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째 주인공이었던 김정희 복지사는 그를 가리켜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그래서일까. 꼬불꼬불 오르막길을 오르면서도 막연한 설레임이 있었던 건. 4호선 총신대역에서 도보로 30여분, 드디어 동작이수복지관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삐질삐질 흐르던 땀을 닦고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총을 챙기듯 취재노트, 볼펜, 사진기, 녹음기가 있는 지를 확인했다. 이상 무! 20여 미터를 올라가자 드디어 2층 규모의 복지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지영 선생님 인터뷰 하러 왔습니다” 기자의 말에 즐겁게 나누던 얘기를 멈추고 한 사람이 다가왔다. “더불어...에서 오셨어요?” 웃는 모습에서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 바로 이지영 사회복지사였다.

받은 것을 되돌려주기

“제가 왜 사회복지사가 되었냐고요?” 이지영 복지사가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별 다른 이유가 있었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기자의 귀에 “기사화해도 상관없긴 하지만…” 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분명 사회복지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거구나! 순간 귀가 쫑긋 세워졌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아프셨어요. 중한 병이었기에 치료비가 만만치 않았고 결국 가세가 기울게 되었죠. 그래서 저는 오랫동안 생활보호대상자로 살았어요. 한 때는 창피하고 부끄러웠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되었어요. 그래도 이러한 사회복지제도가 있어 우리 같은 사람도 생계를 유지하고 남들처럼 배울 수 있다는 것을요.”

사춘기 시절에는 ‘난 정말 괜찮은 아이인데, 왜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또,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또래 친구들로부터  알 수 없는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힘들었던 경험은 오히려 그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다.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뚜렷한 목표의식, 식지 않은 열정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사회복지사로 성장한 자신이 힘든 사람들을 도울 차례라고 말한다.

“영구임대아파트와 등록금 혜택 등의 지원책이 있었기에 대학에서 공부도 할 수 있었고 사회복지사가 될 수 있었어요. 정부의 사회복지제도는 저와 저희 가족에게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 역할을 해줬다고 생각해요. 이제 제가 정부사업을 맡아 진행하면서 사회 소외계층을 열심히 도와야죠.”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던 사회복지학을 공부해서일까. 대학에서도 그의 열정은 남달랐다. 특히 필드를 경험할 수 있는 각양각색 참여프로그램에 대한 욕심은 그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 사회복지학 전공하는 친구들조차 자원봉사나 사회봉사프로그램 모집공고가 있으면 “이지영이 아니면 누가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대학에 진학하고 공부하면서도 다른 분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교수님과 친구들이 ‘사회복지 밖에 모르는 애구나’라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니 말이에요. 그 덕분에 대학에서도 뜻 깊은 자원봉사활동을 많이 할 수 있었고 소중한 사람들도 사귈 수 있었어요. 지금도 그때 인연이 된 사람들과 종종 만나는 걸요.”

“선생님 제가 사회봉사 갈까요?”

현재 이지영 복지사는 아동과 청소년복지를 담당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는 문제청소년의 사회봉사프로그램이라고. 대부분이 학교폭력, 절도 등의 문제로 복지관을 찾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워낙 학교에서조차 포기하다시피 한 아이들이라 프로그램의 효과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예상과 달리 몰라보게 달라진 아이들도 있단다.

“한 번은 학교에서 소위 ‘짱’이라고 불리는 아이가 학교폭력 문제로 징계를 받고 복지관을 찾아왔어요.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봉사프로그램을 마치고 나서 그 아이는 확 달라졌어요.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갔으니 말이에요. 물론 더 이상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고요”

학교와 가정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였지만 봉사프로그램을 통해 타인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것. 아직도 이야기의 주인공과 종종 연락한다는 그는 “선생님 제가 아이 애들 모아서 사회봉사 갈까요?”라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지영 복지사는 아동·청소년 복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자신을 변함없이 지지해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주는구나’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잊지 못할 시행착오가 있었다.

“봉사활동 때 알게 된 문제청소년이 있었어요. 어느 날은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며 저에게 전화를 했더라고요. 직접 가겠다고 하니까 오지 말라면서 돈만 보내달라고 했죠. 그래서 언제까지 갚겠다는 확답을 받고 보내줬어요. 하지만 결국 그 아이가 저를 피하더라고요.”
돈을 빌려줄 때 이미 받을 마음이 없었지만 아이는 갚지 못하는 미안함에 그와의 연락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돈을 꿔주지 않았다면 계속 연락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저의 신중치 못한 행동 때문에 그러지 못해 속상하죠.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혹시 문제를 저지르지는 않을지 무척이나 걱정이 돼요.”

그는 청소년복지에 있어 사회복지사는 주는 사람도 아니고, 해결해 주는 사람도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그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제반조건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아이 스스로 온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게끔 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가끔은 치열한 사회복지사 생활에서 벗어나 다른 분야를 꿈꿔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에게는 과제가 많다.
“제가 받은 것을 더 열심히 갚아야하고 또 사회복지사로 활동하면서 저부터 성숙한 인간이 되려고 해요. 아직 부족한 것이 많거든요. 아마 이 모든 것이 이뤄질 때 다른 분야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기지 않을까요?”

힘든 시기를 겪어봤기에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 이지영 사회복지사. 그의 따뜻한 감성이 지금도 혼란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더 많은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길 기대해본다.

글·사진/안주영 기자

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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