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후반인 윤씨는 자기 소유의 집이 없다. 중소기업의 과장 자리에 있지만, 작년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사교육비를 위해 대출금도 다 못 갚은 36평 아파트를 팔아 같은 평형대 전세로 옮겨왔다. 아이 둘에게 들어가는 학원비만 한달 160만원 선, 방학 때 단기 연수라도 보내는 달은 1000만원 이상이 깨진다. 윤씨 부부는 교육열 높은 지역 수준에 비한다면 결코 많이 들인 게 아니라며, 효과가 없으면 모를까 달라지는 아이들 실력에 감내할 수밖에 없단다. 연봉 3500만원의 가장이 집과 교육,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30대 중반에 들어선 정씨 부부는 그래서 아이가 없다. 결혼 3년차지만 아이로 인해 포기해야할 부분이 너무 많아, 결혼 전부터 아이를 두지 않기로 부부가 뜻을 모았다. 대신 일과 부부생활에 더욱 애정을 쏟기로 했다. 아이로 인해 깊어질 돈독감과 가족애는 애견 뭉치가 대신하고 있다. 부부는 현재의 삶에 불만이 없다. 정 아이가 갖고 싶다면 나중에 입양을 하면 될 일이다.

서른다섯의 이범식 씨, 그도 아이가 없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혼이 증가하는 요즘, 그리 심각한 노총각은 아니지만 변변한 직장이 없어 여자친구를 만들 여유가 없단다. 번듯한 4년제 대학졸업장도 장기실업상태인 그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아서 동네슈퍼를 운영하는 부모가 30이 넘은 캥거루족 아들을 거두고 있는 실정이다.
이상 세 가지 경우는 듣기 참 ‘깝깝한’ 이야기긴 하지만 우리를 그다지 놀라게 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사회를 사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Ⅰ. 저출산의 원인구조

저출산은 경제·사회적 파급효과가 지대한 사회문제로서 인구학적 현상으로만 간주할 수 없다. 서구국가나 일본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저출산이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완전히 고착화되기 이전에 효율적인 대책들이 마련되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만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 저출산의 원인구조를 진단해 보면 다음과 같다.

기회비용이 되어버린 결혼과 출산

한국사회에서 저출산 원인으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결혼관과 자녀관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일정한 연령에 이르면 반드시 결혼하여야 한다는 보편적 결혼관이 약화되면서 한국사회에서 결혼은 보편적인 구속이자 의무가 아닌 선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녀관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 자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부인의 비율은 1/4에 불과하였다. 자녀효용 측면에서 노후보장, 가문계승 등의 전통적 가치관이 약화된 반면, 부부관계 강화, 노후 외로움 완화 등에 가치를 두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정서적 측면에서의 자녀효용은 소자녀만으로 추구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출산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결혼 의사가 순수하게 가치관 변화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할 수는 없다. 사회문화적, 경제적 이유에 의해 결혼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실시한 ‘전국 결혼 및 출산동향조사(2005)’에 따르면 미혼남녀(25~39세)들이 결혼을 미루는 원인들로 고용 및 소득불안정(남성 36.5%, 여성 10.8%), 일-가정생활 양립곤란(5.3%, 17.8%), 주택·혼수 등 결혼비용 부담(21.3%, 13.2%), 가부장적 결혼부담(5.1%, 8.9%), 마땅한 사람을 못 만나(11.6%, 24.4%),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어(5.1%, 6.5%) 등이 제시되었다.

여성은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아성취 욕구가 증가하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경제활동을 포함한 사회활동에 대한 참여 정도가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결혼 및 출산은 여성에게 높은 기회비용으로 작용하여 만혼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고용불안정과 가정돌봄의 여성편중

