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대학가엔 축제가 있다. 몇몇 학교는 가을에 열리기도 한다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계절의 여왕 5월의 가장 싱싱한 가운데토막을 생의 5월을 사는 이들에게 기꺼이 헌납해 준다. 그것은 3일간의 짧은 단꿈에 불과하지만 있는 재량껏 머리를 모아 아이템을 짜내고 끼를 발했던 풋풋한 열기로 채워지는 특별한 사흘이다. 수년 전엔 나도 그 현장에 있었다. 붉은색 학과 티셔츠를 맞춰 입고 플랜카드를 쓰고 야채를 씻고 인파를 불러 모으기 위해 목청을 높이면서. 어느덧 4년이라는 대학생활은 주마등처럼 스쳐가 버렸지만 지금도 그곳에 가면 지난날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만 같다. 그 그리운 풍경을 담기 위해 오랜만에 축제를 맞은 대학을 찾았다.

규모가 작았던 우리 학교는 축제라야 그리 화려할 건 없었다. 좁은 캠퍼스 구석구석에 먹거리 가판과 게임코너가 즐비하게 늘어서고 강의실 곳곳에서 영화제며 학술발표회가 아마추어리즘을 물씬 풍기는 아담하고 평범한 광경이 연출되곤 했다. 찾아오는 타 학교 학생은 많지 않고 화려한 대학축제를 꿈꾸는 새내기들은 알아서 타 학교 축제를 찾아 원정을 나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축제가 열리는 사흘 동안은 온 캠퍼스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며 문전성시를 이루는 게 볼만 했다.

축제 때마다 학생들이 과 차원에서 가장 열을 올렸던 건 대게 역사가 오래된 ‘간판사업’이었는데, 참가자들의 호응 면에선 다소 저조한 사업이었다. 학과마다 과 특성에 걸맞게 하나씩 미는 주력 사업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중국학과는 5년째 내리 짜파게티를 끓여 2000원에 내놓았고, 국문학과 역시 더운 날씨 탓에 늘 반응이 시원찮았는데도 전통찻집을 고수했다.

법학과는 법률자문서비스를, 일본어학과는 제패니메이션 상영 등 진부한 레퍼토리는 올해도 별반 달라진 게 없었는데, ‘디지털 영상제’, ‘디지털 사진제’ 등 앞머리에 ‘디지털’ 세 글자를 달고 열리는 각 학술제가 그 사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점이었다. 그 외에 수학과가 올해 처음 수도꾸(sudoku 가로세로 숫자퍼즐)대회를 열어 수학지존을 가려내는 참신함을 보여준 정도? 그러나 한편 뻔한 구상에 거기서 거기인 내용물로 보이는 건 매회를 거듭 보아온 자들의 불만일 뿐이란 생각도 든다. 축제는 매년 그것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주축으로 한껏 기대 받고 구성되며 완성되는 것일 테니. 그만큼 축제는 축제를 가장 고대하고 아끼며 즐기는 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흔하디흔하지만 길거리 가판도 축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다. 태반이 먹거리 좌판인데 꼬치구이에서부터 핫바, 열대과일, 솜사탕, 타코야끼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제법 다양해졌다. 대충 버너에 둥근 가정용 후라이팬으로 때우던 몇 년 전의 어설픔은 사라져버렸다. 더운 계절의 문턱인 만큼 팥빙수가 단연 인기품목인데 집에서 갖고 왔을 곰돌이 빙식기를 주구장창 돌리는 일은 남학생들의 몫이었다.

그 옆에서 매운 연기만 무수히 내뿜는 불닭은 도통 팔리지 않고…. 개중에 어떤 곳은 조리장의 능숙한 솜씨로 가판을 평정하지만 어떤 곳은 손에 익지 않은 음식을 해 내느라 바짝 타고 모양이 무너지거나 맛이 희한하다. 메뉴선정에서부터 모양과 맛, 어느 하나 건지지 못한 음식들은 만든이의 입으로 들어가고 말지만 가끔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그 지인들이 받아가기도 했다.

