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를 소재로 한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10월 전국 관객수 300만을 돌파하면서 사형제 폐지를 둘러싼 논의가 그 어느 때 보다 뜨겁다. 종교단체와 몇몇 인권단체를 주축으로 하던 이전과 달리 영화와 드라마, 소설 등 사형수를 주제로 한 상품들이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일반인들의 삶 속에 자연히 사형제 폐지에 대한 공론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는 10년 가까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나라를 잠정적 사형제 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내년이면 여기에 해당하는데, 실질적으로 국제사회는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의 여러 사형존치국 중 폐지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 한국을 뽑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지금 사형제폐지국가로 가고 있다.

정확히 10년 전인 1996년 11월, 헌법재판소는 “최소한 동등한 가치가 있는 다른 생명 또는 그에 못지않은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생명권을 박탈한다고 해서 반드시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며 사형제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물론 국민의 법감정 변화 등 시대상황이 바뀌면 사형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더불어사는사회는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 아닐까 한다.

세계는 사형제 폐지로 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살인죄 외에 국가보안법, 군형법 등 89개조에 달하는 법정형으로 사형을 규정하고 있다. 정부수립 후 지금까지 처형한 사형수는 902명(49~50년 국가안보법 사범 및 6·25당시 사형집행 제외). 비록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만 8년 9개월 동안 비공식적으로 사형집행을 유예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형이 언도되고 있고 현재 총 64명의 사형수가 ‘미결수’라는 이름으로 복역 중인 사형존치국임에는 변함이 없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 따르면 10월 현재 사형제 폐지국은 129개국, 존치국은 68개국으로 세계 65%에 달하는 국가들이 이미 사형제를 폐지했거나 집행하지 않는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들’이다. 가장 최근으로는 필리핀이 올 6월 사형제도를 폐지한 바 있으며, 그 수도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사형제도를 폐지했으며(우즈베키스탄과 벨라루스에서만 최근 수년 내 사형이 집행된 바 있다), 미 대륙에서는 오직 미국만이 정기적인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아프리카 역시 최근 세네갈과 라이베리아가 사형제도를 폐지했고 2005년도에는 아프리카 53개 국가 중 단지 3개국에서만 사형을 집행하는 등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사형이 집행되는 나라가 많을 뿐더러 폐지의 움직임도 드물다. 세계 68개 사형국 가운데 36개국이 아시아에 포진해 있는데 일본, 중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은 사형제를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는 나라들로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사형제를 폐지한다면 아시아 지역의 인권 주도국이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세계의 추세는 사형제 폐지 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이것은 민주화 및 선진화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EU 15개 국가는 모두 사형제 폐지를 가입 요건으로 내걸고 있으며, UN인권위원회에서는 이미 사형제도 완전폐지에 대한 결의안이 수년 전 채택된 바 있다. OECD국가 중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미국, 멕시코 네 나라뿐이다.

이렇듯 사형제도를 입법에 의해 제도적으로 폐지하는 것은 인권국가로서의 위상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04년에 유인태 의원이 대표발의한 ‘사형제폐지에관한특별법안’이 법사위에 2년 째 계류 중이다. 같은 취지의 특별법안이 15, 16대 국회에서 무산된 전력이 있지만 17대 국회에선 175명이라는 역대 가장 많은 의원수가 서명동의에 나선만큼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더욱이 작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사형제 폐지 지지 입장을 밝힌 이래로 법무부 역시 올 초 ‘사법제도 개선안’을 통해 사형제 폐지를 공식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어느 모로 보나 사형제도 존폐에 대한 오랜 논쟁이 결정적 시점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사형을 찬성하는 당신이 직접 스위치를 올려라”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한 장면.

사형제가 이슈화 될 때마다 사형제 존치론자와 폐지론자 사이에서는 팽팽한 의견이 대립한다. 존치론자들은 제도가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야기하여 흉악범죄를 억제하고 동일한 흉악범에 의한 피해자를 사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극악무도한 흉악 범죄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적절한 응보가 곧 사형이라는 ‘응보적 정의실현’에 입각한 주장이 사형제를 찬성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일 것이다. 그것은 국가가 피해자와 그 가족을 위해 범죄인을 대신 응징해야 한다는, 일종의 ‘앙갚음’과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폐지론자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들은 인간의 기본권이자 천부권인 생명권을 멋대로 앗아가는 사형제도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반인간적인 제도라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대로 제도적 살인행위인 사형제도는 합법적 과정을 통해 국민의 이름으로 가하는 살인행위와 다름없다. 영화 <대드 맨 워킹>의 실제 모델 프리진 수녀는 “사형을 하라 말하는 당신들이 직접 집행스위치를 올려라”라고 말한 바 있다. 국가에 귀속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 제도적 살인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의 무게를 깨닫게 해주는 말이다.  

