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햇살이 눈부시던 지난 4월 28일, 출산을 앞두고 있는 미혼모 김신희(19)양을 만났다. 임신 9개월째에 접어든 그녀는 불러온 배를 감당하기 어려워 보일 정도의 작은 체구에 앳된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려서부터 할머니 밑에서 컸다는 신희 양은 언제나 엄마 아빠의 부재에 큰 상심을 느끼며 자랐다. 그러던 중 자신을 따뜻하게 보살펴주던 한 남자를 알게 되었고 유부남인줄 알면서도 그 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하지만 어린 소녀가 태어나 난생 처음 느꼈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임신을 했고 예정된 것처럼 그로부터 결별 통보를 받았다.

처음에는 혼자 버려졌다는 절망감에 자살시도까지 했다는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아이와 함께 죽느니, 아이와 함께 살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아이만 포기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유혹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로 인해 생긴 뱃속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죠. 비록 제 사랑을 받으며 클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어느새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진다.

5월 10일 경기도의 한 산부인과에서 다시 만난 신희 양은 생후 3일 째의 딸을 안고 있었다. 3.6kg로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는 큰 눈망울이 엄마를 쏙 빼 닮아 있었다. 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병원 안의 산모들과 달리 신희 양은 줄곧 슬픈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그 날은  딸을 입양기관으로 보내기로 한 날이었다. 입양기관의 사회복지사가 그녀에게 “오늘이네요. 마지막으로 한번 안아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무 말도 없던 그녀가 끝내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하다...미안하다...그리고 사랑해...엄마를 용서해줘...”
그렇게 한 아이가 자신을 낳아준 엄마와 작별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

경기도의 한 입양기관 사무실. 거기서 만난 이영희(39) 씨는 벌써 5년째 위탁모 활동을 하고 있다. 무작정 아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이 일 덕분에 영희 씨는 최근 우울증까지 앓았다고 했다. 바로 6개월 동안 자식처럼 돌봤던 영준이와의 생이별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얼굴은 우울증이 무색할 정도로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은 그래도 기쁜 날이에요. 또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날이잖아요. 비록 임시 엄마이기는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날들은 제게 너무 행복한 시간인걸요.”

20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사회복지사가 한 아이를 안고 들어왔다. 영희 씨는 기다림이 너무도 지겨웠는지 한걸음에 달려 나간다. 어느새 그녀 품에는 생후 일주일의 사내아이가 안겨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은 그 어떤 엄마보다 더 밝게 빛난다.
“어느 때는 아이의 입양부모가 나타나지 않길 바란 적도 있었어요. 조금만이라도 더 함께 지내고 싶었으니까요. 오늘 만난 이 아이와도 언젠가는 헤어지겠지만 그 시간동안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어요.”
그렇게 한 아이가 두 번째 엄마와 만나고 있었다.  

세 번째 이야기

5월 12일 한 입양기관 사무실 안. 10년 전 아들을 낳았지만 딸이 너무나 갖고 싶었던 김진철(39)·홍성미(38) 부부. 그들은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8년 가까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딸을 가질 수가 없었던 부부가 오늘 드디어 딸 현진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생후 10개월인 현진이는 엄마 아빠를 알아보기라도 하듯 생긋생긋 백만불짜리 웃음을 지어 보였다. 부인 성미 씨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현진이의 얼굴에 연신 자신의 볼을 비벼댔다.

“너무 감사하죠.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나름대로 교육도 받고 많이 준비했어요. 기다림이  지루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안아보게 되니 그 어느 때보다 기쁘고 감격스러워요. 현진이가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거예요.” 남편 진철 씨도 아내와 현진이를 번갈아보며 감격스러운 듯 말을 잇지를 못한다.

성미 씨는 말한다. “입양은 정말 우리에게는 큰 선물이에요. 현진이를 낳아주신 엄마와 지금까지 키워주신 엄마에게 너무나 감사해요.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지만 입양도 내 아이를 낳는 것과 다름없는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절실히 깨닫고 있어요.”
그렇게 한 아이가 가장 믿고 의지할 세 번째 엄마와 만나고 있었다.

5월 11일은 입양의 날, 1+1의 의미 새겨

지난 5월 1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입양의 날을 맞아 ‘제 1회 입양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보건복지부 주최, 대한사회복지회 주관으로 열린 이 날 행사는 국민들에게 ‘입양의 날’을 알리고 사랑과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 입양을 통해 가족의 품에서 자랄 수 있게끔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입양의 날은 건전한 입양문화 정착과 국내 입양 활성화를 위해 지난 해 3월 발의된 ‘입양 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 중 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제정된 날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매년 5월 11일을 입양의 날로 정하고, 입양의 날로부터 1주일을 입양주간으로 정하고 있다. ‘5월 11일’ 안에는 가정의 달 5월에 한 가족(1)이 한 아동(1)을 입양하여 건강한 새로운 가족(1+1)으로 거듭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입양의 날’ 행사는 정지영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보건복지부 유시민 장관, 대한사회복지회 이승환 회장 외 입양가족 및 관계자 1,000여명이 참여했다.