타투문신이 호황을 이루는 옆으로 동전 던지기 코너도 열렸다. 몇 발자국 앞에 담배 한 케이스를 눕혀두고 그 위로 동전을 던져 안착시키면 담배 한 갑을 준단다. 가뿐하게 돈 천원을 동전으로 바꾼 도전자들이 하나같이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담배상자 옆으로 수북이 쌓인 동전을 보니 이 판은 수이 남는 장사지 싶었다. 몇 년 전 이 비슷한 꾀를 쓴 남자동기 하나가 생각났다. 담배필터를 종이로 가리고 맛을 봐 브랜드명을 맞춘 이에게 담배 한 갑. 애연가들의 미각을 얕본 그 친구는 톡톡히 밑지는 장사인 걸 알고서야 뒤늦게 좌판을 걷었더랬다.

먹거리 가판이 주린 배를 채워준다면,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는 건 게임가판이다. 물풍선던지기, 디비디비딥, 사다리타기, 카드마술 등이 열리는 주위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판들이 저마다 호객행위로 열심인 반면 정작 지갑을 여는 이는 몇 없었다. 지출규모가 고만고만한 학생 지갑열기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는지, 앳된 가판주인들이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초상권 운운하며 생떼를 부렸다. “어허 손님, 닭꼬치에도 초상권이 있는데요, 천원에 넘길게요.” 밉지 않은 애교에 얄팍한 지갑을 털어 하나씩 산 초상권이 몇 개는 됐다.

코너 한켠, 튜브로 된 미니풀장에 선홍색 금붕어가 여러 마리 들었다. 모여든 무리가 중앙의 한 남학생을 둘러치고 둥글게 원을 그렸는데, 요령 좋은 남학생이 거름종이로 벌써 금붕어를 몇 마리째 낚아 챈 모양이었다. 어떤 이는 지느러미에 살짝 닿기만 해도 찢어지는 종이채가 그에게는 대여섯 마리의 물고기를 안겨주고 나서야 구멍이 뚫렸다.

아마도 물고기의 움직임을 거스르지 않고 마찰을 줄이며 채를 다루는 감각이 남보다 예리한 모양이었다. 속이 비치는 비닐 주머니에 잡은 금붕어 몇 마리를 담아 주자 주위에서 대단하다는 뜻의 탄성들이 조그맣게 터져 나왔다. 이런 재능은 살려 어디다 쓰면 좋을까-생각하는데, 남학생이 친구에게 푸념하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어항 없는데….” 앞뒤 없이 발휘된 재능에 계획에 없던 어항 값 들어가게 생긴 표정이 난감해 보였지만 그 역시 일단 지르고 보는 풋풋한 젊음의 일부이리라 싶다.

  저녁엔 후문근처 노천극장에서 환성 소리가 요란했다. 올해는 초청가수로 아이비가 온다더니, 아마도 그 매혹적인 에스곡선에 퍽들 자지러지는 모양이었다. 하긴 축제 때만 되면 대학들의 유명스타 모시기 경쟁도 치열했다. 일학년 땐 ‘굿바이 포에버’로 상종가를 올리던 포지션과 유리상자가 왔고 이학년 땐 박지윤이 어느 새내기 그룹과 함께 왔었던 것 같다. 그 후에도 왁스, God 등 해마다 톱스타들이 등장했는데, 저 연예인 모셔오느라 돈이 얼마가 들었다더라, 원래는 누가 오기로 했는데 금액이 안 맞아 막판에 무산되고 대신 저이가 왔다더라, 하는 뒷말도 늘 돌았다.

하지만 축제 하면 떠오르는 추억다운 추억은 사실 주점밖에 없다. 주점 입구에 달아둔 홍등이 유달리 예뻤던 기억이 난다. 비닐천막을 세우고 바닥엔 스티로폼을 깔아 그 위에 종이박스로 만든 간이 테이블을 몇 개를 얹으면 그만인 주점. 주방시설 하나 없는데도 갖가지 식재료를 씻고 썰고 볶아가며 골뱅이며 순대볶음 따위를 만들어내곤 한. 밤이 깊어지면 어느덧 갈 사람은 다 가고, 이미 밤을 새울 준비가 된 주당들만 남아 코가 삐뚤어질 정도로 마시고 제대로 망가지던 것은 ‘다음’이란 없는 축제 마지막 밤의 하이라이트였다.

