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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랑말과 함께 한 제주도의 푸른밤제주도 푸른 목장에서 토종 조랑말 돌보기
안주영 기자 | 승인 2006.10.25 11:12

얼마 전 개봉한 영화 <각설탕>은 실로 오랜만에 눈을 퉁퉁 붓게 만든 영화였다. 경마기수인 여주인공과 그의 경주마 ‘천둥이’의 이별과 만남을 그린 이 영화는 기자를 비롯해 극장 안의 관객들을 쉴 새 없이 울렸다. 평소 눈물이 많긴 했지만 이 영화를 보고 그토록 울었던 이유는 얼마 전 제주도에서 만났던 조랑말, 초원이가 생각나서였다. 초원이는 지난 8월, 휴가 차 떠난 제주도에서 만난 제주조랑말로 태어난 지 1년이 조금 넘은 망아지이다. 영화 속 천둥이처럼 머리에 다이아몬드 문양이 있던...

‘갑자기 웬 말 이야기일까’라고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미 눈치 챘겠지만 이번 달 기자체험은 말(馬)과 관련이 있다. 평소 특별한 체험을 해보고 싶던 기자가 ‘제주조랑말 돌보기’에 도전해 본 것. 삼 복 더위 속에서 모이를 주고, 배설물을 치우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었지만 푸른 초원과 귀여운 말들 덕분에 즐겁게 일할 수 있었던 그 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보자.

크고 맑은 눈만큼이나 순한 친구를 만나다

아침부터 푹푹 찌던 8월의 어느 늦은 아침, 기자체험을 위해 제주의 한 목장을 찾았다. 숙소에서 1시간여를 달렸을까.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조랑말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TV나 영화로만 보던 그림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목장에 들어서자 어렵게 취재를 허락했던(?) 목장 주인아저씨가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먼저 오늘 돌봐야 할 말들을 소개해 줄게요. 그리고 말을 대하는 방법과 모이 주는 방법, 배설물 치우는 방법을 가르쳐줄테니 따라오세요. 아! 그리고 말은 은근히 겁이 많으니 뒤에서 접근하지만 마세요. 순한 녀석들이니까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주인아저씨를 따라 언덕에 오르자 수 십 마리의 말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아저씨는 말 무리 중에서도 망아지들을 돌보는 것이 초보자(?)에게 적당하다며 망아지가 모여 있는 곳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이 녀석들은 엄마를 잃은 망아지들이에요. 이 곳에서 태어난 녀석들도 있고, 다른 목장에서 온 녀석들도 있어요. 항상 정에 매말라 있어서 그런지 목장 사람들을 유독 잘 따라요. 가까이 와서 한번 쓰다듬어 보세요.”

아저씨의 말에 용기를 내서 초롱초롱 예쁜 눈을 가진 망아지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히잉~’하는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말이 망아지지 크기가 웬만한 대형견 보다 컸기에 겁이 덜컥 났다. 아저씨는 연신 괜찮다며 껄껄 웃었고 몇 번의 시도 끝에 녀석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을 수 있었다. 그러자 털의 부드러움과 함께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녀석도 좋은지 머리를 계속 비벼댔다.

“초원이가 기자님을 좋아하나 보네요. 말들도 첫인상이나 냄새를 가지고 좋고 싫은 것을 판단해요. 처음 보는 데도 유독 잘 따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잘 해줘도 경계하고 피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 예쁘게 생긴 녀석이 날 좋아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너무너무 다행이네요.”
 
돌보기 쉽지 않지만 자연과 동화되는 기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신나게 말들과 어울리기를 몇 십분. 아저씨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기자는 그제서야 ‘조랑말과 놀기’가 아닌 ‘조랑말 돌보기’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본연의 임무를 까맣게 잊어버린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녀석들과 셀카하기에 바빴다니! “죄송해요. 녀석들이 너무 예뻐서... 오늘 하루 열심히 일 할테니 아저씨께서 녀석들 돌보는 방법을 전수해주세요.”

아저씨는 여물 주는 방법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은 사료를 하루 4회 줘요. 공복이 심할 때에는 먼저 건초·청초를 2∼3㎝로 잘라 물에 적신 다음 곡류·쌀겨 등을 잘 혼합하여 줘요. 말이 주로 먹는 사료는 야건초, 목건초, 연맥, 밀기울, 소금·첨가제 등이에요. 우선 저기 사료창고에 가면 만들어놓은 사료가 있으니까 통을 가져와서 그걸 먹이세요.”

