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절망의 또 다른 이름

#1
서울시 강남구의 이 모양(17·여)은 아파트 11층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이 양은 유복한 집안의 외동딸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은 물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활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갑작스런 딸의 죽음에 하늘이 무너질 것 같던 이 양의 부모는 딸이 써놓은 유서를 보고 또 한번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양의 유서에는 “삶이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이렇게 공부해서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엄마아빠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자랑스러운 딸이 될 자신이 없어” 라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2
경기도 남양주시의 최 모씨(41·남)는 어린이날, 아내와 아이들이 외출한 사이에 화장실 파이프에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그는 가족들에게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최 씨의 부인은 자살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직장동료들을 여러차례 만난 끝에 남편이 몇 달 전 업무상 큰 실수를 저질러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내성적이고 꼼꼼했던 남편이 회사 내의 손가락질과 따돌림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한 것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 맘이 아프다가도 도움 한번 요청하지 않은 채 가버린 남편을 생각하면 한없이 야속하기만 하다.  

#3
서울시 영등포구의 송 할머니(75·여)는 슬하에 3남1녀를 두었지만 아들 모두가 형편이 넉넉지 않은데다 며느리와의 갈등을 겪어 지난해 겨울부터 쪽방에서 혼자 지내왔다. 그러던 중 올해 초 중풍으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다. 결국 식당일을 하던 딸이 일을 접다시피 하고 간병을 도맡았다. 딸과 사위에게 입버릇처럼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던 할머니는 더 이상 자식을 힘들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퇴원과 동시에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딸집에 들어가 간병을 받게 된 것이 미안하고, 짐이 되서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위 3가지 이야기는 지난 해 일어났던 자살사건의 내용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위의 예처럼 최근 들어서는 10대 청소년부터 60,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층에서 자살 증가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살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분명 그들은 삶을 이어나갈 수 없을 정도의 큰 절망을 경험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타살보다 힘들다는 자살’을 선택했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자살은 비단 개인의 문제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심각한 사회문제들과 자살과의 인과관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자살증가율 세계 최고

지난 달 폭우 속에서도 잠실철교 위에서 40대 여성이 강물에 투신자살했다. 또, 휴가 나온  현역 군인이 지하철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결혼한 지 두 달 밖에 안 된 유명교수의 딸은 베란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생계를 비관해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죽음을 강요하는 가족 동반자살,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를 돕는 자살사이트 자살, ‘베르테르 효과’까지 동반하는 연예인이나 재벌가의 염세자살, 무엇보다도 전 연령층에 퍼진 우울증 자살이 매일 신문 방송을 도배하다시피 한다. 이제 웬만한 자살뉴스는 식상할 정도이다.

이 같은 병적인 자살신드롬을 수치상으로 보면 더욱 놀랍다.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 당 24명이 자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률 세계 1위이다. 뿐만 아니라 자살의 수도 급격히 늘어나 자살증가율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2004년 국내 사망자수는 24만 5,800명으로 이중 고의적 자해나 자살로 인한 사망자가 1만 2,523명이었다. 인구 10만 명당 24명이 자살한 것은 지난 1994년의 10.5명에 비해 무려 2.4배가 급증한 수치이다.

이 수치를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보면 우리의 자살률이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인구 10만 명 당 자살인구는 일본이 18.7명, 오스트리아가 13.9명, 미국이 10.0명, 영국은 6.3명을 차지했다. 우리는 미국보다 2.4배나 높고, 영국보다 3.5배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자살은 암, 뇌혈관 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사망원인 4위를 차지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었다. 특히 젊은층에서는 그 수준이 심각해 자살로 인한 사망이 10대에서는 교통사고 다음으로 2위, 20대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이화여대 의과대학 정상혁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치”라면서 “더욱 큰 문제는 자살증가율 마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자살증가율이 빠르게 증가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워지고 각박해진 이유도 있지만 우리사회 구성원들에게 우울증 등의 정신건강 이상 징후가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자살에 대한 미화풍조마저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살동기 男-원인불명, 女-질병

상류층의 자살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 유학중 자살을 선택한 삼성그룹 이건의 회장의 막내딸 고 이윤형씨.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일까. 국립서울병원과 이화여대가 지난 7월 대한사회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자살의 사회 경제적 비용 부담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의 자살 동기는 원인불명이 29.9%로 가장 많았고 육체적 질병이 23.5%, 경제적 이유가 19%로 그 뒤를 이었다. 여성의 자살 동기는 육체적 질병이 30.7%로 1위를 차지했고 원인불명이 23.9%, 정신과적 질병이 22.1%를 차지했다.

