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목련, 개나리 할 것 없이 봄꽃들이 온통 도시를 뒤덮은 4월, 봄 햇살을 닮은 12번째 복지사를 만났다. 정신장애인 복지시설인 태화샘솟는집의 김정희 복지사가 그 주인공. 올 해로 복지사생활 5년차에 접어든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해피바이러스가 되고픈 김정희 복지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봤다.
 
“미꾸라지 같은 사람 되고 싶어요”

햇살 눈부신 4월의 포근한 날씨 때문일까. 아니면 얼굴 가득 정겨운 미소를 담은 사람들 때문이었을까. 봄날의 태화샘솟는집에서는 기분 좋은 향기가 솔솔 피어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5분여를 기다려 만난 김정희 복지사는 환한 미소와 상냥한 말투로 반갑게 기자를 맞이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많이 접하게 되는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직업이잖아요. 회원들의 고민을 상담하다보면 속상하기도 하지만 항상 웃으려고 노력해요” 그녀가 이처럼 밝은 미소를 지니게 된 것도 이 곳 회원들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장애를 가진 회원들이지만 그들이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웃음이 많아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웃을 수 있다는 것, 굉장한 용기 아니겠어요?”

사회복지사로 활동한지 어언 5년. 하지만 김정희 씨가 처음부터 사회복지사를 꿈 꾼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가 우연히 사회복지 관련 수업을 듣게 되었고 그 때부터 목표가 바뀌었다고.

“어려서부터 ‘마음이 아픈 이들을 돌보겠다’라는 생각을 해왔어요. 그래서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사회복지수업을 듣고 나서 필드에서 아픈 이들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직업이 사회복지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가 일하는 태화샘솟는물은 정신장애인 전문 복지기관이다. 어릴 적 꿈대로 ‘마음이 아픈’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샘이다. 그렇기 때문에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냉담한 시선과 잘못된 인식을 온 몸으로 느낄 때마다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정신장애인은 ‘뇌가 아픈 사람’일 뿐인데도 사회에서는 ‘미쳤다’ 혹은 ‘신들렸다’ 등의 말로 그들을 외면하고 기업에서도 효과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원을 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물론 지원금이나 기부, 봉사활동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죠. 또, 정신장애인 중에는 겉으로 봐서는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는 회원들도 있는데 무조건 ‘장애인’이라고 단순 업무의 파트타임 일자리마저 주지 않는 업주들도 많습니다.”       

  현재 태화샘솟는물에서는 이처럼 취업이 쉽지 않은 정신장애인들의 사회적응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임시취업프로그램’를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복지관 내부 커피전문점에서 커피 만드는 법, 돈 계산하는 법, 설거지 하는 법, 손님 맞이하는 법을 훈련시키는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지난 해 김정희 복지사가 이 프로그램의 지휘관 역할을 맡았다. 말이 지휘관이지 회원들과 함께 커피를 만들고, 설거지 하고, 계산하고, 서빙을 하는 역할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회원들을 데리고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단다.

“시골에서 30살까지 교육을 받지 못해 글도 모르는 분이 계셨는데 누구도 이 일을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어려운 커피이름을 다 외우고, 주문받고 커피 만들고 하는 업무를 다 소화해내더군요.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못하는 장애인일 뿐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상인들의 오만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는 ‘어떤 복지사가 되고 싶은지’ 궁금해졌다. 김정희 복지사는 ‘미꾸라지와 같은 열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미꾸라지?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그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물을 흐린다고 말하잖아요. 나쁜 의미로 쓰이는 말이기는 하지만 미꾸라지처럼 작은 존재가 큰 공간을 흐리는 것처럼 역으로 작은 한 사람의 힘과 열정이 사회에 좋은 변화를 가지고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마중물의 ‘까페지기’를 꿈꾼다

김정희 복지사의 업무는 회원들과의 상담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내 고민은 누가 들어주지?’라는 의문이 생기곤 한다. 그 때마다 그에게 힘이 되는 건 함께 일하는 선배들이라고.
“관장님과 과장님을 보면서 가끔은 위로받고 또 가끔은 자극이 되요. 정말 인간적이면서도 일에 있어서는 완벽을 추구하시죠. 특히 입으로 지시하기 보다는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한 저를 느낍니다.”

특히 그가 선배들에게 배우고 싶은 점은 ‘일에 대한 열정’, ‘사람에 대한 열정’이다. 오랜 시간동안 끈기를 가지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회원들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열정이 충만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그는 언제나 인간으로서, 복지사로서 열정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그의 꿈은 달콤한 유토피아 같은 느낌이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까페를 차리고 싶어요. 정신장애인들이 함께 일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생각이에요. 그래서 이 분들이 시설에만 갇혀있지 말고 사회에서 일도 하고 정상인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평범한 일상의 희노애락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까페 이름을 무엇으로 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그는 펌프로 물을 퍼 올릴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윗구멍에 붓는 물인 ‘마중물’이라는 이름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많은 물을 퍼 올리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인 마중물처럼 제가 운영하게 될 까페 역시 장애인과 사회의 연결통로로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또 이 까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사는 평등한 사회가 되길 꿈꿔봅니다.”

부족한 자신으로부터 누군가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고, 그 기쁨 때문에 이 길을 계속 가고 싶다는 김정희 씨. 멀고 험한 길이더라도 때론 흔들리고 때론 넘어지며 꿋꿋이 나아가겠다는 그의 열정에서 당찬 사회복지사의 아름다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글·사진/안주영 기자

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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