또한 응보적 정의에 입각하여 생명을 생명으로 갚는 등가원칙 역시 국가가 저지른 행위와 범죄자가 저지른 행위가 거울에 비치는 상처럼 똑같게 만드는 ‘보복살인’에 다름이 없다.
인권운동가 송지연 활동가는 “강도나 방화의 죄를 지었다 해서 국가가 똑같이 범죄자에게 강도와 방화를 집행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유독 살인은 살인으로 되갚으려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막가파, 유영철과 같은 경악할 범죄인들이 나타날 때마다 사형지지자들은 ‘이런 자들을 왜 살려둬야 하는가’하고 냉소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에게는 극악무도한 범죄인의 목숨이라 할지라도 남의 생명권을 주장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은 국가가 준 것이 아니기에 국가가 그것을 종식시킬 권리는 없다.”

대부분의 존치론자들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인권(어떤 의미로는 응징할 수 있는 권리)을 이유로 사형제를 옹호하지만, 사형제도가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인권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실제적으로 사형은 살해당한 희생자의 삶과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사회적 가치를 표현하는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폐지론자들이 “사형집행은 폭력을 가중시킬 뿐 참된 치유나 결말을 가져 오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사형제도폐지를위한범종교연합은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극단의 형벌을 내린다고 해서 피해자나 그 가족들의 피해가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범죄자에 대한 검거율을 높여야 하며 소위 ‘피해자 인권’을 위해서는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위로할 수 있는 지속적이고 제도적인 관리와 세심한 지원 마련이 우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상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은 사형제도가 잘못 적용됐을 때 일어날 엄청난 대가를 무슨 수로 감당하느냐는 문제다. 사형제가 갖고 있는 최대의 위험, 곧 오판의 가능성에 대한 부분이다.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시절 정치사상범으로 몰린 이들을 차치하고라도 익히 알려진 오휘웅 씨 사건(내연녀의 남편과 아이들을 목졸라 살해한 혐의로 사형당하는 자리에서 “엉터리 재판 집어치우라”는 유언을 남겼다)이나 일명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95년 아내와 딸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사형과 무죄 사이를 오가다 8년 만에 무죄를 확정 받았다) 등 사형제의 위험을 경고하는 사례들은 비일비재하다.

오판의 위험과 관련해서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그 역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실제 사형선고를 받고 4년 5개월 간 복역한 바 있다)은 “범죄 피해자가 느끼는 증오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오판으로 사형당한 사람들의 억울함에는 절대 비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인간의 사법행위가 100% 완벽할 수 없는 이상 오판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런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사형제도는 폐지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한바 있다. 

굳이 오판의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형제도는 시대적 분위기, 판사의 가치관, 경제력에 따른 변호의 차이 등 상황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사람의 목숨이 이와 같은 변수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는 것 역시 사형제가 지니는 ‘맹점’인 것이다.

이제는 여론을 넘어 여론을 주도할 때

그러나 이러한 발전적인 논의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미약한 편이다. 사형제를 찬성하는 국민여론이 아직은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김명식 캠페인담당자는 “국민의 완전한 지지를 받아 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는 없다”고 전재하며 국회와 정부당국에 국민의 여론을 빌미로 사형 폐지를 미루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미 과반수이상의 의원들이 사형제의 부당성을 인식하고 폐지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럼에도 국회가 지금까지 입법화를 미뤄오는 이유는 국민감정이라는 여론의 난관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1년에 사형제를 폐지한 프랑스의 경우 폐지의 주체는 과반수 이상의 폐지반대여론을 무릅쓴 대통령의 결단과 국회의 선택이었다.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국회의원이란 옳은 일을 하라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로 국회를 설득했다. 국민여론과는 별도로 집권자의 의지가 중요함을 상기시키는 이야기다.”

현재 2년 째 계류 중인 ‘사형제폐지에관한특별법안’이 11월 10일부터 국회심사에 들어간다. 당론이 정해진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법사위의 승인을 받으면 개별투표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 보다 높게 점쳐지고 있다. 첫 한국인출신 UN사무총장의 탄생과 더불어 인권국가로 나아가는 17대 국회의 전향적인 결단이 내려져야 할 순간이다.

글/김혜경  사진/최경훈 기자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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