이처럼 남성의 자살동기 중 원인불명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자살을 선택한 남성들이 유서 등의 특별한 단서를 남기지 않고 목숨을 끊는 경향을 띠기 때문에 원인을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지난 해 20대 아들을 잃은 김 모 씨(50·여)는 아들이 무엇 때문에 자살을 했는지 알 수 없어 더 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시장에 갔다 왔는데 아들이 방에서 약을 먹었더라고요. 유서 한 장도 안 남겨놓고요. 정신없이 울면서 병원에 데려갔지만 결국 저 세상으로 보냈죠. 처음에는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졌어요. 누군가 우리 아들을 자살로 몰고 간 게 아닐까. 별의 별 생각을 다 했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으니 자책감과 고통만 커져요. 아들에게 못해줬던 것만 생각나 미칠 것만 같아요.”

남성의 자살동기 중 ‘원인불명’을 제외하면 남녀 모두에서 ‘육체적 질병’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육체적 질병’은 생계의 어려움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정신질환을 유발하기 때문에 ‘자살동기’로서는 가장 포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지난 해 60대 어머니를 잃은 아들 이 모씨(38·남)는 어머니의 1차적인 자살 동기는 생계의 어려움이었지만 근본 원인은 ‘질병의 악화’였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몸이 약하셨던 분이셨지만 병원에는 자주가지 않으셨죠. 그러던 중 지난 해 배가 아파 진료를 받았는데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어요.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죠. 저희는 가진 돈을 모두 털어서 어머니 수술비를 댔어요. 그런데도 병이 더 악화돼 재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죠. 저희는 은행에 대출까지 받은 상태였고요.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나 때문에 못 먹고 살게 생겼다’면서 미안해하셨어요. 유서에도 ‘돈 한 푼 못 보태주면서 모아둔 돈 쓰고 가서 미안하다’라는 말이 적혀있었죠.”

자살 동기는 남성은 ‘경제적 이유’가 여성은 ‘우울증 등 정신과적 질병’이 ‘육체적 질병’ 뒤를 이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이홍식 회장은 “몇 년 전 IMF당시 구조조정을 당해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많은 40,50대 남성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자살을 선택했다”면서 “처자식을 책임져야한다는 가장으로서의 부담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경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여러 조사에서 발표된 것처럼 여성 우울증 환자가 남성 우울증 환자보다 약 4배가량 많다”면서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여성이 많기 때문에 여성의 자살동기에는 ‘정신질환’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살 충동 느끼는 청소년도 20%에 달해 

 

2004년 2월 자살한 영화배우 고 이은주 씨. 대중들에게 친숙한 그녀의 죽음으로 우리 사회는 따라서 자살하는 베르테르 증후군 까지 겪었다.

고교생 5명 중 1명은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자살을 기도한 경험도 5~7%대로 나타났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0대의 자살은 교통사고에 이어 사망원인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 우리의 현실.

전교조 참교육 연구소가 지난 5월 29일부터 6월 9일까지 전국 고교생 31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는 학생이 전체 응답자의 20.2%를 차지했다. 자살기도 경험자를 도시규모별로 보면 서울 강남 학생이 7.7%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이어 대도시가 5.7%, 읍·면지역이 4.2%, 중소도시가 4%, 서울 비강남이 3.4%를 차지했다.