반면 저출산을 야기시키는 사회경제 현상으로는 고용불안정을 들 수 있다. 거기에 높은 교육열과 지나치게 고비용을 요하는 교육구조가 자녀양육과 교육의 비용부담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부가 자녀 1명을 ‘제대로’ 키우는 데에도 상당한 경제적 부담이 따르는 것이다. 결국 한 자녀만이라도 제대로 키우자는 소자녀관이 선호되고, 이는 저출산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가 증가하면서 한국사회에서 맞벌이부부는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그러나 여성들이 직장일과 자녀양육을 동시에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은 극히 열악한 실정이다. 노동시장의 경직화가 심각해 취업여성들이 결혼을 하거나 자녀를 출산하여 양육하는 경우 취업을 중단(경력단절)할 수밖에 없다. 자녀 성장 후 재취업을 원하더라도 동일한 수준의 직업을 가지는 것이 아주 어렵고 이는 결국 가구소득의 감소를 의미하며 기회비용으로 인식되어 혼인 및 출산기피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증가하는 반면 남성의 자녀양육과 가사에 대한 역할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 것도 출산기피를 부추기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퇴근 후 부인이 자녀양육과 가사를 거의 도맡아하는 가족 내 불평등이 전통적인 유교주의적 문화의 산물로서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저출산 원인은 가족 내 양성평등과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낙태 및 출산건강수준의 저하도 한 요인

이 외에도 만혼 및 고령출산으로 인한 출산건강 수준의 저하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전체 임신 중 약 1/3이 자연유산, 사산, 인공유산 등에 의해 소모되고 있으며, 불임증으로 인하여 원하면서도 출산을 할 수 없는 불임부부들은 635천쌍(유배우 가임여성의 13.5%)으로 상당한 규모에 이르고 있다. 생리적 성숙기와 초혼연령간의 차가 증가하여 발생하는 많은 혼전임신의 대부분은 사회적 냉대와 보호부족 등으로 인해 인공임시중절로 종결되고 있다.

Ⅱ. 새 가족정책과 예상되는 문제점

1. 달라지는 출산지원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저출산정책염구팀장은 “출산율을 일정 수준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각종 대책들이 강도 높게 실행되어야 하나 일방적인 정책강요가 아닌 출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동기를 부여하는데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저출산대책에는 인구정책과 가족정책, 여성·복지·보건·교육·고용·주택·조세정책 등 관련정책들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새 저출산대책 추진방향도 생애경로의 연속선상에서 종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 자아실현 추구와 출산·양육이 동시에 가능할 수 있도록 가족친화적인 사회·경제 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위해 가부장적 성분할을 지양, 남녀 간의 가사분담체계로 전환시키고 관련 사회제도 및 환경도 성통합적 환경으로 개선한다. 이러한 기본원칙을 바탕으로 정부가 발표한 지원책들을 요약해 보면 ‘Tip1’과 같다.

저출산대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저소득층 위주의 지원책이 중산층으로까지 확대된다는 것이다. 만4세 이하 아동에 대한 보육·교육비 지원대상이 지금까지는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70% 이내였으나 앞으로는 130% 이내 가구까지 확대된다. 불임부부의 시험관아기 시술비도 현행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 80%이하에서 130%이하(2인가족 기준 419만원)로 1회 150만원씩, 최대 2회, 총 300만원까지 지원가능하다. 또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추세를 반영,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운영시간을 밤늦게까지 연장했으며 둘째 이상에 지원되던 산모도우미 비용도 올해 40만원을 시작으로 2010년에는 70만원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 같은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출산율이 오는 2020년쯤이면 IMF이전 수준인 1.6명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 예상되는 문제점

정부가 막대한 재정부담을 통해 야심차게 마련한 저출산 종합대책은 그러나 그 천문학적인 재원을 어디서 조달하느냐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5년간 무려 32조 746억원을 투입할 계획이지만 이 재원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설명은 미비했다. 재원은 분야별로 ▶출산 및 양육지원에 18조 8998억원 ▶노후생활기반 조성에 7조1802억원 ▶성장동력 확충에 5조9600억원 등이다. 이중 12조 9800억원은 지방비로 충당하고 기금 등에서 7조 8000억원, 나머지는 국비로 조달할 계획이다.

이중 특히 전체 재원 중 40%나 차지하는 지방비로 인해, 지방자치단체들이 중앙정부의 의도대로 사업을 집행해나갈지도 관건이다. 지자체별로 살림 규모도 다르고 행정적 변수도 다양해 당초 지침대로 일관성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정부는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세우며 ▶세출 구조조정 ▶자영업자에 대한 소득파악율 제고에 따른 세수기반 확대 ▶비과세·감면 축소 폐지 등을 검토해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라 밝혔지만 정부의 재원조달방안은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지 구체적인 답변이 없는 상황에서 결국 과도한 세수로 인한 국민부담만 커가지 않을까, 벌써부터 우려된다.

