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누군가의 삶은 그가 평생을 일궈온 일터에 있다. 요즘처럼 직업을 수시로 바꿀 수 있는 때에도 통하는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직업이 곧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누군가가 평생을 바쳐 지켜온 직업, 그 속에는 그 사람의 인생관과 철학은 물론 인품까지 스며있기 때문이다. 살아온 삶 자체가 곧 한 장의 명함인 셈이다. 언 40여년의 세월동안 등나무공예에 매진해 온 박 정수(55)씨의 삶도 얼기설기 지어진 응봉동의 허름한 작업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여름의 막바지 장맛비가 쏟아지던 오후. 언덕 하나를 올라 간신히 찾은 작업장은 2미터가 족히 넘는 기다란 등나무줄기와 그 완성품들로 가득 찬 15평 남짓의 창고방이었다. 말쑥한 바구니들이 산처럼 쌓여있는 방 곳곳에 세 명의 ‘등나무꾼’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앉아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그 중 연보라빛 티셔츠를 입은 박씨가 이곳 ‘응봉동등나무가구’의 대표다. 하지만 맨발에 바지를 걷어 부치고 앉아 나무 엮는 작업을 쉬지 않는 오십 줄의 두 사람도 직원이라기 보단 동료라 부르는 게 맞을 20년지기 친구사이다.
박씨가 도대체 취재할 게 뭐가 있느냐고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물었다. 목소리에 세월의 걸걸함이 묻어난다. 그의 고향은 신한이지만 고향을 떠나온 지도 근 38년이 되었다. 이 햇수는 그가 등나무를 만져온 세월과 맞물린다.

열여덟 무렵. 징용 갔다 돌아온 동네 어르신들은 빈 몸으로 돌아왔지만 빈손은 아니었다. 일본인 밑에서 구박받으며 배운 등나무공예는 바다를 건너와 어르신들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삼촌들과 함께 어깨너머로 배운 그 기술이 박씨의 한 평생을 지탱해 준 업이 되었다.
“그때 그 어르신들 밑으로 배운 우리세대가 따지자면 2기 쯤 되겠지. 하지만 기수 따지는 건 이제 의미가 없어. 이거 여적 붙들고 있는 사람, 전국에 스무 명 될까 말까야….”
그때 함께 배운 삼촌들이며 선배들의 손에는 이제 등나무가 사라졌다. 다들 전망 좋은 사업을 찾아 직업을 고를 때에도 그는 묵묵히 작업장에 남아 손에 익은 바구니를 만들고 또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하늘이 맺어준 천업이라 믿었다.
“이 업으로 자식 셋을 성장시키고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으니 고마운 일이지. 배운 게 이것 하나라 이날까지 등나무만 만지지만 나는 이 일을 후회해본 적이 없어. 줄곧 앉아 작업을 해도 지치질 않고 열심히 만들다보면 사심 없이 하루가 가.”
속살처럼 흰 나뭇살을 매만지는 두 손이 투박하고도 정직해보였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 그 땐 이 사업도 탄탄대로였다. 80년대 중반 값싼 수입가구에 밀려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남부러울 것 없던 생업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래도 4,50명이 넘던 직원이 떨어져나갈 때의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그는 오히려 지금이 맘 편하단다.
“장마철엔 주문이 확 줄어서 하루 내내 바구니 5,60개가 고작이야.”
말하는 그 순간에도 작업 중인 손은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바구니 60여개는 반나절이면 뚝딱 만들 분량. 그러나 주문량을 다 채워도 등나무꾼들은 하루 9시간을 꼬박 나무를 엮는다. 만들어두면 언제든 다 나가게 마련이라며 그 바지런이 익어버린 손을 쉬는 법이 없다. 일거리가 많고 적고를 떠나 밥 먹는 시간과 틈틈이 문지방에 앉아 담배 피우는 시간을 빼고는 주구장창 앉아 가로세로 나무를 엮고 또 엮는다.

능숙한 손놀림이 15분도 안돼 보기 좋은 바구니 하나를 만들었다. 예전엔 가구를 주로 만들었지만 이젠 선물용 과일이나 와인을 담는 바구니 등 소모품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작업실 한켠 단단해 보이는 의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 주문이 들어온 등나무의자란다. 이렇게 견본을 보내오며 그대로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종종 있단다.
“이만한 의자 짜려면 못해도 15만원은 받아야 돼. 들어가는 노력과 재료가 몇 십 배는 더하니까.”
일꾼 넷이 달려들어도 하루 네 개가 고작인 원목의자의 몸값이 제법 높았다. 그래도 철제며 합성나무로 만들어진 현대식 의자 저리 갈 정도로 단단해서, 얼마 전에는 80년 된 안락의자를 실제로 봤다며 등나무가구 자랑을 늘어놓는다.
가구는 그 견고함과 쓰임이 소모품과는 틀려 더 좋은 나무로 더 정밀히 틈새를 매워야 한다. 질 좋은 인도네시아산 등나무, 그 중에서도 속살이 아닌 질기고 탄력 있는 겉살을 뽑아 꼼꼼한 직조과정을 거친다. 그러고 나면 통풍 잘되고 나무 질감 멋스러운 사철 등나무 가구가 완성된다.

“기왕이면 가업을 삼았으면 했지….”
다섯 식구의 안위를 책임지게 해 준 직업에 대한 고마움은 두 딸을 출가시키고 막둥이 아들이 취업을 앞둔 요즘 한층 더 크게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이 한결같이 순박하고 정직한 직종이 사라져 가는 것이 싫다. 하지만 누구 하나의 욕심으로만 가능한 일이 아니라서 박씨는 그 수수한 욕심마저 마음에서 놓아버렸다.

 “수익성이 없다 보니 배워 익히겠다는 사람이 없어. 마음 같아선 아들녀석이 이어주면 좋겠는데 우리 아들은 싫다네. 아비 사는 모습이 그닥 훌륭해 보이진 않았을 수도 있지…. 어쩔 거야, 싫다는데. 저 싫으면 그만이지.”
저 싫으면 그만. 억지로 해온 직업이 아니니 아들도 싫다면 그뿐이다. 직업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 자부심인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지라 거듭 강권하지도 않았다. 한창 빠르고 번쩍이는 세상의 중심에 선 아들의 눈에 늙은 아비의 기술이 보잘 것 없을 수도 있겠다고, 그는 그냥  그리 생각한다. 그저 후회 없이 지 한 몸 던질 수 있는 일을 찾아 기쁘게 일한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다. 아비처럼 말이다.

하루 종일 앉아 같은 작업을 반복하다보면 쑤시고 결리는 곳도 한둘이 아닐 것 같은데 박씨는 아픈 곳이 없다 한다. 힘든 노동도 아니고 늘상 손을 놀리는 일이니 오히려 건강체질이 됐다며 너스레도 보인다. 일하다 몸이 좀 찌뿌둥하다 싶으면 서울 복판이 내려다보이는 마당에 서서 담배 한 가치 물어 피면 그만. 아직 건강도 벌이도 나쁘지 않으니 앞으로 10년은 족히 작업장을 지킬 마음이다. 불편 없고 후회 없는 삶. 지금은 이걸로도 족하다. 그의 손에서 유연하게 꺾인 등나무 줄기가 기세 좋게 튕겨 올랐다.

 

글/김혜경  사진/최경훈 기자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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