유시민 장관은 “국내 입양으로 어린이들이 보호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살게 해줘야 한다”면서 “입양의 날이 개정된 만큼, 정부도 입양을 장려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행사에는 국내 입양 활성화와 입양문화 개선에 힘쓴 이들에 대한 시상도 있었다. 대통령상은 공개입양을 국내에 도입하고 홍보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입양홍보회 한연희 회장에게 돌아갔다. 또 장애아동 2명을 입양하고 자원봉사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이준희 씨와 34년간 입양기관에 근무하면서 국내 입양 활성화에 적극 나서온 동방사회복지회 김영복 사무총장이 각각 국무총리상을 수여했다.

이 밖에도 입양 부모인 탤런트 신애라 씨, 홀트아동복지회 홍보대사인 연극인 김진아 씨 등이 참석해 사랑의 편지 등을 낭송했고, 기념식에 이은 2부 행사에서는 베세토 오페라단의 오페라 공연이 이어지는 등 흥겨운 입양한마당 축제가 펼쳐졌다.

세계 최대 고아수출국, 부끄러운 현실

해외 입양 50년이 지나도록 우리나라는 여전히 ‘고아수출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입양 아동 수는 3,562명이다. 이중 59%인 2,101명이 해외로 입양되었고, 국내입양은 절반에 못 미치는 1401명을 차지했다.

대한사회복지회 기획홍보실의 이유미 씨는 “매년 2,000여명의 아이를 수출하는 우리나라가 과연 세계 10위권 무역대국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정부가 나서 국민 인식 개선에 힘쓰고 입양 지원책을 내놓을 때”라고 꼬집었다. 

한국입양홍보회 측은 “90년대 30%에도 못 미치던 국내 입양률이 최근 들어서 40%대를 넘어섰다는 것은 그래도 과거보다 입양에 대한 편견이 줄어든 것으로 평가한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거의 늘고 있지 않은 장애아 입양”이라고 강조했다. 

입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아들의 입양은 여전히 외면 받고 있다는 것. 실제로 장애 아동의 해외 입양이 700여명인 데 비해 국내 입양은 20명을 밑돌고 있다.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50여 년간 국·내외로 입양된 장애아동은 모두 3만 7557명으로 이 가운데 0.7%에 불과한 281명만이 국내 가족에게 입양됐다.99%가 넘는 장애아동은 해외로 보내졌다. 최근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입양된 장애아동 3805명 중 국내입양은 84명으로 2%에 불과하다. 여전히 98%의 장애아동이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

장애인 입양률이 이처럼 낮은 것은 입양을 사회적 공동책임이 아닌 부모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데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홀트아동복지회 관계자는 “입양을 하는 순간 모든 게 부모 책임으로 돌아가다 보니 부모님들이 가장 염려하는 부분이 바로 아이의 건강이다. 때문에 입양 전 위탁을 맡았던 가정이나 장애인 시설에서 활동을 하던 분들이 정이 들어 장애아를 입양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장애아동이 입양되기는 힘든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입양 활성화 위해 정부 지원책 마련해야

입양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보다 ‘경제적 문제’이다. 당장 아이를 입양하려면 입양기관에  수 백 만원의 알선수수료부터 내야한다. 이처럼 큰 맘 먹고 입양을 실천하려 해도 경제적 부담을 극복하기란 쉽지가 않다.
입양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재정지원이 시급하다고 입양기관 관계자들은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아 세계 최저 출생률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의 사회 풍조 속에서 입양아를 키운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정부의 지원정책 또한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으니 말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 입양 아동의 보육료 지원을 추진했지만 국회에서 예산 11억원이 전액 삭감됐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입양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보육료 지원을 할 필요가 없다며 예산을 삭감했다”며 “그 정도로 입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입양의 날’을 맞아 정부도 입양 가정 지원 확대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생색내기에 그쳤다는 지적이 있다. 아동 입양 시 200만원을 지급하고 취학 전 유치원·보육시설비 15만∼30만원, 18세까지 양육비 10만원을 매달 보태준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입양단체들은 정부가 영·유아 보육비 전액과 초·중·고 교육비를 지원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장애 아동의 경우에는 만 18세 이후의 양육비와 재활치료비가 지원돼야만 입양 활성화가 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까다로운 입양조건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여러 가지 조건 중에서도 부모와 아이의 연령차이가 50세 미만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젊고 건강한 부모에게 아이를 양육하게 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평균수명이 80세에 이르고 65세 이후에도 건강하게 생활 할 수 있는 것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조건을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결혼한 부부만 입양할 수 있다는 규정도 바뀌어야 한다. 최근에는 독신 여성이 늘고 있으며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고자하는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대한사회복지회 측은 “많은 이들이 입양조건 완화를 제안하는 것은 그 만큼 입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증거”라면서 “대다수의 입양단체들이 조건 완화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머지 않아 조정을 거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사는사회에서는 지난 6개월 동안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우리 사회 입양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취재해보았다. 다행인 것은 ‘입양’을 통해 아파하고 고통 받는 사람보다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좀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과거에 비해 국민들의 인식이 크게 개선되었다는 것 역시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정부의 지원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그것이 입양활성화를 위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입양아와 입양가족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입양 역시 가족을 이루는 하나의 완벽한 방법으로 인식할 때, 바로 그 때가 해마다 해외로 팔려나가는 2,000여명의 아이들을 우리가 품을 수 있는 날이 될 것이다.

지금도 ‘그저 내가 좋아서 한 일’이라며 사랑을 실천하고 있을 많은 입양부모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더 많은 사람들이 ‘가슴으로 낳은 사랑’을 실천하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래본다. 

글/안주영 사진/최경훈 기자
사진제공/대한사회복지회, 홀트아동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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