이 외에도 전체 응답자의 38.5%가 성적이나 입시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친 적이 있다고 답했고, 64.9%는 의욕상실에 빠진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또,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5.6%가 ‘그렇다’고 답해 학생들이 성적과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4년 10대 청소년의 자살사망자수는 246명으로 전체 청소년 사망자 수의 16.1%를 차지하고 있다. 또, 자살을 시도하는 청소년이 자살사망자수의 30~50배로 연간 6000명~10,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정신보건과 조남권 과장은 “청소년들이 자살을 결심하는 이유로는 과중한 학업 부담, 왕따, 학교폭력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나 약물중독, 인터넷 중독 등 유해 환경으로 인한 정신건강상 요인 등을 들 수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세계 어느 나라의 청소년들 보다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입시위주의 교육방식, 자율과 자유보다는 책임과 억압을 강조해 온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가져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올해 단짝 친구를 잃은 김은지 양(18·여)은 “학교는 미래를 준비하고 많은 것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인생의 쓴 맛을 난생 처음으로 맛보게 하는 곳 같아요. 친구의 죽음 역시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친구들 간의 따돌림이 원인이었죠. 그 아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도 알고 계셨고 친구들도 알고 있었지만 조금도 배려하지 않았어요. 저 역시 많은 도움이 못 되어줬어요. 솔직히 학교에서 일어나는 자살사건은 ‘보이지 않는 타살’이에요. 분명히 견딜 수 없게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라고 말한다.  

노인자살도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

전체 연령의 자살률 증가와 더불어 노인의 자살률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2004년을 기준으로 7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103명으로 10년 전 23명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노인 자살증가율로도 세계 최고라니 그 심각성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이 시대 노인들은 평생을 자녀를 위해 애쓰다 아무런 준비 없이 노년을 맞고 있다. 아이들 뒷바라지 하는 것이 바빠 미처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고 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읽지 못해 마땅한 노후자금도 마련하지 못했다. 자녀들마저 경기불황에 어려운 삶을 살아가니 부모로서 부양을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대부분의 노인들이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그 중 많은 노인들이 자살을 선택했다.

대한노인정신의학회 조경현 박사는 “노인들의 우울증은 겉으로 드러나는 두드러진 증상이 없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물론 본인도 인식하기가 어렵다”면서 “많은 노인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어도 방치하다 악화시키고 있으며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는 2000년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비율 7% 이상)로 접어들면서 노인자살이 급격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자살 중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983년 6.8%에서 1990년 9.8%로 증가했고 2000년에는 18%, 2003년 25.2%로 20년 만에 18.4%포인트 늘었다. 특히 노인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는 1983년 13.3명에서 꾸준히 늘어 1998년 30명(37.7명)을 넘어선 이후 2001년 40.5명, 2002년 53.6명, 2003년 69.4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는 전체 자살자(1983년 7.8명에서 2003년 22.8명)보다 더 빠른 증가세다.

1983년 대비 2003년의 인구 10만 명당 연령대별자살자를 보면 65∼69세는13.5명에서 54.8명, 70∼74세는 15.8명에서 55.1명, 75∼79세는 14.8명에서 86.6명, 80세 이상은 13.1명에서 118.5명으로 집계돼 고령일수록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들이 우울증을 일으켜 무력감과 절망에 빠져든 노인들이 문제 해결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호서대 사회복지학과 김형수 교수는 “노인의 우울증 유발 요인은 직업역할의 상실로 인한 자기존중감 감소와 권력·명예·미래에 대한 안정감의 위협, 노화와 건강약화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능력 장애와 만성질환, 각종 장애에 따른 사회관계와 사회참여의 축소로 인한 고립감, 배우자 상실로 인한 고독감, 노후의 경제적 불안정과 가족관계의 불화 등”이라면서 “특히 IMF이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경제적 이유로 목숨을 끊는 노인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우울증 앓고 있는 사람만 100만명

자살인구의 증가만큼이나 우울증 환자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자살의 사회 경제적 비용 부담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중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약 100만 명으로 우리국민 50명 중 1명이 의학적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울증 환자 중 남성이 18만 8545명, 여성은 75만8457명으로 나타나 여성이 약 4배가량 많았으며 중·고등학교 학생 중 남학생의 34.5%, 여학생의 47.5%가 우울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에 빠져 의욕을 상실한 채 무능감·고립감·허무감·죄책감·자살충동 등에 사로잡히는 일종의 정신질환을 말한다. 우울증이 하나의 사회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울증이 원인이 돼 자살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해 2월 자살한 영화배우 이은주 씨도 오랜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던져줬다.