먹다 지쳐 그 자리에서 잠이 들고 다음날 일어나 언제 처치했는지도 모를 술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모습을 보곤 혀를 내둘렀던 기억. 분명 빈병과 거둬들인 수입은 비례해야 하는데, 다음날 일어나 맞춰보면 도무지 맞지 않는 수지타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책임을 물을 수 없을 정도로 다들 기억을 잃었던 대책 없는 일꾼들…. 다음날 가장 늦게 일어난 사람이 아무도 없는 주점에서 힘 빠지게 모든 뒷정리를 해야 했던 잔인한 룰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축제기간엔 비’. 학교에 내려오는 전설과도 같은 징크스로, 우리학교는 희한하게 축제기간만 되면 비가 왔다. 대학에 다닌 4년 동안 한번도 빼놓지 않고 3일 중 하루는 비가 왔으니 내력(來歷)으로 굳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설은 올해에도 살아있어서 연일 화창한 5월 하늘이 축제 둘째 날부터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셋째 날엔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날도 비를 피한다는 명목으로 우루루 주점으로 달려가 막걸리 한잔씩을 돌렸더랬다. 막걸리에는 파전과 도토리묵이 잘 나갔는데, 요리를 담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크게 솜씨가 없어도 만들 수 있는 손쉬운 안주였다. 비가 오면 꼼짝 없이 주점에 앉아 술만 먹으면 돼서, 우리들은 오히려 좋았던 기억이 난다.
축제 동안 막차가 끊기고 잘 곳이 없으면 학우들은 종종 학과실 소파에서 선잠을 자곤 했다. 그 새 전망 좋던 4층 과실은 새로 지은 건물의 지하로 자리를 옮겨 쾌적해진 대신 예전 규모의 절반으로 좁아져 있었다.

“너희, 90학번 선배들이 이 과실을 어떻게 쟁취했는지 알아?” 선배들은 새내기가 들어올 때마다 의무처럼 과실에 얽힌 일화를 들려주며 자랑스러워했었다. 각 학과 대표들의 치열한 제비뽑기 끝에 인사대에서 가장 넓은 방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는 그 영웅담은 증거가 없는 지금, 누구에게 들려주기도 뭣 한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과실이 창고처럼 어수선했다. 사람냄새 없이 텅 비어 보였던 건 이미 적을 옮긴 사람의 서운함 탓일지도. 그래도 낡아 빠진 소파만은 그대로 남아 생소함을 덜어 주었다. 지금도 막차 끊긴 누군가의 대가 없는 잠자리가 되고 있을 싸구려 비닐소파. 예전에, 집이 지방이던 선배 하나가 늘 과실을 집 삼아 살곤 했는데 그 선배 지금 어떻게 지내시려나…. 소원하던 광고회사 들어가서 대리쯤 되어 있기를 바래본다.

빈병이 가득 든 박스를 끌며 들어온, 후배가 분명할 얼굴이 조심스레 낯선 이를 흘깃거렸다. 후배님, 내 삶도 한 때는 이곳에 있었다오. 저 소파에 물어도 좋아…. 속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자그마하게 그렇게 말해보았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늘 성북역으로 와 전철을 탔다. 학교가 있는 성북역은 서울에 있긴 하지만 중심에서는 조금 벗어난, 전철을 타고 이십분만 더 가면 경기도와 만나는 서울 변두리였다. 옥외역인 역은 운치 있게도 전철역인 동시에 기차역이어서 강의실에 갇혀있기 따분한 날엔 차표를 끊어 교외로 떠나기 좋은 출발지이기도 했다.

모처럼 찾은 성북역의 끝자락에 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집에 가는 전철을 기다리며, 늘 건너편 선로 끝을 달려오는 기차의 앞머리를 보곤 했는데. 가장 멀리까지 가 닿는 밤 기차를 잡아타고 언젠가는 바다에서 아침 해를 맞자. 친한 친구와 하루 이틀 미루다 여적 못 이룬 약속이 떠올랐다.

글/김혜경 사진/최경훈 기자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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