또한 정부의 이번 발표가 기존 각 부처들의 대책안을 백화점식으로 종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과 함께 저출산의 근본원인으로 지적되는 교육과 집값 등의 핵심쟁점사안들은 차기 과제로 미루어져, 이것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출산’부터 하고 보자는 단시안적 접근 보다는 ‘결혼’부터 하도록 유도하는 결혼지원정책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Ⅲ. 뿌리구조 개선, 패러다임의 전환 필요

  저출산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그 중에서도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의 유일한 안식처로서 작용하여 온 가정과 가족의 붕괴현상에서 그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가정이 그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추세를 저출산 심화의 주요원인이라 지적하고 있다. 문제해결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가족이 여러 이유로 인해 와해되고 오히려 사회문제의 시발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6일 안명옥 의원의 주최로 국회에서 열렸던 정책토론회 자리에 모인 각계 전문가들은 기존 가족정책의 목표와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임에 공감했다. 한마디로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는 저출산의 근본원인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의 해결은 우선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책임을 강화하여 가족과 사회, 국가가 함께 아이를 낳고 키우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지금까지 개인이나 부부에게 전가되고 있는 출산과 양육의 경제적·사회적 부담을 국가와 사회가 공분담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된다.

우선적으로 출산율 1.08명이라는 심각한 저출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선 먼저 양성평등이 실현돼야 한다는 것이 사회 전반의 의견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저출산 대책, 무엇이 핵심인가’라는 보고서에서 OECD 20개국에 대한 실증분석 결과를 인용해 ▶양성평등 환경조성 ▶자녀비용 경감 ▶보육환경 개선 등 3가지 정책 중 양성평등 환경조성이 출산율 제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밝힌 바 있다. 남녀간에 일자리가 얼마나 평등하게 주어지는지, 육아와 가사부담을 가진 여성의 취업이 얼마나 용이한지가 출산율과 밀접히 관계있다는 분석이다.

연구소는 정부가 발표한 출산율 제고정책과 관련해서도 “주로 자녀비용 경감 및 보육환경 개선에 초점이 맞춰 있다”며 “양성평등 환경조성이 동반되지 않을 경우 출산율은 1.26명 수준을 넘기 힘들 것”이라 지적했다. 남성의 돌봄노동 참여확대를 위한 방안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육아휴직제의 활성화, 탄력근무제 등 고용형태 유연성 제고 등을 개선안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비단 개인 삶의 인식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서울대학교 아동가족학과 진미정교수는 “저출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 가정, 개인이 주체가 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부와 학계, 언론 이외에는 적극적으로 문제인식을 공유하고 대응책 마련에 노력하는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사회운영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가족의 ‘형태’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는 필요하다. 세계적인 이혼율의 증가, 이에 따른 한부모가족·재혼가족·단독가구·독거노인가족·미혼의 증가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출현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양승주 가족정책국장은 “아동을 많이 낳는 것만큼이나 이미 낳은 아동을 행복하게 잘 기르는 것 역시 중요하다”며 가족 내에서의 관계 뿐 아니라 독신가족, 미혼모, 한부모가족, 입양가족, 더 나아가 국가 간 이주의 확대에 따른 결혼이민자가족, 다문화가족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재)서울여성 고선주 정책개발부장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 혹은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정책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저출산 시대의 가족정책에서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인구감소에도 불구하고 활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경제체질을 바꾸는 저출산사회적응정책 역시 함께 논의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성공적으로 출산정책을 시행한다고 해도 출산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으로 예상되는 노동력 부족, 부양부담증가 등의 문제에 적응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과 시도가 필요함을 지적하며 이민의 수용도 고려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가치관 변화 없는 저출산대책은 사상누각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저출산문제의 해결에는 단순히 경제적, 복지적 차원의 접근만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기본규칙을 변화시키는 접근이 필요하다. 1.08이라는 수치를 단순히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가 아닌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의 지표로 본다면 사회구조와 인식의 재정비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가치관 변화 없는 저출산대책은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형태가 됐든 가정이, 자녀가 주는 인생의 행복을 제시하고 설득하지 못하면 정책은 실패하게 되어 있다. 이 땅의 여성들이 나라와 사회, 남편을 믿고 아이를 낳고 싶은 구조적 환경이 조성되도록 우리 의식구조의 저변에서부터 변화가 필요하다.
 
글/김혜경 기자 사진/복지DB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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