우경종 대한신경정신과개원의협의회 부회장은 “우울증은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마음의 침체기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면서 “우울증은 육체적 병만큼이나 위험한 정신적 병이며 약물치료를 하면 눈에 띄게 좋아질 수 있는 마음의 질환”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2년간 심각한 우울증을 앓아 여러 번 자살시도를 했다는 정신혜 씨(42·여)는 우울증을 앓을 당시에는 마음의 질환이라는 생각보다는 원인이 있었기에 마음의 괴로움을 당연히 받아들였다고 고백한다.

“몇 해 전 주식투자로 큰 돈을 잃고 그 뒤로 우울증을 앓았는데, 그 땐 마음이 심란하고 자책감이 드는 것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만 여겼어요. 가족들에게 우울증을 핑계로 용서받고 싶진 않았고요. 자책감 때문에 몇 차례 자살시도도 했는데, 그 때까지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우울증 때문인지는 몰랐어요. 하지만 올해 초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면서 다시 ‘살고 싶은 의욕’을 되찾았어요. 그 때 알았죠. 우울증이라는 병이 극복 가능한 상황들을 비극적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것을요.”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 3조 856억원

젊은층의 자살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살로 인한 사망이 10대에서는 교통사고 다음으로 2위, 20대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증후군’처럼 확대되고 있는 자살로 인한 손실은 어느 정도나 될까. ‘우리나라 자살의 사회·경제적 비용 부담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해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액은 무려 3조 856억원에 달했다. 이 비용은 한 해 정부예산의 2.6%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응급실 진료비, 응급 이송비, 장례비, 수사비 등의 자살자의 직접비용이 95억4,000만원, 조기사망비용 등의 자살자의 간접비용이 3조702억4,400만원을 차지했다. 이 밖에도 가족의 의료비, 교통비 등의 외부적 비용 중 직접비용이 47억6,800만원, 가족의 작업손실비용 등 간접비용이 10억원을 차지했다. 
약 100만 명의 우울증환자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도 추계됐다. 우울증으로 인한 생산 활동능력 저하 및 중단의 간접비용과 의료비 등의 직접비용을 포함하면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2조 153억원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자살과 우울증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6조원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 같은 손실이 자살을 했거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족 구성원의 자살, 가족 구성원의 투병은 필연적으로 가족 전체 구성원에게도 정신적·경제적 악영향을 끼친다. 자살자 가족의 경우, 가족구성원의 자살 이후 의료이용량이 증가했다는 조사결과도 발표되었다. 정신과적 질환은 가족의 자살 전에 비해 4.6배, 일반질환은 4.0배 증가했다는 것.        

이화여대 의과대학 정상혁 교수는 “자살은 가족구성원의 자살률이나 우울증발생률을 높일 뿐 아니라 심각한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가져오는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이는 1명의 사람이 자살을 했을 때 가족을 포함해 4~5명의 사람들이 함께 공황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결국 잠재적 사회경제적 손실비용은 조사된 것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자살예방 종합대책 나와야… 정부, 적극적인 대책 시행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함께 ‘높은 자살률’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사회경제적 손실 비용이 어마어마할 뿐 아니라 자살이 하나의 증후군처럼 사회 전 계층에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하기엔 그 심각성이 도를 넘어섰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도 자살예방을 위한 국가적인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주대학교 정신과 이영문 교수는 “자살은 정신질환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따지고 본다면 정신질환은 개인적인 문제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문제로도 발생하고 있다”면서 “자살자들이 사회문제를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는 만큼 궁극적으로 그들이 처해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대책이 불가능하다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치료프로그램을 통해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치료해주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도 이 같은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살예방에 팔을 걷어 부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자살예방 5개년종합대책’을 수립, 이를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적극적인 제도 마련과 캠페인 등을 통해 2010년까지 현재의 자살률 24명(10만명 당)을 18.2명으로 대폭 낮추는 것이 목표이다.

