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무서워요”

<사례1>

일곱 살인 민우(가명)는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친부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해왔다. 민우엄마에게 가해지던 폭력이 엄마의 가출로 어린 민우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가벼운 손찌검으로 시작한 폭력은 그 수위가 점점 높아지더니 급기야 아들의 발을 흉기로 찌르기에 이르렀다. 민우의 눈빛은 이미 초점이 흐려진지 오래. 그 나이 또래의 웃음은 찾아 볼 수조차 없다.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해 온 아이는 이제 친부의 폭력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사례2>

아홉 살인 미주(가명)는 몇 달 전부터 친부에게 수차례 구타를 당해왔다. 바람을 피우고 가출한 아내가 미워 미주를 구타하는 것이다. 친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구타를 하더니 얼마 전에는 머리를 뜨거운 불로 짖어 머리카락을 다 뜯어 놓기까지 했다. 이웃주민의 신고로 친부는 현재 교도소에 있다.

<사례3>

일곱 살인 은수(가명)는 부모의 신체적 학대로 얼마 전 한 아동일시보호소로 옮겨졌다. 이웃에 사는 최 모씨가 외출했다가 얼굴에 상처가 나고 온 몸에 멍투성이인 은수를 발견한 것이다. 최씨는 은수가 친부에게 매를 맞아 이지경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부갈등으로 어머니가 가출하고, 택시기사인 친부와 단 둘이 살았던 은수는 끊임없이 신체적 학대를 받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결과 경제적 어려움을 비롯한 양육자의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학대 유형이다.

위의 3가지 이야기는 최근 한 아동보호기관에서 생겨난  아동학대 사례이다.
‘가정폭력방지법’ 시행 9년째지만 우리 사회의 가정 내 폭력은 여전히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처음 실시한 가정폭력 실태 전국 단위 조사에서는 2가구 중 1가구 꼴로 자녀에게 신체적 폭력을 가하며, 그것도 발로 차거나 주먹으로 때리는 정도 이상의 ‘심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자녀에게 정신적 혹은 신체적 폭력을 가한 부모는 전체 응답자의 69.2%로 나타났고, 신체적 폭력을 가한 가구는 51.9%로 나타났다. 또, 심한 폭력을 행사한 비율도 9.1%로 조사됐다.
또한 지난해를 기준으로 아동학대 의심사례나 상담을 통한 아동학대예방센터 신고접수가 8,000건에 달했다. 이는 2001년의 4,133건과 비교해 거의 50%가까이 증가한 수준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4,633건의 아동학대 중 3,389건이 가정 안에서 일어난 학대라는 것이었다. 친부에 의한 학대가 2,254건으로 가장 많았고, 친모가 1,098로 그 다음이었다.

보건복지부가 얼마 전 발간한 ‘2005년도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중 신체적 학대가 차지하는 비율도 무려 25.9%에 이른다.

일반 가정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 많아

한국복지재단 복지사업본부 백혜수 팀장은 “아동학대는 교육을 목적으로 학교나 가정에서 아동에게 가하는 육체적 고통을 수반한 징계인 체벌과는 엄격히 구별된다”며 아동학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재 국내에선 아동학대를 ‘신체적 폭력, 부적절한 취급(양육), 유기, 신체적·성적 착취나 가해, 그리고 성적인 측면의 어느 한 부분, 또는 그 이상에서 아동의 건강이나 복지를 위협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백 팀장은 “대개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학대를 행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학대는 일반 가정에서도 경미한 수준으로나마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일정 시간동안 감금, 큰소리를 지르거나 ‘x년’같은 심한 욕설을 퍼붓고, 손바닥으로 상처를 입히는 등의 심한 신체적, 정신적 폭력이 학대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아동학대가 발생하는 원인도 여러 가지다. ‘2005년도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의 31%는 부모의 미성숙과 아이양육에 대한 지식 부족에서 비롯된다. 부모의 나이가 어리거나 성격이 안정되지 않아 아동의 행동이나 욕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그 주된 요인이다.

