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천 따지, 가마솥에 누룽지 박박 긁어서 선생님 한 그릇, 나는 두 그릇…”
지난 8월 3일 오후 1시, 인천 계양산 자락에 있는 해인공부방 교실 안. 50대로 보이는 한 중년 여성이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전통놀이 지도에 한창이다. 선생님이 취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신기하고 재밌어 보이는지 그대로 따라하는 아이들의 손놀림이 예사롭지가 않다.

다섯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호흡을 맞추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모습에선 세대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정겨운 가족 같아 보이니 말이다. 더운 날씨 탓에 지칠 법도 한데, 선생님의 목소리는 지친 기색이 없다. 젊은이 못지않은 삶의 열정이 느껴지는 그를 만나봤다.   

돈과 건강, 일석이조

은퇴 후 다시 직업을 갖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일까. 아마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없다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제2의 은빛인생을 살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얼마 전 은퇴하고 전통문화지도사의 길을 걷고 있는 김형순(59) 씨가 그 주인공.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 그가 노후를 즐겨도 될 나이에 다시 일을 찾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거 김씨는 초등학교 서무과에서 행정직을 보는 공무원이었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은퇴 후 집에서 가사 일만 하는 것이 덧없게 느껴졌던 탓일까. 자신이 갑자기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 우울증까지 찾아오게 되었다고.

“평소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쉬는 날에도 여행을 다니고 봉사활동도 꾸준히 하는 편이었어요.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은퇴 후 집에만 있으니 적응도 안 되고 점점 몸이 아파오더라고요. 그러던 중 우연히 신문을 통해 시니어클럽에서 전통문화지도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어요.”

직장이 학교인 탓에 유독 아이들과 인연이 많았던 그에게 아동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전통문화지도사는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루려면 그에 따른 노력이 따르는 법. 몇 개월간의 교육을 받고 간단한 이론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전통문화지도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는 늘그막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다. 평소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라면 꼭 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 이어서일까.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곧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통문화사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전통문화지도사는 아동을 대상으로 유아·보육시설에 파견되어 어린이들에게 국악놀이, 전통예절, 전래동화 등을 가르치는 직업이다. 평소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는 편이어서 그는 지금 일하는 것이 즐겁기만 하단다. 또 손자뻘 되는 아이들을 매일 만나게 되니 몸도 마음도 더 젊어져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만 든다고.
“이 직업을 봉사로 하게 되었어도 즐거웠을 텐데 젊어지고 수입까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죠. 또, 아이들과 언제나 함께 생활해 젊음도 함께 보상받는 기분이에요. 이젠 아이들과도 정이 들어 모두 내 손자, 손녀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사랑스러워요.”

젊음의 원천은 일!

일의 특성상 여러 곳을 직접 방문해 돌아다니는 직업이라 적지 않은 나이가 걸림돌이다. 하지만 워낙 일을 즐기는 성격 탓인지 육체적으로는 힘에 부치지만 마음만은 즐거워 힘든 줄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 있을 때 몸이 아프다가도 밖에서 일을 하면 오히려 힘이 날 정도란다. 또, 수업을 갈 때마다 자신을 반겨주고 무릎에 앉아 놀아달라고 애교를 떠는 아이들을 볼 때면 너무 사랑스러워 날마다 오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고.

“가르치는 아이들이 결식아동이나 한 부모 가정의 아동이 많은 편이에요. 일반아이들보다 부모의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이 많은 편이죠. 그래서인지 이들에게 한 명 한 명 조금만 관심을 보여줘도 잘 따르고 저를 좋아해요.”

이렇듯 아이들이 김씨를 따르고 좋아하는 이유에는 그만의 노하우가 따로 있다. 바로 아이들을 대할 때는 절대로 화를 내지 않고 칭찬을 많이 해주는 것.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칭찬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교육방법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 젊은 교사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적지 않은 나이가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할머니 같은 포근함으로 다가가 거리감을 좁히는 장점이란다.

  김씨가 한 달 일하고 받는 수입은 40만원 선. 물론 직장생활 할때 받는 수입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지금 받는 월급이 더 가치 있고 보람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손자뻘 되는 아이들을 만나 젊어지는 기분이 들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이 여전히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냥 즐겁기만 하기 때문. 또, 과거 남편과 함께 맞벌이를 할 땐 사는 것이 바빠 자신을 위해 투자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 다르게 오로지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있단다.

“이 일을 하게 된 이후로 오히려 건강이 더 좋아졌어요. 일의 특성상 돌아다니게 돼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운동이 돼 그런 것 같아요. 무엇보다 마음이 즐거워지니 자연스레 젊음이 유지 되는 비결이 아닐까요.”

물론 건강을 걱정하는 가족들의 반대도 많았다. 처음엔 그의 건강을 걱정한 가족 모두가 다시 일을 하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즐겁게 일하는 그를 보고 가족들은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단다. 그래서 일까. 일을 하기 전보다 가족들과 더 친해지고 가까워졌다고.
그는 정년퇴직 후 새로운 인생을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거듭 당부한다.

“누구나 사람은 늙기 마련이에요. 나이가 들어도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노인정에서 동전을 걸고 화투치면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이 가장 안타까워요. 조금씩 저도 늙겠지만 그들처럼은 되지 않으리라 언제나 다짐해요.”

노력 앞에 장사 없다

이제 곧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김형순 씨. 그에게 얼마 전 또 다른 목표가 하나 생겼다. 바로 영어회화를 공부해 외국아이들에게 전통놀이를 가르치는 것.
“얼마 전 어린이 집을 방문했는데 외국아이들 몇 명이 있더라고요. 그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무척 속상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 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짐했죠. 영어회화를 열심히 배워 꼭 전통놀이를 가르치겠다고요. 열심히 배워서 꼭 계획을 실천해 보고 싶어요. 

“노력 앞에 장사 없다”는 속담을 그를 두고 한 말일까. 인터뷰 내내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힘 닳는 한 지금 일을 계속 할 계획이다. 또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소외된 이웃을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자원봉사도 꾸준히 하고 싶다는 포부도 내비췄다. 자신의 능력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는 김형순 씨. 그 열정을 보아하니 그의 화려한 은빛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글·사진/박경미 기자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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