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4년 전 월드컵의 감흥을 되살리기 위해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월드컵에 온 국민이 열광하는 6월 곳곳 어디서나 ‘붉은 함성’으로 길거리 응원전이 한창이었을 즈음 특별한 응원전이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바로 국제산타클로스 협회가 주최하는 ‘소외계층과 함께하는 대한민국 응원전’. 월드컵의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거리 응원을 하면 소중한 체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7월호 기자체험으로 정했다. 소외된 이들을 위한 특별한 응원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대한민국VS 토고전이 열렸던 6월 13일 그 현장을 담고 싶어 한걸음에 달려갔다.

거리 홍보 도우미 ‘바쁘다 바빠’

오후 7시 과천 서울랜드 삼천리 극장 안. 온 국민이 손꼽아 기다린 월드컵 예선 첫 경기 날이라 그런 것일까. 아직 경기가 시작되려면 3시간이나 남았는데도 거리 응원전에 참가하려는 인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흔히 거리 응원이라고 하면 길거리 한복판에 주저앉아 맥주를 마시며 하는 것이 정석인데 굳이 의자가 있는 장소를 선택한 것이 이상했다. 기자의 궁금증을 눈치라도 챘는지 주최 측 홍보 담당인 박지영 씨가 다가와 “장애인, 노인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오는 것을 고려해 의자가 있는 장소를 준비했다”며 설명해 줬다.

그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올 것 같지 않아요. 나름대로 홍보는 열심히 했는데 인근에 있는 경마장에서 유명연예인을 초청해 월드컵 행사를 크게 진행해 우리쪽으로 많이 오지 않을 것 같아요. 한 달 내내 열심히 홍보했는데 사람들이 저희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속상해요”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영 씨의 설명을 듣는 순간 내심 찔렸다. 취재를 온 나조차도 경마장 행사 초대권이 있어 갈 예정이었기 때문. 순간 미안해졌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니 사람들을 천천히 기다려보자고 지영 씨에게 위로를 건넸다.

주최 측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차린 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두 손을 꼭 잡고 온 연인,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엄마 아빠와 함께 온 어린아이,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까지 모두 붉은 티를 입고 ‘붉은 악마’의 대열에 합류했다.

한 시간 가량 지났을까. 주최 측의 홍보가 부족하진 않았을 텐데 아직도 삼천리 극장 안은 드문드문 빈자리가 보인다.
‘그래, 이왕 체험 온 건데 작은 도움이나 주자’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가지고 온 짐을 놔두고 거리로 나가 홍보 담당자를 찾았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안 올 것 같아요. 제가 일일 도우미 좀 돼 드릴께요. 저기 도우미들이랑 같이 티켓 나눠주면 되는 거죠?”
드디어 첫 번째 임무가 주어졌다. 평소 소극적인 기자가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무작정 응원전을 오라고 권유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힘들죠? 부담을 가지고 하면 더 힘들어져요. 그냥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공손히 인사하고 말해요. 뜻깊고 특별한 응원전 보러 오라고요. ”

티켓을 들고 쑥스러워하는 기자가 안쓰러웠는지 도우미 한명이 다가오더니 슬쩍 조언을 했다. ‘그래, 이왕 왔으니 도우미 역할이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심산으로 마음을 다잡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말을 걸었다. 이제 제법 얼굴이 두꺼워진 걸까.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여들어 티켓을 받아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자 도우미의 적극적인 홍보덕뿐인지, 꽤 많은 인파가 극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열심히 ‘동분서주’했더니 어느새 한 시간 가량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나의 발품이 조금이라도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처음보다는 그래도 인원이 많아진 상태였다.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붉은 악마’ 따로 없어

오후 9시. 경기 시작 전 주최 측은 특별한 공연을 준비했다. B-boy 공연에 이어 치어리더와 함께하는 응원연습을 준비한 것. 거동이 불편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거리 응원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주최 측이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이었다.     
박지영 씨는 “거리응원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놀이 문화에요. 하지만 소외된 계층인 이들에게는 평소하기 힘든 경험이죠. 조금이라도 이들에게 월드컵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 준비했어요”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
치어리더들의 진행으로 드디어 예비응원전이 시작되었다. 주최 측이 준비한 패트병을 들고 처음엔 다들 소극적인 자세로 따라하질 않더니 하나 둘 분위기를 타 어느새 ‘붉은 함성’이 극장 안을 메아리쳤다. 패트병 소리와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흥에 겨워 나도 모르게 이들을 따라 월드컵 분위기에 흠뻑 취했다.

평화사회복지관의 초대로 이곳을 찾은 윤정희 씨는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매일 집에서 가족들과 응원을 했는데 거리 응원을 나오게 돼 너무 기분이 좋아요. 무엇보다 지체장애1급이라 외출하기 힘든 딸아이가 너무 좋아해 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전했다.

삽시간에 응원열기에 휩싸인 이곳. 한 시간쯤 흘렀을까. 처음 시작했을 때의 무거운 표정들은 온데간데 없고 연신 환한 표정뿐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머리가 희끗한 노부부가 ‘대~한민국’을 외쳐대며 응원열기를 내뿜고 있다. 금실이 유독 좋아보이는 것이 보는 사람마저 기분이 좋아진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재밌는 줄 알았으면 귀찮아도 진작 올걸 그랬어. 젊은 사람들 하고 몇시간 같이 있다보니 열 살은 젊어진 것 같아”라며 말했다.  
응원함성이 점점 무르익었을 즈음 드디어 대한민국과 토고의 경기가 시작됐다. 무대 앞의 큰 전광판으로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주최측은 경기중계와 함께 한 시간 가량 준비했던 치어리더들과의 응원을 선보였다. 

이들 모두에게는 ‘16강 진출’을 간절히 바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였을까. 다들 모르는 사람일텐데도  열띤 응원 뒤에는 한 가족처럼 정겨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40여분 동안 원없이 소리를 지르고 나니 전반전 경기가 끝이 났다. 열띤 응원 함성에도 불구하고 전반전 경기는 1:0으로 우리나라가 뒤지고 있었지만 아직 후반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어두운 표정을 지은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참을 이들과 함께하고 있을 즈음 경마장에서 있을 행사 초대권이 생각이 났다. 사실 애초 계획은 적당히 둘러보고 경마장으로 장소를 옮기는 것이었다.
고백하자면 ‘소외된 계층과 함께하는 응원전’이라는 제목에 별 흥미를 못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약 세 시간가량 이들과 함께 하다보니 끝까지 함께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후반전. 경기가 시작되자 붉은 함성의 열기가 더해갔다. 16강의 기원하는 이들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결국 2:1로 우리나라가 첫 승을 거둬냈다. 경기가 종료되자 와~ 하는 함성소리와 너나 할 것 없이 얼싸안고 환호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소외된 계층을 위한 행사 많이 열렸으면…

경기가 끝이 나고 주최 측이 준비한 모든 행사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오늘 경기의 승부를 떠나서 거리 응원을 나온 이들에게 생애 처음 값진 추억을 안겨줬다는 뿌듯함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평소 거동이 불편해 외출하기가 힘이 들었던 이들. 보통 사람처럼 거리로 나와 월드컵 분위기를 마음껏 즐기고 싶었을텐데 그렇지 못하는 이들에게 오늘은 잊지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물론 주최 측의 홍보에도 불구하고 참가인원이 많지는 않았지만 오늘 행사는 분명 성공이다.

앞으로도 이런 소중한 행사가 자주 개최돼 ‘소외된 사람들도 보통사람과 똑같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가득 울려퍼졌다.

 글/박경미 사진/최경훈 기자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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