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이 속 생생한 삶. 서울 근교라지만 ‘5일장’이 들어선다는 소리에 내심 한적한 시골장터를 생각했다간 오산이다. 높다란 요즘식 건물과 널찍한 횡단보도 사이로 크게 형성된 재래식 시장이 출퇴근길 만원전철 속처럼 북적이는 곳이 바로 모란 5일장이다.

시장입구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온갖 활어들이 팔딱이는 수산시장을 만날 수 있다. 미꾸라지, 장어, 잉어 등 몸에 좋다는 보양 수산물이 고무 다라이 가득. 양동이마다에 그야말로 ‘생생’한 삶의 현장이 있다.

  탈출을 꿈꾸는지 밑에 있는 놈을 밟고 올라선 자라를 아주머니가 툭 쳐 양동이 속으로 떨어뜨린다. 떨어진 놈은 골이 났는지 저 보다 작은 놈의 목을 힘껏 물어뜯으며 성질을 부린다. 내장을 떼인 채로 잘도 살아있는 메기는 엽기지만 신기하다. 비좁은 통 안에서 자리다툼을 하는 냥 지칠 줄 모르고 꿈틀거리는 장어떼의 움직임이 객들의 이목을 끈다. 그 옆에서 미꾸라지도 질 새라 용을 쓴다. 보다 팔팔하게 살아있어야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기분이 좋은법. 아픈 며느리 줄 장어를 고르던 아주머니가 실랑이 끝에 킬로에 6만원하는 장어를 5만원에 샀다. 받아든 검정 비닐주머니 위로 장어의 꿈틀거림이 선명하다.

싼 값에 에누리 하는 재미는 덤. 이곳에선 애들 과자 하나 사면 없어지는 천원도 꽤 짭짤한 비중을 차지한다. 농약 없이 재배한 새송이버섯도 양말 세 켤레도 청양고추 한 무더기도 모두 천원. 양과 질을 다 따져보아도 도시 대형마트에 비해 저렴한데도, 이곳에 나온 사람들은 일단 에누리 없이는 최종 계산을 미룬다. 싸고 싱싱한 상품을 고르는 재미도 만만치 않지만 재래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바로 에누리다.

정찰제가 확산되면서 언제부터인지 깎아 달라는 소리가 민망해져 입 밖으로 나오는 횟수가 줄어들어버렸지만, 재래시장에선 체면 구길 일 없이 입버릇처럼 에누리를 요구하는 게 아직도 관례다. 버티고 버티다가 1~2백원이라도 깎을 수 있으면 성공이다. 안 깎아줘도 그만. 살 사람은 사고, 안 살 사람은 반값을 불러도 안사겠지만, 아무리 싸도 더 깎아달라는 소리를 피할 수 없는 것이 재래시장만의 맛과 멋이다.

혐오식품이냐 보양식품이냐. 기름골목을 지나자 갓 뽑은 참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들기름, 참기름이 이곳의 특화품목이지만, 그것 말고도 모란시장은 우리나라 최대의 개고기 유통시장으로 더 유명하다. 거기에 지네, 뱀, 굼벵이 등 온갖 혐오식품(관점에 따라 건강식품일 수도 있겠다)들의 집결지이기도 하다. 

시장 우측으로 형성된 식용 개 판매장 앞에는 굵은 철창우리 안에 갇힌 덩치 큰 개들이 들어찼다. 개들은 제 처지를 아는지 축 처진 몸뚱이에 우울한 표정이다. 개고기 역시 한국 고유 식문화로서 존중하지만, 날짐승 특유의 숨 막히는 냄새 탓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뭐라 비난하고픈 의도는 없었는데도, 카메라를 들이대자 가게 주인의 얼굴이 금세 험악해진다. 매번 복날마다 방송을 타는 이곳 풍경이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까닭일 터.

지난 복날에도 시장 앞에서 벌어진 시민단체의 개고기 반대 운동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단다. 못 먹을 것 파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강매하는 것도 아닌데 왜 죄인마냥 몰아세우는지 모르겠다며 괜한 분풀이를 해댄다. 식용 개 판매장 옆으로 애완동물 코너가 자리 잡은 모습도 기구하다. 똑같은 개 팔자에 누구는 식용이고 누구는 애완용이니, 같은 장소에서 엇갈리는 운명이 참 잔인하지만, 이것도 장터라는 요지경속의 한 가지 모습일 수 밖에.

장터를 돌다 보면 심심찮게 마주치는 게 바로 지네나 뱀 따위의 혐오식품들이다. 보기에 징그럽고 저걸 어떻게 먹을까 싶지만 맛보다 효능이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생김새 따위 별 상관없고, 약재로 팔리기 때문에 그 값 또한 절대 저렴하지 않다.

한방에서 ‘제조’라고도 불리는 굼벵이는 흔치도 않거니와 눈과 간에 좋다고 알려져 찾는 이가 꾸준하다. 연탄불 위로 쥐포 굽듯 지네를 굽는 아저씨는 지네가 요통과 허리통증에 그만이라며 열변을 토하고, 한켠에선 듣도 보도 못한 뱀 생식기가 등장해 제법 사람들의 이목을 모은다. 단연 정력에 그만이라는 광고도 뒤따른다.

시장판에 품바 없으면 재미도 없다. 장터에서의 구경거리는 품바만한 게 없다. 판을 벌이기 좋을 널직한 공터에 여장남자며 누더기 옷을 걸친 품바 공연단이 들어서면, 나이든 사람들이 하나 둘 먼저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이들에겐 품바가  뽑아내는 노래 한 곡조, 꽁트 하나가 TV 프로보다 더 재미난 모양이다. 엿을 팔며 여장 남자가 “엿 먹어라 이 여편네야” 소리를 수시로 날린다. 육두문자는 단골 멘트. 걸쭉하다 못해 민망할 정도로 심한 농을 던지다가도 가끔씩 해학과 풍자의 옷을 입고 나오는 말에는 으레 박수소리가 뒷따른다.
 

  “3대 바보가 뭔 줄 알아? 다 늙어서까지 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인간, 나이 먹어 손주 봐주는 인간, 자식에게 재산 물려주는 인간이야. 여기 그런 사람들 수두룩 허지?!”
흰머리 성성한 노인들이 끄덕거리며 웃는다. 웃는 얼굴에 자조도 섞여있다. 

공연이 끝나면 구경꾼들은 어느새 그 야물어 보이는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든다. 이렇게 웃겨줬으니 엿 하나는 사 줘야지, 하면서 꽤 기분 좋은 거래를 한 얼굴로 말이다.

서울을 지척에 두고도 옛 시골장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모란시장. 이곳을 찾는 이들이 꼭 장바구니를 든 아낙들만은 아니다. 일을 놓고 마땅히 할 일 없는 사람과 갈 곳 없는 노인들이 이곳에 와 무언가를 얻어간다. 그만큼 구멍 난 삶이 허할 때마다 헐렁한 슬리퍼를 끌고 걸음을 옮겨도 좋을 편안함과 위안이 이곳에는 있다.

잘 포장된 마트의 깔끔함과는 비할 수 없는 재미와 흥도 있다. 그러니 일상의 긴장에서 벗어나고 싶은 날이면 장바구니를 챙겨들고 시장을 찾자. 삶의 활력과 흥겨움이 연출해내는 묘한 에너지를 장바구니 가득 담아올 수 있을 것이다.    
            
 글/김혜경 사진/최경훈 기자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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