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은 월드컵 축구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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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8일 열린 기자회견 모습 |
오전 한차례 소낙비가 퍼부은 이날, 오후 대회를 위해 모인 8천여 명의 인파로 대학로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예상을 웃도는 인원이 도로를 점령하고 열을 맞춰 자리에 앉자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었다. 대부분이 농민과 노점상, 철거민, 노동자, 빈민의 이름으로 참석한 사람들…. 이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절박함을 품은 얼굴로 노점상 생존권 보장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행정대집행법 철회 구호를 외치며 연대를 강화했다. 연단 위에 선 누군가의 ‘법보다 위에 있는 게 밥’이라는 말이 그 어떤 말보다 이들의 절박함을 대신해 주고 있었다.
동대문운동장 내 풍물시장의 위기
노점상들에게 6월은 대대적인 단속과 탄압이 예견되는 잔인한 달이 될 것 같다.
지난 5월 29일 홍성군은 ‘사회 취약계층의 생계침해형 부조리 근절’을 위해 대책반을 편성, 본격적인 단속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사회양극화 심화와 경기침체 등 최근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서민생활을 위협하는 부조리가 만연될 것을 우려하며 행정기관이 직접 나섰다”고 소개되고 있지만 군은 임금착취, 불법 직업소개, 취업사기, 불공정 계약 등 8대 부조리근절과 함께 불법 노점행위 집중 단속도 시행할 것이라 했다.
서울시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시가 ‘깨끗한 도시, 문화가 살아 있는 도시’를 앞세워 추진한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인해 그동안 많은 수의 인근 노점상들이 생활 터전을 옮겨야만 했다. 청계천 복원공사 때인 2003년 청계천 인근 노점상들은 서울시의 주선으로 동대문운동장 안으로 집단 이주해 풍물시장을 형성했다. 900여명의 노점상들은 스스로 차양막을 설치하고 전기세와 수도세, 청소비를 내며 자체적으로 운영해 왔지만 이들은 현재 5·31지방선거 이후 몰아친 후폭풍에 그마저도 잃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가 동대문운동장을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후 이곳 노점상들은 또다시 생계위협에 직면하게 됐다. 오세훈 당선자는 앞서 2400억원의 예산을 투입, 동대문운동장을 공원으로 조성하고 지하에는 4만 평 규모의 복합문화센터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펼친 바 있다. 벌써부터 강북지역에 들어설 대규모 문화시설을 환영하는 이들도 많고 엄청난 예산에 반기를 든 이들도 많지만 당장 생계대책을 고민해야 하는 이곳 노점상들에게 그것은 삼년 전의 악몽을 재현시키는 암담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오 당선자는 동대문운동장 철거를 공식적으로 밝힌 상태. 운영중인 풍물시장은 서울시가 노점상들의 생업을 위해 임시로 공간을 제공해 준 것이라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노점상들은 동대문운동장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풍물벼룩시장으로 조성하겠다던 이명박 시장의 지난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
강북 도심개발이 오 당선자의 핵심공약이었던 만큼 양측의 갈등양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지역 발전과 보다 깨끗하고 합법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한 정부노력의 일환이라도, 현존하는 수십만 노점상을 위한 대책이 없다면 이 역시 양극화 현상을 불러올 또 다른 불씨가 될 수 있다. 서울시의 새 행정수장으로서, 정책수행력 만큼이나 갈등조정능력을 발휘해야할 부분이 아닐까 한다.
영세상인 내모는 ‘재래시장 활성화’
오늘날 노점상 강경 단속은 재래시장의 활성화 정책과 함께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성북구를 비롯해 전국에서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 ‘활성화’라는 취지에는 맞지 않게 현실에선 재래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발이 진행되는가 하면 기존 재래시장을 전면 철거하고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는 형태도 늘고 있으니 입주할 능력이 없는 기존 원상인과 노점상, 주민들은 대거 쫓겨날 밖에 도리가 없다. 지역개발과 영세민 혜택을 위해 추진한 재래시장 활성화가 개발 과정에서 재래시장의 원주민, 영세상인과 노점상들이 배제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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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가 동대문운동장을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후, 동대문운동장 안에서 풍물시장을 형성해 온 900여 노점상들은 또다시 생계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
그러나 올해 성북구청은 재건축 개발로 지어진 주상복합아파트 동일하이빌 입주를 앞두고 일방적으로 ‘행정대집행(강제철거)’을 통보해 왔다. 지난 4월5일 구청, 동일하이빌, 노점상대표 3자 면담에서 동일하이빌 인근에서 노점상들이 장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뒤엎고 급기야 지난 5월1일부터 노점좌판을 단속하기 시작한 것. 현재 돈암시장 노점상들은 동일하이빌 건물 바로 옆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지만 앞날이 그리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인근 보문시장 역시 비슷한 사례가 그대로 재현될 조짐을 보여 그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아직 어디에서도 이를 위한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행 재래시장 개발 시 기존 재래시장 임차상인과 입점상인에 대한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재래시장 특별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돈암시장 주변이 개발되면서 상인들과 노점상의 생존권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행정대집행법 개정안’인가
노점 단속과 함께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이 바로 ‘강제철거’와 이로 인한 인권침해 논란이다. 강제철거담당자가 자신의 신분과 철거 이유에 대해 밝히지 않는 문제, 강제철거에 투입된 용역깡패의 신분과 그들이 소지한 불법무기, 현장에서 야기되고 묵인되는 폭력문제 등 대책 없이 절차를 무시하고 벌어지는 강제철거 문제들은 그동안 심각한 인권침해를 불러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5년 초, 노무현 정권과 행자부는 강제철거로 인한 인권침해 소지를 근절하겠다는 취지로 관련법인 ‘행정대집행법’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5년 5월, 행자부가 제시한 ‘행정대집행법 전문개정안(이하 ‘행자부 안’)’은 오히려 강제철거를 강화하는 ‘개악안’이라는 게 전국노점상총연합 측의 주장이다.
연합회 신희철 국제국장은 “행정대집행법 개정안이 이르면 6월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정부는 강제철거의 절차를 까다롭게 하며 사전계고, 집행 후 통보 등을 공식화하고 이의신청조항을 신설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호토록 했다고 발표했지만 도로법, 도로교통법 등 개별법에 행정대집행법에 준하지 않고도 기습철거를 할 수 있는 ‘특례조항’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특례조항들을 삭제하지 않는 행정대집행법만의 개정은 무의미하다”며 개정안저지를 주장했다. 더불어 이의신청 조항 또한 아무리 이의신청을 해도 철거통보, 강제철거 등을 유보시키는 등에 어떠한 효력도 없기 때문에 형식적인 절차 혹은 조항에 불과하다고. 그 외에 대책 없는 강제철거, 동절기·야간·장마 등 악천후 강제철거 금지 등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노점상 100만 시대, 단속만이 해결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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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혜경 사진/최경훈 기자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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