복지부는 먼저 종교계, 학계, 시민단체 등 사회각계각층과 연계, 생명사랑, 긍정적 사고의 확산을 위한 ‘생명사랑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또, 국민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TV, 라디오, 전광판,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한 대국민 캠페인을 전개하는 한편 아동, 청소년, 장년 및 노인 등 대상자별 특성에 맞는 자살예방프로그램을 수립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정신보건과 김선호 사무관은 “2006년 자살예방사업은 ‘청소년 생명 사랑 및 자살예방 운동’에 중점을 두고 추진할 것”이라면서 “청소년기에는 친구가 제일 큰 힘이 되므로 어려움에 처한 친구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또래 리더를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와 자살예방협회는 지난 4월, ‘친구야! 함께하자’라는 슬로건을 걸고 제 1차 청소년 「생명사랑 나누미」발대식을 가지기도 했다. ‘생명사랑 나누미’는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자살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필요시 교사, 부모 또는 전문상담가와의 가교(架橋)역할을 수행할 기관.

또 복지부는 ▲우울증 치료에 대한 공익광고와 우울증 무료상담 ▲정신건 강주간(4월1~7일)중 가족·친구에게 전화하기 ▲자살예방을 위한 홍보책자 보급 ▲아동청소년기 자살예방 메뉴얼 개발 ▲응급상황에 대비한 119 연계체계 구축 등의 대책을 마련, 시행하고 있다.

국민의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 필요

정부가 자살예방을 위한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했음에도 일각에서는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을 위해서는 조금 더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자살의 원인을 분석하고 예방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에 개입해야 하는 만큼 웬만한 대책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

특히 사회 전체에 팽배해있는 자살에 대한 긍정적 의식을 전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자살을 미화하는 풍조까지 생기고 있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 자살을 미화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개인의 침해받지 않아야 할 권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만큼 인식개선을 위한 대책도 필요한 실정이라고.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11월 전국의 15세 이상 성인 1천5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4명이 ‘개인에게 자살할 권리가 있다’고 답했다. 또 전체의  27.1%는 `부모 자살 후 어린 자녀가 혼자 남는 것보다 함께 죽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말이 일리가 있다’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26.6%는 `자살이 유일한 해결책인 상황이 있다’고, 71.7%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자살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고, 95.9%는 `자살하는 사람은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문제가 있어 보인다’라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에 대해서만은 유독 넓은 이해심을 보이고 있는 것. 이 같은 현상이 자살률을 높이는 환경적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자살의 직간접적 요인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같은 사회 전체의 가치관과 인식이 자살률을 높이고 있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수치스럽다’고 여기는 행위를 피하려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 의미에서 자살을 죄악시 여기던 때만 하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였다”면서 “최근 자살자에게 갖는 동정심과 이해심은 자살률을 높이는 요인이 될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자살사건에 대한 매스컴의 보도가 너무 자극적이며 드라마나 영화에서 미화시킨 자살 장면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것도 문제”라면서 “전체 사회구성원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문화적 접근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9월 10일은 세계자살예방의 날이다. 자살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고 생물학적 요인이 결부된 현상이다. 어떻게 하면 그 현상을 예방하고 막을 수 있을까. 아마 ‘이것이 해답이다’라고 제시하기기는 힘들 것이다. 자살은 순수하게 개인의 선택이 전제되는 문제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회, 종교, 의학 등의 분야에서 인간의 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예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청소년의 자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부의 입시제도 개선이 동반되어야 하며 사회적 빈곤에 의한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경제정책 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자살예방 문제는 그 시대, 한 국가의 사회철학을 대변해야 한다. ‘모든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국가의 소임을 잊어서도 안 된다. 생명은 소중하고 인간은 존엄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는 ‘자살예방정책’에서 국가적 혜안을 기대해 본다.  

글/안주영 사진/최경훈 기자

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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