아저씨가 가리키던 사료창고에 갔더니 사료가 가득 쌓여있었다. 망아지 세마리가 먹을 분량을 대충 통에 담고 발걸음을 옮겼다. 사료 통인 줄 어떻게 알았는지 망아지들이 내 주변에 모여들었다. 아저씨가 설명한데로 먹기 좋게 뿌려 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양이 부족했는지 녀석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먹어치운 것이 아닌가. 할 수없이 다시 창고에 가서 사료를 두 차례 더 날랐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말들을 배불리 먹이고 잠시 나무 밑 그늘에 쉬고 있을 때 다시 아저씨가 나타났다. 그리고 다음 지시가 내려졌다. “많이 힘들죠? 날이 더워서 더 힘들었을 거예요. 이제 말들의 배설물 치우는 방법을 알려 줄게요. 여기 가져온 삽으로 목장 곳곳에 있는 배설물을 퍼서 수레에 담으세요. 냄새가 많이 나고 날파리도 많이 모여 들 텐데 괜찮겠어요?”

망설여지는 맘을 속인 채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Yes’를 외쳤다. 그리고 삽을 들고 아저씨가 시범을 보인 대로 녀석들의 배설물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역한 냄새가 코를 괴롭혔지만 이상하게도 몇 차례 나르고 나니 그것도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녀석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거나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한 시간 정도 치웠을까. 수레에 배설물이 가득 차 올랐다. 그 결과물을 보자 식사도 거부한 채 일 한 것에 대한 묘한 뿌듯함(?)이 밀려들고 있었다. 

하루 종일 관광객 태우는 조랑말 측은하기도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겠지만 ‘조랑말 돌보기’는 그야말로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예쁘게 생긴 망아지들과 멋진 초원 위에서 노니는 재미 때문이랄까.
일이 마무리가 되고 아저씨가 다시 모습을 나타내기 전까지 난 녀석들에게 이런저런 장난을 걸었다. 잡초를 뜯어 녀석들 콧구멍을 간질이기도 하고 괜히 놀래 키거나 쫓기도 하고…. 다행히 녀석들도 즐거운지 ‘히잉~’이라는 콧소리로 흥을 돋궜다.

오후가 되서야 나타난 아저씨는 고맙다며 ‘승마체험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하셨다. 물론 몇 만원의 돈은 내지 않고 공짜로 말이다. 난 주저하지 않고 “네~ 좋아요”를 외쳤다. 아저씨는 “저쪽 편으로 건너가야 하니까 녀석들과 작별인사라도 하세요”라고 말했다. 그 새 정이 들었는지 막상 헤어지려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초원아, 다음에 다시 꼭 놀러올게. 잘 지내고 있어.”
녀석들을 한번씩 쓰다듬어 보고 안아도 보고 그렇게 아쉬운 작별 인사를 청했다.

승마장에 도착하자 꽤 많은 관광객이 승마체험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30여분 정도 기다리자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조교 아저씨의 도움으로 말에 오른 기자는 멋진 백마를 타고 승마장을 비롯해 목장 주변을 돌 수 있었다. 말을 타며 제주도의 그림 같은 풍경을 보고 있자니 환상적인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자갈밭을 걷는 말에게 문득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 건 말에 오른 지 20분 정도가 지나서였다. 헛발을 디디는 등 말이 힘들어하는 기색이 나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아저씨. 이 말이 힘들어하는 거 같아요. 하루에 보통 몇 명이나 태우나요? 쉬는 시간은 없어요?”
“하루에 20명에서 30명 정도 태우죠. 약 10시간 정도 일하는 셈이에요. 특별히 쉬는 시간은 없어요. 다만 이 녀석이 일주일 전에 출산을 해서 기력이 회복이 안 되었나 봐요.”

일주일 전에 출산 한 말이 하루에 10시간 동안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다니! 조금은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뒤에서 졸졸 따라오는 게 새끼 말인 모양이었다. 문득 제주조랑말의 처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타고 황홀해할지 모르겠으나 말 못하는 동물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는 건 아닌지… 괜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승마체험이 끝나고 마음씨 좋던 주인아저씨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예쁜 말들과도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힘을 썼더니(?) 허리와 다리가 지끈거리긴 했지만 제주도의 환상적인 일몰 풍경이 그런 것쯤은 잊게 만들었다. 난생 처음 접해 본 말들과의 추억, 비록 어설픈 엄마의 역할이었지만 녀석들의 예쁜 눈망울과 따스한 체온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그들의 부모가 그랬듯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전해줄 새끼조랑말들. 녀석들이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서 저마다 멋진 ‘제주조랑말’의 모습을 갖출 날을 마음속으로 상상해봤다.    
   
글/안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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