의정부의 경기북부아동일시보호소에서 만난 유진(가명·7)·혜진(가명·4)자매. 언뜻 활달해 보이는 두 아이지만 남모르는 상처를 가슴 속 깊이 가지고 있다. 막노동을 하는 아빠 손에 이끌려 몇 달 전 아동일시보호소로 들어온 자매는 부모의 보살핌을 잊고 산지 오래다. 1년 전 아빠와 이혼하고 가끔씩 보호소로 전화를 걸어오던 엄마와는 어느덧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 그런 엄마가 밉지도 않은지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물어보자 대뜸 ‘엄마’라고 대답한다.

무관심 속에 내몰리는 아이들

이렇게 딱한 사정을 가진 아이가 비단 이 자매뿐일까. 9살인 남호(가명)도 얼마 전 아동학대예방센터의 신고로 보호소에 맡겨졌다. 활달한 또래 아이들과 다르게 남호는 낯선 사람을 보면 멀뚱멀뚱 눈치만 살피고 말을 하지 않는다. 보호소에 온지 50일쯤 되어 조금 안정을 찾긴 했지만 여전히 부모의 학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큰소리로 말하는 사람만 봐도 울먹이며 빌기부터 한단다. 그도 그럴 것이, 보호소에 왔을 당시 남호는 부모에게 여기 저기 맞아 온몸이 다 멍 투성이였다고. 이제 멍 자국은 많이 아물었지만 정작 더 큰 아픔은 보이지 않는 곳에 그대로 남아있다.

신생아의 경우 환경에 특히 민감해 시설에 들어와 1, 2주 정도 앓는 일이 허다하다.

이렇게 부모로부터 내몰린 아이들은 대부분 아동일시보호소에 맡겨지고 있다. 지난 99년 문을 연 경기북부아동일시보호소에도 경기도 지역에서 발생한 미아, 기아들이 약 40여 명이 보호 돼 있다. 미혼모가 버리고 간 신생아부터 가출 청소년인 중·고등학생까지 포함돼 있어 연령 때도 다양하다. 단순 미아의 경우, 부모를 찾아 귀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버려진 아이들은 이곳에서 약 3개월간 머물다 보육시설이나 입양기관으로 보내진다.

경기북부아동일시보호소 김영희 사무국장은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미혼모 아동, 아동학대 아동, 방임아동 등이 대부분이에요. 24시간 시설이기 때문에 경찰서나 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아이를 긴급하게 데려오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가슴에 평생 남을 상처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들어온다. 때문에 보호소의 생활지도사들은 규율보다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다. 
아이들은 대부분 집 앞, 공원, 유흥가, 공중 화장실 등 버려진 장소도 다양하다. 또 아이를 낳자마자 병원에 버려두고 도망가는 기막힌 경우도 있다고.

하나같이 ‘아이를 다시 찾으러 오겠노라’는 편지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버려진 아이를 찾아오는 부모는 거의 없다. 또, 보호소로 직접 아이를 데려와 맡기고 가는 부모들도 많아 매일 서너 명의 아이들이 생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다. 이런 경우는 생활고 때문에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이혼가정이 대부분이다.

김 사무국장은 “전부 사정이 딱한 아이들이라 한 명 한 명 사연을 듣다보면 가슴 아플 때가 많아요. 아이들이 눈에 밟혀 어떻게 버렸을까 생각하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부모가 생활고에 시달려 할 수없이 이곳에 맡겨진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신생아인 경우는 특히 환경에 민감해 시설에 들어와 1,2주 정도 앓는 일도 허다하다고.
보호소의 이정희 상담원은 “환경이 갑자기 바뀌어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에요. 큰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처음 오면 2~3일 정도는 하루 종일 울고 또래의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해 주눅이 든 채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계속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볼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죠”라고 말한다.

버려진 아이들의 천사 엄마, 생활지도사

그나마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생활지도사들이 있어 아이들은 정에 고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다고. 총 11명의 생활지도사로 이루어진 이들은 비록 3개월의 짧은 기간이지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4년째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미자 생활지도사는 하루에 8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혼자 돌보고 있다. 아직 미혼이지만 아이들 돌보는 일에 있어선 누구보다 베테랑이다. 3개월 후 다른 곳으로 옮겨져야 하는 아이들이 최대한 단체생활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그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8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혼자 돌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어린아이 같은 경우엔 한 명 한 명 하루 종일 안아줘야 하는데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워요. 사랑이 부족해 울기도 하고 병이 나기도 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플 때가 너무 많아요.”

매번 아이들과 정이 들만 하면 맡는 아이들이 바뀌어 마음이 아프지만 일단 맡겨진 아이는 자신의 아이처럼 사랑으로 돌본다. 처음 이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정이 든 아이와 생이별해야 하는 상황이 가장 힘들었다고.

어린아이 같은 경우 한명 한명 하루종일 안아줘야 하는데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게 가장 안타까워요. 사랑이 부족해 울기도 하고 병이 나고 아이들을 볼때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아이들과 매일 생활하다보면 자연스레 제가 엄마인 줄 알아요. 어렵게 적응한 아이들과 헤어지는 일이 처음에는 가장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곳을 떠나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위로가 되더라고요.”

4년이라는 기간동안 김 생활지도사에게 이렇게 가슴 아픈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만큼 아이들을 돌보면서 얻은 보람도 컸다. 한번은 바깥세상을 모를 정도로 방안에만 있던 방임아동이 6개월의 치유과정을 거치면서 건강해졌단다. 김 생활지도사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또, 구석에 웅크린 채 눈치만 살피던 아이들이 자신의 손길 속에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웃기 시작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는 입양을 진지하게 고려해 본적도 있을 정도다. 아직 미혼이라 입양자의 자격이 되지 못하는 그는 결혼을 해 기회가 된다면 입양을 하고 싶다고 한다.

헤어지는 순간은 아쉽지만, 이곳 아이들 모두 좋은 가정으로 입양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그. 이런 생활지도사의 순수한 사랑이 있기에 이곳의 아이들은 오늘도 새로운 행복을 기다리며 웃을 수 있다.

잠시 맡겨 둔 것뿐인데…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작년 말까지 각종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진 아이는 4,706명. 이 가운데 부모의 실직과 이에 따른 빈곤, 부모 학대 등의 이유로 맡겨진 아이가 전체의 55%인 2,608명을 차지했다. 또 미혼모가 아이를 낳고 감당하지 못해 맡긴 경우가 1,388명으로 29%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사회에서 내몰리는 아이들은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보호소에 맡겨져 친부모를 기다리거나 입양 되어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된다.
김영희 국장은 “보호소에 오는 아이들이 TV, 신문 등의 매스컴에서 보도 되는 것처럼 모두 버려진 아동은 아니에요. 생활고에 시달려 잠시 맡기는 부모들도 있죠. 그런 부모들은 아이를 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맡겨 둔 것뿐이에요. 하지만 이곳의 아이들이 점점 ‘버려진 아동’으로 인식 되다보니 아이를 찾고 싶은 부모도 죄책감에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때가 가장 안타까워요”라고 말했다.

사회에서 잠시 내몰려 가슴에 한 아름 상처를 받은 날개 잃은 천사들. 이 아이들이 아픔을 말끔하게 치유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소망 본다.

 글·사진/박경미 기자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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