초등학교 2년생 자녀를 둔 박진숙(가명) 씨는 “자녀가 어렸을 때 대소변을 좀 늦게 가려 때린 적이 있어요. 다른 아이들은 18개월 정도면 가린다고 하는데, 아이의 성장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죠”라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박씨는 이어 “겉으론 교육을 목적으로 아이들을 때린다고 해도 알고 보면 아이들을 상대로 화풀이 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자녀 학대 원인은 다양하다. 알코올 남용, 스트레스, 경제적 문제, 사회적 고립 등이 그것이다. 서울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 박병기 소장은 “아동 학대 방지를 위해 ‘부모 자격증’을 만들어야 한다. 대개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옳은 방법이 아니란 사실은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경제적 형편, 가정불화가 중 원인

이 같은 학대원인은 경제적 형편과 함께 가정불화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박 소장은 “가정해체가 아동학대를 초래한다. 특히 편모· 편부 가정이 점점 늘어가 가출한 배우자를 대신해 자녀에게 학대를 일삼는다”며 “학대 행위자 중 친부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도 해체가정이 많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가 얼마 전 발간한 2005년도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중 신체적 학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25.9%에 이른다.

  가정 내 아동학대는 가출과 약물· 알코올 중독, 범죄 등 탈선 및 반사회적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데서 문제가 심각하다. 부모의 학대가 자녀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원흉이 될 수 있다. 아동기에 가정 폭력을 당한 사람이 성인이 된 후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비율이 남성은 53%, 여성도64%에 이른다.

박 소장은 “아동 학대는 신체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낮은 자아 존중감과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 공격적 행동, 반사회적 행동 등 정서적인 폐해가 더욱 크다”며 “학대를 받고 자라난 아동들은 가출이나 약물· 알코올 중독, 범죄 등 비행이나 탈선으로 발전 될 가능성이 커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안동현 교수는 “아동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에게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정신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신감 부족, 우울증, 불안증 등 아이가 정서적으로 위축되어 지나치게 소극적이 되거나, 공격적이며 감정조절이 안돼는 파괴적인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또 “가해 부모의 7%이상이 과거 아동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으며, 아들은 알코올 중독, 우울증, 성격결함 등 정신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정신질환은 아동학대 가해 원인의 일부분일 뿐 부모의 양육방법 자체가 미숙하거나 과도한 스트레스, 외부적인 문제 등의 다른 요인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무조건 법에 의한 처벌이 아니라 정신적인 질환은 치료로, 양육의 미숙은 관련기관의 교육 등으로 해결하는 보다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며 “일단 제도적인 부분이 밑받침 되어야만 가해부모나 피해 아동에 대한 치료 기법도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대극복을 위한 사회적 노력 필요

한국복지재단 복지사업본부 백혜수 팀장은 “일반 가정에서도 학대가 벌어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대부분 강도가 심한 학대유형만 접수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아동학대 발생 건수가 신고건수에 훨씬 못 미친다고 본다”고 밝혔다. 외국에는 이미 70년대부터 아동보호법이 생겨났지만 우리나라에는 2000년에야 비로소 아동보호법이 개정돼 아동보호기관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아동학대가 날로 늘어남에도 정부는 여전히 그에 따른 책임을 가정에 떠맡기고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 역시 문제다.
굿네이버스 아동학대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아동학대는 어느 한 전문가에 의해서만 발견·치료·예방 될 수 없다”며 “부모, 아동, 교사에게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시행하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체벌과 학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녀와의 의사소통에도 미숙한 부모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부모들도 자식 기르는 법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아동인권 개선’을 위해 부모는 물론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한층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자녀를 소유물시하는 부모들의 그릇된 인식을 바꿔줘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한 다양한 차원의 부모 교육 등의 제도적인 뒷받침도 시급하다.
 다음 호에서는 아동폭력 그 세 번째 이야기로 아동에게 가해지는 ‘학교 폭력’에 대해 다뤄보겠다.

글/박경미 기자 사진제공/서울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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