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딛고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는 우리에게 언제 들어도 훈훈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정상인보다 갑절이상 기울여야 하는 본인의 노력은 물론, 자식의 장애를 사랑으로 이겨내게 만드는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물겨운 ‘가족애’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배형진 군이나 피아니스트 이희아 양의 사연이 그 좋은 사례다.

언론에 비춰진 이들의 감동 스토리가 장애인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것일까. 얼마 전 또 한 명의 ‘감동 장애인’이 등장했다. 바로 지난 3월 발달장애를 극복하고 판소리 ‘춘향가’를 완창해 ‘판소리 말아톤’이라 불리며 화제를 모았던 최준(16)군이 그 주인공. 일반인도 쉽게 도전할 수 없는 판소리를 완창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그를 만나러 한걸음에 달려갔다.

‘판소리’ 세계에 빠져들다

올해 열여섯 살인 준이는 이름보다 사람들에게 ‘판소리 말아톤’으로 불려지는 것이 익숙하다.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배형진 군과 같은 발달장애를 갖고 있고, 판소리를 통해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부르는 이름 앞에 ‘판소리 말아톤’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준이는 생후 30개월 때 발달장애2급 판정을 받은 자폐아다. 부모의 도움이 없으면 의사소통도 힘든 아이다. 장애 아동을 둔 어머니들이 다 그렇듯 어머니인 모씨도 자신의 스케줄을 전부 아들에게 맞춰 생활할 만큼 준이 뒷바라지에 갖은 애를 쓰고 있다. 그래서 일까. 그동안 겪은 어려움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땐 담임선생님이 준이를 만지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마치 무슨 전염병이 있는 애 취급을 했지요. 결국 2주 만에 그 학교를 나와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켰어요. 다행히 그 이후로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큰 탈 없이 준이가 학교에 다닐 수 있었어요.”

모씨는 준이를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를 선택했다. 준이가 일반 아이들의 행동을 보고 배우고 따라 하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 이런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준이에게 통했던 것일까. 온순하고 밝은 성격이 큰 도움을 준 것인지 준이는 일반학교에 적응을 잘 하는 편이란다.

그런 준이가 판소리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언어치료를 위해 타악기를 배우러 갔던 곳에서 우연히 판소리를 전공한 선생님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었단다. 태어날 때부터 ‘절대음감’을 타고난 준이는 그날 이후로 판소리의 매력에 푹 빠져 살았다고. 준이는 소리 연습만 하고나면 평소보다 두 배로 말이 많아지고 눈에 띄게 표정이 밝아진다. ‘좋아’ ‘싫어’ 등 간단한 의사표현 위주로 대화를 할 만큼 어휘 사용에도 한계가 있지만 신기하게도 그 어렵다는 판소리 사설은 줄줄줄 외워낸다. 물론 처음 판소리를 접할 때는 30자 사설 한줄 외우는데 한 달이 걸린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가속도가 붙어 아주 쉽게 넘어간단다.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늘 판소리 책을 끼고 다닐 정도로 판소리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달랐다.

장애 넘은 ‘아름다운 열정’ 식을 줄 몰라

올해 열여섯 살인 준이는 이름보다 사람들에게 판소리 말아톤 으로 불려지는 것이 익숙하다.

  하지만 뭐든 재능만 가지고는 성공할 수 없는 법. 영화 ‘말아톤’을 통해서도 잘 나와 있지만 발달장애아가 어떤 성취를 얻기까지는 반드시 누군가의 지독한 애정과 인내가 필요하다. 준이 역시 그의 어머니 모현선 씨의 애틋한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가 존재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씨는 장애아동을 둔 여느 부모들처럼 아들 치료를 위해서라면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라고. 여지껏 마음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책 한권을 써내도 모자랄 정도로 가슴아픈 사연이 많다.

“아이의 장애를 극복하고자 어릴 때부터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어요. 그러다 음악이 언어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죠. 유독 준이가 판소리를 좋아해 그 이후 판소리는 우리의 희망이었어요.”

이런 음악치료가 준이에게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말할 때 쓰는 단어가 다섯 개 정도에 그쳤던 아이가 판소리를 배운 뒤로는 발음이 좋아지고 자기표현도 부쩍 늘었다. 판소리를 하고 나면 얼굴이 붉어져 상기된 얼굴로 “하늘을 날거 같아요” “기분이 너무 좋아요”라고 표현할 정도다.

판소리를 시작한 뒤 음악치료에만 집중하기 위해 모든 치료를 중단했지만 오히려 준이의 자폐증상은 놀랍게 호전되었고, 판소리를 통해 결국 준이가 음악에 소질을 갖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런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얼마 전 준이는 한 공연에서 판소리 ‘춘향가’를 완창해 ‘판소리 마라톤’이라는 애칭을 가질 만큼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준이는 판소리 외에 피아노에도 남다른 흥미를 보이고 있다. 언어장애, 사회성 결핍, 선풍기나 자동차 바퀴 등 돌아가는 것에 집착하는 특이행동을 보이지만 소리에 무척 민감하고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어 한번 들은 음악은 악보 없이도 바로 피아노를 치는 재능을 타고났다. 얼마 전 준이는 판소리에 이어 처음으로 피아노 독주회를 가졌다. 준이가 처음 피아노를 접한 것은 판소리를 시작한 것보다 앞선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음악치료에 좋다고 해 무작정 시작한 피아노 레슨은 그러나 1년을 넘기지 못했다. 같은 음만 반복적으로 두드리고, 피아노를 뜯어봐 고장을 내는 통에 그를 가르치는 피아노 교사가 중간에 포기를 하기도 여러 번 했다는 것. 하지만 어머니 모씨는 준이를 포기하지 않았고, 판소리와 피아노에 더 집중했다. 실력으로는 일반인과 한계가 있어도 그의 음악적인 열정만큼은 뛰어난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리에 무척 민감하고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어 한번 들은 음악은 악보 없이도 바로 피아노를 치는 재능을 타고났다.

  그렇게 어머니 모씨의 믿음으로 시작한 피아노는 현재 독주회를 가질 정도로 수준급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준이를 가르치는 피아노 선생님조차도 그의 열정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말할 정도라고.
물론 그의 부모는 준이가 훌륭한 음악인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준이 스스로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가장 큰 기쁨이다.

“아직 어떠한 선택이 준이에게 좋은 건지는 확실히 알지 못해요. 하지만 지금까지 준이에게 선택한 교육 방법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욕심이라면 준이가 좋아하는 만큼 음악교육을 계속 시키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예술계 학교에 진학시키고 싶은 것이 현재 가장 큰 바람이에요.” 

희망으로 한걸음 내딛다

공연 팸플릿에 준이의 부모는 이런 말을 써놓았다.

  “준이는 어쩌면 평생 발달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발달장애아 최준이 아니라 자연인 최준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세상을 여는 문으로 준이가 선택한 길은 판소리였고 그래서 그는 소리꾼이 되었습니다. 이제 덧문 하나를 더 열어 제치고 세상으로 나아가 소리꾼 최준으로 여러분 앞에 서고자 합니다.”

부모의 인사말처럼 준이는 발달장애를 영영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준이 스스로 음악을 좋아하는 열정을 보이고 있기에 음악을 하는 순간만큼은 장애아 최준이 아닌 소리꾼 최준, 피아니스트 최준을 꿈꾸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기에 불가능을 모른다’는 말이 불현듯 생각난다. 타고난 재능보다 남다른 열정이 지금의 그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막연히 음악이 좋아 소리꾼,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준이, 그의 열정을 보아하니 곧 현실로 다가오는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글·사진/박경미 기자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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